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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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30.

[책 리뷰] ‘세계의 지갑’, 중국의 ‘소비재 올림픽’ ~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전병서)

China's Great Transition, Korea's Great Opportunity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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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갑’ 중국의 ‘소비재 올림픽’

Original Title: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 by 전병서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시기에 한국은 잘 먹고 잘살았지만 또한 중국이 그 시선을 주변국으로 돌리면 주변 국가들은 항상 어려움을 겪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 p161)

진핑 정부는 덩샤오핑의 성장제일주의 정책에서 한걸음 물러나 안정과 변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10% 안팎의 고성장을 7%대로 조율하는 등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더는 양적인 성장이 아닌 질적인 성장의 포부를 밝힌 중국 공산당은 수출지향적인 경제를 내수지향적인 경제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돈만 잘 벌면 되었던 시절에서 이제는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돈을 잘 써야 하는 시절로 바뀐 것이다. 이미 중국은 2012년부터 3차 산업이 제조업 비중을 넘어가면서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지갑’으로 거듭나고 있다. 세계 최대 명품 소비국은 이제 미국, 유럽이 아니라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몽(中國夢)’, 즉 ‘팍스 차이나’를 위한 실질적인 정책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바다와 육지 양면으로 중국과 유럽을 잇는 일대일로(一帶一路) 21세기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 주도의 금융 시스템에 맞서기 위한 브릭스 개발은행(NDB), 긴급외화보유기금(CRA), 그리고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을 설립했거나 추진 중이다.

에드워드 스타인펠드가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책 『왜 중국은 서구를 위협할 수 없나』에서 중국은 서구가 만든 게임의 규칙을 통해서 성장했고 여전히 그 규칙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서구를 위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현재의 중국은 일대일로, 세계적인 금융 시스템 추진, 위안화 국제화 등 자신들만의 게임의 규칙을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미국은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영국이 미국의 으름장에도 유럽 국가 중 첫 번째로 AIIB에 가입한 것을 보면(영국의 뒤를 이어 프랑스, 독일 등 여러 유럽 국가 참여) 역시 국제 사회에선 명분보단 실리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주먹맛이 효과를 볼 수 있었다면 앞으론 외화보유액 3.8조 달러의 중국 돈 위력이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든 세계적인 경제 흐름에 변화를 줄 것이다.

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시진핑 정부 이후 시작된 중국의 대전환을 대기회로 탈바꿈시켜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저자 전병서)의 주장이다. 중국에서의 승자가 진정한 세계 승자가 된 현시점에서 중국에서는 매일 치열한 소비재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엔 중국 부자의 지갑을 털 명품이 없다. 또한, 구글, 애플, 인텔처럼 혁신을 이끄는 일류 회사도 없다. 이에 대해 저자 전병서는 승천하는 용에 금융투자를 함으로써 한몫 단단히 잡는 단기적 승부수와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는 장기적 전망을 제안한다. 내 생각에, 만약 한국에서 부동산 투기로 처박히는 돈을 진작에 중국, 인도, 브라질과 동남아시아 등에 투자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집값도 안정되고 외화벌이도 짭짤했을 것 같다. 하지만, 창의력이 빈약하고 머리 굴리는 것을 싫어하는 한국인에게는 자나 깨나 부동산 투기밖에 모르니, 앞으로 잘 살기는 글러 먹었다.

아무튼,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이 출판되고 나서 2015년 8월 중국 증시는 8년여 만에 가장 큰 수준으로 폭락하면서 그 여파가 쓰나미처럼 전 세계 증시를 덮쳤다. 당시 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방어에 나섰음에도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서서히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공산당이 경제정책에 대한 자신감을 너무 이른 시기에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은 중복 • 과잉투자에 따른 중국 경제의 거품과 수출주도형 성장방식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중국 경제의 장기적인 불황을 예고했다. 고로 투기꾼이 되어 단기간에 한밑천 잡으려는 얄팍한 수단은 좀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것 같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가 "중국 경제가 급락하면 무역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10개국 가운데 특히 한국의 충격이 클 것"이라고 전했듯 이제 남은 것은 중국 전문가를 양성하여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중국의 앞날에 대비하고 한편으로는 여전히 엄청난 구매력을 지난 중국의 중산층과 신흥 부유층을 겨냥한 명품 양성 등 중국 각 지방, 각 계층에 특화된 상품으로 중국 소비재 시장 올림픽에서 성적을 올리는 일이다.

