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01

책 리뷰 | 100년 후 세대와 소통하다

책 리뷰 | 100년 후 세대와 소통하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

장편 추리소설 『13.67』 한국어판 옮긴이의 글을 보면 홍콩에서 살고 타이완에서 활동하는 작가 찬호께이(陳浩基)는 어느 인터뷰에서 “왜 추리소설을 쓰느냐?”라는 질문에 “과거 언젠가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난 글을 잘 쓸 뿐만 아니라 작품도 출판하고 그것으로 생계도 꾸려갈 수 있는 작가들이 매우 부럽다. 한 작가가 죽기까지 창작하는 여러 작품 중에서 한 작품만 인정을 받아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 사람의 작품은 최소한 도서관 등에 남아 작가 사후에도 그 책을 읽게 될 적지 않은 독자들이 그 작가를 기억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그중에서도 ‘책 리뷰’를 쓰는 이런저런 이유 중 하나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평소에는 ‘이런 거지 같은 세상’, ‘이깟 세상’ 둥 세상을 달관한 자인 척하는 지능적인 패배자의 냉소주의로 일관하면서도, 성공한 자든 그렇지 못한 자든 꼭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생각하니, 그런 거지 같은 세상에라도 어떻게든 무언가를 남겨 자신의 죽음을 보상받고, 더불어 불후의 생애를 살아보겠다는 비천한 자의 천박한 오기가 발동한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이렇게 위선적이고 이중적이니 빌어먹을 놈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그래도 지금은 참으로 좋은 세상이니 이런 빌어먹을 놈도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누가 읽어주는 가는 차후의 문제고) 자신의 글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www.freeqration.com>

'책 리뷰'는 100년 후 세대와 소통하는 한 방법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내가 블로그에 ‘책 리뷰’를 쓰는 이유에는 또 다른 점도 있다. 바로 ‘책 리뷰’는 100년 후의 세대와 소통하는 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같은 명작은 100년에 전에도 많은 독자가 읽었고, 현재에도 나름 포함한 전 세계 많은 독자가 읽고 있듯이 좋은 책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해서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때문이다. 반면에 IT 관련 리뷰는 그렇지 못하다. 변화와 기술 발전이 하루가 다르게 일취월장하는 IT 같은 경우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이 지나면 폐지조각이나 다름없는 무가치한 글이 되기 일쑤다. 일례로 한 때 일부 사용자들에겐 최고의 윈도우 운영체제라고 일컬어졌던 ‘윈도우 2000’과 ‘윈도우 XP’와 관련된 글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다. 하물며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IT 관련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분명히 100년 후에는 박물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고물 중의 고물이 되었을 것이기에 그런 글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100년 후에도 지금과 비슷한 문명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면 종이책, 전자책으로, 아니면 새로운 독서 수단인 홀로그램 방식(안경 같은 기기에서 독자의 눈앞에 텍스트를 뿌려주는 기계)이나 책의 내용을 뇌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 등 어떤 방식으로든 책을 읽을 것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면 당연히 고전 명작들도 (현재 고전이라 불리는 다수의 작품들과 오늘날 신간이라 불리는 작품 중 고전으로 남을 만한 매우 뛰어난 극소수의 작품들 정도?) 읽게 될 것이며, 그런 사람 중에는 자신이 읽었던, 혹은 읽게 될 책을 과거에 어떤 사람들이 읽었었고, 그 사람들이 그 책을 읽고 나서 어떠한 감상의 글을 남겼는지 궁금해하는 (원래 쓸데없이 호기심 왕성한 사람들이 책도 많이 읽지 않던가? 나처럼!) 독자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좀 더 솔직히 말해 비천한 자의 소박한 바람이 번개처럼 들어맞는다면)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100년 후에도 구글이 존재한다면) 내가 쓴 ‘책 리뷰’를 찾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그리고 누군가는 바로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봐! 어이, 당신… 아니, 키보드 두드리는 당신 말고, 이상한 옷 입고 이상한 기계로 무언가를 하는 2118년의 당신 말이야! 내 말 들려?

그런데 내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100년 후에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한 것이다.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북한의 핵과 대치해야만 하는 현재의 위험한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끝날지 쉽게 예상할 수 없다면, 100년 후 한국이 몰락에 몰락을 거듭하여 중국의 사회주의 제국주의에 먹힐지 누가 알겠는가? 그렇게 된다면 한국어는 학자들이나 연구하는 고어로 전락할 것이다. 그러면 내 블로그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작성된 모든 블로그는 인터넷 저 한구석에 고스란히 사장되어 공동묘지를 이룰 것이 아닌가? 이런 도로아미타불이 또 어딨나? 참으로 난감하다. 젠장, 이래서 외국어를 배워야 하나 보다. 하물며 작금의 영어 교육 광풍을 보면 스스로 포기할 일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일도 가능하다. 미래에는 언어 장벽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졌을 가능성 말이다. 즉, SF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만능번역기’ 같은 기술의 등장이다. 보청기처럼 귀에 살짝 장착하면 어떤 언어든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스마트 기기의 등장으로 언어의 장벽이 사라지면, 그리고 컴퓨터의 번역 기술이 지금의 전문 번역가가 하는 수준 못지않게 발전하면, 인터넷 검색 엔진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검색창에 사용자가 입력한 언어에 한정된 검색만을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상관없이 사용자가 원하는 검색 결과에 가장 근접한 결과를 보여줄 것이다. 이것은 내가 블로그에 작성한 글을 검색 로봇이 수집하면서 자동으로 전 세계 모든 언어로 번역하여 인덱싱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시대에는 블로그에 어떤 언어로 글을 작성하든 전혀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지금보다 더욱 글의 품질이 중요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작성한 글이 비슷한 주제로 작성된 전 세계 모든 언어의 글과 검색 노출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볼 땐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실현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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