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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30일 수요일

[책 리뷰] 상징의 미화가 역사적 주체 세력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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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의 미화가 역사적 주체 세력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Original Title: ねじ曲げられた桜―美意識と軍国主義 by 大貫惠美子
이들 대원들은 모두 행동에서는 ‘천황 즉 국가를 위한 희생’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고 (思考)에서까지 그것을 그대로 재생산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지막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앞에서 거론한 일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의 행동을 촉구한 최대의 요인은 이상주의와 애국심 두 가지였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p402)

‘집단 광기’ 뒤에 숨은 우리가 모르는 비밀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는 전대미문의 특공작전으로 수천 명이나 되는 젊은이가 죽어나가는 비참한 상황이 되었다. 그 가운데 천 명 정도가 학도병 출신으로, 당시의 지적 엘리트가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이들 일본의 최고 지식인들이, 다시 말해 일본의 군사적 • 제국주의적 행동을 가장 지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이, 그것도 일본이 질 것을 뻔히 알았을 뿐만 아니라 사상적으로 그 이데올로기를 포용하지 않으면서도 행동으로는 그것을 재생산하고 죽음을 향해 날아갔을까.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p485)

본이 아시아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가미카제’ 특공대 특유의 충격적인 행동에 대해 일본 침략전쟁의 피해자 국민으로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아마도 매우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 사람은 당시 일본국민은 군사정부의 국가내셔널리즘 이데올로기에 철저하게 세뇌되었기 때문에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어갔다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일본국민이 보여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우리는 보통 ‘집단광기’로 분석한다. 그러나 이 책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ねじ曲げられた桜―美意識と軍国主義)』에서 문화인류학자 오오누키 에미코(大貫惠美子)가 분석한 특공대 5명의 수기를 보면 군사정부에 의해 확산된 천황제 이데올로기가 실제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국민 개개인의 마음과 사고까지 절대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광기’라고 싸잡아 말하는 것은 너무나 무성의한 평가이다.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자와 기독교인도 다수 포함된 특공대원들은 왜 저항하지 않고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여 일말의 돌아올 희망도 없는 임무에 기꺼이 젊은 청춘을 바쳤던 것일까. 이에 대해 저자 오오누키 에미코는 “그들이 자신의 목숨을 던진 것은 자신들의 죽음이 새로운 일본을 구축(構築)할 가능성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상주의”와 서양제국, 마르크스주의자에게는 자본주의와 물질주의로부터 일본을 지키려는 ‘애국심’으로 충만한 ‘비정치적 개인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학도병들의 이상주의적인 성향은 당시 학생들에게 널리 알려진 에머슨의 ‘너의 마차를 별에 걸어라’라는 구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일본 정부는 이러한 젊은이들의 순수한 애국심을 교묘히 이용하여 국가내셔널리즘을 그들의 사고에 침투시킬 수 있었고 그러한 역사적 과정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만든 매개체가 바로 ‘사쿠라’였던 것이다.

사쿠라, 문화적 내셔널리즘에서 정치적 내셔널리즘으로

이지 이전부터 사쿠라꽃은 일본인의 중요한 상징으로서 삶과 죽음 그리고 환생, 사랑과 생명력, 그리고 일본인의 집단적 자기를 가리켰고 이러한 상징은 문학과 예술을 통해서도 강조됨으로써 일본인의 사고 속에 ‘아름다운 사쿠라’로 각인되었다. 이렇게 문화적 내셔널리즘으로 작용한 사쿠라는 군국주의자들에 의해 조국과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은 아름답게 핀 후에 아름답게 지는 사쿠라꽃과 같고 훗날 야스쿠니 신사에 다시 사쿠라꽃으로 환생한다는 정치적 내셔널리즘으로까지 확장되었다. 특공대를 포함한 병사들의 희생을 미화하고자 사쿠라를 전면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특공대원들의 수기에는 천황을 위해 죽는다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자기 죽음을 ‘지는 사쿠라’에 비유하는 말은 종종 나온다. 여기에서 바로 메코네상스, 즉 상징적 커뮤니케이션에서 흔히 일어나는 현상인 ‘오인’이야말로 군국주의자들이 의식적으로 조작한 국가내셔널리즘의 핵심이다.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국가에 대해 바치는 헌신이 순수한 만큼 미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국가가 이 충성의 미적 가치를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오인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사쿠라의 미적 가치를 일본인 모두가 공유했기 때문이다. 즉, 사쿠라의 아름다움에 미혹되어 그 밑에 숨겨진 정부의 흑막을 제대로 간파할 수 없었다.

특공대원들이 남긴 수기

에 소개된 특공대원이 읽은 확인된 책의 권수만 해도 무려 1,355권이나 된다. 그들이 전사한 나이가 주로 20대 초 그 전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말 어마어마한 독서량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들은 철학, 문학, 음악, 예술 등 전공과는 상관없이 다방면의 책들을 읽으며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추구했고 ‘개인’ 혹은 ‘사회에 대한 개인의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개인’은 ‘삶’이고 ‘사회적 책임’은 ‘죽음’이라는 역사의 흐름을 그들의 개인적 역량으로 극복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웠다. 설령 ‘삶’을 선택하면 살아남을 수는 있겠지만, 죽어가는 동료나 친구를 대하기가 너무나 견디기 어려웠고 ‘죽음’을 회피했다는 비난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불명예로 다가와 평생을 따라다니며 괴롭혔을 것이다. 그렇다고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 역시 괴로웠다. 한창 삶에 대한 다양한 욕구가 왕성한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그들에겐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이 남아 있었다. 그러한 그들의 복잡한 감정, 전쟁과 정부에 대한 의문과 비판, 삶에 대한 집착과 번뇌 등은 그들의 수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특공대원으로서 23세의 나이에 전사한 육군소위 아나자와 토시오는 부모가 반대한 연인에 대해 변함없는 사랑이 담긴, “치에코, 행복해야 해. 진정으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인간만큼 행복한 사람은 없어. 나의 장래는 나에게 가장 고귀한 감정인 당신의 행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득할 거야.”라는 글을 일기에 남겼다. 또한, 특공대원으로서 24세의 나이에 전사한 해군소위 하야시 이치조오는 마지막 출격을 얼마 안 남기고 어머니에게 쓴 편지에 “저는 아직 엄마한테 어리광을 부리고 싶습니다.”, “역시 엄마 품에 안겨 잠들고 싶습니다.”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다고 한다.

연인과 어머니를 사랑했던 남자가 사쿠라처럼 지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했다는 것은 믿기지 않는다고 저자가 술회하듯 나 역시 믿기지 않는다.

그들이 의도적으로 조장된 국가이데올로기라는 무언의 압력에 굴복하여 어쩔 수 없이 죽음을 선택하고 그 죽음이 속칭 ‘개죽음’처럼 무가치해지는 것이 두려워 평소에 품어 왔던 이상주의적인 가치를 자신들의 죽음에 부여하여 나름대로 정당화하려고 노력했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 죽음이 무의미해지는 것만큼 참기 어려운 것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수기를 통해 확실히 드러난 사실은 그들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들로선 절대 찾을 수 없는 해답을 두고 죽음을 하루 앞둔 출격 전날까지 번민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해군기지에서 학도병을 위해 식사, 세탁 등의 잡일을 맡았던 카스가 타케오라는 사람이 남긴 편지를 보면 그들이 죽음을 하루 앞둔 날의 처참하고 착잡한 심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본문에 인용된 편지 내용에서 그 일부분만 여기에 적어 본다.