가 지금까지 읽은 서구 학자들이 분석한 중국 관련 책들이 오랜 시간 준비하고 연구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기술한 학술적인 경향이 짙은 냉철한 시각의 저술이었다면, 『중국의 대전환, 한국의 대기회』는 대(對)중국 정책의 위기를 심각하게 느끼는 한국 경제인이 대중국 문제의 안일한 대처를 경고하기 위해 쓴 긴급 보고서 같은 책이다. 열정적이고 감정적인 거친 저자의 문장에는 다급함과 절박함이 묻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반복되는 주장과 산만한 구성, 그리고 장기적 대책의 미흡함은 책의 깊이를 다소 떨어트린다. 어쩌면 이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감지되는 절박함과 약간의 아쉬움이 책이 주장하고자 하는 중국통 부재의 절실함을 대변해주는지도 모르겠다.

이 리뷰는 2015년 10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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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4.

[책 리뷰]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 살인자로 돌아온 아내(시마다 소지)

Murder of north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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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로 돌아온 아내

Original Title: 北の夕鶴2/3の殺人 by 島田荘司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너를 이해시킬 수 없었다. 이제는 몸으로 증명해 보이겠다. 내가 얼마나 너를 소중하게 생각했는지 지금 보여줄 것이다.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 p328)
  • 전반부 줄거리 펼쳐 보기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28일 오후. 경시청 1과 형사 요시키에게 뜻밖의 전화가 온다. 어리광을 부리는 듯 묘하게 콧소리가 나는 목소리, 바로 5년 전에 헤어진 아내 미치코의 전화였다. 도쿄에 볼일이 있어 잠깐 들렀다고 말한 그녀는 곧 떠난다고 했다. 요시키는 미치코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매달리지는 않았다. 이런 요시키의 부단함을 알아차린 걸까. 미치코는 매몰차게 배웅도 나오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어. 그럼 건강 조심하고, 부디 위험한 짓 하다가 죽지는 말아줘. 안녕.”

      이 말과 함께 전화는 끊겼다. 애써 명랑하게 꾸민 듯한 그녀의 음성에는 슬픈 듯 아닌 듯 묘한 여운이 담겨 있었다.

      미치코는 12월 28일 금요일 23시 5분에 출발하는 아오모리행 유즈루 9호에 타고 있었지만, 요시키는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플랫폼에 도착하는 바람에 창에 기댄 그녀의 모습만 볼 수 있었다. 겨자색 셔츠블라우스, 그 위에 얇은 흰 카디건을 걸친 여인. 옷자락 부분에 회색 M자가 보였다. 점점 작아지는 그녀를 바라보던 요시키는 문득 미치코가 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는지도 모른다. ‘어째서 이 여자는 이렇게 슬프게 살아야 하는가.’ 요시키는 멀어져가는 유즈루 9호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틀 후, 아오모리 서에서 수사협력 의뢰가 왔다. 그저께 29일 유즈루 9호 침대차에서 흉기로 목 부분 경동맥이 절단된 여자 시체가 나왔는데 신원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죽은 신원불명의 여자는 ‘죽고 싶어, 이제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적힌 메모와 학을 본뜬 금속숟가락을 소지하고 있었다. 순간 숨이 막힌 요시키는 학을 본뜬 금속 숟가락이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미치코는 금속 공예를 했고 전부터 학을 좋아했다. 또한, 죽은 여자는 ‘M’이라는 자수가 들어간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고 했다. 요시키는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휴가를 낸 요시키는 수사본부가 설치된 아오모리 서로 갔다. ‘죽고 싶어, 이제 죽어버리고 싶어’라고 적힌 메모는 미치코의 글씨가 틀림없었지만 아니었다. 관 속의 여자는 미치코가 아니었다. 잠시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 요시키는 또 다른 걱정이 떠올랐다. 미치코가 피해자가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이제는 반대로 그녀가 가해자, 즉 살인자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요시키는 미치코가 혼자서 작은 공예 가게를 운영했던 홋카이도의 구시로로 갔다. 그런데 벌써 구시로 서에서는 미치코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유즈로 9호 사건 때문이 아닌 열흘 전 미치코가 살던 아파트에서 두 명의 여자를 살해한 용의자로 찾고 있었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된 요시키는 어안이 벙벙했다. 살인 사건이 도시에 떠도는 무슨 괴담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미치코가 살던 아파트 앞에는 요시쓰네에게 거절당해 자살한 두 여자가 묻혔다는 큰 돌이 있는데, 그 돌에서 죽은 여자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사람들은 ‘밤에 우는 돌’이라는 불렀다. 그런데 미치코의 집에서 시체로 발견된 두 여자의 사망추정 시간에도 그 돌이 울었다고 목격자들은 진술했다. 또한, 살인사건이 있어났던 밤에 갑옷 무사의 망령이 나타났으며 1층 관리실에서 관리인과 함께 마작을 했던 학생들이 찍은 사진에도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막상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갑옷 무사의 망령을 보지 못했다고 입을 모아 말해다. 또한, 관리인은 자신이 지키고 있던 아파트의 하나뿐인 입구로는 죽은 두 여자가 그날은 절대로 출입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죽은 두 여자에게는 거액의 보험금이 들어 있었지만, 남편들에게는 아내의 사망추정 시간에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요시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틀뿐이었다. 이틀 후면 미치코에게 수배령이 내려질 것이다.

