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27

군중심리 | 히틀러에게도 유용했던 책?

Psychologie des foule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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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심리 | 귀스타브 르 봉 | 이 책을 탁월하게 악용한 자, 그는 히틀러!

지극히 편협한 정신과 결합한 강력한 확신이 권위를 갖춘 사람에게 부여하는 힘을 생각하면 때로는 소름이 끼친다. 그렇지만, 이 같은 조건을 실현해야만 장애를 무시하고 강한 의지를 발휘할 수 있다. 군중은 활기와 확신에 가득 찬 인물이야말로 언제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도자라고 본능적으로 믿는다. (『군중심리』, p227)

프랑스의 사회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쓴 『군중심리(Psychologie des foules)』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맴돌며 떠나지 않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역대 최고의 선동가 히틀러다. 의식하는 개성의 소멸, 의식하지 못하는 개성의 우위, 암시와 감염을 통해 감정과 생각을 한 방향으로 인도하고, 암시된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경향이라던가, 또는 충동성, 과민성, 추론 능력결핍, 판단력과 비판정신의 부재, 감정 과잉 등 개인의 지적 수준에 상관없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군중심리의 특징을 극단적으로 악용한 자이자 최대 수혜자는 히틀러가 아닐까? 히틀러의 연설은 비논리적이고 증거도 없음에도 확고한 확언과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대중들에게 주입함으로써 ‘카리스마’라는 강력한 개인적 위엄을 구축하고 한편으로는 군중을 압도했다. 자신의 카리스마가 발휘하는 힘과 영향력, 그리고 카리스마에 압도된 군중을 어떻게 이용할지 알았던 히틀러는 영악하게도 직접적인 명령이 아닌 단지 암시만으로 유대인 학살을 일으켰다. 아니다 다를까. 히틀러뿐만 아니라 무솔리니, 드골, 레닌, 스탈린도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를 읽었다고 하니 귀스타브가 경험 • 실증주의적 사고관에 따라 예리하고 냉소적으로 관찰한 군중의 심리적 특성이 역사적으로 방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엔 문화대혁명으로 대중을 선동하고 대중을 좌지우지하며 중국을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밀어붙인 마오쩌둥도 『군중심리』를 읽었을 것 같다.

Hitler Psychologie des foules by Gustave Le Bon
<가톨릭 고위 인사와 히틀러, Unknown author / Public domain>

그런데 더더욱 소름끼치는 일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가서 히틀러의 부흥과 몰락을 보고 온 것처럼 군중의 지도자 특성들을 나열한 문장마다 히틀러를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참고로 『군중심리』가 출판된 1895년에 히틀러는 막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가장 편협한 지도자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것, 역사상 큰 사건은 오직 자기 자신만 믿는 보잘것없는 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것, 지속적인 의지력은 매우 드물고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 앞에서 굴복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 이 부분은 오싹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 - 충분한 위엄을 갖추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인간을 학대하고 수백만 명씩 학살하고 침략에 침략을 거듭할 수 있다는 것! 정말 대예언가의 말씀처럼 히틀러와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그뿐만 아니라 대기근으로 수천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고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마오쩌둥도 앞에 나열한 군중의 지도자 특성 대부분이 들어맞는다. 군중이 해바라기처럼 따르는 인물이 그런 군중의 죽음에 가장 무심하다는 사실은 권력을 지향하는 이에게 군중은 일회용 젓가락 같은 소비품이자 권력 놀이의 졸개 정도로 취급됨을 시사하고도 남는다.

극장에서 많은 관객과 함께 봤을 땐 재미있거나 무서웠던 영화들이 집에서 혼자 보면 유치하거나 수면제로 둔갑하는 경우, 그리고 스포츠 경기장에서 느껴지는 무아지경과 사전에 특별히 준비된 것도 없지만 지휘자의 신호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응원하는 관중 등은 과잉된 감정의 전염과 과민성, 암시된 생각을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군중심리의 일상적인 사례다. 군중심리는 이렇게 한 장소에 무리지어 모였을 때뿐만 아니라 ‘세월호’(전국을 노란 꽃으로 물들인 리본을 벌써 잊었는가)나 자연재해 등 큰 사건이나 위기, 재난을 통해서 장소와 계층에 상관없이 작동하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하면서 교육 수준도 높아졌지만, 개인의 의식적 활동이 군중의 무의식적 행위로 대체되는 군중심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오히려 인터넷을 통한 SNS의 비약적인 발달로 익명성을 띤 이질적 군중세력이 급속히 성장한 요즘이야말로 군중심리를 이해하는 것이 곧 시대와 사회의 흐름을 읽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다. 그렇다면 군중심리를 자유자재로 이용할 수 있는 자는 성공의 지름길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다. 거꾸로 공공의 이익이든 개인적 이익이든 군중심리를 이용하려는 선동가나 야심가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교육과 학습이 군중의 정신 상태를 개선하여 지적 무의식을 보완할 수 있다는 『군중심리』의 저자 귀스타브 르 봉의 논리가 맞는다면 군중심리에 대한 이해와 고찰은 군중심리의 악용과 속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이다. 한마디로 큰 히틀러든 작은 히틀러든 야심과 권력욕, 지배욕으로 가득 찬 인정사정없는 놈들에게 개처럼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책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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