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구야담 | 이월영 | 조상의 삶을 아우르는 이야기들의 성채
몇 장 넘기지 못하고 반납한 『어우야담』
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책을 빌려보기 시작하고 얼마 안 지났을 때, 대출한 책을 몇 장 펼쳐 읽지도 않고 반납했던 책이 있었다. 바로 야담집인 『어우야담(於于野譚)』이었다. 그때는 어떤 책을 읽어야겠다거나 어떤 장르의 책이 내 관심에 맞는다거나, 혹은 어떤 책을 읽고 싶다거나 하는 개념이 아직 확실하게 서지 않았었고, 그저 두껍고 오래된 책이면 다 좋은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대출하기 전에 내용을 한 번 흩어보지도 않고 그저 두께에 현혹되어 책을 빌렸으나, 『어우야담』의 두터운 책장을 넘기기에는 그 당시 나의 수준이나 호기심이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지금까지 대출했던 권수가 어느덧 700권이 되어가고 있지만, 『어우야담』만이 유일하게 빌려놓고 읽지 못했던 책으로 옥에 티로 남아있다. 그 이후에는 교과서보다 더 지루하고 어려운 책들도 인내심을 갖고 끝까지 보게 되었으니, 『어우야담』이 약이 되었었나 보다.
한 번 실패한 전례 때문인지 한동안 야담집에는 손을 못 대고 있다가 그동안 조선시대 관련 책도 좀 보았기에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그리고 예전보다 더욱 진지해진 호기심과 지적 욕구도 일발 보태어 『청구야담』을 선택했다. 『청구야담』은 우리나라 최고의 야담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참고로 조선시대 3대 야담집으로 『청구야담(靑邱野談)』과 더불어 『계서야담(溪西野談)』『동야휘집(東野彙輯)』이 있다.
<동네 도서관이 이렇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야담이란?
그렇다면 야담(野談)이란 뭘까. 그 뜻을 위키백과에서 찾아보았다.
야담(野談)은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흥미 있게 꾸민 이야기로 문학 장르로는 수필에 포함된다. 18세기 조선 후기에서 일제 강점기 20세기 전반 한국 사회에 유행했던 대중문화다. 일제강점기 20세기 초 야담운동으로 강당, 무대에서 구연하게 되고, 라디오가 전래되면서 대중오락으로 인기를 끌다가 1930년대 중반 이후 현대 소설의 발달로 점차 쇠퇴하게 되었다. (http://ko.wikipedia.org/)
여기서 야사(野史)는 민간(民間)에서 사사로이 기록한 역사를 말한다. 추가로 위키백과에서 야담집의 효시는 앞서 언급했던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이라고 말하고 있다.
현실적인 이야기부터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청구야담』에는 수많은 다양한 주제의 야담들이 짧은 이야기로써 182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에는 유명한 역사적 실존인물들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혹은 조연으로 다수 등장하기도 한다. 유성룡, 김천일, 조태억, 박문수, 이경류, 한석봉, 이지광, 양녕대군, 정태화, 홍순언, 허적, 김석주, 이준경, 김여물, 이항복 등 이외에도 다수 있다. 나머지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민간에서 전해지는 야사답게 김 아무개, 심생, 박공 등 대중없다.
다양한 등장인물만큼이나 이야기의 주제도 다양하다. 권선징악과 충효(忠孝), 보은(報恩), 그리고 여인의 정조나 수절을 강조한 이야기가 많았고, 그 외에도 기이한 인물들의 기행이나 귀신, 속임수나 기타 다양한 꾀를 내어 위기를 넘기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도 하고, 또는 은혜를 베풀기도 한 이야기, 남녀 간의 사랑,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 현달한 선비, 꿈, 현명했던 부인들 등 실화처럼 여겨질 법한 이야기부터 꿈이나 영화에서나 볼 듯한 환상적인 이야기까지 가지각색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이 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내 눈에 띄는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박서와 이완이다. 이 인물들은 역사책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은 아니다. 하지만, 효종 2년(1651) 8월에 병조판서에 임명된 박서와 효종 4년(1653) 10월 훈련대장으로 임명된 이완은 효종의 북벌에 실질적으로 협력한 인물이었다는 점이 얼마 전에 읽었던 책들과 관련해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특히 이완은 두 차례나 병조판서 임명을 거절하고 훈련도감을 없애자는 논의가 있었을 때에도 반대하면서 끝내 훈련도감을 지킨 지조 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것들은 『청구야담』을 읽고 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데로 적은 지극한 사론일 뿐이니 너무 유념할 것은 없다.
마치면서
야담집에 들어 있는 나무 반 토막도 안 되는 짧은 이야기 하나로는 많은 감동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반 토막들이 모여서 거대한 성채를 이루었을 때 과연 우리는 거기서 무엇을 보고 느낄 수 있을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청구야담』의 묘미는 작은 이야기들의 집합체인 거대한 이야기 성채를 들여다보면서, 우리 조상이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꿈꾸며 어떻게 살았는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즉 한 그루의 나무보다 그런 나무들 모여 이루어진 그 숲을 볼 수 있다는 것에 있지 않을까. 참고로, 요즘 (2012년)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조선시대 밀양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의 뿌리가 되는 이야기도 이 야담집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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