자에 따라서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괴담에 둘러싸인 소설의 사건이 다소 현실과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건 곳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괴기는 『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北の夕鶴2/3の殺人)』, 아니 시마다 소지(島田荘司) 특유의 ‘색깔’이기도 하다. 여기에 주어진 시간에 사건을 해결하고 헤어진 아내를 찾아야만 하는 요시키의 절박한 상황, 그리고 잘 짜여진 추리 소설에서나 볼 수 있는 철저하게 준비된 대형 트릭은 기괴한 ‘색깔’과 꽤 훌륭한 조화를 이룬다. 이로써 ‘색깔’은 더욱 선명해지면서도 현실과의 괴리감은 철저하게 부정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사건의 흐름에 독자는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이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추리 소설이지만, 여기에 한가지가 더 보태졌다. 바로 사랑 때문에 진지하게 고뇌하는 형사 요시키의 끊임없는 자아 성찰이다. 보통의 추리 소설에서는 보기 어려운 명탐정의 고민이다.

시키는 사라진 헤어진 아내 미치코의 행방을 추격하고 동시에 미치코와 엮인 미궁에 빠진 사건을 추리하는 바쁜 와중에도 끊임없이 미치코와 함께했던 과거를 회상한다. 다소 버릇없이 자란 좀 특이한 성격으로 평소에도 제멋대로 행동했던 그녀가 이유도 명확히 말하지 않고 제멋대로 떠났지만, 6년이나 같이 살았음에도 그녀를 끝내 이해해주지 못했던 자신의 무심함을 원망하며 미치코가 갑작스럽게 떠나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다.

여자들은 말이나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지 않으면 남자의 애정 따윈 알 수 없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진심을 알리려는 노력을 소홀히 한 자신의 몰인정을 원망한다. 아내에게 어떤 이유가 있든지 항상 함께 있어 주고, 적어도 늦은 밤에라도 같이 있어 주고 고민을 들어주는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한 자신의 게으름을 원망한다. 일과 아내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는 짜증 날 정도로 흔한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하지 못했던 자신의 우유부단을 원망한다.

결국, 요시키는 의지하기에 부족한 남편이었다고 자책하며, 시험받는 기분으로 이 절호의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사표도 각오했고 당연히 목숨도 바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미치코를 위해서, 그리고 진정한 남자가 되지 못한 자신을 위해서이다.

대지주의 외동딸로 태어나 지역 농민들에게 공주처럼 대접받으며 자란 미치코는 어린아이처럼 자주 토라지는 여자였다. 개를 구하다 차에 부딪혔을 때 ‘뭐야, 고작 개새끼잖아. 애라면 몰라도!’라고 씨부렁거리는 개를 칠 뻔한 운전자의 말을 듣고는, ‘개니까 구한 거야!’라고 당돌하게 반격했다. 또한, 그녀는 병적으로 작은 병과 나방, 그리고 모리오카 집의 반야 가면이 있는 방을 무서워했다. 이 모든 것은 그녀가 함께 살기에는 상당히 까다로운 여자라는 것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요시키는 이혼의 원인을 두고 그녀를 탓하기보다는 자신의 문제점을 먼저 의식하고 반성한다. 그리고 괴한의 습격에 이은 교통사고에도 오뚝이처럼 쓰러지지 않고 거북이처럼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망가진 상태에서도 목숨을 바쳐 미치코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소설 속의 주인공이지만, 정말 멋진 녀석이다.

혼한 아내를 못 잊는 요시키의 회고와 고민은 어쩌면 연인과 이별한, 그리고 이혼한 경험이 있는 남녀라면 한 번쯤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면서도, 쉽게 고쳐지지 않고 되풀이되는 인생의 굴레이기도 하다. 똑 부러지게 얘기하면 ‘있을 때 잘해’인데, 사람 사는 게 어디 그렇게 쉽게 마음먹는 대로 되나.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면 원만히 마무리될 상황에서도 그 한마디를 못 하고 왜 그리 구구절절 핑계와 변명을 늘어놓는지. 사람이란 때론 알 수 없을 정도로 가증스러운 동물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니까.

아무튼, 도가 지나치지 않은 적절한 괴기스러움과 허를 찌르는 대형 트릭, 그리고 소설의 ‘색깔’을 퇴색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산뜻한 덧칠을 해주는 요시키와 미치코의 극적으로 진행되는 로맨스는 다양한 독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가지가지 요소를 충분히 갖춘 것 같다.

