워더링 하이츠 | 에밀리 브론테 |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
“내겐 연민이 없다! 연민이 없어! 벌레가 꿈틀거리면 창자가 터지도록 더 짓뭉개고 싶단 말이야. … .” (『워더링 하이츠』, 241쪽)
그것은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이었다!
‘폭풍의 언덕’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의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는 원작을 각색한 동명의 영화 덕분에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막상 원작 『워더링 하이츠』를 읽고 나니 로맨스 영화 같은 낭만적인 사랑보다는 폭풍에 갈가리 찢기고 부러진 가련한 나무처럼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그 개운치 않은 뒷맛에서 스멀스멀 발효된 책을 확 찢어발기고 싶은 반감은 바로 히스클리프에의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극에서 온다. 애초 사랑을 품지 않았더라면 시작되지도 않았을 그의 복수극은 사랑은 아름답고 낭만적이어야 한라는 우리의 순진한 기대와 상상을 무참히 짓밟는다. 사랑의 실패로 말미암은 슬픔이 단지 슬픔으로만 그치지 않고, 더불어 눈물과 회한으로만 그치지 않고 분노의 증기를 피어오르게 하는 사악한 에너지가 될 때, 이 모든 것이 증오로 발효하여 복수심으로 치닫는 인간의 나약하고 사악한 감정은 인간의 집념과 집착이 불러올 수 있는 파괴적인 결말의 좋은 예시일 것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의 복수심의 가장 큰 지류가 캐서린에 대한 사랑에서 왔다면, 사랑의 표현과 방법이야 어찌 되었든 그만큼 큰 사랑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 잔인은 복수의 길과 처참한 결말에서 느꼈듯 그것은 광기에서 출발한 괴물 같은 사랑이었다.
사랑과 증오, 그 아찔한 종이 한 장만큼의 차이
거칠고 쓸쓸한 거리에서 자란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그의 성격만큼이나 거칠고 투박하다. 반면에, 정상적인 부모 밑에서 사랑과 교육을 받고 자란 캐서린은 신경질적일 정도로 민감한 감정을 가졌다. 겉으로는 무덤덤한 히스클리프는 오로지 캐서린만 열 수 있는 튼튼한 강철 금고 속에 사랑을 안전하게, 그러나 타인은 쉽게 알 수 없도록 은밀하게 품고 있었다면, 주변 상황에 신속하게 녹아들고 반응하는 민첩하고 쾌활한 캐서린은 자루 속에 보관된 화약처럼 언제 어디서든 꺼내 폭발시킬 수 있는 빠르고 강렬한 사랑을 품고 있었다. 히스클리프의 사랑은 금고 속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쉽게 내색하지 않지만, 그의 사랑이 만족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다 병이 들면 금고는 조금씩 썩어들어간다. 그렇게 부식된 금고는 그의 마음마저 오염시키며 결국엔 복수심으로 강렬하게 표출된다. 캐서린은 인형을 다루듯 사랑을 즐기고 지배하려는 섬세한 감정과 쉽게 꺾이지 않는 자존심에 신경질적인 오만함이 위험하게 섞여 있다. 그래서 그녀는 에드거와 히스클리프가 자신의 섬세하게 분리된 사랑을 이해해 주려고 하지 않자,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치욕을 견디느니 자신이 가진 모든 열정과 사랑을 폭발시켜 두 남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잔인하게 증명한다. 이렇듯 히스클리프와 캐서린과의 기이한 관계와 융화되기 어려운 두 사람의 성정에서 점화된 섬뜩한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고 기대하는 통속적인 낭만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애증과 집념의 아우라로 점철된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두 사람에게 선물하는 괴물 같은 사랑이다.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못 이룬 사랑은 단지 두 사람의 불행만으로는 끝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구박받고 천대받아옴에도 집요하게 참아온 히스클리프에게 유일한 희망은 캐서린이었다. 그러나 홧김에 내뱉은 캐서린의 말이 씨가 되어 히스클리프가 무던히 살아온 인고의 세월을 하루아침에 깨트려 버린다. 그는 집을 뛰쳐나가 무대에서 잠시 사라지지만, 다시 나타났을 땐 악마도 울고 갈 정도로 잔인하고 냉정한 복수의 화신이 된다. 그는 자신의 사랑을 허락할 수 없는 사회를, 자신의 진실한 사랑을 외면한 채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 캐서린을 응징한다. 이쯤 되면 캐서린에 대한 히스클리프의 순수한 사랑은 애증과 집념에서 발효한 복수심에 짓밟힌 상태다. 그는 차마 캐서린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못하지만, 그녀와 관계된 두 집안을 철저하게 몰락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캐서린의 비극적인 결말을 완성한 장본인이 된다. 그가 진정으로 그녀를 사랑했다면, 어찌 되었든 그녀의 가족에게 최소한의 인정은 남겨두었어야 했다. 다르게 보면, 사회와 두 집안에 대한 그의 증오는 천 년 묵은 나무의 뿌리처럼 깊게 마음속에 박혀 있어 캐서린이란 존재도 별 영향을 끼치지 못했던 것이다.
마치면서...
히스클리프를 사랑에 미친 남자로 보든 아니면 복수에 눈이 먼 악마로 보든 이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독자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살아온 인생길에 따라 판단은 얼마든지 달리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있을 정도로 에밀리 브론테의 『워더링 하이츠』는 다의적이고 다각적인 해석이 가능한 진솔한 문학의 정수이다. 그러므로 ‘오독’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 ‘오독’조차 개인적 감상의 한 의견일 뿐이다.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른 감동과 느낌, 해설을 끌어낼 수 있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문학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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