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1/29

메스커레이드 호텔 | 일상으로 파고드는 추리

masquerade hotel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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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범상치 않은 호텔 일상으로 파고드는 추리

Original Title: マスカレ-ド ホテル by 東野圭吾
“호텔리어는 손님의 맨얼굴이 훤히 보여도 그 가면을 존중해드려야 해요. 결코 그걸 벗기려고 해서는 안 되죠. 어떤 의미에서 손님들은 가면무도회를 즐기기 위해 호텔을 찾으시는 거니까요.” (p407)

도쿄 여기저기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세 건의 사건 현장에는 아래와 같은 수수께끼의 메시지가 남겨 있었다.

10월 4일, 45.761871, 143.803944

10월 10일, 45.648055, 149.850829

10월 18일, 45.678738, 157.788585

경시청은 이 메시지를 근거로 하여 동일범에 의한 연쇄살인이라는 잠정적인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른 수사 방침을 정한다. 경시청 수사 1과의 닛타 고스케 경위가 수수께끼의 숫자 암호를 풀어냄에 따라 다음 사건의 무대는 도쿄의 초일류 호텔 코르테시아도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범인에 대한 단서도 없고 누구를 노리는지도 모르고 다음 살인은 호텔에서 일어난다는 것만 아는 경시청은 결국, 호텔직원으로 가장한 잠입 수사관과 함께 손님으로 위장한 수사관을 동시에 호텔로 파견한다.

그에 따라 호텔 측에서는 인정받는 프런트 직원 야마기시 나오미를 닛타 고스케 경위의 상대로 배정하고, 하는 수 없이 나오미는 혈기왕성한 경시청 형사를 가장 빠르게 호텔직원으로 교육하면서 함께 프런트에 선다. 당연히 닛타 등을 비롯한 형사들은 호텔 근무 경험은 전혀 없었고, 나오미가 흘끔 쳐다본 닛타의 모습은 삼십 대 중반쯤의 나이에 매섭고 다부진 얼굴이지만, 무례한 인상은 아니어서 일단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시큰둥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닛타를 엿본 나오미는 불안하기만 했다.

아무튼, 경시청 형사를 일단 겉모양새만이라도 호텔직원답게 만들기 위한 나오미의 각오는 단호했다.

“자세가 좋지 않아요. 우선 그것부터 고치세요. 그리고 걸음걸이도.”

이것이 닛타 형사를 향한 나오미의 첫 태도였다. 그리고 인사하는 방법과 말투를 교정해야 하고 옷매무새도 단정치 않다고 지적하다가 닛타의 장발을 보고는 당장 호텔 지하에 있는 이발소로 데려가 ‘호텔직원 스타일’로 깎아 버린다. 엘리트 출신으로서 자부심이 강한 닛타는 시어머니처럼 시시콜콜 지적하고 참견하는 나오미가 귀찮게만 느껴지지만, 나오미는 최상의 호텔 서비스에 먹칠하는 닛타의 단정하고 예의 바르지 못한 태도가 마음에 걸리기만 할 뿐이다.

Masquerade Hotel by Keigo Higashino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東野圭吾)의 최근 작품들이 초기 작품처럼 사건과 범죄, 트릭, 그리고 추리에 초점을 둔 고전적인 추리물에서 벗어나 범죄 사건을 주요 줄기로 하면서도 주변 인물들 이야기와 사회적 배경을 작품에 충분히 반영하듯, 이 작품 『메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 ホテル)』 역시 그러하다. 좌충우돌 와중에서도 범인의 치밀한 계획을 차츰 간파해가는 형사들의 힘겨운 노력은 여타의 추리소설과 다를 바 없지만, 딱딱하고 묵직한 형사의 모습에서 나오미의 완고한 가르침 덕분에 언제나 사람 좋은 얼굴을 해야만 하는 호텔직원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닛타의 변신, 티격태격 싸우기만 할 것 같은 두 사람 사이의 미묘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과 변화, 그리고 말 그대로 다양한 사람이 드나드는 호텔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재밌는 일화 등은 살인 사건, 그것도 연쇄살인이 빈번하게 등장하여 우중충한 분위기를 띄우기 마련인 추리소설에 산뜻한 기분 전환을 가져온다. 오로지 논리적인 추리에만 혼신을 불어넣은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독자에게 도전’ 시리즈를 본 독자라면 그 구성에서의 차이점은 금세 드러난다.