이 리뷰는 2015년 10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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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8.

[책 리뷰] 메이지의 스승?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 ~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Fukuzawa Yukichi's recognition of Asia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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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의 스승?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

Original Title: 福沢諭吉のアジア認識―日本近代史像をとらえ返す by 安川 壽之輔
전 생애에 걸친 후쿠자와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언제나 변화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만 늘 변함이 없었다”, “지금의 나, 옛날의 내가 마치 두 사람 같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변절이야말로 그의 생명이라고 특징지은 바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 p68)

본인과 아시아 사이에 가로놓인 역사인식의 간격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福沢諭吉のアジア認識―日本近代史像をとらえ返す)』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安川壽之輔)가 인용한 운노 후쿠주의 절묘한 표현을 빌린다면 벌렁 뒤로 나자빠질 정도로 심각하다. 그 간격을 확인하고 싶다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메이지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에 대한 극과 극을 달리는 평가를 살펴보면 된다. 일본에서는 민주주의 선구자로 추앙받으며 최고액권 지폐의 초상 인물이기도 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정부와 일본 근대화 과정의 총체적 스승으로 불리며 극찬을 받는 언론인이자 계몽가이다. 그러나 아시아의 다른 국가, 즉 한국이나 중국, 대만에서는 ‘가장 가증스러운 민족의 적’,‘제국주의 확장론자’,‘우리나라의 근대화를 파탄시킨 우리 민족의 적’ 등으로 평가받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책을 통해 들통난 후쿠자와 유키치의 진짜 정체는 ‘계몽가’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닌 - 이런 평범한 수식어조차 그에겐 과찬이다 – 바로 변덕스러운 ‘선동가’다. 그는 지식인의 사명을 망각한 채 자신의 명성과 지식을 악용하여 일본인을 선동하고 세뇌시킴으로써 일본의 침략 전쟁과 학살, 사유물 강탈, 식민지배 등의 뒷받침되는 사상적 근거와 사회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가 주장한 신선한 사과를 ‘썩은 사과’로 변질시키는 상황의 강력한 힘을 제공하였다. 덕분에 일본은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그럴듯한 거짓 명분을 세워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일본 군인은 태연하게 학살과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고 그 일말의 책임 의식이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왜냐하면, 후쿠자와 유키치의 말대로 아시아인을 섬멸하는 것은 ‘돼지 사냥’하는 셈 치면 되니까.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근대적 추이 과정에 깊숙이 개입하여 일본인들의 현실지각, 도덕적 태도,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 등을 마비시키는 상황을 조장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시 프레임의 변화, 바탕 교체 효과, 사람의 악의 길로 내모는 상황의 힘으로 말미암은 인류의 만행은 그가 죽고 난 후 벌어진 남경대학살, 그리고 홀로코스트나 베트남 전쟁, 최근에는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수용소에서 일어난 미군의 학대 사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예는 명망 받는 지식인일수록 그 사회적 책임감이 실로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준다. 도대체 왜 인간들이 밖에서 볼 때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섬뜩한 일을 태연스럽게 저지르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그것에 대한 지시 프레임이나 상황을 제공한 후쿠자와 유키치나 나치 같은 선동가를 찾으면 된다.

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공정하지 못한 평가는 독일처럼 역사적 뉘우침이 전혀 없으며 희생자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는커녕 아직도 전쟁의 책임을 회피하기에만 급급한 일본에 대한 적대감 수치를 더 증가시키는 꼴이 되었다. 메이지 유신의 성공적 신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그를 여전히 신봉하는 일본은 아직도 아시아 맹주의 자리를 넘보는 것일까. 역사가 늘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묵인 아래 진행되는 일본의 재무장을 두 눈 뜨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우리의 처지가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이런 와중에 제2의 후쿠자와 유키치가 등장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끝으로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침략사상을 묻는다』는 방대한 『후쿠자와 유키치 전집』의 사료를 직접 인용하여 논리적으로 치밀하게 비판하는 방식으로 집필된 책이기 때문에, 나 같은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당시의 역사적 전개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독자에게는 저자 야스카와 주노스케가 논증하는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다소 헤맬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중요한 것은 저자가 지적했듯 일본과 다른 아시아인 사이의 역사인식 간격을 후쿠자와 유키치의 아시아 인식에 대한 체계적인 해명을 통해 조금이라도 메우는 것에 있을 것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0월 18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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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2.

