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 에드워드 스타인펠드 | 서구식 게임 속에서 성장한 중국의 어제와 오늘
중국은 글로벌 생산체제에서 말하자면 ‘최우수 조연’ 역할을 하고 있다 보편화된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면서 중국은 세계경제를 선도하는 선진국에게 상업적인 혁신과 전반적인 국제 상업 분야에서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255쪽)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제목부터가 상당히 도발적인 에드워드 스타인펠드의 책은 중국 경제개혁의 본격적인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1990년대부터 이 책을 저술한 2009년까지 중국이 이룩한 경제성장에서 개혁의 원동력과 발전과정, 그리고 경제개혁이 중국에 끼친 근원적이며 광범위한 변화를 심도 있게 모색함으로써 새롭게 정립된 중국과 세계, 세계와 중국의 관계를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려는 책이다. 이 조명에서 가장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은 서구가 제정하고 이끌어가는 서구식 게임의 규칙에 따라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9년 동안 국제자문위원회로 활동했던 중국해양석유총공사의 공사화 과정과 미국의 정치적인 촌극을 불러온 유노컬 인수의 뒷이야기 등 국가의 가장 전략적인 산업에까지 미친 변화의 바람을 통해 중국이 어느 선까지 서구의 규칙에 따라 게임을 하는지와 그 한계를 파악하고 있으며, 한편으론 서구 산업국가의 가장 현실적인 걱정이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첨단 기술의 현실과 전망을 현장 인터뷰를 통해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 에드워드 스타인펠드는 중국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 첫 시발점이자 중국의 변화를 주도한 핵심 요인을 바로 제도의 아웃소싱으로 보고 있다. 자본주의 도입을 위한 지식과 경험, 규칙 등 기본적인 기반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중국은 생산 활동에 필요한 사회적 규칙을 정의하는 권한을 외국기업에 이양함으로써 세계화된 국제 분업체제에 자연스럽게 편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국제 규칙을 통째로 수입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곧 중국의 경제개혁이 서구가 만든 게임의 규칙에 따르고 있다는 뜻이다. ‘시장사회주의’이든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이든 중국이 자신들의 경제개혁을 뭐라고 표현하든 상관없이 이미 중국은 서구식 게임 규칙에 따라 세계화된 생산체제에 톱니바퀴처럼 깊숙하게 물려 있을 뿐만 아니라 제 몫 이상을 해냄으로써 G1 자리를 넘보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에 한눈판 나머지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중국의 경제성장에 맞물려 서구 산업국가들도 발전을 이룩했다는 사실과 특히 구글, 애플, 인텔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의 선두 두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중국이 서구의 게임 규칙을 착실하게 준수하는 이상 중국의 발전이 서구에도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 미국 MIT 최고 전문가 집단이 분석한 중국 경제의 실체』의 바람대로 중국은 현실에 안주할 뜻은 없어 보인다. 즉, 서구식 게임의 규칙에만 의존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시진핑 정부는 덩샤오핑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에서 한걸음 물러나 안정과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10% 안팎의 고성장을 7%대로 조율하는 등 더는 성장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뜻과 함께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낸 중국공산당은 수출지향적인 경제를 내수지향적인 경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돈만 잘 벌면 되었던 시절에서 이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돈을 잘 써야 하는 시절로 전환된 것이다. 이미 중국은 2012년부터 3차산업 비중이 제조업을 넘어가면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지갑’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은 이제 미국,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몽(中國夢)’, 즉 ‘팍스 차이나’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바다와 육지 양면으로 중국과 유럽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고 불리는 21세기 실크로드 프로젝트, 미국과 유럽 주도의 금융 시스템에 맞서기 위한 브릭스 개발은행(NDB), 긴급외화보유기금(CRA), 그리고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의 설립, 그리고 위안화 국제화 등을 추진하면서 지속적으로 중동, 아프리카, 남미에 대한 투자도 증가하고 있다. 이로써 중국은 자신들만의 게임 장소와 규칙을 위한 원대한 포부를 밝힌 셈이다.
미국의 눈치를 보던 중에 영국이 총대를 메고 AIIB에 참가함으로써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유럽 여러 국가가 줄줄이 사탕처럼 AIIB에 참가했다. 국제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국의 이익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지금까지 미국의 핵주먹이 효과를 봤다면, 앞으론 중국의 돈맛이 미국의 핵주먹과 대등한 힘을 발휘하며 중국의 영향력을 넓혀갈 것이다. 이것은 때에 따라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중국이 마련한 게임의 규칙에도 참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재작년 리커창 총리와 영국 여왕과의 만남은 큰 의미가 있다. 불과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괄시받던 중국이 이젠 여왕까지 직접 나서 맞이해야 하는 존재로 성장한 것이다.
중국이 세계화된 생산체제에 톱니바퀴처럼 깊숙하게 물려 있는 것만큼 세계 경제 역시 중국에 물려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자신들만의 게임장과 규칙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천명했고, 오래전부터 중국의 지속적인 투자를 받은 중동과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중국발 태풍의 직접적인 영향권 아래에 있는 아시아는 말할 필요도 없고 미국을 배신한 영국을 선두로 유럽 여러 국가가 중국식 게임에 - 적극적이든 수동적이든, 혹은 마지못해서든 - 참여하거나 참여의사를 밝혔다. 중국이 자신들만의 규칙을 만들고 그 규칙이 적용될 장소를 마련하고 그 장소에서만 상호 간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게 한다면, 중국 경제와 긴밀하게 엮인 미국 중심의 경제 체제 역시 변화를 맞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식 규칙을 지키기로 각오한다면 각각 중국과 미국을 중심에 둔 두 거대한 경제 체제가 냉전시대처럼 대립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 역사상 일례가 없었던 대격돌을 앞에 둔 지금, 그리고 변화를 싫어한다는 기득권자들의 본능을 염두에 두면 이 책의 도발적인 제목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는 중국이 현재 몸담은 서구식 시스템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정착해주길 바라는 서구의 안일하면서도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서구는 어찌 되었든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긴밀하게 얽혀 있는 중국은 한국엔 너무나 위협적인 존재다. 이번 사드 보복을 통해 중국이 마련한 게임의 규칙에서 배제되면 어떠한 불이익을 받을지 그 일부를 맛본 한국으로선 비록 서구가 중국식 게임을 우습게 볼지라도 우리는 결코 그럴 수 없음을 뼈저리게 경험한 셈이다. 한편으론 한국에만 한정된 사드 보복을 통해 중국은 - 이유야 어찌 되었든 – 미국에 함부로 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중국은 미국의 기술력과 자신들의 상품을 팔 시장이 여전히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너무 미국과 일본 쪽으로만 치우치면 소인배 기질을 드러낸 중국이 또다시 – 그때에도 한국에만 한정된 것이겠지만 - 어떤 보복을 가할지 모르는 일이다. 또한, 북핵 문제 해결과 한반도 통일의 열쇠를 쥔 중국이라 우리로서는 참으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이다. 아무쪼록 중국의 심기를 건들리 않으면서 한편으론 경제 줄기를 다국적으로 뻗어나갈 필요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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