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드 | 켄 올레타 | 지금까지 구글은 좋은 편이었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정보와 지식의 민주화를 이루어낸 ‘구글’
인터넷 사용자라면 굳이 ‘구글링(Googling)’ 하지 않아도 구글이 세계 검색엔진 점유율 1위라는 자명한 사실 정도는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구글의 혁신적인 검색 엔진 덕분에 사용자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빠르게 원하는 정보를 찾아 인터넷을 마음껏 항해할 수 있게 되었다. 광고가 덕지덕지 달렸고, 잡다한 링크로 떡칠해 어딘지 모르게 답답하고, 사용자를 자신들이 정한 틀에 가두려고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포털 사이트와는 달리 구글 홈페이지는 조그만 이미지 하나 없다. 정말이지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하다. 여기에는 배너광고가 사용자에게 최선의 경험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구글 창립자들(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지만, 한편으론 사용자가 가능한 한 빨리 원하는 정보나 목적지를 찾아 (사용자를 언제까지나 붙잡아 두고 싶은 포털 사이트와는 달리) 구글을 벗어나길 바라는 사용자 중심의 구글 철학도 담겨 있다. 덕분에 사용자는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고 쾌적하고 빠르게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자유롭게 항해할 수 있다.
구글의 탁월한 검색 엔진은 우리가 정보와 지식을 찾아낼 때 부딪히는 장벽을 없애버렸고, 그럼으로써 정보와 지식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구글의 검색 결과는 우리 시대상을 반영하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며, 그 세대가 어떤 주제에 사로잡혀 있는지 보여주는 정보와 지식의 자화상이다. 구글과 경쟁하는 기업들에는 불편한 진실이지만, 인터넷 민주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구글은 사용자들의 신뢰를 확실하게 얻었다. 하지만, 구글이 추종하는 ‘군중의 지혜’가 곧 양질의 정보를 가려내는 절대적인 규칙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조회 수가 많다고 해서 유용한 정보인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약 ‘군중의 지혜’와 알고리즘에 의존한 기계의 뉴스 수집이 기존의 저널리즘을 대체할 수 있다고 구글이 자만한다면, 그것은 문명의 진보와 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고뇌하고 사유하는 지식인의 존재 가치를 깎아내리는, 자칫 호모 사피엔스의 퇴화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구글에 대한 염려
어쨌든 인터넷은 구글이고 구글은 인터넷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은 지금은 구글을 통하지 않고서는 인터넷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구글은 정보와 지식을 찾아낼 때 부딪히는 장벽을 없애버렸지만, 구글의 독점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구글이라는 불투명한 터널에 사용자를 가둬놓는 꼴이 되고 말았다. 정보와 지식의 접근 통로를 구글이 독점한다면 구글이 사용자에게 어떤 정보를 보게 될지 결정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떤 정보들을 획득함에 따라 삶의 궤적이 변하고 인생이 바뀔 수도 있기에 이것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다. 실제로 구글은 중국 정부와 독일 정부의 요청에 따라 특정 사이트를 차단했다. 어떤 것에도 개의치 않고 자신들이 이루고 싶은 미래를 향해서만 질주하고자 했던 구글의 열정과 다른 기업들을 전율에 떨게 했던 원대한 포부가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거대한 장벽과 타협하는 순간이었다 .
초심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는 순간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소설을 탐독하거나 영화나 콘서트를 보는 일을 즐기지 않았고,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골프 같은 게임도 경멸했을 정도로 페이지와 브린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간 낭비를 지독히도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구글의 주요 수입원인 애드워즈와 애드센스도 사용자가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거치적거리지 않을 정도로 적당하게 배치했고, 구글 툴바로 인터넷 항해에 방해되는 팝업도 차단했다. 하지만, 구글이 인수하고 오랫동안 적자를 면치 못했던 유튜브 광고는 강제성을 띠며 사용자의 시간을 소비한다. 사용자는 동영상 시작할 때 최초 몇 초 동안 광고를 시청해야 하며, 때에 따라 1분 안팎의 중간 광고를 시청해야만 할 때도 있다. 사용자는 광고를 보던가 아니면 광고가 없는 유료 서비스인 ‘유튜브 레드’를 결제해야 한다.