[책 리뷰] 사람이 어디까지 비굴해지고 파렴치해질 수 있나 ~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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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까지 비굴해지고 파렴치해질 수 있나, 그 한계를 시험하는

Original Title: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by 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
슈호프는 지극히 흡족한 기분으로 잠을 청했다. 오늘 하룻동안 그에게는 좋은 일이 많이 있었다. 재수가 썩 좋은 하루였다. 영창에도 들어가지 않았고, ‘사회주의 단지’로 추방되지도 않았다. 점심때는 죽그릇 수를 속여 두 그릇이나 얻어먹었다. 작업량 사정도 반장이 적당히 해결한 모양이다. 오후에는 신바람 나게 블록을 쌓아 올렸다. 쇠줄 톱도 무사히 가지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체자르 대신 순번을 기다려 주고 많은 벌이를 했다. 담배도 사왔다. 병에 걸릴 줄만 알았던 몸도 거뜬하게 풀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p225)

하나님, 어떻게든 견딜 수 있습니다!

새벽 5시, 이 시간이면 언제나 어김없이 기상 신호가 온 바라크 안을 울렸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p5)

1951년의 새해가 시작되는 오늘. 영하 30도를 밑도는 날씨에도 제9호 바라크 제104 작업반의 CH-854호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의 수용소 일과는 어김없이 찾아왔다. 지금까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언제나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그였지만, 오늘따라 찌뿌드드한 몸 상태 때문에 조금 늦장을 부린 것이 당직 교도에게 걸리는 바람에 영창 3일을 받았다. 슈호프는 억울했지만 사정해 봐야 아무 소용없을 것이고 그래도 예의상 형식적으로나마 용서를 빌러 간 것이 천만다행으로 영창 대신 교도실 마루를 닦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아침을 먹고 남은 빵은 매트리스 속에 몰래 꿰매어 숨긴 다음 무리에 섞여 인원 점검을 마친 다음 작업 장소로 이동했다. 오랫동안 눈이 내리지 않아 돌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눈길을 규정에 따라 뒷짐을 진 채 터벅터벅 힘없이 걷는 그들의 고개 숙인 모습은 장례 행렬처럼 어둡고 쓸쓸하며 살아있는 죽음의 냄새가 풍겼다. 그래도 오늘의 작업이 작년 가을에 세우다 중단한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작업으로 낙찰된 것은 작은 위안이었다.

그럭저럭 한나절이 지나고, 취사부를 노련하게 속여 점심으로 자랑스럽게 귀리 죽을 두 그릇이나 먹은 슈호프는 동료에게 담배까지 꾸어 피니 담배 기운이 사르르 전신으로 퍼지며 심신이 나른해지고 머리가 빙그르르 도는 것 같다.

오후에 슈호프는 벽돌공으로서의 실력을 남김없이 발휘하며 바쁘게 보냄으로써 잠시나마 수용소 생활의 일탈과 소소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같은 반원인 체자르를 대신에 소포 수령자를 위한 순번을 대신 서주고 체자르의 몫까지 해서 2인분의 저녁을 먹었다. 어디 그뿐이냐. 신발이나 조끼를 기워 주는 부업으로 틈틈이 모은 돈으로 쌈지 담배도 사고 체자르의 음식 꾸러미를 지켜주는데 거들어 줌으로써 크래커와 사탕, 그리고 소시지까지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재수가 썩 좋은 흡족한 하루였다.

신을 별로 달갑지 않게 여기는 그였지만, 이처럼 오늘 하루를 배부르게 무사히 보낸 것에 대해 감사기도까지 드리며 오늘 하루를 마감한다.

하나님, 덕분에 또 하루를 무사히 보냈습니다! 영창에 들어가지 않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여기서라면 어떻게든지 견디어낼 수 있겠습니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p216)

거지 같은 이유로 거지 같은 수용소에 거지 같지 아니한 사람들

소련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Александр Исаевич Солженицын)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는 저자가 스탈린 치하의 구소련에서 실제 겪었던 강제노동 수용소 체험을 바탕으로, 전쟁 때문에 평범한 농민에서 하루아침에 간첩으로 탈바꿈한 슈호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가혹한 수용소의 ‘하루’를 담담하고 차분하게 그려낸, 이른바 ‘수용소 문학’의 진수다. 비인간적인 혹독한 수용소 생활에 초점을 맞추었음에도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게 다루어 독자에게 불쾌함이나 괴리감을 주기보다는 가벼운 재치로 담백하게 그려낸 것이 오히려 그들의 희망 없고 절망스러운 현실을 절실하게 표현해낸 원동력이 된 것 같다. 하루를 무사히 보내고 나서 감사기도를 드리는 소소한 만족이 깃든 슈호프의 초췌한 얼굴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슈호프를 포함한 같은 작업반원들이 수용소에 들어온 이유를 현재의 상식에 비추어 들어 보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반장 추린은 일급사수의 칭호와 군사훈련 및 정치교육 양면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음에도 아버지가 부농이라는 이유로, 유럽을 순회하고 북해를 무대로 용맹을 떨쳤던 해군 중령 부이높스키는 친분이 있던 영국 제독에게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푸는 침례교 신자 알료샤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는 이유로, 열여섯 살밖엔 안 된 소년 고프치크는 숲속에 숨어 있던 벤데르파(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에게 우유를 갖다 주었다는 이유로, 전선에서 고막을 다친 세니카는 독일에 포로가 되었다가 귀국한 이유로, 꼬박꼬박 소포를 받는 부유한 체자르는 처음 감독한 영화의 촬영이 끝나기도 전에 사상과 관련된 실책 때문에 수용소로 끌려왔다.

