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2

체 게바라 평전 | 완벽이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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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평전 장 코르미에 | 완벽이란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한 혁명가에 대한 진중한 기록

Original Title: Che Guevara by Jean Cormier
혁명이 다만 단순한 경제 사회적 변혁에만 한정된다면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혁명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간’을 생성시키기 위한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변화였다. (p494)

별을 단 베레모, 텁수룩한 구레나룻, 그리고 올리브그린 군복. 이 세 가지는 체 게바라(Che Guevara)를 기억하고 회상하는 많은 사람의 마음과 머릿속에 각인된 상징이나 다름없는 한결같은 체의 모습이다. 공식적인 외교 방문 중에서조차 군복을 입었던 체가 군복을 벗는 날은 아마도 전 세계의 민중이 해방되는, 그래서 세상의 모든 가난과 착취가 없어지는 날일 것이다. 그러나 체는 죽었다. 군복을 입은 채로, 그리고 그가 못 이룬 혁명과 그 혁명으로 이루고자 했던 장밋빛 이상을 남겨두고. 설령 그가 지금까지 살아있다 해도 그는 여전히 군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체가 자신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 이루고자 했던 전 세계 민중의 해방은 여전히 요원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가 실패한 원인 중 하나는 교육을 통해 민중을 도덕적으로 개량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능력에 의한 분배가 아니라 필요에 의한 분배가 원칙이기 때문이다. 능력이 아닌 필요에 의한 분배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회인가. 그러나 ‘사유’의 개념은 마약보다도 더 지독하게 민중을 파고들었고 끝내 그들은 ‘사유’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혁명에 참여한 공산주의 지도자들도 탐욕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일단 그들은 혁명에서 승리하자 그동안 감춰두었던 탐욕을 드러냄으로써 민중을 해방하기는커녕 민중을 옥죄던 올가미만 교체한 격으로 혁명을 서둘러 끝냈다.

그러나 체 게바라는 달랐다. 그는 좀처럼 탐욕을 부리지 않았다. 쿠바 혁명 성공 후 정부의 여러 요직을 맡으면서 충분히 재산을 모을 수 있는, 아니면 좀 더 넉넉한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단호하게 거부했다. 체가 국립은행의 총재로 있을 때는 자신이 이 나라의 화폐를 책임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전투 중 획득한 포로를 무조건 방면할 정도로 관대했었던데 반해 스스로에게는 매우 엄격했다. 노동의 중요성을 실천으로 보여줬고 대장인 자신조차 커피 한 잔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마시는 일이 없도록 커피 양까지 통제했으며, 대장이라 해서 다른 대원들보다 한 숟가락의 음식을 더 받는 것도, 그리고 다른 대원보다 음식을 먼저 받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위에 걸맞은 어느 정도의 특권의식은 당연시되고 있는 점을 생각해볼 때 체 게바라가 얼마나 청렴결백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는지는 굳이 두 번 강조하지 않아도 충분하다. 아마도 그가 탐욕을 부렸던 유일무이한 삶의 요소는 바로 혁명 과업이었으리라.

1962년 10월, 체는 아바나에 모인 청년당 조직원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젊은 공산주의자의 의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입니다. 새로운 인간형의 완성이라는 말은 최고의 인간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최고의 인간은 노동과 학문, 이 세계 모든 민중과의 부단한 연대를 통하여 정제된 인간입니다. 이 지구상 어디선가 무고한 목숨이 꺼져갈 때 함께 고통을 느낄 수 있으리만치 감성이 계발되어 있으며, 자유라는 깃발 아래 분연히 일어설 줄 아는 인간입니다.” (『p510~p511)

체 게바라는 스스로 주장한 ‘새로운 인간형’, 즉 교양 있고 윤리적으로 완벽한 인간의 모습을 스스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신념과 혁명의 정당성을 증명하려 했다. 그는 자신의 도덕적 입장의 중점적인 견해를 이렇게 요약하기도 했다.

서구 사람들 대부분의 행동을 특징짓는 것은 개인주의다. 그 개인주의에 빠져든다면 거기에는 도덕이 있을 수 없다. 도덕은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p707)

‘그 시대의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는 사르트르의 평가와 ‘전사 그리스도’라는 다소 과격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애칭은 체 게바라의 삶이 비상한 사람조차 흉내 내기 어려운 극기, 희생정신, 강철 같은 의지와 투쟁 그리고 혁명에 대한 신뢰와 확신 등으로 바위처럼 단단하게 무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Alberto Korda / Public domain>

‘새로운 인간형’을 몸소 실천했던 체 게바라는 아내나 자녀들에게 물질적으로 많은 걸 남겨주지 못했고 이것은 체 자신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안타깝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국가가 그들의 생활과 교육을 충분히 책임져주리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쿠바 혁명 전투 중 일부 농민들의 배반으로 혁명군은 위험에 빠지기도 했지만, 체는 끝내 민중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았을 정도로 민중을 신뢰했던 것만큼 혁명으로 새로 태어난 쿠바 역시 신뢰했던 것이다.

체는 볼리비아 대장정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전략)

너희들은 더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어린 꼬마들은 이내 나를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희들의 아빠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었단다.

아빠는 너희들이 훌륭한 혁명가로 자라기를 바란단다.

(중략)

특히 이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웠으면 좋겠구나. (『p558~p559)

이 세상 모든 아버지 중에서 체 게바라처럼 자녀에게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했으며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사람’이라고 떳떳하게 고백할 수 있는, 더구나 그것을 행동으로써 완벽하게 증명할 수 있었던 아버지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누군가에게 행해질 모든 불의를 깨달으라는 체의 말은 보통의 어른들이 도의상, 체면상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자녀나 학생들, 또는 타인에게 하는 위선적인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자녀가 불의를 보고 외면하는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이 되기보다는 불의에 맞서 싸우다 죽을지언정 정의롭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신념에서 우러나온 진심이자 혁명 정신의 뿌리였다.

세계적인 전기작가 장 코르미에(Jean Cormier)의 『체 게바라 평전(Che Guevara)』은 체와 관련된 수많은 일화와 체가 남긴 수기나 편지, 그리고 현장 답사를 통한 자료 수집 등 저자의 10년이 넘는 혼신의 노고 끝에 완성된 역작이다. 어떠한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극적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간 체의 인생과 옥석 같은 신념이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무협지보다 흥미진진하고 추리소설보다 더 긴장감 있으며, 어떤 문학보다도 감동적이다. 그야말로 체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성서나 다름없는 책이며, 그렇지 않은 독자라도 전 세계의 가난과 착취를 혁파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 세상을 떠난 한 혁명가의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삶이 담긴 진중한 기록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배부르고 등 따스한 현대인들에게 체 게바라는 경계해야 할 인물일지도 모른다. 그 경계는 다름 아닌 안일한 일상과 적당한 물질적 풍요에 온순한 양처럼 길든 삶의 무기력에서 오는 나약함이다. 그런 우리에게 체는 고함치고 채찍질한다. 아무리 많은 식량이 생산되더라도 여전히 굶주리는 아이들이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불의를 외면하는 비겁한 인간이 되지 말라고.

이 리뷰는 2016년 6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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