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괴물 | 데이비드 쾀멘 | 스스로 괴물이 된 종
우주는 아주 넓은 장소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우주는 대부분 텅 비어 있는 지루하고 차가운 곳이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 남아 있는 최후의 야수를 절멸시킨다면 나머지 역사 동안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든지 간에 그와 비슷한 다른 종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LV-426 에 도착해 에일리언의 둥지를 발견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은, 그곳이나 그 다음번 미지의 행성들에서도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 p584)
신이 만들어 낸 최고의 괴물!
짐작한 사람도 있고 그 짐작이 빗나간 사람도 있겠지만,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이 말하는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사람까지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이다. 급할 땐 동료도 잡아먹고, 여유를 부릴 땐 별 희귀한 것까지 굳이 찾아 먹는 사람에게 포악한 괴물로 낙인찍힌 것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직 생존만을 위해 진화해 온 그들로선 꽤 억울한 일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윤리관을 다른 종에게까지 무리하게 적용하려는 사람의 오만하고 위선적인 버릇에서 비롯된 선과 악이라는 별 신빙성 없는 이분법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즉, 사람을 잡아먹거나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은 ‘악’이고 ‘괴물’인 것이다. 그래서 신화와 전설은 ‘괴물’에 맞서 싸우는 용감하고 영웅적인 행동으로 가득 찼다. 그뿐만 아니라 역사시대에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는 남성적인 용기와 그러한 사냥을 즐길 수 있다는 사회적 위상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신이 만들어낸 최고의 괴물은 대형 포식 동물이 아니라 다름 아닌 사람이다.
다른 종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미식을 즐기는 잡식성이라는 유일무이한 종적 특성과 과도한 식탐 때문에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온갖 잡다한 동물들을 잡아먹는다. 사자, 호랑이, 곰 등의 포식 동물이 드물긴 하지만 사람을 잡아먹은 이유는 사람의 지나친 영역 확장이 불러온 서식지 파괴와 축소로 먹을 것이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굶주림에서 비롯한 생존 본능 때문에 사람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지만, 사람은 단지 맛있고 새롭고 희귀하다는 이유에서 별의별 동물들을 다 잡아먹는다. 고로 우리와 같은 사람인 데이비드 쾀멘이 이 책을 썼기에 ‘신의 괴물’은 사람을 잡아먹는 대형 포식 동물(책에서는 ‘알파 포식자’)을 지칭하지만, 만약 먼 훗날 돌고래나 개든 사람이 아닌 누군가 이와 비슷한 책을 쓴다면 ‘신의 괴물’은 다름 아닌 사람일 것이다.
생태계에서 인류가 맡은 역할과 지위에 대해 묻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아무짝에 쓸모없게도 단순히 다른 종들을 잡아먹기만 하는 괴물들일까? 실상은 그 반대다. 먹이 사슬에서 최상위에 있는 포식 동물은 생태계의 균형과 조화를 조절하는 중책을 맡고 있다. 만약 그들이 생태계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는, 백수(백수조차 먹고살기 위한 최소한의 경제 활동을 한다)보다도 못한 존재였다면 진화 도중 도태되었을 것이라고 바보라도 예상할 수 있다. 최상위 포식자가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생태계가 단순해지고, 그에 따라 복잡한 먹이 사슬 시스템의 가지가 처지면서 종의 멸종이 줄줄이 발생하고 이는 곧 생태계의 붕괴로 이어진다. 생태계가 완전히 붕괴하지 않더라도 단순해진 생태계는 덩치 큰 육식 동물이 사라짐에 따라 작은 동물들의 세상이 될 확률이 높다. 운석으로 공룡이 멸종했기에 설치류의 세상이 올 수 있었던 것처럼(공룡의 빈자리를 포유류의 진화적 도약으로 채워지면서 인류의 출현도 가능했다!) 그들이 사라지면 우리는 바글대는 쥐들과 함께 전쟁 아닌 전쟁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괴물’ 아닌 괴물들이 사라졌을 때의 생태학적 손실은 대충 이러하지만, 사람에게 있어 대형 포식 동물이 차지하는 자리는 생태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쇼베 동굴에 남긴 사자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그들은 역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에게 정신적, 심리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때 그들은 토템이나 신의 존재로서 우상과 흠모, 두려움의 대상이었으며, 그들의 위엄과 용맹함은 영웅의 상징이기도 했다. 