올해 마흔 살로 한때는 결혼하고 처자까지 둔 성실한 농부였던 슈호프는 독 • 소 전쟁(2차대전)에 참여했다가 독일군에게 완전히 포위당하고 식량 보급도 끊기는 절박한 상황에서 독일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목숨을 건 탈출이 성공했다. 평범한 군대였다면 그의 탈출은 영웅적인 행위로 칭송받았겠지만, 의심과 기만이 독처럼 온 나라를 좀먹었던 스탈린 치하에서는 적군의 포로가 되었다는 자체가 반역이다. 순진하게 곧이곧대로 보고한 슈호프는 10년 형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슈호프 때는 일률적으로 10년을 받았지만 1949년부터는 시대가 바뀌어 무조건 25년을 받았기 때문이다.

스탈린 치하에서 자행된 ‘숙청’과 ‘날조’, 그리고 ‘밀고’로 희생된 무고한 인민이 어디 이뿐일까. 추린의 말처럼 여기에는 프롤레타리아니 부농이니 하는 것도 문제가 안 되었고, 양심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도 역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어떤 법칙과 상식도 통하지 않는 기괴한 공포 사회였다. 친형제까지도 믿지 않았다던 스탈린의 이유 없는 의심과 변명 없는 음모만이 있었을 뿐이다.

어딜 가든 약자의 삶을 고달프다

미 8년의 수용소 생활을 겪은 슈호프는 이빨도 반은 빠져버리고 머리숱도 얼마 남지 않았지만 이날 이때까지 뇌물이라는 걸 주고받은 경험도 없고 소포로 온 동료의 먹음직스러운 식량에 군침을 흘리거나 공짜로 얻어먹을 추잡한 생각은 더더욱 하지 않는다. 작업에서는 기술자로서 성실하게 한몫하며 손안에 여유가 있을 땐 동료에게 베풀 줄도 안다. 아무리 가혹하고 절박한 수용소 생활도 그의 타고난 천성은 건드릴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같은 죄수지만 특권층으로서 포동포동하게 살찐 취사부를 속여 규정보다 두 그릇을 더 받아내고, 국그릇을 나를 때 사용할 쟁반을 둘러싼 싸움에서 자신보다 먼저 예약한 사내가 약해 보이자 매몰차게 힘으로 물리치고 쟁반을 빼앗으며, 늦잠을 이유로 영창 징벌을 받았지만 용서를 받은 기쁨에 큰 소리로 절대로 늑장을 부리지 않겠다고 외치기도 한다. 약자의 값싼 감격에 젖는 그의 처절한 모습에서 아무리 선량하고 정직한 사람이라도 수용소의 철저한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하려면 눈치껏 비굴하고 때로는 야멸치게 자신보다 약한 자를 적당히 짓밟을 줄도 알아야 하며, 필요할 땐 과감하게 상대도 속일 수 있는 두둑한 배짱도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사실 수용소 생활에서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정부와 교도관들의 처우보다 더 무섭고 견디기 어려운 것이 특권을 가진 동료 죄수의 횡포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동료조차 의지하고 믿기 어렵다는 수용소의 현실이 모질고 비정한 수용소 특유의 비극을 잉태한다. 같은 죄수임에도 바라크장은 동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폭력까지 행사한다. 취사부에서 일하는 죄수들은 바짝 타들어 가는 다른 죄수들과는 반대로 몸이 옆으로 퍼진다. 교도들에게 뇌물을 두둑이 바칠 수 있는 부유한 그들은 쉽고 편한 일만 골라 하면서 먹는 것도 바깥과 별반 차이가 없다. 바깥이건 수용소이건 언제 어디서나 고달픈 인생은 가진 것 없는 약자다. 수용소에서도 보잘것없는 존재인 그들은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나 찾아다니는 역겨운 존재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디까지 비굴해질 수 있을까?

