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24

망각을 거부하라(拒絶遺忘) | 첸리췬

망각을 거부하라 | 첸리췬 | 중국만의 정치돌림병, 개조되지 않는 영원한 우파!

책 표지
review rating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것이 장땡

일상의 물리적 충격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해 주는 딱딱한 겉표지가 포용하듯 책장을 감싸고 있는 양장본의 든든한 구성을 만만히 보고 있자니, 겉표지처럼 날씬한 식빵에 여러 장의 종이가 합쳐진 책 본문처럼 몇 장의 햄과 알록달록한 채소가 두툼하게 포개진 샌드위치가 문득 생각난다. 샌드위치나 햄버거나 속이 두툼할수록 먹음직스럽듯 책도 두툼할수록 읽음직스럽기 때문일까?

그래서 같은 값이면 양이 많은 음식을 찾듯 이왕이면 좀 더 두꺼운 책을 찾는다. 기능성 소화장애로 인해 식욕이 왕성해지는 것을, 또는 뭔가가 먹고 싶어지는 참기 어려운 상황을 사전에 차단하거나 인내해야 하는 불행한 현실에 대한 반동으로 이처럼 의욕적으로 두꺼운 책을 선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밥을 많이 먹고 소화를 못 시키면 반드시 탈이 나기 마련이지만, 책이 두껍고 어려워 소화하기 어려우면 부작용 없는 천연 수면제로 활용할 수 있으니, 내장이 상하는 것보단 백번 천번 낫다.

모든 책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두꺼운 책이 내용도 충실하고 깊이가 있어 다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읽고 나면 왠지 모르게 충만하다. 입맛엔 안 맞을지 몰라도 일단 먹고 나면 배도 부르고 속도 든든한 보신탕 같다고 할까나?

내가 책을 선택하는 취향이 이다지도 탐욕스러우므로, 또한 도서관 출입 초기부터 중국 역사에 대해 중학생 소녀가 옆집 대학생 오빠를 대하듯 수줍은 호기심을 품고 있던 내게 첸리췬(錢理群)의 『망각을 거부하라(拒絕遺忘)』는 도서관에 즐비한 책장 위에 펑퍼짐하게 눌러앉아 육중한 자태를 뽐내는 [‘빅&더블버거’ 곱하기 10] 같은 존재였다.

지나치게 비대한 책은 먹고는 싶은데, 먹고 나면 분명히 탈이 날 것 같은 그런 친화성 짙은 악마 같은 존재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식전에 소화제를 먹듯 모자란 두뇌에 최대한 탈이 나지 않도록 장이허(章诒和)의 『나의 중국 현대사(最后的贵族)』를 먼저 읽은 것이다. 둘 다 1957년 반우파운동을 소재로 다룬 책이므로 좀 더 가벼워 보이는 장이허의 책을 읽고 나면 첸리췬의 책을 소화하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될지 싶은 얄팍한 책략에서 말이다.

빙 크리에이터 생성 이미지

중국 특색 사회주의가 나은 신노비제도

결과는 책략이 맞아떨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지도 한 것이 나의 무지와 부족한 독해력으론 무엇이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기는 어렵지만, 장이허 책에 등장하는 반우파운동 희생자는 주어진 권력은 거의 없지만 합법적으로 중국 정치에 참여하고 있던 언론인, 민맹(중국 민주정당 동맹, 中國民主政團同盟) 등의 현역 정치인이었던 것에 반해 첸리췬 책에 등장하는 반우파운동 희생자는 베이징대학 중심의 젊은 청년들이라는 점만큼은 확연하다.

고로 『망각을 거부하라』는 청년들의 사상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이 두 그룹이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 百家爭鳴)’ 운동 발발 이후 서로 간의 대화 • 토론 • 논의 등의 어떠한 소통도 없이 제각각 자신들의 주장만을 펼쳤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이처럼 청년 지식인 • 현역 지식인 • 농민 • 노동자 등 각 계급 간의 연대 • 소통의 실패가 당시 중국 사회주의 민주운동이 꽃을 피우기도 전에 쉽게 진압당한 패배의 요인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연대를 도모하거나 강화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오만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그들의 공통점은 한국의 1970 • 80년대 민주화 운동처럼 그 목적이 독재 정권 타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회주의 내부 모순을 개선하고자 하는, 대체로 온건한 개혁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들은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으며 마오쩌둥에 대한 신뢰 역시 변함없었다. 한편으론, (워낙 넓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고 있어서 그런지) 그들 각계각층 사이의 소통 부재가 중국인의 민족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체육 강국인 중국이 남자축구 같은 구기 종목에서만 유독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내가 보기엔) 팀워크의 빈곤, 즉 동료를 믿지 않고 동료에게 의지하지도 않고 동료와 소통하려고도 하지 않고 서로 잘났다는 듯 따로따로 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혼자 플레이하는 스포츠 종목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팀워크를 중시하는 구기 종목에서는 높은 올림픽 종합 순위에 비하면 이렇다 할 활약이 없다. 특히 축구는 ‘축구 지능’이라는 능력치가 자주 언급될 만큼 창의력이 생명인 스포츠인데, 숱한 정치운동으로 개인을 고립시키고 사유 • 사상의 자유를 박탈한 나라에서 창의적인 플레이가 나올 리 만무하다.