내일은 마침내 출격, 일본제국을 위해, 천황폐하를 위해서라고, 젊고 고귀한 청춘의 목숨을 바칠 각오는 다짐하고 있지만, 흐트러진 테이블에 엎드린 사람, 유서를 쓰는 사람, 팔짱을 끼고 명상하는 사람, 엉망이 된 송별회장을 떠나는 사람, 몇 시간이나 묵묵히 뭔가를 쓰는 사람,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꽃병을 부수는 사람. 이 처참한 출격 전야의 어찌할 바를 모르는 학도병사의 심경은 너무나도 알려져 있지 않다.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p305)

출격 당일 사쿠라꽃을 머리에 꽂은 채 환하게 미소 짓고 손을 흔들며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이륙하던 영웅적인 모습으로 널리 알려진 특공대원들의 인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그 마지막 미소야말로 그들의 참혹한 심정을 역설적으로 잘 대변해 준다고 생각한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그들에겐 그나마 당당한 영웅적인 모습을 세상에 남길 수 있다는 것이 마지막 위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죽음이 두려워 질질 짜는 비굴한 모습을 남기고 싶은 군인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면서...

상의 세계에 살면서 진실이나 인생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던 학생들이 군국주의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고 ‘개인적 삶’을 체념한 채 ‘사회적 책임’의 완수라고 착각한 특공대원으로 죽어가는 과정은 상징의 미화가 역사적 주체 세력에 의해 오용되었을 때 불러오는 놀라운 파괴력을 절감시킨다. 오오누키 에미코 또한 그러한 점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으며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일이 없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에 나 역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치의 상징이었던 갈고리 십자가가 독일의 패전 후 전 세계의 문화공간에서 신속하게 말살되었던 것에 비해 사쿠라꽃은 여전히 일본의 문화적 내셔널리즘으로 온전하게 작동하고 있다. 또한, 한국도 언제부터인가 벚꽃 놀이가 범국민적 꽃놀이로서 정착되었다. 현재 일본인과 한국인이 벚꽃놀이를 즐기는 것은 단지 그 꽃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싶으며,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난 오래전부터 벚꽃을 보면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위화감의 정체가 조금은 선명해지는 것도 같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무서운 말이 있지만, 우리 주변에 흔해진 벚꽃을 보며 사쿠라로 상징되었던 잔혹한 과거를 떠올리는 번거로운 수고가 회의주의자의 쓸데없는 기우로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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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4일 목요일

[책 리뷰] 진화하는 광물이 들려주는 ~ 지구 이야기(로버트 M. 헤이즌)

The Story of Earth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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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광물이 들려주는 지구 이야기

Original Title: The Story of Earth by Robert M. Hazen
지구는 이 점에 관해 침묵하지 않는다. 지구의 이야기는 저기 암석들의 풍부한 기록 안에서 읽을 수 있다. 수천 년 동안, 우리는 우리 고향을 알고자 애써 지구의 이야기를 뒤져낼 만큼은 슬기로웠다. 지구가 들려주는 그 이야기의 교훈을 우리가 너무 늦지 않게 깨닫기를 바라자. (『지구 이야기』. p326)

생명의 다양성은 원소, 광물, 암석 그리고 생명, 이 모두가 공진화한 덕분!

명의 기원을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다윈의 진화론이다. 세포, 분자에서 미생물을 거쳐 다양한 동식물을 이루는 생명체들로 진화하는 역동적인 과정은 생명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그리고 이러한 다양한 생명이 싹트고 자라며 번식할 수 있는 터를 제공해준 대양과 대지로 둘러싸인 지구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며 나이를 먹는 살아있는 공간이자 행성이다. 생동감 넘치고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지구는 태초의 그 지옥처럼 뜨겁고 척박한 잿빛 행성에서 현재의 푸른 지구로 ’진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미생물에서 시작한 생명의 씨앗은 현재의 인류로까지 무난하게 이어질 수 있었다. 미생물과 인류의 양극단 사이를 가득 메운 생명의 다양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생명의 진화를 말할 때 그 중심은 언제나 살아있는 생물이다. 어디에도 광물이나 암석이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 어떤 도움을 주거나 상호 작용한 것에 관해 진지하게 말하는 사람은 보기 어렵다. 지난 몇 세기 동안 지질학은 그저 오래된 암석을 찾아내어 성분을 분석하고 그 나이를 갸름할 따름이며 광물의 왕국은 생명체와는 독립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언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식물은 굳건히 땅속에 뿌리를 내리고 동물은 두 발이든 네 발이든 힘차게 땅을 딛는다.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은 암석과 광물로 구성된 튼튼한 지지대를 통해 생존을 이어가지만, 우리는 생명의 진화에서 그들의 중요성을 너무나 쉽게 간과한 듯하다. 그래서 이에 대해 과감히 반기를 든 과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로버트 M. 헤이즌(Robert M. Hazen)이다. 그는 『지구 이야기: 광물과 생물의 공진화로 푸는 지구의 역사(The Story of Earth: The First 4.5 Billion Years, from Stardust to Living Planet)』에서 지구에서 생명이 탄생하고 유지되고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원소, 광물, 암석 그리고 생명 등 이 모두가 함께 공진화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덕분에 풍요로운 지구도 탄생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광물이 생명의 기원에서 중심역할을 했을 게 틀림없다.

불모의 행성에서 생명의 보고로

재의 우주를 이루는 모든 것은 원소보다 작은 한 점에 압축된 상태로 존재하다가 약 137억 년 전, 빅뱅 이후 팽창하는 우주와 함께 현재에 이르렀다. 대폭발 덕분에 탄소, 산소, 질소, 인, 황 같은 이른바 ‘생명의 원소’들과 많은 암석의 조성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지구형 행성의 질량 대부분을 형성하는 마그네슘, 규소, 철, 알루미늄, 칼슘이 우주 공간에 흩뿌려진 것이다. 아득한 시간이 흘러 마침내 태양이 탄생했고, 태양은 생명이 싹트고 진화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동안 꾸준히 연소할 수 있는 적절한 수명을 지녔다. 만약 태양이 지나치게 커서 더 빠르게 연소하여 단명했다면, 반대로 지나치게 작아 허약한 에너지를 출력했다면 다양한 생명으로 바글거리는 현재의 지구는 단연코 없었을 것이다.

약 45억 년 전, 미세한 콘드라이트에서 시작된 지구는 끊임없이 운석들과 충돌하는 먼지와 가스가 가득한 볼품없는 암석 덩어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 지구보다 작은 불운한 행성 지망생이었던 테이아가 지구와 출동해 달이 되었고, 지구가 다섯 시간마다 한 번씩 자전했던 이때 달은 지구에서 2만 4,000㎞ 거리(현재는 38만 5,000㎞ 밖)에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엄청나게 커 보였다. 그리고 사람으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45억 년이라는 까마득한 시간이 흘러 현재의 지구와 달이 되었으며 여전히 달은 지구에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고 지구의 자전 시간도 아주 미세하게나마 길어지고 있다. 만약 이 긴 시간 동안 지구가 서서히 진화하는 모습을 우주에서 바라봤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로버트 헤이즌은 지구 나이 5,000만~1억 살 최초의 현무암 지각이 탄생하던 때를 ‘검은 지구’, 지구 나이 1억~2억 살 대양이 형성된 때를 ‘파란 지구’, 지구 나이 2억~5억 살 최초의 화강암 지각이 형성된 때를 ‘잿빛 지구’, 지구 나이 10억~27억 살로 광합성으로 산소가 급증해 철의 산화가 시작된 때를 ‘붉은 지구’, 지구 나이 37억~40억 살 눈덩이로 뒤덮인 때를 ‘하얀 지구’, 그리고 지구 나이 40억~45억 살 육상 생물권이 탄생한 때를 ‘푸른 지구’라고 표현한다.

