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 | 김내성 | 한국 추리소설 계보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
시대를 떠나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잘 쓰인 소설
언제나 난 (작품성이니 문학성이니 등의 전문적 비평은 제쳐두고 단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독자의 시점에서) 잘 쓰인 글은 시대를 초월하여 재미나게 읽힐 수 있다는 지론을 묵묵히 머릿속에 담아왔는데, 김내성의 추리소설 『마인(魔人)』이 바로 그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마인』은 거의 100여 년이나 지난 소설임에도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읽기에도 손색이 없는 멋들어지게 잘 쓰인 추리소설이다. 그렇다고 『마인』에서 요즘의 읽을만한 추리소설이라면 당연시하는 과학적 엄밀성이나 치밀한 트릭, 아니면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사회파 미스터리’ 같은 것을 기대하라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라는 장르가 반드시 갖춰야 할 첫 번째 재능이 ‘트릭’이 아니라 ‘추리’에 있다고 보는 독자라면, 충분히 읽어줄 만한 소설이다. 무엇보다 요즘 쓰레기처럼 쏟아져 나오는 판타지, 무협, 로맨스 등 소위 ‘라이트 노벨’이라고 불리는, 하지만 내가 보기엔 ‘소설’이라는 딱지조차 가당치도 않은 졸렬한 텍스트로 가득한 책들과는 당연히 비교할 수 없는 품격을 갖춘 책이 『마인』이며, 요즘의 잘 나가는 추리소설보다 트릭의 구성이나 범죄의 치밀한 면은 뒤질 수 있지만, 문장삼이(文章三易)를 고루 갖춘 유창한 문장과 민첩한 재기가 돋보이는 필치는 이들보다 한 수 위다. 아마 내용만으로 평가한다면 다소 평범하기 그지없는 소실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이유로 장르 소설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텍스트 읽기의 재미가 스펀지에 스며든 감로수처럼 촉촉이 스며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기본에 충실한 고전 추리소설
고전이니만큼 변칙과 응용에 능한 요즘의 추리소설과는 달리 기본에 충실한 면이 있는데, 그것은 독자가 ‘모든 불가능한 일을 제하고 남는 것이 그 수수께끼의 해결’이라고 하는, 추리소설을 제법 읽어본 독자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법칙으로 범인을 쉽게 추리할 수 있다는 점이 그러하다. 다시 말해 『마인』에서 펼쳐지는 ‘세계범죄 사상에 잊을 수 없는 일’ 들 중에서 가능성이 없는 경우, 혹은 가능성이 없는 사람들을 하나둘씩 제거해 가면서 범인을 유추해 나갈 수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사건 A에서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사람이 ‘가’, ‘나’, ‘다’이고,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은 ‘라’, ‘마’이며, 사건 B에서는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사람이 ‘가’, ‘나’, ‘마’이고 알리바이가 없는 사람이 ‘다’, ‘라’일 때, 그리고 두 사건의 범인이 한 사람이라면 두 사건 모두에서 알리바이가 없는 ‘라’가 범인이라는 추리다. 물론 현대 추리소설에서는 알리바이 트릭으로 사건 정황을 교란시켜 추리를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알리바이 트릭이 간파된다면, 역시 앞서 거론한 방법으로 범인을 유추해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최후의 1인, 즉 범인을 추리하는 것은 비단 『마인』에서뿐만 아니라 ‘범인은 우리 중에 있다!’라는 (이 역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듯한) 명제가 성립되는 추리소설에서 두루 써먹는 익숙한 추리이기도 하다.
『마인』에서 독자가 범인을 솎아낼 수 있는 실마리이자 ‘세계범죄 사상에 잊을 수 없는 일’ 이란 (사건이 일어난 순서대로 나열하면) 이렇다. 조선 최초의 가장무도회에서 주은몽을 해치려 하던 어릿광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일, 주은몽에게 버림받은 연인 김수일 화가를 대신하여 무도회에 나타난 이선배란 화가가 주은몽 살해 미수 사건 직후 막다른 골목에서 사라진 일, 세계적인 무희 주은몽과 백만장자 백영호와의 결혼식장에 나타난 (주은몽과 어렸을 때 잠깐 알고 지내던) 해월이가 눈 깜짝할 사이에 자취를 감춘 일, 그리고 백영호와 그의 두 자녀의 잇따른 죽음이다. 나 같은 경우 이중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커텐에 비친 두 그림자’라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겨놓고 살해당한 백영호의 사건 정황을 듣고 범인을 정확히 유추해냈다.
