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24

반지의 제왕 | 고품격 판타지

The Lord Of The Ring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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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 | J.R.R. Tolkien | 두말할 필요 없는 고품격 판타지

원제: The Lord of the Rings by J.R.R. Tolkien
“마땅하다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살아 있는 이들 중 많은 자가 죽어 마땅하지. 그러나 죽은 이들 중에도 마땅히 살아나야 할 이들이 있어. 그렇다고 자네가 그들을 되살릴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죽음의 심판을 그렇게 쉽게 내려서는 안 된다네. 심지어 우리 마법사라 할지라도 만물의 종말을 모두 알 수는 없거든. ….”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145쪽)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그 이상을 해낸 영화, 영화만큼이나 뛰어난 원작

영화의 문외한이라도 피터 잭슨(Peter Jackson) 감독의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 시리즈를 안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한 영화이고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호빗(hobbit)’이라는 작고 통통한 앙증맞은 종족은 쉽게 잊히지 않는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호빗뿐만 아니라 빼어난 아름다움과 고귀함이 돋보이는 엘프, 부를 사랑하는 완고한 드워프, 말도 행동도 굼뜨지만 세상 그 누구보다도 숲을 사랑하는 엔트, 정의를 위해 샤두팍스를 타고 긴 수염을 휘날리며 바람처럼 달려가는 마법사 간달프, 절대반지의 노예가 된 가련한 골룸 등 가운데땅의 다양한 종족을 대변하는 각양각색의 인물들과 이들의 무대가 되는 웅장한 대지, 그리고 신화와 전설의 신비로움을 그대로 간직한 장엄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들은 ‘판타지’라는 장르를 평가함에 빼놓을 수 없는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시냇물처럼 끊이지 않고 영화 속을 흐르는 은은한 감동과 소소한 재미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이면 상당히 길었던 상영시간조차 부족하다고 느낄 정도로 마약 같은 강력한 중독성을 내뿜는다. 그래서 필자는 SF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스타워즈에 버금가는 판타지 영화를 꼽는다면 주저 없이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꼽는다.

그런데 지금까지 영화 「반지의 제왕」을 두 번 이상 보아왔으면서도 바보같이 몰랐던 것이 있었다. 바로 톨킨(J.R.R. Tolkien)의 원작이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톨킨의 원작 6권을, 아니 해설까지 포함해서 7권 전부를 읽은 지금 영화가 원작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를 축약시키기 위해 각색에 많은 심혈을 기울였으며, 뛰어난 원작이 있었기에 그만큼 좋은 영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영화의 상영시간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에 원작의 상당 부분을 빼거나 줄이고, 이런 가위질로 어색해진 흐름을 매끄럽게 이어주고자 때론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지만, 영화는 원작의 방대한 이야기의 거대한 뼈대를 충실하게 유지하고 있다. 영화 1부에서 이제 막 결성한 원정대가 깊은골을 출발하고 얼마 안 지나 호빗들이 보로미르에게 검술 수업을 받는 우스꽝스런 모습은 원작에는 없는 장면이며, 영화 3부에서 사루만의 죽음은 원작보다 이른 시기에 이루어졌다. 원작에서도 사루만은 뱀혓바닷(그리마)이 휘두른 칼에 찔려 죽지만, 막 폐허가 된 오르상크에서가 아니라 호빗들이 영웅이 되어 돌아간 샤이어에서 죽는다. 원작에는 호빗들이 고향 샤이어로 되돌아갔을 때 다시 한 번 사루만의 비열한 음모와 대결을 벌이지만 영화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삭제되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루만의 죽음을 앞으로 댕긴 듯하다. 그리고 영화 3부 미나스 타리스에서 벌어지는 전쟁 장면 중의 하이라이트이자 관객에게 악의 부대를 폭풍처럼 거침없이 덮치는 짜릿한 승리감을 전해주는 아라고른이 데리고 온 사자(死者) 부대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미나스 타리스에 도착하기 전에 아라고른이 사자 부대의 저주를 풀어주기 때문에 영화처럼 미나스 타리스의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영화는 원작의 해설부분까지 충실히 참고했음을 알 수 있는데, 원작의 본문만 보면 보로미르와 파라미르 형제의 우애, 아라고른과 아르웬의 사랑의 서약, 감지네 샘과 초막골네 로즈와의 연인 관계 등에 대해서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7권 해설을 봐야 알 수 있다.