광물 속에 담긴 지구의 충고

주에서 봤을 때 45억 년의 시간 동안 변화한 지구의 겉모습은 단지 몇 개의 색깔로 표현될 정도로 단순하게 보였을지는 몰라는 지구는 한순간도 정체되지 않고 움직이며 변화하고 있었다. 맨틀은 쉬지 않고 순환하며 지각을 이동시키고 있으며 그에 따라 지구의 지도는 여러 차례 바뀌었고 앞으로도 바뀔 것이므로, 우리가 딛고 있으며 나름 안전하다고 믿고 흉물스러운 건축물을 마구잡이로 세우는 이 땅은 몇 번이고 되풀이해 극단적으로 개조되는 대상이었다. 또한, 지구의 기후 역시 따뜻하고 덥다가도 추워지기를 왔다 갔다 하는 변덕을 부리고 가끔은 우주에서 날라온 돌덩이에 옆구리가 얼얼하도록 호되게 걷어차이기도 하면서 대멸종이라는 뼈아픈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이 역동적이고 변덕스러운 지구는 지금까지 인류가 눈여겨본 살아있는 생명체들만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다. 태양계를 만들었던 먼지와 가스 속의 10여 가지밖에 안 되는 광물에서부터 오늘날 지구상에 알려진 4,500종이 넘는 광물, 즉 그 모든 광물 가운데 3분의 2가 무생물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로버트 헤이즌은 설명한다. 이 말은 광물도 생물과 함께 진화한다는 말이다. 아마도 지구 입장에서는 살아있다는 이유로 우리가 더 소중하게 여기는 생물이나 심심치 않게 사람이나 동물에게 발로 걷어차이는 광물이나 매한가지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멸종한 베릴륨 광물도 있는가? ‘라는 질문에 답하려 했던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지구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으며 그나마 아는 것도 한쪽으로만 치우친 정보를 가진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이러한 우려를 현재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와 화석에너지의 과다한 소비로 인위적으로 발생시킨 이산화탄소가 기후변화에 어떠한 역할을 할지 인류가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과 연결 짓는다면, 인류의 장래가 그렇게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것은 지구에 사는 생물들에 악몽 같았던 대멸종 사건을 떠올린다.

화석으로 밝혀진 암석과 광물, 그리고 생물의 역사를 통해 재구성한 지구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실은 바로 5대 멸종과 그 밖의 크고 작은 멸종 사건이다. 일부는 갑작스러운 운석 충돌이 원인이기도 했지만, 운석 충돌이 주요 원인이었던 때조차 화산 폭발과 급격한 기후변화 같은 역동적인 지구적 사건과 무관한 멸종은 없었다. 지질학적 시간으로 갑작스러운 대멸종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운이 좋아 당분간 소행성의 충돌을 피해 나갈 수 있다고 해도 분명한 것은 지구의 환경은, 과거에도 그래 왔듯이 변화에 변화를 거듭할 것이다. 대륙들은 다시 뭉쳐졌다가 쪼개질 것이며 해수면의 높이도 수십 미터 올라갔다가 다시 수십 미터 떨어질 것이며 동시에 기온도 내려갔다 올라갔다 반복될 것이다.

이 모든 변화는 지구에 사는 크고 작은 동식물에 재앙이 될 수도 있으며 일부 종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으나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에게는 재앙으로 닥칠 것이다.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지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태양을 공전하고 자전할 것이고, 조건이 허락하는 한 다채로운 생물이 공존하는 약동의 세계일 것이다. 이 말은 우리가 진정 걱정해야 하는 것은 지구가 아니라 우리라는 말이다. 화석에너지를 대체할 재생에너지를 개발하여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지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인류를 위한 것이다. 인류가 지구를 구한다? 그런 생각만큼 무지하고 오만한 망상이 어디 있을까. 설령 또 한 번 소행성이 충돌하고 인류 최악의 발명품인 핵폭탄 전부가 전 세계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한다고 해도,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사람이다. 생태계는 과거 대멸종 직후처럼 생물 다양성이 급격하게 감소하며 잠깐 머뭇거리기는 하겠지만, 수백 수천만 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회복할 것이다. 지금의 인류가 남긴 문명의 흔적들은 먼지보다 작은 원소로 분해되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만약 그때가 되어서야 지구에서 문명의 흔적을 찾고자 하는 외계에서 온 지적생명체가 있다면 과연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만 되는가. 그것은 충고이자 ’지구 이야기‘이기도 광물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이지 않은가?

이 리뷰는 2015년 12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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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8일 금요일

[책 리뷰] 인류를 위협하는 문화의 속박과 연장의 전이 ~ 문화를 넘어서(에드워드 홀)

Beyond Cultur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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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를 위협하는 문화의 속박과 연장의 전이

Original Title: Beyond Culture by Edward T. Hall
유럽인과 미국인 모두 물질세계에 관한 지식과 현란한 기술의 성공에 가려져 자신들의 복잡한 생활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자신들과 동일한 수준까지 기계적 연장물을 진화시키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그릇된 우월감을 과시한다.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 1976)』, p295)

문과 과학, 그리고 종교를 포함한 모든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다름 아닌 인류의 번영과 지구의 평화다. 그러나 지나친 영양분 섭취가 비만과 각종 질병을 일으키듯 인류의 지나친 번영과 발전이 인구 과잉과 기후 변화 등을 불러오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미묘하고 치명적인 또 하나의 위기는 인간이 자신이 만든 연장물(extension), 제도, 관념 등과 맺는 관계 속에, 또한 지구상에 거주하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속에 내재한다고 말한다. 정치와 권력은 이러한 위기를 조장할 뿐 마땅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그럴 의지도 없을뿐더러 이러한 위기 이면에는 분명히 그 이상의 무언가가 존재한다. 에드워드 홀은 정치와 권력마저 지배하는 그 무언가는 바로 문화라고 말한다.

그는 문화는 개인의 정신형성을 지배함으로써 사람들이 사물을 바라보고, 정치적으로 행동하고, 결정을 내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생활을 엮어가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고하는 방식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문화는 자신의 관점이 전 세계의 공통되는 것인 양 착각하게 하여 문화적 충돌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다른 문화와 접촉하여 직접적인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문화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문화의 속박조차 느끼지 못하는 실로 어마어마한 지배력을 행사한다고 한다.

사람은 자신의 연장물, 특히 언어, 도구, 제도 등을 발전시키기 시작하면서 ‘연장의 전이’(extension transference )라고 에드워드 홀이 명명한 그물에 걸려들게 되었고, 그 결과 사람은 판단에 오류를 범하고 자신을 소외시키게 되며 스스로 창조한 괴물을 통제할 능력을 잃게 되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람은 스스로 연장시켜온 자신의 일부를 대가로 지불하고 진보해왔으며, 그 결과 사람의 본성은 다양한 형태로 억압되고 말았다고 말한다. 현재 인류에 만연한 가장 심각한 문제점들을 사람이 발명한 수많은 연장물과 연관시킨 에드워드 홀은 사람이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상실되고 소외된 본연의 자아를 다시 찾는 일이라고 주장한다.

러한 문제점들, 즉 문화의 보이지 않는 속박과 ‘연장의 전이’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오늘날의 사람으로 발달하게 되었는지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잊혀진 인류의 조상』을 집필한 목적처럼 에드워드 홀 역시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과 구원을 인류의 과거에서 찾고 있다. 전문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이 인류를 염려하는 지극한 마음은 이처럼 일맥상통하고 있으니 진정한 학문의 이치를 파고드는 진짜 학자들이다.

