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30

나쁜 초콜릿 | 달콤함 속에 숨은 불편한 진실

Bitter Chocolat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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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초콜릿 | 캐럴 오프 | 달콤 쌉싸래한 맛 속에 숨은 불편한 진실

Original Title: Bitter Chocolate by Carol Off

음모의 소용돌이가 푹푹 찌고 숨 막히는 열대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쌌다. 취재원들은 끊임없이 내게 말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키에페르는 이들의 당부를 무시하고 조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선을 넘었는지 어떻게 알죠?”

내가 물었다.

“코트디부아르에 왔을 때 이미 넘어버린 겁니다.”

(p359)

‘신의 음식’에서 ‘아동 노동 착취’의 아이콘으로

라틴어로 ‘테오브로마 카카오(Theobroma cacao)’. 즉 ‘신의 음식’이라 불리는 카카오나무의 역사는 3,000여 년 전의 중앙아메리카부터 시작된다. 그 당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았던 올메크족 여인들은 카카오 원두의 끈끈하고 찐득거리는 지방질 건더기에 물과 녹말을 섞은, 오늘날 카카오를 함유한 음식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순도 높은 초콜릿을 만들어 고위 계급에 바쳤다. 그리고 올메크족의 뒤를 이은 마야, 아스테카 문명에서도 카카후아틀의 요리와 섭취는 전적으로 지배계급의 취향이었다. 이는 일반 민중뿐 아니라 카카오 원두를 수확하는 이들조차 결코 누릴 수 없는 사치였으며, 원두에 불과했지만 워낙 귀중한 상품이었던 카카오는 아스테카 제국의 공식 통화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 카카오는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 식민지 경제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커피나 사탕수수, 목화 산업처럼 노예무역을 활성화하는데 크나큰 이바지를 한다. 조직적이고 교회의 인가까지 받은 노예 제도는 법적으로는 19세기 중반에 끝났어야 했으나, ‘계약 노동자’라는, 그럴듯하게 이름만 바뀐 채 현대에까지 이어져 ‘아동 노동 착취’, ‘빈곤’ 등의 국제적 문제를 남긴다.

카카오 열매를 따는 아이들과의 약속

캐나다 언론인 캐럴 오프(Carol Off)의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은 3,000여 년 전의 중앙아메리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계급 시대와 착취, 탐닉과 폭력으로 얼룩진 카카오 역사와 그 현장을 추적하여 고발하는, 초콜릿을 좋아하는 소비자로서는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이 담긴 책이다.

인류 문명에 카카오가 처음 등장한 시대부터 카카오가 유럽에 전파된 대항해시대를 거쳐 퀘이커교도 사업가들에 의해 달콤하면서 쌉싸래한 근대적인 판형 초콜캐럴 오프릿 제품들이 개발되기까지의 기나긴 과정과 달곰한 먹거리로 상품화된 덕분에 더욱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게 된 각양각색의 초콜릿 제품 생산을 둘러싼 극심한 경쟁 속에서 탄생한 대형 독과점 및 카르텔 형성 과정에 숨겨진 다국적기업들의 횡포와 야심, 그리고 단지 배고픔을 면하고자 하는 빈약한 소망을 품은 가난한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감금 생활과 무임금 노동 등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학대를 자행한 농장주와 이를 무심히 넘겨버린 다국적기업과 각국 정부들, 또한 카카오와 관련된 코트디부아르 정부의 부정과 부패를 파헤치다 사라진 저널리스트 앙드레 키에페르, 코트디부아르의 카카오 농장으로 끌려가 총으로 위협당하며 강제노동을 해야 하는 아이들을 구출하다 실직한 외교관, 돈을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카카오 농장에서 노동 착취와 학대를 경험했던 소년들의 실화 등 과거와 현재를 아우라는 입체적인 구성과 날카로운 필치로 카카오 세계에 만연한 불의를 폭로한 캐럴 오프는 제2의 키에페르가 될 수도 있다는 위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코트디부아르의 현지 조사를 강행하면서까지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을 완성했다.

캐럴 오프는 코트디부아르의 시니코송(Sinikosson)이라 불리는 외지고 가난한 곳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에게 그들이 카카오 열매로 뭘 하는지 아느냐고 물어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마을 사람들 모두 족장을 쳐다보았다. 난처해진 족장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카카오 원두를 생산하는 그들은 기업들이 카카오 원두를 사들여 뭘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캐럴 오프는 마을 사람들에게 초콜릿에 관해서 설명했고 그중 한 사람이 마을 바깥에 갔을 때 한번 먹어보았는데 맛이 좋았다고 대답했을 뿐, 그 밖에는 초콜릿이 무엇인지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또한, 그녀는 초콜릿이 뭔지 모르는 코트디부아르의 시니코송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먹는 대부분의 바깥세상 사람들은 그 초콜릿이 어디서 오는지, 누가 카카오 열매를 따는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모른다고 말해주었을 때, 시니코송 아이들은 그녀가 대신 그 사실들을 초콜릿을 먹는 사람들에게 알려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캐럴 오프는 『나쁜 초콜릿(Bitter Chocolate)』을 완성함으로써 시니코송 아이들과의 약속을 지킨 셈이 되었다.

