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미해결문제들 | 12가지 문제 12가지 호기심
‘소파 옮기기 문제’는 미국에서는 고등학교 수업 때 다루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은 일종의 환상을 갖게 된다. “과학과 수학으로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다”고 말이다. (『과학의 미해결문제들』, 18쪽)
아직도 과학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 문제들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컴퓨터 성능과 그래픽 효과 덕분에 요즘의 SF 영화들은 ‘정말 실제 같다’라는 감탄 정도는 우습게 만들 정도로 아예 현실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그래서 SF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화려하고 세련된 미래적 도시 풍경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인류 문명 속에서도 탄생할 것 같고, 꼭 지구가 아니더라도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다른 지적 생명체의 문명에선 인류의 상상이나 영화 속 미래가 이미 현실이 되었을 것 같다는 낭만적 공상에 휩싸이며 그들과 만나는 역사적인 날을 그려보곤 한다. 이런 반쯤은 허무맹랑한 상상이 펼쳐질 수 있는 배경에는 알게 모르게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하고 있다. 이 견고한 믿음에 얼마간의 충격이 가해질지는 모르지만, 아직도 과학의 힘으로 해결이 안 된 문제들이 있고 그런 미해결 문제를 알기 쉽게 개괄해 놓은 책이 다케우치 가오루(竹内 薫), 마루야마 아쓰시(丸山 篤史)의 『과학의 미해결문제들(ない科學の未解決問題)』이다.
과학의 진수는 미해결 문제에 있는 것
본문에 등장하는 12가지 미해결 문제 중에는 대멸종의 원인, 사람의 눈으로는 관찰할 수 없는 블랙홀, 타임머신의 가능성, 진화론의 증명, 소수(素數)의 패턴, 전신마취약의 작용 등 ‘과학’하면 쉽게 연상되는 물리학, 생물학, 수학뿐만 아니라 철학적 냄새를 풍기는 몸과 마음, 성의 존재 이유, 그리고 정력가들의 몸보신 메뉴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뱀장어의 번식처 찾기 등 다방면에 걸친 미해결 문제들이 등장한다. 아름다운 자연과 경이로운 우주에 대한 모든 의문에 대한 정당한 탐구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으니 어찌 보면 과학의 진정한 목적은 뭔가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는 것보다는 인간의 무한한 호기심과 밑도 끝도 없는 의문을 충족시켜줄 안식처를 제공하는 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학의 미해결문제들』을 지은 저자들의 말대로 과학의 진수는 미해결 문제에 있는 것이다.
지적 호기심의 영속성과 좋은 책
나는 책을 읽을 때보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났을 때보다는 뭔가를 읽고 싶다는, 그리고 뭔가를 알고 싶다는 지적 욕구를 채워줄 아무런 책을 찾아 퀴퀴하지만 절대 불쾌하지 않은 특유의 냄새를 풍기는 도서관 책장 사이사이를 마냥 기웃거릴 때가 더 설렌다. 그렇게 개처럼 킁킁거리며 지식의 냄새를 탐색하고 나서 막상 발견한 책을 대출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릴 때, 뭔가 대단한 것을 얻은 것 같은 그 기분 좋은 뿌듯함은 다 읽고 났을 때의 성취감보다 더 짜릿하다. 『과학의 미해결문제들』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이 얄팍한 책에는 12가지의 과학의 미해결 문제들을 간략하게 다루면서, 호기심 많은 독자에게 12가지 주제로 뻗어나갈 독서의 방향도 제시한다. 내가 늘 강조해왔듯, 정말 좋은 책, 좋은 독서는 세상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결코 멈춰서는 안 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의문을 지속시켜줄 지적인 자극을 회색 뇌세포에 공급해 주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책은 그 책을 펼치기 전의 설렘이, 다 읽고 나면 또 다른 책을 찾아 나서는 설렘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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