당시 인류의 미숙했던 영혼과 정신적 토양은 그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흠모할 수 있었기에 풍성해지고 다양해질 수 있었다. 또한, 사람을 잡아먹든 안 잡아먹든 그들이 있어 인류는 지구에서 차지하는 자신의 위치를 겸손하게 숙고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과학은 그러한 겸손을 억누르고 대신 그 자리에 인류가 자연을 지배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을 심어 놓았다.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그들의 서식지는 계속 줄어들어 왔고, 이제는 생존조차 위태로운 지경이다. 각각의 종이 저마다 생태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름에도 모두 각자의 역할과 위치를 벗어나지 않았기에 자연의 조화와 안정을 유지하면서 서로 공존할 수 있었다면, ‘신의 괴물’은 자연의 조화와 공존을 파괴하는 것을 즐기는 영악한 인류에게 인류가 지구에서 맡은 역할과 지위는 무엇인지 자신들의 희생으로써 묻고 있다.
<한때 지구의 알파 포식자였던 사자> |
이 모든 것이 여섯 번째 대멸종의 진행을 말하는 것일까?
『신의 괴물(Monster of God)』은 데이비드 쾀멘의 또 하나의 역작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를 잇는 흥미로운 책이다. 이야기꾼다운 쾀멘의 유창한 글솜씨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빠져들 뿐만 아니라, 평소에는 염두에 둘 생각조차 못 하던 생태계에서의 인류의 역할과 위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을 주는 책이다. 이 책 역시 『도도의 노래』를 집필했을 때처럼 저자가 많은 지역을 직접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으며, 그렇게 모은 현장 자료에 신화와 전설까지 보태져 한결 더 풍부해지고 생생해진 이야기는 마치 사자의 포효처럼 독자의 마음과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데이비드 쾀멘이 남긴 발자취에는 기적적으로 조그만 숲에 갇혀 사는 인도의 기르 사자, 4만 년 동안 악어와 함께 살아왔던 욜른구족 사람들, 부자들을 위한 사냥 상품이 된 루마니아 갈색곰, 아파트 쓰레기통을 뒤지는 갈색곰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루마니아의 러커더우 사람들, 호랑이를 거의 신처럼 받들었던 투르카나족, 자신에게 마취총을 쏜 과학자의 개를 잡아먹음으로써 나름의 복수(?)를 행한 젊은 수컷 호랑이 페댜, 그리고 너무나도 유명한 SF 공포영화 ‘에이리언(Alien, 1979)’ 등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끓는 냄비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지만, 쾀멘은 책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세계 인구가 약 110억에 이르는 2150년이 되면 알파 포식자는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제시하면서 냄비를 단숨에 식혀버린다.
어쩌면 최상위 포식자 자리에 호모 사피엔스가 등극하여 생태계를 평정하는 것이 비록 지금까지 와는 다른 (그것은 먼 과거와는 달리 황폐하고 빈약한 생태계다!) 자연의 질서와 균형을 가져오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진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여러 생태학자의 우려대로 생태계의 혼란과 파괴가 가중되어 자연의 질서와 균형이 붕괴한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진행되고 있다는 조짐일 수도 있다. 즉, 다섯 번째 대멸종인 공룡 시대의 최후를 잇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생태계 보전 문제에 대한 공감이 확산하는 요즘에도 생태계 보전 문제는 국가 간, 사회적 계층 간의 정치적 • 문화적 • 경제적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어 예측이 어렵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자연과의 공생을 중요시했던 우리의 선조가 했던 대로 자연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지혜를 구하면서, 가능하면 이 모든 것의 해달을 자연에서 찾으려는 진실 어린 노력이다. 그리고 신은 인류가 자연에서 어떤 지위를 차지하고 어떤 역할을 하기를 바라는지, 신이 부여한 자연에서의 인류의 위치를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려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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