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참자 | 히가시노 게이고 | 피해자의 마음을 치료하는 형사가 있다면?
인상 깊게 감상한 드라마 『신참자』의 원작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 도서관 책장에 보란 듯 진열된 것이 눈에 띄어 나 역시 별다른 고민 없이 선택하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과장됨 없이 물 흐르는 듯한 자연스럽고 따뜻한 감동과 산뜻한 기쁨을 얻었다면 당연히 원작소설에도 관심이 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원작소설의 작가가 다름 아닌 히가시노 게이고라면 일단 재미는 어느 정도 보장된 것이 아닌가. 다작의 작가이면서도 매 작품 인기를 끌고 많은 작품이 드라마나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으니 말이다.
일단, 드라마를 본 지 얼마 안 되었기에 페이지는 굳이 서둘지 않아도 가볍게 넘어갔다. 작품을 초반만 읽어도 전체적인 흐름이나 내용이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될 정도로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했다. 특히 책에서 등장하는 가가 형사에 대한 묘사를 보면 드라마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아베 히로시의 완벽한 연기와 그를 주연으로 뽑은 캐스팅 실력에 놀랄 따름이다. 책 속에서 가가 형사는 캐쥬얼한 차림에 더부룩한 머리카락, 윤곽이 뚜렷한 얼굴, 인상이 남는 울림 좋은 목소리, 하얀 이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환한 미소 등의 가가 형사를 묘사한 문장을 읽고 독자가 상상 속에 떠올린 이미지와 모델 출신답게 다부진 몸매, 그리고 단호한 인상을 준 아베 히로시와 완벽하게 매칭이 된다. 지금도 드라마 속에서 탐문 수사를 벌이며 만나는 사람마다 선보이는 아베 히로시의 밝은 미소가 눈앞에서 떠나질 않고 아지랑이 피듯 어른거린다.
드라마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원작이 주는 감동을 더욱 배가시키기 위해 나름대로 몇몇 장면은 수정하고 몇몇 장면은 추가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것이 매 편 드라마의 마무리 장면에서 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가족애의 재확인 장면이다. 가족들은 오랜 시간 대화의 단절로 쌓인 묶은 때처럼 거칠고 두터운 오해를 가가 형사의 은밀한 중재 덕분에 없애고 따뜻한 가족애를 재확인하게 된다.
이런 마음 따뜻한 가가 형사는 다른 동료와는 달리 수사에 대한 독특한 그만의 신념을 지니고 있다. 이에 대해 직접 가가 형사의 말을 들어보자.
“ …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그래서 가가 형사는 굳이 파헤쳐 밝히지 않아도 될 참고 조사인 가족들의 숨겨진 말 못할 사연까지 추적하고 수사한다. 그리고 친구 집 마실가듯 때로는 케이크 등 먹을거리를 들고 참고인 집을 찾아가 마냥 푸근해 보이는 미소로 그들을 상대한다. 하지만, 그 부담 없고 다정한 미소 뒤에는 상대방의 모든 걸 투시하는 듯한 예리한 매의 눈이 숨겨져 있다. 따라서 뭔가 숨기는 것이 있는 사람은 가가 형사 미소 앞에서라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최대한 참고인과 그 가족들에게 감정적인 동요나 피해가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그 가족들 사이에 쌓인 오해로 말미암은 케케묵은 감정을 화해시킴으로써 당사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 가족애의 재확인을 목격한 시청자나 독자 역시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가가 형사와 아버지와의 갈등, 경시청에서 근무하는 조카 등에 관한 책에는 없는 배경과 인물이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좀 더 가가 형사를 현실적인 이미지로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가 아닌가 한다. 특히 매일 붕어빵 가게 앞에서 줄만 서고 끝내 먹어보지를 못하는 가가 형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면, 이렇게 독특한 개성이라고 단정하기에는 뭔가 부족한, 아니면 애교 있는 고집스러움을 넘어 억척스럽게 자신만의 규칙을 지키는 철저한 모습이야말로 그의 비밀스러운 수사력의 힘이 아닐까.