광고가 주요 수입원인 구글로서 이 정도 변화는 어쩌면 당연할 일이다. 여기에는 광고가 무조건 사용자들을 짜증 나게 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사용자가 찾고자 하는 정보나 지식과 ‘연관성’만 있다면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다는 구글의 인식 변화도 한몫한다 . 중요한 것은 구글은 공룡처럼 날로 커져만 가는 덩치를 먹여 살려야 하고 더불어 성장의 압박도 이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창조적인 혁신이 지속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인터넷 정보는 누구라도 자유롭게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인터넷 혁명의 신념이자 구글의 신념이 성장과 수익의 압박으로부터 구글을 서서히 옥죄어온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구글이 ‘이제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돈을 지급해야 할 거야’라고 태도를 바꾸지 않고, 지금처럼 수익을 광고에만 전적으로 의존하다 보면 강력한 광고주들을 달래려고 특정 사이트를 차단하거나, 한국의 포털 사이트 네이버처럼 검색 결과에 광고주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소지가 있다(현재 구글 검색 결과에는 키워드와 연관된 광고가 심심치 않게 페이지 상단과 하단에 노출되고 있다). 이러다 보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지금까지 받아왔던 사용자들의 신뢰를 하루아침에 잃거나, 아니면 서서히 잃어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일으킬만한 티핑 포인트는 어디서부터인지 아무도 모른다. 세상을 뒤집어엎으려는 혁명가 같은 구글의 야심에 비추어보면 구글의 초심이 세상의 변화에 따라, 혹은 자신들이 일으킨 풍파에 따라 변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모든 변화를 받아들일 수도 없으며 사용자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변화에는 긍정과 함께 부정이 내포되어 있다. 어느 정도의 변화가 현재의 혁신을 이어가면서도 사용자의 신뢰를 잃지 않는 최후의 마지노선인지, 어느 시점에서 변화가 그동안 쌓아온 신뢰를 무너트리는 티핑 포인트로 작용할 것인지 , 역시 아무로 모른다.
<구글, 세상을 지배하는 빅브라더가 되려는가?> |
‘빅 데이터’ 구글, 사생활 침해는?
이제 ‘빅 데이터’ 이야기를 해보자. 미래에 ‘빅 브라더’가 탄생한다면, 그 가능성이 제일 좋은 대상이 현재로서는 구글이다. 그만큼 구글이 창립 이후 약 20여 년 동안 수집한 데이터의 양은 엄청나다. 사실 ‘인터넷 = 구글’이 된 요즘 우리는 검색을 할 때마다 구글에 가치를 부여해주는 셈이다. 여기에 막대한 광고주의 데이터가 접목된다. 광고주는 소규모 사업자부터 대기업까지 다양하다. 그들은 신용카드 사용 명세, 통화 기록, 이름과 주소, 학력과 경력 등 구글이 갖지 못한 데이터를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앞에서도 말했듯 구글은 키워드 광고처럼 ‘연관성’만 있다면 광고도 유용한 하나의 정보로 본다. 이것은 데이터를 다른 곳에 공개하여 연관성을 높여 사용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논리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 사용자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은 사용자가 광고를 클릭하거나 상품을 구매할 확률도 높아진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구글의 광고 수익 증가로 이어진다. 또한, 구글의 광고 수익 증가는 곧 광고주의 수익 증가를 의미한다. 뭔가 섬뜩하지 않은가?
그뿐만 아니라 구글이 수집한 데이터는 광고주가 보유한 데이터와 합쳐져 사용자의 욕구와 행동 패턴을 추측하는 데이터 마이닝 기술에도 활용될 수 있다. 이것은 광고주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다. 본격적인 데이터 마이닝 시대에 접어들면 구글이 가진 데이터는 모든 광고주의 미래이자 희망이 될 것이다. 구글을 갖은 방법으로 압박하며 데이터를 더 많이 달라는 광고주의 요구가 증폭되리라는 것은 안 봐도 뻔하다.
구글이 보유한 데이터는 예민한 사용자들에게는 개인정보와 사생활 침해 문제에 대해 충분히 걱정거리를 안길만 하지만, 이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이에 대한 구글 창업자 중 한 명인 브린의 생각이다. “유저들이 우리가 하는 일을 신뢰하는가? 그게 개인정보 문제보다 더 중요하죠.”. 『구글드: 우리가 알던 세상의 종말(Googled: The End of the World As we Know it)』 의 저자 켄 올레타(Ken Auletta)의 해석처럼 브린의 생각은 우리가 구글을 믿는다면, 그들이 우리 데이터를 악용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는 뜻이다 . 하지만, 우리는 히틀러가 자신을 믿었던 독일 국민에게 어떠한 파괴적인 결말을 가져다주었으며,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얻고 선거를 통해 당선된 수많은 정치인이 어떻게 국민의 바람에 찬물을 끼얹었는지 알고 있다. 엔지니어다운 순진한 열정이 낳은 페이지와 브린의 곡해는 올레타의 평가처럼 어째서 누군가가 자신들의 의도를 의심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쉽게 측량되지 않는 두려움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전자사생활정보센터(The Electronic Privacy Information Center)의 대표 마크 로턴버그(Marc Rotenberg)의 예리한 질문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구글이 대체 왜 그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지금까지 구글은 좋은 편이었다?