상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그 번지르르한 껍질을 벗기고 이면 깊숙한 곳을 들여다본다면 검붉은 피와 차갑게 식은땀이 걸쭉하게 섞여 흐르는 ‘약육강식’이라 불리는 강이 있다. 현실에선 그럴싸한 문명이 우리의 눈을 그럴듯하게 속이기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나 수용소는 이것을 적당히 가려줄 문명도, 상식도 없다. ‘약육강식’의 강 옆에 자리 잡은 수용소는 강이 그들의 젖줄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이 흘린 피와 땀을 먹고 자라는 그들은 더더욱 그것들을 갈망한다. 그래서 한때 성실했던 농부는 약삭빠른 인간으로, 전용승용차까지 굴리고 다니며 관청에서 한자리했던 사람은 남이 먹다 남은 죽그릇을 차지하려고 덤비다 몰매를 맞는 게걸쟁이로, 바다에서 용맹을 떨쳤던 군인은 죽 한 그릇에 반색하며 덤비는 궁색한 사람으로 타락할 수밖에 없다. 세상이 흘린 피와 땀으로도 모자라 동료에게서 짜내거나 아니면 자신이 흘린 것으로라도 보충해야 했던 것이다. 보통 세상에서는 보통 사람의 역할을 나름대로 해낼 수 있었던 평범한 사람들을 어디까지 비굴해지고 파렴치해질 수 있나 하는 그 한계를 시험하는 수용소의 잔혹한 현실이야말로 진정한 수용소의 비극이다.

이 리뷰는 2015년 10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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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6.

[책 리뷰] 공간이 숨 쉬는 도시는 사람이 숨 쉬는 도시 ~ 숨겨진 차원(에드워드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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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이 숨 쉬는 도시는 사람이 숨 쉬는 도시

Original Title: The Hidden Dimension by Edward T. Hall
인종위기, 도시위기, 교육위기는 상호연관되어 있다. 포괄적으로 바라보면 이 세 가지 모두 보다 큰 위기, 즉 인간이 자연을 앞질러 새로운 차원 즉 문화적 차원으로 발전시켜온, 대부분 숨겨져 있는 위기의 다양한 측면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이 그 자신의 차원을 의식적으로 무시하고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이다.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 p298)

에드워드 홀 문화인류학 4부작 중 그 두 번째

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은 『침묵의 언어(The Silent Language)』에서 문화를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 분석하면서 사람의 의사소통 수단에는 언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언동으로 표현되는 시간과 공간의 언어인 ‘침묵의 언어’가 존재하며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것처럼 이 ‘침묵의 언어’도 문화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고 분석했다. ‘문화인류학 4부작’ 시리즈 중 두 번째인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에서는 문화의 한 기능으로서 공간을 구조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문화와 사람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적이고 통문화적으로 분석한다.

홀은 신경조직의 뿌리에 침투하여 인간이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문화이기 때문에 인간은 제아무리 애써도 자신의 문화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사람들의 공간이용 ― 사람들이 서로 간에 유지하는 공간, 그리고 도시, 가정, 사무실에서 자기 주변에 설정하는 공간 ― 에 관한 연구를 책으로 내는 목적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오던 바를 의식하게 함으로써 자기인식을 증진시키고 소외감을 축소하는 데 있으며 요컨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아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인간은 생물학적 유기체라는 사실을 강조한 홀은 이 책을 통해 인간행동의 원천이 되는 생물학적 구조부터 탐구를 시작하면서 공간이 모든 생명체, 특히 인간에게 있어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조직화 된 체계의 하나라는 사실이라는 점을 동물행동학, 언어학, 사회심리학, 교육학, 역사학, 생물학 등 다양한 학문적 접근법을 동원해 논증한다.

나에게 다가오지마, ‘도주 거리’와 ‘치명적 거리’

히 나의 흥미를 끈 것은 공간에 대한 인간의 요구가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는가를 동물행동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결과들을 인용하며 사람과 동물을 비교연구를 한 점이다.

동물심리학자 헤디거(H. Hediger)에 따르면 동물들은 다른 종의 개체들과 마주칠 때 이용되는 ‘도주 거리’와 ‘치명적 거리’, 그리고 같은 종의 개체끼리 상호작용하는 동안 관찰할 수 있는 ‘개인적 거리’와 ‘사회적 거리’ 등의 공간유지법칙을 지니고 있다. 나는 인적 드문 새벽에 우리 집 강아지 다롱이와 생태공원에 산책가면 가끔 고양이나 고라니 등의 야생동물과 마주치는데, 고양이는 대략 2~3m 정도 접근하면 도망을 가지만 고라니는 사람의 인기척만 느껴지면 거리가 멀지라도 바로 숲으로 사라지곤 한다. 이것이 아마 공원에 거주하는 고양이와 고라니의 도주 거리일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동물이 사람으로부터 도망가다 장애물에 닿아 더는 도망갈 수 없는 상태에서 거리가 좁혀지고, 이때 돌연 방향을 바꾸어 사람에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거리가 치명적 거리이다. 그래서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특히 동물의 치명적 거리는 센티미터까지 젤 수 있을 정도로 매우 정확하다고 한다.