반면에 범죄 동기는 셜록 홈스라도 절대 알아낼 수 없을 정도로 극히 제한적인 정보만이 제공될 뿐이며, 이후 탐정들의 활약을 통해 하나둘씩 밝혀지는 과거로부터 서서히 사건의 내막이 드러나게 된다. 동기는 탐욕과 증오, 원한과 복수라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지독한 감정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숙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진부하기도 하다. 다만, 다른 추리소설과는 달리 『마인』에는 여러 탐정이 등장하고, 다른 추리소설에서는 금기시되는 탐정의 연애도 두드러질 뿐만 아니라 이 연애 감정으로 (그것도 삼각관계에 빠진 탐정의 질투!) 말미암아 추리와 판단에 혼선을 빚기까지 하는 초풍할 일이 벌어진다는 점에서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볼 수 있다. 오죽하면 탐정 유불란은 사랑과 질투에 빠진 나머지 사건 해결에 지리멸렬했던 자신이 못 미더웠던지 우여곡절 끝에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는 다시는 범죄사건에 손을 대지 않겠다고 천명하지 않았던가.
<주은몽의 저택에서 열린 가장무도회엔 이런 사람들이???> |
한국 추리소설 역사에서는 독보적인 존재
어느덧 오늘의 리뷰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시간이 왔다. 『마인』은 무려 100여 년 전에 제법 괜찮은 추리소설을 내놓은 일제강점기 시절의 조선 문단을 새롭게 보게 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그때 소설들을 일일이 다시 읽어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세월과 오해 속에 묻혔던 일제강점기 시절 작품 중에서 지금 꺼내 읽어도 제법 재미가 쏠쏠한 작품들이 꽤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고, 한국 추리소설의 잠재성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는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이후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한국식 사회파 미스터리’의 첫 작품이라 여겨지는 김성종의 대표작 『최후의 증인』을 거쳐, 지금은 어떤 이가 이들 대가의 계보를 잇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치밀한 트릭이 돋보이는 일본 추리소설과 이야기가 풍부한 서양 추리소설의 장점을 어떤 식으로든 소화해 낸 한국 추리소설만의 특징이 새겨진 작품이 나올 때도 된 것 같다. 벌써 나왔는지도 모르고, 벌써 나왔다면 반드시 나에게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소설이 있다면, 죽기 전에 꼭 읽어보고 싶다.
마지막으로 『마인』이 요즘의 추리소설처럼 정교하고 치밀한 맛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바늘에 실 가듯 추리소설에 반드시 따라붙어야 할 논리성마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물며 트릭이나 반전의 치밀함은 떨어질지라도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에 있어서만큼은 그물망처럼 잘 짜여 있다. 여기에 톡톡 튀는 필치가 옹골지다. 마지막에 범인이 애드벌룬을 타고 도망치는 액션 장면은 영화로 봤다면 (실제로 1957년에 개봉한 한형모 감독의 영화 ’마인‘이 존재하지만, 분노스럽게도 필름은 소실된 모양이다!) 그야말로 장관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소설로라도 좀처럼 만나보기 어려운 일제강점기 시기를 배경으로 했다는 점도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동기가 완전히 숨겨져 있고 짐작하기조차 어렵다는 점에서 공정하지는 않지만, 베일에 싸인 과거와 의혹으로 똘똘 뭉친 동기의 실타래를 성실하게 풀어나가는 맛은 제법이다. 다만, 그 동기에 얽힌 사연이나 내막이 (그 당시로는 신선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러한 사정을 소재로 한 것들이 여기저기에 질리도록 넘쳐난다는 점에서) 신파극처럼 유치하고 진부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자, 그렇다면 읽어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 만약 당신에게 그것이 문제라면, 정말로 그것이 문제라서 갈팡질팡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면, 여기서 약소하게나마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겠다. 나는 『마인』이라는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읽을 생각을 못 했다. 왜냐하면, 그 존재 자체를 몰랐으니까. 하지만, 이 소설의 존재를 알고 나서는 단박에 찾아 읽었다. 왜냐하면, 최소한 한국 추리소설 계보의 시작을 온 세상에 알렸던 독보적인 존재니까. 꼭, 그것만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의 탐정이 되어보는 것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시원하게 톡 쏘는 뜻밖의 청량제가 되어 줄 것이다.
0 comments:
댓글 쓰기
댓글은 검토 후 게재됩니다.
본문이나 댓글을 정독하신 후 신중히 작성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