보이지 않는 문화의 속박과 연장의 전이는 교육 시스템도 벗어날 수 없다. 에드워드 홀은 미국의 교육 패턴은 고도로 논리정연하고 수리능력이 탁월한 학생들만이 큰 혜택을 받게 되어 있으므로 그 결과 두뇌와 재능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그 특별한 재능이 교육제도와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좌절을 맛보거나 무리하게 노력하다가 배제되는 학생들이 많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타고난 재능이 단지 사회와 문화의 부응에 맞지 않는 이유로 좌절하고 실의에 빠진 학생은 미국에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은 서로 다른 외모만큼이나 각기 다양한 성정과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현대의 교육은 체에 밭치듯 획일적으로 사람을 걸러내고 있다. 이것은 미국, 한국의 교육 환경뿐만 아니라 문명의 세계에서 ‘영혼도, 기억도, 양심도’ 존재하지 않는 관료제 교육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단점일지도 모른다. 사람의 다양성은 누누이 지적되고 강조돼왔음에도 현실은 그 다양성을 인정하기는커녕 어릴 적 교육 단계에서부터 그것을 억누르고 있으니 이로 말미암아 자신의 앞날이 좌절된 학생들이 느끼는 참담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단 교육뿐만 아니라 문화의 속박과 연장의 전이의 다른 예는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인원은 다른 동물보다 놀이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집착하고 그러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기 때문에 유아기 때는 가장 활발하게 노는 것이 가장 최고의 학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파트를 비롯한 한국의 대부분 집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놀이를 허용하면 이웃들은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인 집에서조차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한쪽에서는 놀이 본능을 억제해야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놀이 본능으로 말미암은 소음과 진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한다. 놀이를 제외하고라도 도시에 사는 사람 중에서 다른 사람의 불필요한 간섭 없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집을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려고 지은 사람을 위한 집이 거꾸로 사람을 죽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무계한가. 집뿐만 아니라 포장된 도로 위라면 자전거와 오토바이, 자동차, 전동킥보드 등 바퀴 달린 괴물들이 판을 치는 한국에선 내 집 앞에서조차 마음 놓고 걸어 다닐 수 없고 아이들도 내 집 앞에서조차 마음 놓고 놀 수 없다. 한국 도시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인, ‘연장의 전이’의 대표적인 폐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놓는다.

드워드 홀은 『문화를 넘어서(Beyond Culture, 1976)』를 통해 문화적 속박의 딜레마에서 벗어날 길은 없으며 단순히 부분적으로 개별적인 내용에 입각한 이해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커뮤니케이션의 비약적인 발달과 함께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전통적인 문화제도가 붕괴하는 요즘 지역과 민족들을 지배해 왔던 세계 곳곳의 다양한 문화들이 서로 충돌하며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쉽고 간단한 일을 아닐지라도 우리가 만든 세상, 그리고 그 세상이 만든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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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5일 화요일

포토샵 보정과 OCR 인식률

이번 테스트는 포토샵 보정에 따른 OCR 인식률의 변화다. 참고로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포토샵 보정 액션 OCR.atn은 이 링크에서 다운로드 할 수 있다.

무보정 원본 인식 결과

13 노동참여율(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노동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로,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 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노동참여율이 현저히 제고되지는 않음. 이는 일부 노동 연령인구가 장기적으로 취업을 하지 못하였거나 취업을 포기함으로써 발생함. 미국 연방통 계국의 통계 방식에 의해 실업인구를 포함하지 않았음.

14 Apple’s Jobs to Obama: “Jobs aren’t coming back” to U.S., http://www. heraldtribune.com/article/20120123/ARTICLE/301239999. (검색일: 214-5ᅳ20)

15 “奥巴馬在中國製造下推廣美國製造 ᄎ風吹現眞相”,http://world.huanqiu.com/exclusive/2013-04/3785969.html. (검색일: 2014-6-3) “美國政府意識到了去工 業化的嚴重性,因此加强了對數學與工程學的投資”,http://energy.gov/articles/ president-s-council-jobs-and-competitiveness-announces-industry-leaders-commiment-double. (검색일: 2014-5-7)

Color Burn 혼합 후 인식 결과

  • Color Burn 혼합 후 인식 결과 보기
    • 13 노동참여율(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노동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로,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 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노동참여율이 현저히 제고되지는 않음. 이는 일부 노동 연령인구가 장기적으로 취업을 하지 못하였거나 취업을 포기함으로써 발생함. 미국 연방통 계국의 통계 방식에 의해 실업인구를 포함하지 않았음.
      14 Apple’s Jobs to Obama: “Jobs aren't coming back” to U.S., http!//www. heraldtribune.com/article/20120123/ARTICLE/301239999. (검색일: 2014-5-20)
      15 “奥巴馬在中國製造下推廣美國製造 大風吹現眞相”, http://world.huanqiu.com/ exclusive/2013-04/3785969.html. (검색일: 2014-6-3) “美國政府意識到了去工 業化的嚴重性, 因此加强了對數學與工程學的投資”,http://energy.gov/articles/ pi.esident-s-coundl—jobs—and—competitiveness-announces-industry-leaders— commiment-double. (검색일: 2014-5-7)

Multiply 혼합 후 인식 결과

  • Multiply 혼합 후 인식 결과 보기
    • 13 노동참여율(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노동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로,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 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노동참여율이 현저히 제고되지는 않음. 이는 일부 노동 연령인구가 장기적으로 취업을 하지 못하였거나 취업을 포기함으로써 발생함. 미국 연방통 계국의 통계 방식에 의해 실업인구를 포함하지 않았음.
      14 Apple’s Jobs to Obama: “Jobs aren’t coming back” to U.S., http://www. heraldtribune.com/article/20120123/ARTICLE/301239999. (검색일: 24-5-20)
      15 “奥巴馬在中國製造下推廣美國製造 ᄎ風吹現眞相”, http://world.huanqiu.com/ exclusive/2013-04/3785969.html. (검색일: 2014-6-3) “美國政府意識到了去工 業化的嚴重性, 因此加强了對數學與工程學的投資”, http://energy.gov/articles/ president-s-council-jobs-and-competitiveness-announces-industry-leaders-commiment-double. (검색일: 2014-5-7)

Level, Unsharp 보정 후 인식 결과

  • Level, Unsharp 보정 후 인식 결과 보기
    • 13 노동참여율(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노동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가 치-지하는 비율로,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 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노동참여율이 현저히 제고되지는 않음. 이는 일부 노동 연령인구가 장기적으로 취업을 히씨 못하였거나 취업을 포기함으로써 발생힘-. 미국 연방통 계국의 통계 방식에 의해 실업인구를 포힘-하지 않았음.
      14 Apple's Jobs to Obama: “Jobs aren't coming back" to U.S., http://www. heraldtribune.com/article/20120123/ARTICLE/301239999. (검색일: 2014-5—20)
      15 “奥巴馬在中國製造下推廣美國製造 大風吹現眞相”,http://world.huanqiu.com/ exclusive/2013-04/3785969.html. (검색일: 2014-6-3) “美國政府意識到 /去工 業化的嚴합性,因此加强了尉數은工程^的投資",http://energy.gov/articles/ presiclent-s-council-jobs-ancl-competitiveness-announces-industry-leaders-commiment-double. (검색일: 2014-5-7)

High Pass 보정 후 인식 결과

  • High Pass 보정 후 인식 결과 보기
    • 13 노동참여율(Labor Force Participation Rate)은 노동연령층에서 경제활동인구(취업자와 실업자 모두를 포함)가 차지하는 비율로,2013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지속 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였으나 노동참여율이 현저히 제고되지는 않음. 이는 일부 노동 연령인구가 장기적으로 취업을 하지 못하였거나 취업을 포기함으로써 발생함. 미국 연방통 계국의 통계 방식에 의해 실업인구를 포함하지 않았음.
      14 Apple’s Jobs to Obama: “Jobs aren’t coming back” to U.S., http://www. heraldtribune.com/article/20120123/ARTICLE/301239999. (검색일: 2ᄋ14-5ᅳ20)
      15 “奥巴馬在中國製造下推廣美國製造 ᄎ風吹現眞相”,http://world.huanqiu.com/ exclusive/2013-04/3785969.html. (검색일: 2014-6-3) “美國政府意識到了去工 業化的嚴重性,因此加强了對數學與工程學的投資”,http://energy.gov/articles/ president-s-council-jobs-and-competitiveness-announces-industry-leaders-commiment-double. (검색일: 2014-5ᅳ7)

간단한 이번 테스트 결과와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는 OCR 프로그램의 눈과 사람의 눈은 달랐다. 즉, 사람의 눈에 명확하게 보이는 진하고 선이 굵은 가독성 높은 보정이 오히려 OCR 인식률을 낮추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자나 한글 같은 경우 레벨과 언샵 보정 후에는 낮은 인식률을 보여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나친 보정은 글자 획을 굵게 만들어 획과 획 사이의 간격을 너무 좁히거나 겹치게 하기 때문에 자잘한 오타를 유발한다. 거꾸로 원본 상태에서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글자를 레벨/언샵 보정 후 제대로 인식할 때도 있다. 그래서 전체 이미지에 일괄적용하기 전에 반드시 테스트가 필요하며 스캔한 책의 상태나 재질, 글자 크기에 값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레벨과 언샵 보정이 비록 OCR 인식률을 낮추는 경우가 있지만, 가독성은 좋아지고 스캔된 먼지나 이미지의 노이즈 같은 군더더기를 없애면서 파일 크기를 대폭 줄여준다는 장점은 있다(아래 그래프 참고).