굳이 시시콜콜하게 민족성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영악하고 음흉한 마오쩌둥이 그들의 연대를 절대로 허용할 리도 없었다. 『망각을 거부하라』를 보면 명확하게 이해되겠지만, 1957년 당시 베이징대학에서 시작된 자유 • 독립 • 사상해방 • 민주 • 법치 등의 민주운동이 목적성을 띤 거대한 운동으로까지는 확산하지 못하고 이론적으로나 사상적으로나 미숙하고 이상주의적인 유아적 노선에 머물렀을지라도 이러한 청년들의 비판과 요구는 마오쩌둥에게 1956년 헝가리 • 폴란드 혁명의 중국화라는 악몽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스탈린 사망 후 흐루쇼프가 스탈린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면서 공산주의 모순이 전 세계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을 뿐만 아니라 그 모순이 헝가리와 폴란드에선 공산주의 노선을 반대하는 혁명으로 폭발한 위태로운 상황에서 아주 작은 반혁명의 불씨라도 초기에 진압해야 하는 것이 (내가 보기엔 편집성 인격장애가 있는) 마오쩌둥에겐 중국공산당의 존폐가 걸린 문제였을 것이다. 만약 초기 진압에 실패하고 각 계급 • 계층이 연대하여 대규모 운동을 일으키는 사태로까지 나아간다면, 공산당은 어쩔 수 없이 인민 해방군을 동원해서라도 진압해야 할 텐데, 마오쩌둥조차 (마오쩌둥과 중국공산당도 인정한 주관주의, 종파주의, 관료주의를 포함한) 사회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을 비판하고 개선할 것을 정당하게 요구하는 대중들을 무력으로 진압한 후에 정권을 유지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 자신이 농민을 등에 업고 최고 자리에 올라섰는데, 그 농민이 반대하고 나선다면 그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최악의 사태로까지 나아가지 않기 위해선 운동이 커지기 전에 진압하는 것은 차선이고, 최선은 그런 운동이 아예 싹트지 않도록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마오쩌둥은 계급투쟁 논리 아래 수시로 정풍운동을 일으켜 주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사상이 싹틀 시간을 주지 않았고, 더불어 인적 자원 또한 제거하며 사상과 사유가 후대로 이어지는 것을 사전에 차단했으며, 감시 • 통제 • 밀고 • 억압 • 기아 • 죽음 등의 공포정치로 인민을 이간질해 인민 간의 신뢰와 믿음을 아예 뿌리째 뽑아버림으로써 연대 • 연합 등 인민들이 서로 의지하거나 의견을 도모할 기미도 제거했다.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정치 박해와 인민 간의 불신과 적개심을 부추기는 공포정치는 중국 인민의 사유 • 사상의 자유를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인을 노예 임을 명백히 자각하고 기회만 되면 노예 위치에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힘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노예 생활하는 그런 노예가 아니라, 노예 생활에서 아름다움을 찾아서 찬양하고 즐기며 도취하는 영원한 노비로 만들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우리가 돈과 일의 노예가 되는 것을 당연시하는 노비가 된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할 수 있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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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개조되지 않는 우파’, ‘영원한 반대파’라는 명예스러운 꼬리를 얻은 린시링(林希翎)이 그 유명한 베이징대학 강연에서 제기했던 구호는 ‘공산당 타도’가 아니라 “진정한 사회주의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1957년 베이징대학에서 번개탄처럼 순식간에 타올랐다가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저버린 5 • 19 민간사상을 요약하는 핵심 사상이다.

우리가 추측하는 것처럼 중국의 1957년대 청년들이 원했던 것은 선거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로의 전환 같은 반동적인 요구가 아니라 사회주의 공유제, 사회주의 민주에 기초를 둔 법치 아래 인간의 독립적인 사고에 대한 권리를 수호하고 자신의 길과 운명을 결정할 권리를 스스로 지켜 가는 것이었다.

그들의 사유는 때 묻지 않은, 한편으론 세상 물정을 아직 모를 수밖에 없는 청년만이 품을 수 있는 낭만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짙기는 하지만, ‘중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와 같은 현실 비판에만 머무르지 않고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같은 미래 지향적이었던 그들의 사유에는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진심 어린 근심과 국가에 대한 애국으로 충만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들의 사유가 설익었다거나 경거망동하다고 비판할 수 있지만, 찬가의 형식으로 쓰인 유토피아적인 정치 격정의 용감한 분출은 청춘만이 포효할 수 있는 순진하고 순수한 열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다.

당신과 나는 청춘 시절에 무슨 사유를 품었을까?, 아니 그때의 내 머릿속에 사유라고 불릴만한 것이 한 줌이라도 존재했었나? 썩은 달걀 같은 역겨운 자책과 쓸개즙처럼 쓴 회한이 오장육부를 휘돌며 아릿한 통증을 자아낸다.

학생 식당 앞 광장에 탁자를 옮겨놓고 그 위에 올라가서 당당하게 연설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사유에 대한 자신감은 그 사유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 절세기제(絶世奇才)의 절세무공(絶世武功)을 본 것 같은 탄복을 자아내게 한다. 고굉(股肱), 위징(魏徵) 등 목숨으로 직언을 올렸던 충신들의 명맥을 이어온 역사의 후손답다. 그들이야말로 사욕이 아닌 대의와 공익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애국청년들로서 중국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회주의 열사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어떤가? 왜 이 책 제목이 ‘망각을 거부하라’ 인가.

마오쩌둥의 남긴 위대한 유산 중 하나는 비간(比干) 같은 충신의 후손이 유전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말살되었다는 것이다. 첸리췬도 자식이 없다. 옌롄커도 자식이 없다. 중국에서 반항적 • 비판적 기질을 보유한 유전자는 멀지 않아 사라질 것이다. 끝으로 그들의 유토피아적 주장이 식지 않는 마그마가 되어 강철처럼 경직된 중국 사회를 뜨겁게 녹여줄 언젠가의 그날을 공상하면,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격정에 휩싸이는 나는 영락없는 사회주의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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