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 | 마이클 코넬리 | 르네상스 화가가 예견한 현대인의 어둠 속의 어둠
오래간만에 다시 만난 마이클 코넬리의 작품이었다. TV로 생중계되는 매우 세속적인 모습의 법정에서 증언하는 보슈지만, 아쉽게도 이번 작품의 중심인물은 보슈 형사가 아니라, 전직 FBI 프로파일러 테리 매케일렙이었다. 매케일렙은 『블러드 워크』에 등장한다고 하는데, 아직 그 작품은 기회가 없어서 못 보았다. 그래서 그 작품에서 매케일렙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6년 전 (『라스트 코요테』 참고) 보슈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파운즈 과장에게 한 방을 날리는 바람에 비자발적 스트레스로 휴직을 받았었다. 그 원인은 보슈가 정당방위를 가장한 살인사건이라고 판단한, 에드워드 건의 매춘부 살해 사건을 파운즈 과장의 쓸데없는 참견으로 망쳤기 때문이었다. 이런 보슈를 건을 죽인 유력한 용의자로 매케일렙과 윈스턴은 지목한다. 지난 시리즈들에서도 보슈는 여러 번 내사를 받았었다. 일부는 혐의를 벗기도 했고, 일부는 어빙 국장의 침묵에 그냥 묻히기도 했다.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보슈의 형사 생활이다. 웬만한 체력과 뚝심 아니고는 버티지 못하리라.
아무튼, 매케일렙은 초반에 증거를 수집하면서 나름대로 프로파일을 해본다. 이런 하나님을 거론한 사건은 하나님의 일처럼 끝나는 법이 없다는 둥, 올빼미 조각상을 추적하며 악마, 지옥 어쩌고저쩌고하는 둥 하지만, 이번에는 그리 신통치가 못했다. 팻 브라운의 『프로파일러』라는 책이 기억나는데,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는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참고 정도로만 활용 가능한 게 프로파일이다. 용한 점쟁이가 점치는 것보다 못한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거만 믿고 수사를 했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일쑤다. 그렇다고 매케일렙이 실력이 없는 건 아니다. 예전에 보슈의 요청을 받아 멋지게 한 건 한 경우가 있었다.
<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 by Bosch / Hieronymus Bosch / Public domain> |
때는 10년도 더 전이었던 '길 잃은 여자아이 사건'이었다. 피살자에게는 이름이 없었다. 아이는 열네 살이나 열다섯 살 정도로 보였다. 알몸의 산업용 세척제로 씻긴 시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 근처의 경치 좋은 곳 중 한 곳에서 발견되었고 보슈와 당시 파트너였던, 아쉽게도 억울한 누명으로 세상을 떠난 전직 강력반 형사 프랭키 쉬헌이 맡았었다. 보슈가 아직 본청에 있을 때였고, 매케일렙이 콴티코에서 막 돌아와 처음 맡은 사건이었다.
경찰은 피해자 엉덩이에 찍힌 자동차 번호판 중 ‘1, J, H 또는 K 또는 L’라는 문자만을 가지고 용의자를 남자 마흔여섯 명으로 좁혀 매케일렙에게 프로파일을 요청한 것이다. 매케일렙은 두 명까지 좁혔고, 무대 기술자로 일하는 빅터 세권을 세권의 집에서 직접 만나보고는 그를 지목했다. 범인의 집 거실 책꽂이에 낡아 보이는 『컬렉터』라는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때 보슈는 끝까지 죽은 소녀를 생각해 준 사람이 없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면서 시엘로 아줄(푸른 하늘) 이라는 이름을 죽은 소녀에게 지어주었다. 혹시라도 하늘에는 그럴 만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말이다. 매케일렙도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자신의 소중한 딸에게 그 이름을 전해주었다.
그래서 매케일렙은 보슈를 높이 평가했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스타일의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매케일렙은 이제 그가 너무 많이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둠으로 들어가면,어둠도 우리 속으로 들어오고, 우리가 어둠을 내려다보면, 어둠도 우리를 올려다본다.”- 매케일렙.
여기에 니체의 말을 더하면, “괴물과 싸우는 자는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매케일렙이 보기에 보슈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그렇게 보슈 자신도 모르게 괴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여기에다 보슈는 확고한 권선징악의 신봉자였다.
“커다란 수레바퀴처럼 세상은 돌고 돌아서 결국 뿌린 대로 거두게 돼 있거든. 비록 자네처럼 하나님의 손을 자주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고 믿어.” - 보슈.
그리고 누구보다도 어둠을 잘 아는 사람이기도 했다.
“아이를 찾아내고 나서 우리 모두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이 일을 하면서 그때만큼 들뜬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난 보슈 형사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어요. ‘꼭 아빠가 되세요. 아까 아이한테 말하는 걸 보니까 친딸한테 하는 것 같던데요. '그랬더니 보슈 형사는 대뜸 고개를 저으면서 안 된다고 했어요. ‘난 그저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기 때문에 그랬던 겁니다.' 그러고는 그냥 가 버렸어요.”- 윈스턴.
내가 예전에 링컨 라임 시리즈 전부를 보면서 뒤로 갈수록 첫 작품의 충격에서 점점 멀어진다고 말했었다. 그렇다고 맨 마지막 편에 가서는 쓰레기가 되었다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첫 작품인 『본 컬렉터』에 비해 약간 재미가 떨어진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해리 보슈 시리즈는 6편 『앤젤스 플라이트』까지는 그런 기미는 없었다. 그래서 내심 만족하면서도 약간 불안하기도 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결국, 그런 우려가 이번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마이클 코넬리는 역시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다는 생각에 아쉬움의 한숨과 안도의 한숨을 동시에 뱉어낼 수 있었지만, 앞으로의 읽어야 할 남은 해리 보슈 시리즈를 생각하며, 내 머리는 망설임과 걱정으로 뒤죽박죽 되어 혼란스러워졌다.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A Darkness More Than Night by Michael Connelly)』은 보슈가 중심이 아니라 그런지 이전 작품과 비교하면 재미나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다. 구성이 어설프거나 억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반전도 약했다. 아무래도 보슈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실망에 작품의 모든 요소가 눈에 차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보슈 형사를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넘어야 할 산인 건 분명하다. 보슈 형사의 억울한 누명을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은가.
참고로 『다크니스 모어 댄 나잇』에 등장하는 화가 보슈는 실존했던 인물이고 화가 보슈의 작품들도 역시 존재한다. 구글에서 검색해서 그림을 감상하면 매케일렙의 생각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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