Bitter Chocolate by Carol Off

‘공정무역’ 상품에 내포된 또 다른 ‘불편한 진실’

카카오 역사가 처음 시작되는 3,00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초콜릿은 지위가 낮은 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특권층이 소비하는 사치품이다. 수천 년 동안 지배계급의 초콜릿에 대한 가없는 갈망을, 결코 바닥을 드러낼 줄 모르는 기업의 탐욕을 채워주려면 역시 가없는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했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자가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듯, 제품의 싼값에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고 그 이유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1차 생산자들의 노동 착취가 자리하고 있다. 물론 그 노동 착취에는 어떻게든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혹한 처지에 태어난 아이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런 씁쓸하고 우울한 현실을 직시하고 나면 항상 떠오르는 회의는 왜 기업은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이윤 추구와는 공존할 수 없을까 하는, 다소 공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상심에서 오는 낙담이다. 그렇다면 1988년 네덜란드에서 막스 하벨라르(Max Havelaar)가 시작한 공정무역 운동이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유기농 분야의 선구자인 크레이그 샘스와 그의 아내 페얼리는 유기농 초콜릿 상품에 적합한 공급자를 벨리즈 남부 톨레도의 농민에게서 발견했다. 그들은 마야인의 후손으로 재래종 크리오요 카카오나무를 3,000년 전 올메크족으로부터 전수받은 방식, 즉 비료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재래식 방법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톨레도의 농민들은 샘스가 파트너 손을 내밀기 얼마 전에 허밍버드허시와 벨리즈 정부의 조언에 따라 농약에 절은 교배종을 심었다가 크게 실패를 본 직후여서 그의 사업 제한이 못 미더웠지만, 그렇다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결국 계약에 동의했다. 샘스가 설립한 그린&블랙스는 이를 계기로 ‘마야골드’라고 이름 붙인 명품 초콜릿을 생산했고 그것은 단지 유기농 초콜릿만이 아니라 ‘공정무역’ 상품이기도 했다.

덕분에 수입이 증가한 톨레도 농민들은 아이들을 다시 학교에 보낼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의 동네에 정기 운행 버스가 개설될 정도였지만, 그럼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딴 초콜릿을 살 만큼 부유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전히 원두 재배 이상의 것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미 전 지구적 피라미드 경쟁에서 상위를 차지한 여러 나라와 다국적기업들이 자신들이 점령한 유리한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자 장벽을 쌓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공정무역이 추구하는 진정한 목적이 1차 생산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불편한 진실’도 한몫한다. 윤리적 소비가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한 사람 중 하나인 크레이그 샘스는 “소비자들은 문제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편에 자신들이 설 수 있도록 제조업자들이 도와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열대우림과 전통문화의 소멸, 지구 온난화에 대해 느끼는 절망, 비관, 무기력함 등의 감정을 덜게 해주기를 원하죠.”라고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공정무역 제도가 기존 체제와 비교하면 1차 생산자인 농민들에게 더 큰 이득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그럴듯한 제도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것은 공정무역 딱지를 붙이고 경쟁상품보다 더 비싸게 파는 기업이다. 그리고 공정무역 라벨이 붙은 제품을 삼으로써 세상에, 특히 가난한 이들에게 뭔가 크게 이바지를 했다는 우월감, 또는 자부심에 빠져 자화자찬하며 만족하는 소비자도 빠질 수 없다.

공정무역이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개선할 기회는 제공해 줄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공정무역 제품을 생산하고 소비자 역시 적극적으로 동참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희망적인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캐럴 오프는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한 불의가 바로 잡히는 날은 오기 어려울 거라고 비관적인 전망으로 글을 마친다.

마치면서...

우리 주변의 크고 작은 슈퍼마켓, 심지어 시골의 구멍가게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먹을거리가 바로 초콜릿 제품이다. 그리고 누구든지 그것을 사 먹을 수 있을 만큼 가격 또한 저렴하다. 그러나 군침을 삼키며 그 초콜릿 제품 봉지를 벗기는 부드럽고 나약한 어느 한 소년의 흰 손과 땡볕 아래 시커멓게 그을리며 끼니도 제대로 못 때우고 카카오를 재배하는 소년의 거칠고 억센 손 사이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 못해 요원하기까지 하다. 인종이나 종교, 국경과 상관없이 보편적인 상품이 된 초콜릿이지만, 초콜릿의 원료를 재배하는 소년과 농민들에겐 여전히 사치품이다. 살 만한 나라, 경제적으로 괜찮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심심풀이 간식으로 초콜릿을 소비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단지 생존을 위해 어렸을 때부터 노동하며 초콜릿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을 꿈꾼다.

누구나 겉으로는 공정하며 평등한,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거나 이에 동조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실제 행동은 그 반대다. 『나쁜 초콜릿』이라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12초마다 기아와 그와 관련된 질병으로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행해지는 의도적이지는 않지만 의식적인 지속적인 테러가 부정할 수 없는 그 증거이며, 우리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지속적인 테러에 동참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문명사회 이전 자연인 상태에서의 불평등은 신체적 불평등뿐이지만 그것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고 말하면서 현재의 불평등과 그에 따른 죄악은 사유의 개념이 생기면서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발견이고 선견지명인가. 그러나 아쉽게도 이 불평등을 혁파할 수 있는 조금의 여지도 안 보이니, 정말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1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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