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 | 리듬감 있는 음악과 이국적인 영상이 볼만한
"하지만 저는 좀비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정확히 좀비가 뭐죠?" - 베시
"유령이면서 살아있는 시체죠" - 맥스웰 의사
캐나다에서 자란 간호사 베시 코넬은 카리브 섬에 있는 성세바스찬으로 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다. 사탕수수 농장 소유주인 폴 홀랜드의 아내 제시카를 돌보는 새 직업을 얻은 배시는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안은 채 카리브 섬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제시카는 크게 열병을 앓은 난 후로 이상한 병을 앓고 있었는데, 육체는 살아 있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아 숨을 쉬고 때론 걷을 수도 있었지만, 정신은 죽은 사람처럼 말도 생각도 못하는 희한한 병을 앓고 있었다.
폴홀랜드는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났지만, 아버지는 다른 이복동생인 미혼의 웨슬리 랜드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작은 백인 공동체와 아프리카 노예 자손이 사는 성세바스찬에서는 남편에 의해 탑에 갇힌 제시카가 시동생 웨슬리를 사랑했다는 소문을 담은 노랫말이 나돌고 있었다. 한편, 조용한 밤에 홀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과묵하고 변덕스러운 폴에게 연민을 느낀 나머지 사랑을 품게 된 베시는 제시카를 치료함으로써 그를 행복하게 만들기로 한다.
베시는 잠재적으로 치명적일 수도 있는 인슐린 쇼크에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보지만, 차도는 없었다. 이때 베시는 정신이 나간 한 원주민 여자를 부두교 주술사가 치료했다는 소문을 듣는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제시는 과학적 방법을 추구하는 의료인으로서의 신념을 잊은 채 제시카를 부두교 주술사에게 맡겨보기로 하는데….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I Walked With A Zombie, 1943)」는 부두교 주술에 등장하는 좀비의 시원에 근접한 해석을 바탕으로 만든 좀비 영화로서 원주민들의 리듬감 있는 정글드럼 소리와 이국적인 영상의 조화가 비극적인 결말과 결합하여 나름 인상적인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사실 좀비가 지금같이 사람을 물어뜯고 물린 희생자가 다시 좀비가 되는 캐릭터로 정착된 것은 조지 A. 로메로 감독의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Night Of The Living Dead, 1968)」부터라고 볼 수 있다. 부두교 주술로서의 좀비는 독약 같은 강력한 약을 먹여 마치 죽은 것처럼 가사 상태에 빠지게 해 사람들의 눈을 속인 다음 다시 약을 먹고 깨어난 ‘시체 같은 사람’을 말하며, 부두교에서는 이런 식으로 대상자를 의지력이 없는 노예로 만든 다음 부려 먹었다는 속설도 있다. 한편, 「죽은 자의 제국(屍者の帝国, 2015)」에서는 '죽은 자'를 좀비 노예로 길들여 부려 먹기까지 한다.
참고로 영화 「나는 좀비와 함께 걸었다」에 등장하는 간호사 베시가 언급한 인슐린쇼크요법은 만프레트 자켈(1900~57)이 1920년대 말에 사설 정신과 시설인 베를린의 리히터펠데 병원에서 일하면서 모르핀과 헤로인 중독자를 치료하고 있을 때 발견한 치료법이다. 1933년에 빈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를 대상으로 실험하기 시작했고, 오스트리아에서 상승하고 있던 반유대주의로 뉴욕으로 옮겨온 것인데, 위험하고 극적인 이 치료법은 미국에서 196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고 한다(앤드류 스컬(Andrew Scull)의 『광기와 문명』 참고). 아무튼, 베시가 당시 정신병 환자를, 그것도 어지간히 가망이 없거나 질환이 매우 심각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사용하던 인슐린쇼크요법을 시도할 생각을 한 것은 그만큼 제시카의 상태가 의학적으로 매우 안 좋다는 뜻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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