인식률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보정은 블렌딩 모드와 High Pass 보정을 기초로 작업하는 것이며, 오로지 좋은 OCR 결과만을 원한다면 무보정, 또는 Color Burn 혼합(50~100%)을 약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정은 스캐너의 스캔 품질에 따라 달라질 여지가 많아서 OCR 작업 전에 한 페이지 정도 테스트하면서 최적의 보정 값을 얻은 다음 그 값을 전체 이미지에 일괄적용한 다음 OCR 진행하는 것을 추천한다. 참고로 이 테스트에는 ABBYY Finereader 11 버전이 사용되었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15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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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12일 토요일

[책 리뷰] ‘현재의 수단(Sudan)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 기후전쟁(하랄트 벨처)

Klimakrieg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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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수단(Sudan)을 보면 인류의 미래가 보인다’

Original Title: Klimakriege by Harald Welzer
기후변화의 발생과 향후 발전 전망에 비추어 볼 때는 자연과학의 한 대상이지만, 그 결과적 측면을 고려하면 사회과학과 문화과학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그 결과들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이지 결코 다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기후전쟁(Klimakriege)』, p165)

기후변화의 사회문학적 결과들

종청소와 민족말살 등 외부에서 볼 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폭력을 보통 ‘일탈’이라고 부르며 그 가치와 의미를 축소한다. 그러나 『기후전쟁(Klimakriege)』의 저자 하랄트 벨처(Harald Welzer)는 인종청소와 민족말살이 현대성의 골목길로부터의 일탈 현상이 아니라 현대적인 사회발전들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가능성 그 자체로서 생성되었으며 질서를 생산하려는 현대적 시도의 결과물로, 사람들이 감성적으로 느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현대적 시도들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자살 테러, 학살 등은 사회학적 민속놀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랄트 벨처가 20세기와 여전히 진행 중인 인종청소, 민족말살, 내전, 학살, 테러 등의 폭력이 현대 발전과정에서 차지하는 의미와 가치를 비중 있게 다루고 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후변화가 불러올 기후전쟁의 양상과 그 확산 과정을 유추하기 위해서다.

자연과학자들이 기술한 기후변화 관련 책들이 반박하기 어려운 물리학적 증거를 토대로 기후변화를 확신하고 있다면, 이 책 『기후전쟁(Klimakriege)』은 기후변화가 가져올 전 세계적인 사회문화적 결과와 그 파급 효과를, 역시 반박하기 어려운 역사적 통찰 속에서 예견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닥칠 이 재난들은 지금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재난이기 때문에 그 결과들을 쉽사리 예측할 수는 없다. 예측의 어려움이 아무 예측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면, 독자는 이 책을 통해 기후변화가 1 • 2차 세계 대전을 넘어서는 대재앙으로써 인류의 숨통을 서서히 조여올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지우기가 어렵다.

기후변화의 재앙적인 결과가 ‘자연’적인 것으로 굳어질까?

금까지 사회과학자들이 기후변화와 환경변화의 사회적 결과들을 도외시했다고 평가한 하랄트 벨처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들을 냉철하게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하면서 그 재앙들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까 하는 전략도 사회과학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기후변화가 일으킬 문제들로 가장 큰 피해를 받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더 무서운 것은 사회적 • 물리적 환경의 변화들은 절대적으로 지각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단지 상대적으로만 지각된다는 ‘바탕 교체’ 효과 때문에 미래의 세대들은 기후재앙을 ‘자연적’인 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레이첼 카슨이 우려한 ‘침묵의 봄’이 만약 다가오는 올봄에 닥친다면 새가 지저귀는 자연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세대인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은 커다란 충격을 받을 것이지만 ‘침묵의 봄’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아이들은 ‘침묵의 봄’을 당연하게, 즉 ‘자연 상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과거의 역동적이고 활기찼던 봄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앞 세대가 남긴 다양한 기록을 통해 이들도 과거의 봄이 어떠했는지 보고 들으며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간접 체험과 상상은 이들에게 위안이 되기보다는 저주가 될 것이다. 생동감 넘치는 과거의 기록과 죽음처럼 고요한 현재의 ‘침묵의 봄’을 비교하며 위안보다는 분노를 느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기후재앙, 인류의 또 다른 폭력사를 완성할 것인가?

후변화가 기후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견은 매우 충격적인 사실이지만, 톡 까놓고 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하랄트 벨처는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베트남 전쟁, 각종 테러, 그리고 현재 진행 중이며 인류 최초의 기후전쟁으로 기록된 수단의 내전 등 폭력과 전쟁으로 얼룩진 현대사를 조명하면서 폭력은 일탈이 아니라 현대적 발전과정의 부산물임을 예리하게 간파했다. 즉, 인류에게 폭력은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상황이 아니라 때에 따라, 혹은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며 도구일 뿐이다.

홀로코스트, 르완다 학살, 테러 등 폭력으로 얼룩진 20세기 역사는 안정과 안보에 대한 위협이, 그것이 실제적 위협이었든 아니면 단지 지나친 기우일 뿐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극단적인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카트리나 사태는 인류가 자부해 온 문명이 재난 앞에서는 한낱 종잇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기후변화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국가들, 그리고 그 국가들에 의해 착취되고 희생됨으로써 기후변화에도 가장 취약한 국가들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불운한 나라의 불행한 난민들, 이 두 세력 간의 크고 작은 충돌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앞으로 기후재앙이 더 큰 압력으로 작용한다면 부유한 국가들이 자신들의 안정과 안보를 지키고자 반드시 폭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폭력’이 항구적으로 제외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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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9일 수요일

간단한 벤치마크를 곁들인 Windows Server 2016 Technical Preview 4 사용기

 내 노트북(Asus K55DR)에 윈도우 서버(Windows Server)를 설치해서 사용했을 때 나타났던 고질적인 문제인 인터넷 스트리밍 잡음 문제가 해결되는 바람에 현재 윈도우 서버 2016 테크니컬 프리뷰 4를 사용 중이다. 그래서 얼마 전에 게시한 저사양(노트북)에서 윈도우 7 vs 윈도우 10(TH2) 벤치마크 및 윈도우 10 빌드 10586 TH2 사용기에 이어 윈도우 서버 2016도 이것저것 설치하고 나름대로 최적화한 실제 사용 환경에서 벤치마크를 해봤다.

앞선 테스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윈도우가 파티션이 아닌 VHD에 설치되었다는 점과 백신을 Avast(무료 버전은 서버 지원 안 됨)가 아닌 Malwarebytes Anti-Malware(서버에서 잘 작동함)를 설치한 점이다. 물론 모든 벤치마크는 시각 효과를 [최적 성능]으로 선택한 상태에서 화면 글꼴과 바탕화면 가장자리만 체크, 백신 실시간 감시 Off, 벤치마크와 상관없는 트레이의 모든 프로그램을 종료한 상태에서 진행했다.

 Performance Test에서 Disk 벤치마크는 테스트에 사용될 파티션을 따로 지정할 수 있기 때문에 윈도우를 VHD에 설치한 것과는 상관이 없다. 전체적으로 앞의 두 결과와 큰 차이는 없으며 여전히 2D 성능은 윈도우 7보다 떨어진다.