지금까지 구글의 슬로건인 ‘사악하게 행동하지 마라(Don’t be evil)’는 (구글과 경쟁하는 기업은 구글이 악마처럼 보이겠지만) 대체로 사용자에게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사용자들이 구글에 보내는 신뢰는 구글이 아직은 좋은 편이라는 인상이 지배적이라는 현실을 반영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현재 구글이 좋은 편이라는 상황이 구글이 앞으로도 영원히 좋은 편일 거라는 것은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 그럼에도, 다른 대기업들에 비해 구글은 기술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혁신적인 기업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은 궁극적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구글의 이상주의가 현실 앞에서 약해지는 모습을 종종 보여왔다. 여전히 왕성한 열정을 보여주는 창업자 페이지와 브린이 아직 젊고 또한 살아있기에 당분간은 구글이 좋은 편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두 사람과 함께 초창기부터 구글을 이끌어 온 원로 직원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면, 구글은 어떻게 변할까? 그때도 구들에 대한 사용자들의 신뢰는 여전할까? 그들이 수집하고 소유한 어마어마한 데이터는 여전히 안전할까? 그땐 이미 나도 죽고 없어 별로 걱정할 일도 아니지만 말이다.
구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처지에서 구글을 신뢰하기보다는 신뢰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마치 부실하게 지어진 원자력발전소 옆에서 살아가야 하는 주민 같다. 매일 뭔가 터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면서 사느니 그냥 원자력발전소 존재 자체를 잊거나, 아니면 전적으로 발전소를 신뢰하여 매일 가슴 졸이며 사는 악몽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것이다. 현재로선 구글을 대체할 마땅한 대안도 업고 구글을 벗어날 길도 없다. 한편으론 구글의 독점이 안전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만약 제2의 구글이 나타나 구글과 경쟁하며 구글의 광고 수익을 잠식해나간다면, 그래서 구글에 창업 이래 최대의 위기를 안긴다면 구글은 지금까지 수집한 데이터를 사용해서라도 광고 수익을 늘리고 광고주를 달래야 한다는 압력에서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다.
마무리
엄청난 리뷰의 글을 남긴 것에서 보듯 켄 올레타의 『구글드』는 구글에 대해, 그리고 인터넷의 미래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구글드』는 구글 창립자 페이지와 브린의 신념이 어떻게 구글 문화로 자리 잡았는지, 그리고 그러한 문화가 어떻게 혁신을 거듭하는 구글 제국의 열정과 창조성을 제공했는지, 그럼으로써 수많은 프로젝트 실패에도 어떻게 검색 엔진 하나만으로 세계를 정복하고 사용자의 전폭적인 지지와 신뢰를 얻게 되었는지 등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잡아내고 있다. 구글의 창립 후 성장해가는 시기는 인터넷 혁명에 막 불이 붙은 시기이기도 했으며, 그 불에 핵탄두 같은 폭발력을 더한 것이 구글이라는 점에서 구글의 역사는 곧 인터넷의 역사의 굵직한 한 페이지가 되기도 한다 . 한편으론, 디지털 미디어 세계를 혁신하고 잠식해가는 구글의 성장 과정은 기존 미디어 세력과의 피할 수 없는 싸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구글드』는 디지털 미디어 세계의 격변도 다루는 셈이다.
구글 사용자로서 이 책을 읽고 나면 구글에 대한 신뢰가 더 돈독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일말의 의구심이 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가 구글을 떠날 수 없다는 처지에 변함이 없다면, 그리고 구글을 뛰어넘는 혁신을 폭발시킬 재능이 없다면, 변화의 물살 속으로 가라앉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은둔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런데 요즘은 은둔자들도 인터넷 정도는 하지 않을까?) 가능한 한 변화의 물살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으로 남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그것이 먼 미래에나 그 파급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디지털 혁명의 시기에 사는 우리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고, 앞으로도 변할 것이고 또 변화해야만 살아남는 가혹한 인터넷 세계에서 한 개인으로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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