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4/30

한국전쟁 박태균 | 모두 실패한 전쟁

Korean Wa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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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박태균 | 그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전쟁

원제: 한국전쟁 by 박태균
필자는 이 전쟁은 시작되어서는 안 될 전쟁이었지만 시작되었고,끝나야 했는데도 끝나지 않은,그러나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9쪽)

필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만 해도 한국전쟁을 말하면 무엇보다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그 전후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전쟁에 대한 모든 잘못과 책임은 무조건 북한에 있다는, 지독한 반공사상이 수십 년 묵은 때처럼 아직 남아 있었다. 물론 한국전쟁은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만,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에 대한 책임을 전부 북한에만 묻는 것에는 일말의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사건의 책임을 가해자에게만 덮어씌우는 것은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며 이런 식의 일방적 역사 해석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가령 일제강점기의 원인을 제국주의적 야욕에 휩싸인 일본의 잘못으로만 판단하고 전 세계적으로 팽배한 제국주의적 흐름과 근대화의 역량을 거스른 채 내부혼란으로 침략의 빌미를 제공한 조선왕조의 오류를 무시한다면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국제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과연 우리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 처참했던 민족상잔의 비극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설령 통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민족 분단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끝없이 되씹고 되씹어야 할 질문들이다.

Korean War
<Korean War Memorial / Bluedisk at English Wikipedia / CC BY-SA>

박태균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 그리그 그 영향 등 한국전쟁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아직도 명확하게 실타래가 풀리지 않은 한국전쟁의 주요 의문과 쟁점들 위주로 기술하고 있으며, 주요하게 다루는 영역에서만큼은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과 상황을 수렴함으로써 북한이나 남한 등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일례로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북한이나 남한의 한쪽 자료만 참고할 수 있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아예 본문에서 배제했다. 호기심 충만한 독자에겐 약간은 아쉽기도 한 부분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저자 박태균의 신념과 신중함을 재차 확인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책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진다.

한국전쟁의 주요 이해관계 당사국들은 전쟁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민간인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어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도 그들은 전쟁의 실패를 시인하기보다는 죽음, 고통, 파괴라는 전쟁의 무덤 위에 파렴치하게도 자신들의 깃발을 꽂고 승리를 자화자찬하는 샴페인을 터트린다. 그러나 참혹한 이 전쟁은 실패의 연속과정이었으며 그렇기에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전쟁의 승패에 대한 박태균의 냉철한 해석이다.

역사학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고자 하는 바람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쟁사를 연구한다. 그러나 인류사는 그런 역사학자들의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전쟁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주었으며, 칼 세이건이 명명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는 불을 내뿜는 전쟁이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건 실패하건 그 피해는 전쟁과 무관한 국민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굳이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정부나 정치인들은 국익이라는 기치 아래 사욕을 숨기고 전쟁을 일으킨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한번 일어나면 국가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수 있기에 일어날 확률이 낮더라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쟁은 돈, 물량으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대전에 와서 물량전이 대세가 되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쟁을 치르는 것은 마오쩌둥이 강조했듯 사람이다. 물질적 무장 못지않게 정신적 무장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무장은 무엇으로 홀맺을 수 있을까. 무지렁이 필자로서는 뭐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객관적인 역사 이해와 넓은 역사 안목이야말로 정신적 무장의 기틀이 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책하고는 크게 상관없지만, ‘한국전쟁’하고는 아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예비군 훈련 때 겪었던 시답잖은 일화로 마무리하련다. 필자가 예비군 시절 사격 훈련을 받을 때 지급받은 총은 감격스럽게도 한국전쟁 때 쓰던 카빈총이었다. 이미 한 차례 치열했던 전쟁을 통해 피비린내나는 전장을 몸소 체험한 카빈 노병은 전쟁이라면 신물이 났던 것일까? 그래서 사격 연습을 또 다른 전쟁의 전초전으로 이해한 것일까? 아무튼, 지친 노병은 내 집게손가락이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무심하게 총알을 발사시키지 않았다. 무안해진 필자는 엎드려 쏴 자세에서 본능적으로 한쪽 발을 들었고 잠시 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한 교관이 다가왔다. 그러나 교관도 노병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하긴 짬밥 차이가 수십 년이나 나니, 참모총장 할아버지가 와도 어쩔 수 없으리라. 아마 필자가 실제 상황에서 이 카빈총을 지급받은 상태에서 적과 마주쳤더라면 총알 한 발 못 쏴보고 죽었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카빈총은 2015년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한국전쟁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 박물관에서 편안히 남은 삶을 보내야 할 낡고 손때 묻은 총뿐이라면 누가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리뷰는 2016년 4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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