PCMark 7에서는 윈도우가 설치된 디스크에서 System storage 벤치마크가 진행되기 때문에 윈도우 VHD 설치에 따른 성능 하락이 나타난다. 그리고 각 테스트 항목의 세부 테스트 내용(아래 스샷 참조)에도 system storage 항목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VHD에 따른 성능 하락은 PCMark 모든 항목에 미세하게나마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고려해서 테스트 결과를 봐야한다. 애초 벤치마크 목적으로 서버 2016를 설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미처 그점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으며 훗날 프리뷰 빌드가 업그레이드될 때는 파티션에 설치해서 테스트할 생각이다.

그럼에도 상당히 고무적인 것은 얼마나 가벼운가를 가늠하는 Lightweight Score에서 서버 2016이 윈도우 10보다 미세하게나마 앞서는 것이며, Lightweight Score의 세부 테스트 항목에 system storage 항목이 세 개나 있다는 점까지 고려한다면 이 차이는 서버 2016을 VHD가 아닌 실제 파티션에 설치했다면 좀 더 벌어졌을 것이라는 점이다.

윈도우 10 TH2에서 LTSB 버전이 생략되어 많은 사용자가 실망했다. 그런데 서버 2016은 기본앱과 코타나가 빠져 있기 때문에 LTSB를 선호하는 사용자는 서버 2016을 한 번쯤 사용해 봐도 될 것 같다. 더군다나 윈도우 10보다 조금이라도 더 가벼우며 중요한 것은 장치 드라이버 업데이트 자체가 없다. 그래서 일부 장치는 사용자가 수동으로 직접 드라이버를 설치해줘야 한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09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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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8일 화요일

윈도우 서버에서 스트리밍(streaming) 음악 들을 때 잡음이 생기는 문제

SG TCP Optimizer

 윈도우 서버(Windows Server) 2012 R2, 윈도우 서버 2016 테크니컬 프리뷰 4에서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음악을 들으면서 다운로드나 웹서핑 등으로 네트워크 트래픽을 발생시키면 심하게 잡음이 생기는 증상이 있었다. 이 문제는 윈도우 2000 서버 시절부터 있었던 문제였고, 그 당시에는 DirectX 진단 도구를 열어서 오디오 가속을 최대에서 기본으로 낮추면 해결이 되었다. 윈도우 2003도 같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DirectX 진단 도구에서 오디오 가속을 조절할 수 있는 레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이 문제 때문에 Windows Server 2016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쉽게 해결되었다. 바로 위 링크의 TCPOptimizer로 TCP 세팅을 최적화한 후 재부팅하면 신기하게도 앞선 문제가 말끔히 사라졌다.

프로그램이 시키는 대로만 했기 때문에 어떤 특정한 값이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되었는지는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이렇게나마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0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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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6일 일요일

[책 리뷰] 여자의 모호함이 의미하는 무서움에 대하여 ~ 행인(나쓰메 소세키)

pedestria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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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모호함이 의미하는 무서움에 대하여

Original Title: 行人 by 夏目漱石
“인간의 불안은 과학의 발전에서 비롯되네. 앞서가기만 하고 멈출 줄 모르는 과학은 일찍 이 우리에게 멈추도록 허락한 적이 없네. 도보에서 인력거,인력거에서 마차,마차에서 기차,기차에서 자동차,그다음엔 비행선,그다음엔 비행기,아무리 가봐도 쉬게 내버려두지 않아. 어디까지 끌려갈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참으로 두렵다네.”(『행인(行人)』, p327)

지로의 형 이치로는 인정받는 학자이다. 그는 정직하며 학구적이고 사색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과민한 신경과 종잡을 수 없는 변덕 때문에 그의 예민함을 알지 못하는 보통 사람에게는 그저 까다로운 사람으로만 비친다. 아내 나오와의 부부 사이도 화목하지 못하며 하나 있는 딸도 과묵하고 무뚝뚝한 아버지를 무서워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그는 나오의 정조까지 의심하기에 이른다. 괴팍한 사람답게 나오와 정을 통하는 상대로는 다름 아닌 자신의 친동생 지로를 의심한다.

보통 사람 같으면 차마 할 수 없는 부탁을 그는 학자답게, 이론가답게 자신의 가설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서슴없이 지로에게 부탁한다. 그는 자신의 의심을 지로에게 말하며 나오의 정조를 시험해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한다. 그러한 부탁해 화들짝 놀란 지로는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하지만, 결국 ‘하룻밤’에서 ‘당일치기’로 타협한 지로는 형수 나오와 단둘이 와카야마로 떠난다. 그러나 갑작스레 태풍이 들이닥친 덕분에 이치로의 바람대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행인(行人)』에서 나가노 집안의 무거운 분위기를 가져오는 갈등을 일으키는 삼각 구도는 주인공 지로와 지로의 형 이치로, 그리고 지로의 형수 나오이다.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처럼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다. 주변 상황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 그녀는 감정의 기복이 없고 차분하다. 그렇다고 그녀가 전혀 의사표현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의사표현이 일반적이지 않고 고승이 화두를 던지듯 다분히 암시적이다. 그것이 나오라는 인물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의 『행인(行人)』을 비롯해 그의 다른 작품들을 읽다 보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작품 흐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면서도 안개처럼 흐릿한 존재감의 여주인공들이 떠오른다. 그녀들은 너무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인물로 묘사되거나 작품과 일정한 거리를 둠으로써 독자의 머릿속에 뚜렷한 윤곽을 그려내기 어렵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감상이지만, 『행인』의 나오를 비롯해 『산시로(三四郞)』에서의 미네코, 『문(門,)』의 오요네, 『그 후(それから)』의 미치요가 그러했다. 가부장제를 완벽하게 탈피하지 못한 남성주의의 잔흔이 남긴 단점으로 볼 수도 있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독자의 빈약한 상상력을 풍부하게 부풀릴 수 있는 독특한 매력이 되기도 한다. 특히 『행인』에 등장하는 주인공 지로의 형수 나오가 그러하다.

품의 몇몇 장면을 통해 그녀만의 의사전달법을 살펴보면, 나가노 집안에서 오랫동안 식객으로 일해왔던 여자 오카다의 중매를 논의하며 지로는 무심결에 이렇게 내뱉는다.

“하긴 이런 문제를 스스로 착착 진행시킬 용기가 일본 여성들에겐 없을 테니까 ”(『행인(行人)』, p87)

이러한 여성 폄하적인 발언을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나오는 ‘묘한 표정’으로 지로를 본다. 지로의 말에 쉽게 수긍할 수 없다는 무언의 반항이다. 그리고 지로가 이치로에게 의심을 받고 그것 때문에 집안 분위기가 더욱 무거워진 것 같아 결국 지로가 하숙을 구해 집을 떠나려고 할 때, 나오는 지로에게 부인을 얻으라고 조언한다.

“그런 건 빠를수록 좋아요,내가 찾아 드릴까요?” 하고 또 물었다.

“잘 부탁합니다 ” 하고 나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형수는 나를 깔보는 듯한 혹은 놀리는 듯한 엷은 웃음을 얄팍한 입술 양끝에 보이며,일부러 발소리를 높여 다실 쪽으로 갔다. (『행인(行人)』, p230)

내가 굵은 글씨로 강조한 ‘일부러’를 앞뒤 문장 속에서 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어감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녀는 무슨 이유로, 무슨 감정을 싣고 ‘일부러’ 발소리를 높인 것일까. 비록 자신이 권했지만, 막상 지로가 부인을 얻는다는 상상을 하니 질투심이 발동한 것일까.

이번에는 지로가 오사카에서 만난 형수에게 형 이치로의 안부를 묻는 장면이다.

“형수님 , 어때요 요즘은. 형님의 기분이 좋은 편입니까, 나쁜 편입니까?" 하고 물었다. 형수는 “늘 그대로예요” 하고 단 한 마디만 대답할 뿐이었다. 형수는 그러면서 쓸쓸한 볼에 짝보조개를 띄워 미소지었다. (『행인(行人)』, p90)

와카노우라의 관광상품이었던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두고 시어머니가 나오에게 의사를 묻는 장면에서도 그녀는 유유히 쓸쓸한 보조개를 띄운다.

