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 생애와 작품 | 권혁건 | 소설로 반추해 보는 작가의 삶
Original Title: 나쓰메 소세키: 생애와 작품 by 권혁건
나쓰메 소세키 문학에 많은 사람들이 매혹당하는 이유는 약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통할 수 있는 근대화의 모순과 그늘, 죄의식, 고독감,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제반의 문제, 지식인의 불안, 죽음과 자살, 삼각관계, 불륜에 대한 공포, 금전의 구애, 부친과 자식의 갈등, 급격한 근대화에 대한 지식인이 느끼는 두려움, 근대문명과 인간의 불안, 에고이즘 추구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인간 모습 등을 작품을 통해 철저하게 파헤쳐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p21-22)
어느 작가의 작품들을 읽다 매료되다 보면 작가의 일생에도 관심이 갈 때가 있다. 내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소설이 아무리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해도 의도적이건 아니건 작가의 경험이나 사상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마련이기 때문인데, (나 자신이) 탄복할만한 작품을 쓴 작가들을 마주할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어떻게 사는 작자이길래, 어떤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길래 이다지도 재미나고 섬세한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부러움과 시기, 칭찬이 고루 섞인 감탄의 말을 자아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자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역시 자신의 체험을 밑바탕으로 소재로 만든 작품들이 꽤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들에서도 크고 작게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간간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번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두 번째로 접하는 와중에 함께 찾은 책이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권혁건 지음)이다. 참고로 이 책은 처음으로 경기도 시민에 한해서 경기도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는 ‘이웃대출’ 서비스(이 리뷰를 게시하는 2018년 현재 ‘책 바다’ 서비스로 통합되었다)를 이용해서 대출한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참고로 나쓰메 소세키가 쓴 작품에서 작가의 체험이나 삶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몇 작품을 흩어보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다음으로 1906년에 발표한 『도련님(坊っちゃん)』은 나쓰메 소세키가 1895년(28살)에 1년 정도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시코쿠의 마쓰야마 중학교를 무대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같은 해 발표한 『풀베개(草枕)』는 나쓰메 소세키가 1897년(30살) 12월 31 일 친구와 함께 규슈 구마모토 현 다마나군 덴스이 초에 있는 오아마 온천에 놀러 갔다가 하이쿠를 지었던 체험이 소재가 되어 탄생한 작품이다. 1908년(41살)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열 개의 꿈 이야기로 이어진 짧은 단편 『몽십야(夢十夜)』는 꿈 이야기인 만큼 작가의 무의식 세계까지 은밀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산시로(三四郞)』의 무대인 도쿄제국대학은 작가가 졸업한 대학이기도 하다. 1910년(43살)에 연재된 『문(門)』에서 주인공 소스케가 직장동료의 소개로 가마쿠라의 암자 잇소암에서 좌선하는 장면은 1894년(27살) 12월 친구 스가 토라오의 소개로 도쿄 근교 관광지에 있는 가마쿠라 엔가쿠지의 관장인 샤쿠 소엔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좌선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한 해 전 19015년에 연재된 『미치쿠사(한눈팔기, 道草)』는 작가의 자전적 장편 소설이다.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나누시(현재의 동장이나 이장, 파출소장 역할까지 역임)였던 아버지가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짐에 따라 나누시 제도가 폐지되고 수입이 없어지면서 가족의 형편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 나쓰메 고헤나오카쓰의 나이는 이미 50세였고, 모친 나쓰메 치에의 나이 또한 42세였다. 고령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이 수치스러웠던 시대에 가정의 경제적 사정도 어려워지자 나쓰메 소세키는 두 명의 누나와 세 명의 형들과 헤어져 고물상에 양자로 들어가고, 노점에서 소쿠리에 담겨 잡동사니와 함께 전시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 에도가 도쿄로 바뀐 1868년에 11월에는 다시 시오바라 마사노스케의 양자로 들어가지만, 양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양어머니 야스와 다투고 이혼을 하자 나쓰메 소세키는 1875년(8세) 4월에 다시 생가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후 1881년(14세) 1월에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던 모친 치에가 54세로 사망한다.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두 가정의 양자로 떠도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삶 자체를 조명해보면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슬픈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친어머니의 죽음, 폐렴으로 말미암은 두 형의 잇따른 죽음,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마사오카 시키의 죽음과 영국 유학에서 발견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문명의 고독하고 쓸쓸한 그림자와 부족한 유학비, 신체적인 열등감, 소화기관의 쇠약에 의한 소화불량 등이 원인이 되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해 앞으로 만성적인 질환으로 정착하게 될 신경쇠약 등은 그의 문학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가 일찍부터 만성질환을 앓게 된 것은 고령 출산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나쓰메 소세키 /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
