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7

누명 | 의심의 동물 인간의 예고된 비극

누명 | 애거서 크리스티 | 의심의 동물 인간의 예고된 비극

어느 날 어둑어둑해질 무렵, 잉글랜드 서부의 서니 포인트라 불리는 한적한 곳에 있는 아가일 가문 저택에 지리학자 아서 캘거리가 방문한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2년 전 아가일 저택에서 일어났던 한 살인사건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2년 전 11월의 어느 날 저녁. 대부호의 딸이자 자선사업가로 유명한, 5명의 양자와 양녀를 가진 레이첼 아가일 부인이 살해되었다. 경찰은 조사 결과 아가일 부인은 저녁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흉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돈 문제로 아가일 부인과 말다툼을 한 아가일 부인의 양자 쟈코를 용의자로 잡아들였다. 쟈코는 부인과 말다툼을 하고는 바로 저택을 나와 히치 하이커를 해서 차를 얻어 타고 이동 중이었다고 무죄를 호소했지만, 자코의 증언을 뒷받침해 줄 운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흉기에 묻은 지문이 증거가 되어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 갇힌 지 6개월 정도 지나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캘거리 박사는 바로 2년 전 사건이 발생한 날 저녁때 자코를 차에 태워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당해 일시적으로 기억 장애가 있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2년간 남극탐험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쟈코의 사건에 대해 전혀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늦게나마 쟈코에 대한 기억을 되찾았고, 그가 비록 감옥에서 죽었지만, 정의와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과 그의 가족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캘거리 박사의 증언을 통해 쟈코의 결백은 증명되지만, 아가일 가족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2년 전 사건을 다시 상기시킨 캘거리 박사를 원망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쟈코가 범인이었던 것이 더 나았다. 자코는 불량아였으며 언제나 사고뭉치였다. 그리고 그렇게 2년 전 사건은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해결되었고, 가족들은 2년 동안 평화롭게 안정을 이루어왔는데, 캘거리 박사의 등장으로 그 평화가 깨진 것이다. 그들은 불안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황상 아가일 부인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은 가족 중 한 명일 텐데, 이제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가족을 의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경찰은 재수사를 시작하고, 캘거리 박사는 자신이 한 일이 정의라는 대의를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죄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꼴이 되었기에,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Ordeal by Innocence' by Agatha Christie

한 사람의 누명이 벗겨지는 것으로 평화롭던 아가일 가족은 한순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리고 서로에 대한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게 된다. 아무리 불량배였다지만, 이들에게는 억울하게 죽은 대한 쟈코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더불어 아가일 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보통 자식이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것만큼 대단치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5남매 모두 입양된 자식이라서 그랬을까? 하지만, 아가일 부인은 대부호로서 부끄럽지 않게 입양된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주었다. 경찰도 아가일 부인 살해에 대한 동기로서 금전적인 요소는 제외해 버릴 정도였다.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로서는 강한 모성애를 그렇게 풀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그것을 반강제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던 자식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감사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 그러나 진심으로는 감사할 수 없다는 죄책감, 한쪽으로만 흐르는 일방적으로 강요된 사랑, 비록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뜻에서 그랬을지라도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했던 아가일 부인의 독선적인 자애심. 그녀의 자선이 오히려 독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은이는 자선, 즉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인간을 진실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자선은 일방적일 수 없다. 받는 쪽이 수월해야 주는 쪽도 수월하다. 받는 쪽이 제대로 받지 못해 그릇되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고여 있는 물이 썩듯 악취를 풍기며 부패하여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자선은 할 수 있을 때 하라고도 한다. 나중에 하고 싶어도 누군가 받아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 자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안 주면 안 준다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또 너무 많이 줘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같은 이치다. 결국, 옛 조상이 늘 강조했던 절제와 중용이라는 슬기로운 지혜를 다시 한번 우러러보게 한다.

아무튼, 아기일 부인은 나름대로 온 정성을 쏟아 자식들을 보살폈지만, 자식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는 데 실패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식들의 증오 대상이 된다. 인간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동물인지 새삼스레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저택에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요소가 두루 갖추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슬아슬했던 위기는 아가일 부인의 죽음과 문제아 쟈코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고 더불어 아가일 가족의 거짓되고 그릇된 평화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쟈코의 결백이 증명됨으로써 살얼음 같았던 그들의 평화와 믿음은 거침없이 깨지고 무너져 내린다.

인간은 의심의 동물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 의심과 의문으로 지능의 발달과 동시에 많은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지나친 의심은 불행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아가일 가족의 막내딸 헤스터의 애인이자 젊은 의사인 클레이그는 자신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랑하는 애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헤스터가 자백한다면 자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의사는 애인이 범인일지언정 의심이 풀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잘 안다는 오만에 그 누군가를 신뢰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아주 사소한 작은 사건으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은 우아함과 흉측함을 고루 갖춘 지적 생명체의 영원한 업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나약한 의지는 이 작품을 꿰뚫는 화살과도 같다. 범인을 찾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게 가족이 서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 역시 이 작품의 묘미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추리소설의 고전 명작을 만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누명』은 간결한 문장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로 아가일 가족의 의심과 심리적 갈등으로 말미암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중압감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누명』은 추리소설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범인 찾기’의 재미, 그리고 추리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범인의 의외성’이 주는 100만 볼트짜리 전율, 그 추리가 이루어지는 논리적 과정과 완벽한 마무리 등 정말 흠 잡을 데 없는 놀랍고도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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