어머니는 공중으로 올라가는 철제 상자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오, 넌 어떡하련?”

어머니가 이렇게 물었을 때 형수는 늘 그렇듯 쓸쓸한 보조개를 띠며 “전 아무래도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행인(行人)』, p112)

녀의 의사표현 대부분은 침묵을 동반한 미묘한 표정, 그리고 쓸쓸한 웃음, 그리고 “아무래도 좋아요.”라고 대책 없이 뒤로 물러나 버리기 때문에 그녀의 속내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렇다고 그녀의 속내가 항상 만족스럽다고만은 볼 수 없다. 어느 날 가족이 모여 저녁을 하는 자리에서 다른 누군가와 비교당하자 나오는 그나마 가정에 웃음을 안겨주는 외동딸 요시에를 데리고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뜸으로써 자신의 불쾌함을 암묵적으로 표현한다. 그렇게 포커페이스인 그녀도 시동생 지로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는 예외적으로 돌변한다. 자신의 억눌린 심정이 불러온 참을 수 없는 고통을 하소연하며 눈물을 보인다. 때론 허물없이 장난을 치거나 얼핏 애교의 뜻도 비치며 요염한 여자가 되기도 한다. 묘하게도 시동생 앞에서만큼은 연약한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태풍 때문에 와카야먀에서 하룻밤 묵었던 날 밤에 나오는 참고 참았던 속마음을 지로에게 터트린다. 자기처럼 얼빠진 사람은 남편 마음에 들 턱이 없다고 자책하며 눈물을 흘린다. 비바람 때문에 전기가 나가 깜깜해진 방에서 잠시 전기가 들어와 환해진 틈을 타 재빠르게 화장을 하기도 한다.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기는 다시 끊어진다. 어둠 속에서 다시 이야기가 시작되자 나오는 마을이 태풍에 휩쓸리는 무시무시한 광경을 놓친 것이 아깝다며, 죽는다면 목매달거나 목을 찌르는 그런 잔재주 부리는 건 싫고 홍수에 휩쓸리거나 벼락을 맞든가 해서 맹렬하고 단숨에 죽는 방법을 택하고 싶다는 등 무서운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다. 그러면서 못 믿겠다면 지금이라도 파도에 뛰어들 수 있다고 저돌적으로 나온다.

어느 날 지로가 혼자 사는 하숙방에 느닷없이 찾아간 나오는 또 한 번 자신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쓸쓸한 처지를 하소연한다. 나오는 남자는 언제라도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다며 이대로 말라죽을 때까지 꼼짝 않고 집안에 처박혀야 하는 자신의 삶을 한탄한다. 나오는 매일 죽는 일만은 잊지 않는다고도 한다. 죽음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사무라이의 수양 방법과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이런 속내는 아무에게도 말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다른 이에게는 말하지 않을 거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지로의 하숙방을 떠난다.

겉으로는 유순하고 침착해 보이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 같은 격정을 간직한 나오가 지로에게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하소연할 데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자신에게 일말의 동정심을 품었던 지로에게 우연히 물꼬가 트인 것인지는 끝내 알 수 없다. 이런 나오를 이치로는 구렁이를 들어 빗댄다. 어쩌면 나오는 능구렁이처럼 처세술에 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대화가 안 통하는 고리타분한 남편 앞에서는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다. 그러다 지로처럼 동정심이 많은 청년 앞에서는 여자의 연약함을 드러내며 연민을 일으킨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여자가 아닐 수 없다.

자지간에 재미있는 것은 『그 후』에서 다이스케가 절친의 아내 미치요를 사랑하는 반사회적인 행동을 변호할 때 들먹였던 ‘자연’이 『행인(行人)』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이라 볼 수 있는 이치로의 입을 통해 재등장한다.

불륜은 반사회적이면서도 비도덕적이지만, 다이스케는 자신은 ‘자연’의 흐름을 따랐을 뿐이라며 자신을 변호한다. 그는 자연이란 인간이 세운 그 어떤 계획보다도 위대한 것이라고 믿었고, ‘자연의 아들이 될 것인가,아니면 의지의 인간이 될 것인가?’ 하는 번민에서 ‘자연’을 선택했을 뿐이다. 이치로 역시 도덕에 가담하는 자는 일시적 승리자임엔 틀림없지만,영원한 패배자이며 자연을 따르는 건 일시적 패배자이긴 해도 영원한 승리자다라고 말한다. 만약 이치로가 사랑 없이 윤리적으로 결합한 나오와 자신의 결합, 그리고 비윤리적이지만 진정한 사랑으로 결합한 나오와 지로를 떠올리며 이런 말을 했다면, 이것은 동생과 아내의 불륜을 의심하면서도 자신과 아내 사이의 불화가 사랑 없이 결혼한 탓이기 때문에 나오와 지로 두 사람이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것을 인정할 각오도 되어 있다는 대범한 뜻으로 비칠 수 있다. 또한, 교양이 풍부하며 정직한 이치로는 아내에게 손찌검한 사실을 여행에 동행한 H에게 고백하지만 왜 아내를 때렸는지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남편에 대한 애교와 다정함이 부족한 것이 못마땅해 때렸는지, 아니면 나오가 지로에 대한 이치로의 추궁에 솔직 대담하게 고백해서 때렸는지는 해답은 독자의 머릿속에 있다.

지로와 나오가 단지 사이좋은 형수와 시동생인지, 아니면 그 이상 뭔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최종 판단 역시 독자의 몫이다. 독자는 감미롭게 흐르는 음악처럼 몽롱하게 하기도 하고 때론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강렬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나오의 알쏭달쏭한 언행과 태도에서 두 사람의 미래를 어슴푸레 짐작해 본다. 추리소설 같은 확실한 결말에 익숙한 독자에게 이런 미덥지 못한 결말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문장 하나하나에 깊은 여운을 남기고 그것에 무한정 뻗어 나가는 상상력을 부과하여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소설은 정말로 좋은 작품이다. 차분하고 단조롭게 흐르는 문장 사이사이 뭐라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깊은 뉘앙스를 남기는 나쓰메 소세키의 문장은 그래서 더욱 맛깔스럽고 흡입력 있다.

이 리뷰는 2015년 12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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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작가의 소설에서 반추해 보는 작가의 삶 ~ 나쓰메 소세키: 생애와 작품(권혁건)

Soseki Natsume Life and Work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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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소설에서 반추해 보는 작가의 삶

Original Title: 나쓰메 소세키: 생애와 작품 by 권혁건
나쓰메 소세키 문학에 많은 사람들이 매혹당하는 이유는 약 10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통할 수 있는 근대화의 모순과 그늘, 죄의식, 고독감,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제반의 문제, 지식인의 불안, 죽음과 자살, 삼각관계, 불륜에 대한 공포, 금전의 구애, 부친과 자식의 갈등, 급격한 근대화에 대한 지식인이 느끼는 두려움, 근대문명과 인간의 불안, 에고이즘 추구로 몸부림치는 고독한 인간 모습 등을 작품을 통해 철저하게 파헤쳐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p21-22)

느 작가의 작품들을 읽다 매료되다 보면 작가의 일생에도 관심이 갈 때가 있다. 내가 이런 말을 꺼낸 이유는, 소설이 아무리 상상력의 소산이라고 해도 의도적이건 아니건 작가의 경험이나 사상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마련이기 때문인데, (나 자신이) 탄복할만한 작품을 쓴 작가들을 마주할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어떻게 사는 작자이길래, 어떤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길래 이다지도 재미나고 섬세한 소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부러움과 시기, 칭찬이 고루 섞인 감탄의 말을 자아낼 때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자 일본에서 ‘국민 작가’로 추앙받는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역시 자신의 체험을 밑바탕으로 소재로 만든 작품들이 꽤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들에서도 크고 작게 그의 생애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는 장면이 간간이 등장한다. 그래서 이번에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들을 두 번째로 접하는 와중에 함께 찾은 책이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권혁건 지음)이다. 참고로 이 책은 처음으로 경기도 시민에 한해서 경기도에 있는 모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빌릴 수 있는 ‘이웃대출’ 서비스(이 리뷰를 게시하는 2018년 현재 ‘책 바다’ 서비스로 통합되었다)를 이용해서 대출한 책이기도 하다.