내가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을 읽으며 나쓰메 소세키 삶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바로 그가 징병 기피자였다는 사실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입대 연기 제도를 이용하여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할 예정인 해인 1893년 26세까지 입대를 연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 입대 연기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제도가 이미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이런 것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입대 1년 전인 1892년 4월에 뜬금없이 나쓰메 소세키의 부친은 아들의 호적을 홋카이도로 옮긴다. 당시 홋카이도에는 인구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호적이 홋카이도인 평민은 징병이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한 계획적인 병역 기피였다(예전 어느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국적 문제’를 악용하여 병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의 호적이 다시 도쿄로 돌아온 것은 『마음(心)』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14년(大正 3) 6월 1일이었다. 이러한 꼼수를 징병 대상자인 나쓰메 소세키가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1909년 9월 2일 오사카에서 데쓰레이마루라는 배를 타고 대련으로 향하면서 시작한 46일간의 만주와 한국 여행에서 남긴 나쓰메 소세키의 기록에서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에 따라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중국인과 조선인에 대해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연민이나 책임감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신문에 연재되는 기행문에 중국인을 시종일관‘더럽다’라고 경멸하고, ‘짱’(‘짱콜라’의 약침으로 중국인을 이르는 경멸의 말)이라고 부르는 등 민족 차별적인 언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또한, ‘더러운’ 중국인과 ‘깨끗한’ 일본인을 비교하며 일본 국민을 일등 국민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등 영국 유학을 하였음에도 당대 많은 일본 지식인이 가진 한계를 나쓰메 소세키 역시 극복하지는 못한 듯하다.
한국 여행에서는 온통 흰옷을 입은 한국인과 한국의 자연풍경 가운데, ‘잔잔하고 푸른 시냇물’과 ‘푸른 소나무’에만 관심을 나타내었다. 특히 남산에 서 있는 소나무를 인상 깊게 봤는데, 소나무에 대한 특별한 그의 관심은 작품 『갱부』의 첫머리에서도 볼 수 있다.
아까부터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데 소나무 숲이란 것은 그림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더 길었다. 아무리 가도 소나무만 자라나 있으니 참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내가 아무리 걷는다 해도 소나무 쪽에서 발전해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애초부터 버티고 선 채로 소나무와 눈싸움을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갱부』, 옮긴이 박현석, p11)
이렇게 서울에서 16일간 여행하며 남긴 것은 ‘소나무’뿐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산이 있고 소나무가 있어’ 서울이 좋다고 표현했으며, 서울의 ‘남산과 그곳에 서 있는 ‘소나무’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는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억압, 탄압을 받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는 무슨 이유에선지 침묵하면서 서울의 자연경관에만 관심을 나타냈던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p133)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소나무에 유난히 집착했던 것인지, 정말로 서울의 소나무가 그토록 뛰어났던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작가도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다. 작가는 작가이고 작품은 작품이다. 작품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삶을 들춰볼 수는 있으나, 작가의 도덕성이나 인격이 작품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도가 지나치고 어리석은 짓이다. 요리사의 인상이 험악하다고 해서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사생활이 문란한 연예인이라고 해도 시청자를 웃길 수만 있다면 그만이지 않은가? 아무튼, 나쓰메 소세키를 애독하는 독자라면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은 한 번쯤은 꼭 읽고 건너야 할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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