<신참자 드라마 예고편(출처: 유튜브)> |
대부분의 다작 작가가 그러하듯이 히가시노 게이고 역시 문체가 특히 뛰어나거나 문장 하나하나가 예술적 감각을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건조하면서도 일본 음식의 특징처럼 담백하고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그의 문장은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날이 새는 줄 모르고 책 앞에 있게 만드는 강력한 흡입력이 있다. 반대로 평론가들을 위한, 독자가 읽기에는 난해하고 많은 인내심이 필요한 작품이 꼭 좋은 책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그런지 노벨 문학 수상작들을 보면 적당히 난해하고 적당히 읽기 쉬운, 그 절묘한 경계에 있는 작품들이 많은 것 같다. 오래전부터 추리소설로 명성을 날려온 히가시노 게이고는 작품마다 이야기 전개에 적절한 짜임새 있는 구성과 이야기로 독자들을 매료시켜왔다. 쉽게 말해 한 번 손에 들면 끝장을 보고야 말게 하는 것이 그의 소설이다.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은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그가 작품의 이야기를 통해 전해주고자 하는 예리한 통찰력 있는 메시지다. 그런 관점에서 드라마와 책의 『신참자』가 주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바로 ‘가족’이다. 현대 사회가 겪는 고질적인 문제점인 가족 간의 소외나 소통의 단절이 가져올 비극을 이혼한 40대 중반의 미쓰이 미네코 살인 사건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녀는 외아들이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연극의 꿈을 이루려고 가출하자 자신도 젊은 시절 못 이룬 번역가로서의 꿈을 떠올리고 제2의 인생을 위해 남편과 합의 이혼하고 자립에 나선다. 그녀는 그저 소박하게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가는 보통의 중년 여성일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의문의 교살을 당하고, 가가 형사의 독특하지만, 사려 깊은 그만의 ‘치유’가 시작된다.
요즘은 이런 ‘메시지’가 담긴 추리소설을 사회파 미스터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순하게 ‘추리소설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다.’라는 과거의 낡은 고정관념을 넘어 작가가 바라본 사회가 가진 보편적인 문제점을 파헤치고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담아 추리소설의 품격을 한 단계 높인 새로운 추리소설의 한 갈래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가족’을 강조하면서 꿈을 위해 도전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도 심어 놓았다. 1장 ‘센베이 가게 딸’에서는 미용사를 꿈꾸는 나호, 2장 ‘요릿집 수련생’에서는 어린 시절 생선초밥집에서 일하는 주방장의 모습에 반해 요릿집에 들어온 슈헤이, 4장 ‘시계포의 개’에서는 어렸을 때 태엽이나 기계로 움직이는 기계식 시계의 세밀함에 감동하여 견습 시계 수리공이 된 아키후미, 그리고 연기를 위해 극단에 들어간 미네코의 아들과 그녀 역시 번역가로서의 꿈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꿈을 꾸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고자 현실적이자 실제적인 행동으로 옮길 수 행운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에 안주하고 그저 꿈은 ‘꿈’으로만 간직하며 공상으로만 만족하거나, 어렵게 실천으로 옮겼지만 커다란 운명의 장벽에 부딪혀 좌절의 쓰라린 실패를 맛보고는 고개를 떨어뜨린다. 반면에 어떠한 장애나 운명의 장난 앞에서도 꿈을 포기하지 않고 오직 그날을 위해 오랜 세월 기회를 엿보며 식지 않는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사람도 있다.
꿈을 향한 희망찬 도전을 앞에 두고 운이 좋은 사람은 전폭적인 가족의 지원을 받기도 하겠지만, 불행히도 현실은 그렇게 자신의 뜻대로만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바로 여기에서 가족 간의 갈등이 온다. 어찌 보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고우키와 미네코의 독단적인 행동이 미네코의 죽음을 불러온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들이 꿈을 포기하고 현실과 타협하는 길이 현명한 판단일까. 가족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힘들고 긴 여행을 떠나느냐, 바로 여기에서 가족 간에만 얽힌 딜레마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문제는 오직 그 가족만이 풀 수 있다.
꿈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이다. 꿈을 품지 않은 사람을 어찌 살아 있는 인간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는 그 꿈을 향해 가는 절대 쉽지 않은 긴 여정에 있다. 단순히 집을 나가고 남편을 떠난다고 꿈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로 말미암은 가족 간의 갈등 또한 역시 단순하게 외면하거나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우발적인 행동은 오히려 작품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가가 형사는 살해당한 미네코와 그녀의 남편 나오히로를 떠올리며,
“ … 결국, 두 분 모두 이혼 후에 얻은 것은 가족이었던 겁니다. 가족에 굶주려 있었기 때문이죠. 가족이라는 끈은 아주 단단한 겁니다. …”
라고 말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라는 말은 귀가 닳도록 들은 진부한 말이지만, 가끔 우리를 놀라게 한다. 왜냐하면, 살아가다 보면 정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네코는 살해당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를 살해한 범인에게도 피는 물보다 진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신참자』는 소설보다는 드라마를 먼저 추천한다. 아베 히로시의 깔끔한 연기도 볼만하지만, 드라마의 각색 또한 괜찮았기 때문이다.
"… 하지만, 형사가 하는 일이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사건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역시 피해잡니다. 그런 피해자들을 치유할 방법을 찾는 것도 형사의 역할입니다." (『신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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