책을 참고로 나쓰메 소세키가 쓴 작품에서 작가의 체험이나 삶과 연관 지을 수 있는 몇 작품을 흩어보면,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다음으로 1906년에 발표한 『도련님(坊っちゃん)』은 나쓰메 소세키가 1895년(28살)에 1년 정도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시코쿠의 마쓰야마 중학교를 무대로 해서 만든 작품이다. 같은 해 발표한 『풀베개(草枕)』는 나쓰메 소세키가 1897년(30살) 12월 31 일 친구와 함께 규슈 구마모토 현 다마나군 덴스이 초에 있는 오아마 온천에 놀러 갔다가 하이쿠를 지었던 체험이 소재가 되어 탄생한 작품이다. 1908년(41살) 아사히신문에 연재된 열 개의 꿈 이야기로 이어진 짧은 단편 『몽십야(夢十夜)』는 꿈 이야기인 만큼 작가의 무의식 세계까지 은밀하게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산시로(三四郞)』의 무대인 도쿄제국대학은 작가가 졸업한 대학이기도 하다. 1910년(43살)에 연재된 『문(門)』에서 주인공 소스케가 직장동료의 소개로 가마쿠라의 암자 잇소암에서 좌선하는 장면은 1894년(27살) 12월 친구 스가 토라오의 소개로 도쿄 근교 관광지에 있는 가마쿠라 엔가쿠지의 관장인 샤쿠 소엔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좌선 체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쓰메 소세키가 죽기 한 해 전 19015년에 연재된 『미치쿠사(한눈팔기, 道草)』는 작가의 자전적 장편 소설이다.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난 나쓰메 소세키는 나누시(현재의 동장이나 이장, 파출소장 역할까지 역임)였던 아버지가 도쿠가와 막부가 무너짐에 따라 나누시 제도가 폐지되고 수입이 없어지면서 가족의 형편은 어려워지게 되었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가 태어났을 때의 아버지 나쓰메 고헤나오카쓰의 나이는 이미 50세였고, 모친 나쓰메 치에의 나이 또한 42세였다. 고령의 나이에 아이를 낳은 것이 수치스러웠던 시대에 가정의 경제적 사정도 어려워지자 나쓰메 소세키는 두 명의 누나와 세 명의 형들과 헤어져 고물상에 양자로 들어가고, 노점에서 소쿠리에 담겨 잡동사니와 함께 전시되는 처량한 신세로 전락한다. 에도가 도쿄로 바뀐 1868년에 11월에는 다시 시오바라 마사노스케의 양자로 들어가지만, 양아버지가 바람을 피워 양어머니 야스와 다투고 이혼을 하자 나쓰메 소세키는 1875년(8세) 4월에 다시 생가로 돌아온다. 그리고 얼마 후 1881년(14세) 1월에 자신을 가장 사랑해주던 모친 치에가 54세로 사망한다.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두 가정의 양자로 떠도는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의 삶 자체를 조명해보면 연민과 동정심을 자아내는 슬픈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여기에 친어머니의 죽음, 폐렴으로 말미암은 두 형의 잇따른 죽음, 가장 친한 친구였던 마사오카 시키의 죽음과 영국 유학에서 발견한 인간을 고립시키고 불안하게 만드는 문명의 고독하고 쓸쓸한 그림자와 부족한 유학비, 신체적인 열등감, 소화기관의 쇠약에 의한 소화불량 등이 원인이 되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해 앞으로 만성적인 질환으로 정착하게 될 신경쇠약 등은 그의 문학을 세밀하게 이해하는 데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가 일찍부터 만성질환을 앓게 된 것은 고령 출산과 관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가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을 읽으며 나쓰메 소세키 삶 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점은 바로 그가 징병 기피자였다는 사실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입대 연기 제도를 이용하여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할 예정인 해인 1893년 26세까지 입대를 연기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는 학생들에게 입대 연기 혜택을 주는 것과 같은 제도가 이미 메이지 시대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면 이런 것도 일본 것을 그대로 베껴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입대 1년 전인 1892년 4월에 뜬금없이 나쓰메 소세키의 부친은 아들의 호적을 홋카이도로 옮긴다. 당시 홋카이도에는 인구가 매우 적었기 때문에 호적이 홋카이도인 평민은 징병이 면제된다는 점을 이용한 계획적인 병역 기피였다(예전 어느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국적 문제’를 악용하여 병역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의 호적이 다시 도쿄로 돌아온 것은 『마음(心)』이 《아사히신문》에 연재되고 있던 그의 나이 47세 때인 1914년(大正 3) 6월 1일이었다. 이러한 꼼수를 징병 대상자인 나쓰메 소세키가 몰랐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이 있다면 1909년 9월 2일 오사카에서 데쓰레이마루라는 배를 타고 대련으로 향하면서 시작한 46일간의 만주와 한국 여행에서 남긴 나쓰메 소세키의 기록에서 일본의 가혹한 식민지 정책에 따라 착취당하고 고통받는 중국인과 조선인에 대해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연민이나 책임감 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이다.

신문에 연재되는 기행문에 중국인을 시종일관‘더럽다’라고 경멸하고, ‘짱’(‘짱콜라’의 약침으로 중국인을 이르는 경멸의 말)이라고 부르는 등 민족 차별적인 언사를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또한, ‘더러운’ 중국인과 ‘깨끗한’ 일본인을 비교하며 일본 국민을 일등 국민이라고 자화자찬하는 등 영국 유학을 하였음에도 당대 많은 일본 지식인이 가진 한계를 나쓰메 소세키 역시 극복하지는 못한 듯하다.

한국 여행에서는 온통 흰옷을 입은 한국인과 한국의 자연풍경 가운데, ‘잔잔하고 푸른 시냇물’과 ‘푸른 소나무’에만 관심을 나타내었다. 특히 남산에 서 있는 소나무를 인상 깊게 봤는데, 소나무에 대한 특별한 그의 관심은 작품 『갱부』의 첫머리에서도 볼 수 있다.

아까부터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데 소나무 숲이란 것은 그림에서 본 것보다도 훨씬 더 길었다. 아무리 가도 소나무만 자라나 있으니 참으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내가 아무리 걷는다 해도 소나무 쪽에서 발전해 주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애초부터 버티고 선 채로 소나무와 눈싸움을 하는 편이 나을 뻔했다. (『갱부』, 옮긴이 박현석, p11)

이렇게 서울에서 16일간 여행하며 남긴 것은 ‘소나무’뿐이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산이 있고 소나무가 있어’ 서울이 좋다고 표현했으며, 서울의 ‘남산과 그곳에 서 있는 ‘소나무’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갖고 바라보았다. 그는 당시 한국인들이 일본인들로부터 억압, 탄압을 받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는 무슨 이유에선지 침묵하면서 서울의 자연경관에만 관심을 나타냈던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 p133)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려고 소나무에 유난히 집착했던 것인지, 정말로 서울의 소나무가 그토록 뛰어났던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가도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는 없다. 작가는 작가이고 작품은 작품이다. 작품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삶을 들춰볼 수는 있으나, 작가의 도덕성이나 인격이 작품성을 판단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도가 지나치고 어리석은 짓이다. 요리사의 인상이 험악하다고 해서 요리가 맛없는 것도 아니고, 사생활이 문란한 연예인이라고 해도 시청자를 웃길 수만 있다면 그만이지 않은가? 아무튼, 나쓰메 소세키를 애독하는 독자라면 『나쓰메 소세키 – 생애와 작품』은 한 번쯤은 꼭 읽고 건너야 할 고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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