비록 엘러리 퀸 등의 본격 추리물처럼 책에 나온 단서들만 가지고 독자가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완벽한 논리적 구성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고, 메스커레이드 호텔(マスカレ-ド ホテル)』 막판에 경찰 시선을 다른 곳은 돌리고자 하는 범인의 계획 정도는 추리소설은 좀 읽어본 독자라는 누구나 간파할 수 있는 평범한 트릭이지만 범인의 충분한 의외성과 허릴 찌르는 살인 계획, 그리고 나오미가 들려주는 호텔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연결지은 범인의 살인 동기와 ‘닛타 vs 나오미’와 노세의 갈등과 화해의 흐뭇한 드라마는 충분히 독자를 매료시키고도 남는 감흥을 준다.

특히 나오미가 들려주는 손님의 처지에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엄격한 호텔 서비스 정신과 호텔에 출입하는 다양한 손님 때문에 겪는 호텔 측의 우여곡절은 이야기의 풍미를 더 해주며 독자를 잠시나마 초일류 호텔에 머무르는 것 같은 유쾌하고 만족스러운 착각을 준다. 경찰관은 이미 법으로 정해진 규칙을 지키느냐 안 지키느냐로 옳은지 나쁜지를 판단한다면, 호텔의 규칙은 손님은 정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에 따라야 하는 직원의 고충을 듣노라면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숙박비를 내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인 스키퍼의 정보를 공유하는 호텔들, 일부러 호텔 물품을 숨겨 자신을 도둑으로 몰리게 한 다음 명예훼손이니 뭐니 떠들며 돈을 뜯어낼 속셈으로 숙박한 진상 손님, 금연실인데 담배 냄새가 난다고 클레임이 걸어 일반실 요금으로 스위트룸을 얻는 영악한 손님, 시각장애인 남편이 숙박하기 전에 시각장애인에게 얼마나 친절한 서비스를 해주는지 직접 확인하려고 일부러 시각장애인으로 꾸미고 온 치밀한 노부인, 텔레비전을 통해 얼굴이 잘 알려진 유명 인사가 들키지 않고 젊은 여자와 호텔에서 밀회를 즐기려고 구사하는 기상천외한 방법, 호텔은 숙박 중인 손님의 호실을 절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에 호텔에서 반강제적으로 쫓겨나야 했던 여인과 이 규칙을 역이용해 남편의 불륜 현장을 덮칠 수 있었던 아내 등 나오미가 들려주는 호텔과 함께 사는 사람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 세상의 수많은 직업 중에서 일하기가 가장 까다롭고 그들에게는 고충이지만 타인이 볼 때는 재미있는 일화도 많이 생기는 직업은 다름 아닌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추리소설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명탐정이다. 이번 『메스커레이드 호텔』에는 엘리트 의식이 강한 닛타 형사가 등장한다. 그에게는 가가 교이치로 같은 겸손이나 차분함은 찾아볼 수 없었만,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던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해독하는 명철한 두뇌를 소유함으로써 명탐정이 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만족한다. 그러나 자만심이 충만하며 공명심이 가득한 닛타 형사는 주변과 쉽게 동화되지 못한다. 의욕이 너무 앞선 나머지 눈에 독기를 품고 호텔에 드나드는 모든 손님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쏘아보니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는 나오미의 마음은 애간장이 탄다. 이런 외골수인 그는 두 사람의 짝을 맞이한다. 한 명은 그의 이글거리는 눈의 독기를 잠재우고 편안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서비스 충만한 호텔직원의 유순한 눈으로 가라앉혀야 할 임무를 지닌 다소 고지식한 나오미와 우둔해 보이지만 발로 뛰는 수완가이면서도 모든 공을 다른 사람에 돌리는 괴짜 형사 노세이다. 기름과 물 같았던 세 사람은 사건 해결을 위해 함께 고심하면서 어느새 자연스럽게 융화되어간다. 닛타는 나오미를 통해서는 부드러움을, 그리고 노세를 통해서는 팀워크의 중요성과 겸손을 배운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명탐정, 그러나 완성을 향해 조금씩 전진하는, 그것이 바로 닛타 형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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