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9

들불 | 일상이 된 죽음

Wildfir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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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 오오카 쇼헤이 |일상이 된 죽음에 적응한다는 것

Original Title: 野火 by 大岡 昇平

산속 밭에 남은 몇 개인가의 고구마로 한정된 나의 삶은, 과연 살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러나 죽음 또한 죽을 가치가 없다고 한다면, 나는 역시 살지 않으면 안 된다. (p119)

죽음에 대한 생각은 내게 집에 돌아온 듯한 편안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어디에 가든 무엇을 해 보든 앞에는 반드시 이것이 있는 걸 보면, 결국 이것이 내가 가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지고 힘이 솟는 것 같았다. (p149)

태평양 전쟁 말기, 필리핀 레이테섬에 보충병으로 투입된 다무라 일병. 병에 걸려 전투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중대에서 쫓겨난 그는 의지할 곳을 찾아 야전병원으로 간다. 야전병원은 입원한 병사들의 식량을 군의관이 강탈하는 등 패색이 짙어가는 절박한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다무라는 중대에서 받은 식량이 떨어지자 다른 부상병들처럼 병원에서조차 쫓겨나고 마지못해 중대로 가보지만 그를 맞이한 것은 ‘죽지 않고 왜 왔냐’는 식의 싸늘한 눈초리와 냉대뿐이었다. 다무라는 분대장의 마지막 선심으로 받은 덩이뿌리 6개를 가지고 야전병원 근처 골짜기로 향한다. 거기엔 다무라처럼 오갈 데 없고 오갈 수 있는 몸도 아닌 패잔병 같은 부상병들이 숲 가에, 폭탄 맞은 시체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있는 처량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곳마저 미군의 가차 없는 폭격으로 불바다가 되자 어쩔 수 없이 다무라는 자리를 떠난다. 배낭에 든 수류탄 한 개를 생각하며 죽을 때만큼은 자유롭게 자신이 결정할 수 있음을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며 다무라는 정처 없이 섬을 떠돌며 방황한다.

실제로 태평양 전쟁 말기 필리핀 민도로섬에서 경비병으로 근무하다 미군의 포로가 되어 종전을 맞이했던 오오카 쇼헤이(大岡 昇平)가 쓴 소설 『들불(野火)』은 전쟁문학의 걸작이라고 평한다. 그렇다고 박진감 넘치는 전투장면을 떠올리면 안 된다. 다무라의 죽음과 삶, 죄와 구원, 그리고 광기와 신으로 이어지는 러시아의 거장이자 ‘영혼의 투시자’인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는 형이상학적인 고찰과 심리적 번뇌가 이 작품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군인으로서의 목적도 상실하고, 살아서 돌아갈 희망도 없이 오로지 죽을 자유밖에 없는 다무라에게 남은 시간은 무한한 상념의 연속이다. 과거를 회상하며 몽상에 젖기도 하고, 우주적 차원의 죽음과 삶을 그려보기도 한다. 성냥을 얻으려다 얼떨결에 민간인을 사살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죽인 다무라는 죄와 구윈, 그리고 신에 대한 상념에 심취한 나머지 신의 목소리까지 듣는 등 서서히 광기에 휩싸인다.

무뇌충이 아닌 이상 사람에게는 철학적 성찰과 고뇌도 필요하지만, 다무라처럼 절박한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생존’이다. 굶주리고 병들고 피곤한 몸으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처절하게 발악하는 극한 상황에서 동료 병사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인간 사냥’을 자행하는 인간성의 상실은 다무라를 경악하게 하면서도 그 자신 역시 어느덧 인간이 지녀야 할 마지막 자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엉덩이 살점이 떨어져 나간 시체를 보며 그는 그 고기를 먹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런 와중에서 만난 죽어가던 미친 한 장교는 마지막으로 제정신이 들었을 때 다무라에게 자신이 죽으면 먹어도 좋다고 허락하는,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 자 특유의 관대함을 발휘하며 왼팔 상박부 부위를 두드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다무라는 먹지 못한다. 왜 그는 먹지 못했을까?

무엇이 그를 막았든, 그것은 오래 지탱하지 못하고 곧 무너지고 말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이 남긴 마지막 객기일까. 아니면 이성과 문명의 승리일까. 그것이 무엇이었든 간에 야전병원에서 안면이 있었던 나가마쓰와 우연히 마주친 다무라는 그가 건네준 ‘원숭이’ 육포를 정신없이 맛있게 먹는다. 하지만, 다무라는 알고 있었다. 몇 날 며칠, 아니 그 이상 숲을 돌아다녔음에도 원숭이 한 마리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죽어가면서 자신의 살점을 먹으라고 허락한 장교의 살점은 먹지 못하고, 남이 잡아 마련한 인육을 먹으며 다무라는 나카마쓰에게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직접 소나 돼지, 또는 닭을 잡아먹지는 못하면서도, 누군가 그것을 도살하여 먹기 좋게 썰어준 고기는 아주 맛있게 잘 먹는, 그러면서도 동물 애호를 외치는 우리의 위선적인 삶을 떠올리게 한다.

Wildfire by Oka Shohei

극한의 상황에 혼자 남은 다무라의 독백과도 같은 무한한 상념에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한다. 죽음이 일상이 되고 그 명백한 증거가 썩은 달걀 같은 죽음의 냄새를 풍기며 곳곳에 널려 있는 전쟁터에 혼자 남은 병사는 우리의 상상과는 반대로 죽음을 집처럼 편안하게 생각한다.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두려워하고 피하고자 하는 죽음이지만, 그 죽음이 주변에 흔해진다면 그것에조차 인간은 면역되고 적응하는 것일까. 정말 만물의 영장답게 놀라운 적응력이지 않을 수 없다.

전쟁은 참으로 많은 걸 변화시킨다. 그중에서도 가장 무섭고 끔찍한 것은 바로 인간성의 상실이다. 인간성을 잃은 사람은 어떠한 짓을 할지 도무지 상상할 수조차 없을뿐더러 그 자신 역시 그러한 행동의 의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나가마쓰를 통해서 잘 드러난다. 다무라가 야전병원에서 처음 나카마쓰를 만났을 때는 중년의 노련한 병사 야스다에게 의지하려는 마음 약한 젊은이였을 뿐이었다. 그런 나카마쓰가 적군이고 아군이고 상관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사냥한 다음 다시 인육을 육포로 만들어 먹는 ‘인간 사냥꾼’으로 돌변한 것이다.

예전에 「동물농장」이라는 예능 프로에서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들이 굶어 죽어가면서도 같은 우리 안에 갇혀 이미 싸늘한 시체로 변한 동족의 살은 끝내 먹지 않았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오랫동안 자부해온 문명과 이성이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너무나도 많이 목격했다.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된 것처럼 굶주림 앞에서는 부모 자식도 없는 것이 인간이다. 우리는 그것을 ‘생존’을 위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이라며 일부 사람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 살아남아야 할 정도로 인간의, 아니 ‘나’의 생명은 소중한 것일까. 말은 이렇게 그럴싸하게 하지만, 나 역시 극한 상황에 닥치면 무슨 짓을 행할지 장담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이 리뷰는 2016년 2월 29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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