The Lord of the Rings by J.R.R. Tolkien

이야기 신의 재림과 영웅의 귀환

1권 서문에서 저자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쓴 동기와 의도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일차적인 동기는 정말로 긴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욕망이었다. 읽는 이의 관심을 끌어, 그들을 즐겁게 하고,기쁘게 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하고 또 깊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24쪽)
무슨 심층적인 의미나 ‘메시지’의 존재와 관련해 말하자면,작가의 의도에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이 작품은 알레고리적인 것도 아니고 시사적인 것도 아니다. (『반지의 제왕 1 – 반지원정대 1』, 25쪽)

일찌감치 신랄한 비난에 대한 방패막이를 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평론가들의 부정적 평가와 비주류 문학이라는 평가절하는 피해갈 수 없었다. 반면에 그런 전문가들의 가혹한 평가가 너무 지나친 것이 아니냐고 항변하는 듯 일반 독자들은 톨킨과 그의 작품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왔다. 그것은 톨킨이 이 작품을 쓴 일차적인 동기, 즉 독자를 ‘즐겁게 하고,기쁘게 하고, 때로는 흥분시키기도 하고 또 깊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이야기꾼으로서 매우 성공적인 작품을 썼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교하고 웅장한 구상과 섬세하고 깊이 있는 묘사와 방대한 지리적 및 역사적 배경으로 현실과는 무관한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해내는 데 성공함으로써 초현실적인 판타지 문학의 기초를 튼튼히 했으며,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절대반지’의 마력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키는데도 성공했다. 왜냐하면, 투명인간은 인간의 은밀하면서도 도발적인 욕망을 안전하게, 그리고 비밀스럽게 충족시켜줄 수 있는 완벽한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 현실에서는 문명인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었던 별 희귀 망측한 짓을 투명인간이 되어 도덕과 양심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저지르는 자신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러나 그런 헛된 망상은 부질없다는 듯이 절대반지도 결국엔 파괴되고 만다. 그 파괴로 말미암아 절대반지에 대한 간절했던 상상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고통스러운 아쉬움 속으로 추락하면서 안개산맥의 모리아 입구에 있던 돌문에 각인된 룬문자처럼 독자의 뇌리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또한, 우리는 거룩한 반지원정의 위업을 달성한 영웅들, 그중에서도 가장 연약해 보이는 호빗들을 빼놓을 수가 없다. 키는 인간의 절반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먹고 노는 것도 좋아하는 순박한 그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굳센 의지력과 무쇠 같은 용기를 발휘하여 반지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완수하면서 일약 가운데땅의 영웅으로 부상한다.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그저 그런 시골농부 같은 호빗들이 자신들의 평화롭고 고요한 삶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반지원정을 위해 의연하게 목숨까지 내놓으며 대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다는 영웅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체현한다. 부와 명성만을 좇는 너저분한 인간들이 득실대는, 진정한 영웅을 상실한 현실에서 그들은 귀환한 영웅이다. 부와 명성을 위해 음흉한 계략과 앙상한 인내만이 횡횡하는 시대에 그들이 보여준 용기와 인내, 우정과 신뢰, 그리고 변치않는 신념과 희망은 가치 있는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우리에게 조금이나마 위안과 희망을 준다.

초록이 우거진 전원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는 저녁이면 맥주를 마시며 노래를 부르고 흥에 겨워 춤을 추는 호빗 종족의 전원적이고 소박한 삶에서 첨단 문명의 이기가 결코 행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우리는 산업화가 가져다준 황폐하고 삭막한 삶에 자신도 모르게 서글퍼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슬픈 것은 아직 ‘원정’이 완벽하게 끝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절대반지’는 파괴되고 절대악 사우론은 제거되었지만, 인간의 마음속에 사악함은 여전히 건재하며 ‘절대반지’가 우리의 작은 영웅 호빗들의 마음을 유혹하고 지배하려 했다면, 현실에서는 ‘물질’이 우리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프로도는 끝내 자신의 의지로 반지를 파괴하지 못하고, 반지는 골룸의 운명적인 배신을 통해 파괴된다. 부정하게 축적한 돈다발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미련없이 파괴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의구심이 갑자기 고개를 쳐든다.

마치면서...

존 M. 쿳시(John M. Coetzee)는 오랫동안 읽히고 논의되어 인류문화의 유산이 될 소설들을 썼다는 이유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또한, 도시는 인류가 뱉어난 가래침이라고 루소(rousseau)는 말했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인류가 뱉어난 가래침 속에서 더러움과 비참함, 순수함과 깨끗함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도시인들에게 오랫동안 읽히며 풍부한 꿈과 아름답고 낭만적인 공상의 재료를 제공함으로써 위안과 휴식, 때론 도피처를 제공하기에 손색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끝으로 무협소설에는 『영웅문』과 『소오강호』로 유명한 김용(金庸)이 넘볼 수 없는 존재로 우뚝 서 있다면, 판타지소설에는 바로 톨킨이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 리뷰는 2016년 6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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