사람은 문명의 발달로 ‘도주 거리’와 ‘치명적 거리’의 명확성은 희미해지긴 했지만, 놀이나 폭력적인 상황에서 종종 나타나곤 한다. 얼음땡 놀이할 때 술래 앞에서 실컷 약을 올리다가도 술래가 어느 정도 다가오면 잽싸게 줄달음치는 거리는 도주 거리이다. 또한, 상대방에게 상당히 화가 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서서히 접근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어 서서 주먹을 쥐고 상대를 매섭게 노려보면서 혹시라도 상대가 더 가까이 접근해오면 주먹을 날릴 기세일 때, 권투 시합에서 두 선수가 사각 링 안을 빙빙 돌면서 서로 견제하는 거리는 동물의 치명적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개인적 거리는 비접촉성 동물들이 자기들끼리 보통 유지하는 거리이며, 새들이 전깃줄 같은 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나 사람들이 줄을 설 때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놀랍도록 비슷한 간격으로 유지되는 그 간격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사회적 거리는 무리의 한계를 벗어나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하는 심리적인 거리이며 한 집단을 결속시키는 보이지 않는 끈이다.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이라고 하면 처음엔 무질서해 보이지만, 멀리서 보면 큰 원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사회적 거리의 한 예이다.

사람은 통신과 교통의 비약적인 발달로 사회적 거리는 많이 퇴색해졌지만, 문화나 개인 특성에 따른 개인적 거리의 차이와 비접촉성 문화, 접촉성 문화의 차이는 여전히 일상에 반영된다. 사람들이 버스를 타거나 표를 사려고 줄을 서는 간격은 접촉성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매우 촘촘하지만, 비접촉성 문화가 발달한 지역에서는 띄엄띄엄 줄을 선다. 그리고 폴란드처럼 아예 줄 서기를 거부하는 문화도 있다. 또한, 접촉성 문화가 발달한 아시아 사람들은 만원 버스 등의 과밀한 곳에서 일상다반사로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신체적 접촉을 잘 견디는 편이지만, 비접촉성 문화가 발달한 서구 사람들은 낯선 사람들과 비비적거리게 하는 일본이나 한국의 지옥철 경험을 정말 ‘지옥’처럼 생각한다.

더욱더 흥미로운 것은 치명적 거리가 동물의 인구조절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모든 동물은 최소한의 공간적 요구를 갖는 데 그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생명체의 ‘치명적 공간’으로, 인구가 크게 증가하여 더 이상 그 공간을 확보할 수 없게 되면 ‘치명적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 상황을 가장 간단하게 해결하는 방법은 개체를 일부 제거하는 것이다. (『숨겨진 차원(The Hidden Dimension)』, p59)

문명이 뱉은 가래침 범벅으로 사는 우리들

드워드 홀은 많은 동물행동학자가 동물들이 밀집 상태에서 지나치게 스트레스를 받으면 순환기 장애, 심장질환, 병에 대한 저항력 약화 등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러한 연구결과들을 인간에게 적용시키는 것을 꺼려 온 이유로 인간과 동물의 주요한 차이점 가운데 하나인 인간은 자신의 연장물들을 발달시킴으로써 자신을 길들이고 나아가 자신의 감각들을 차단해 보다 좁은 공간에 더 많은 사람이 살 수 있게 한 점을 꼽았다. 주택 구조의 벽 같은 감각 차단은 일시적인 도움은 되지만 궁극적으로는 신체구조에 여전히 치명적일 수 있으며 상당한 기간에 걸쳐 누적된 극심한 도시밀집현상은 범죄와 자살, 환경오염과 전염병, 소외와 유대감 상실 등 도시화가 낳은 재앙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동물의 치명적 공간과 인구조절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홀이 제시한 과밀 문제, 공간으로 소통해야 하는 건축과 그 소통이 꽉 막힌 현대의 도시 문제가 우리의 혼잡한 삶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 머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과밀로 말미암은 스트레스로 동물이 사망하거나 개체 수를 줄이고자 난폭해진다는 사실과 홀의 요지대로 인간이 존재하고 행동하고 지각하는 모든 것들이 공간의 경험과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적절한 공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프록세믹한’ 욕구를 무시한 채 무계획적이고 무책임하고 무분별하게 도시를 지은 건축가와 도시계획자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의 한 체계로서의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조화롭지 못하고 흉물스러운 한국의 도시가 낳은 고질적인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을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사람은 자신이 개발한 연장물 덕분에 눈부신 문명의 발전과 혜택을 입게 되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연장물들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었고, 이제는 그 연장물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총체적인 난국을 대표하는 곳이 바로 도시다.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는 자신의 저서 『에밀』에서 '도시는 인류가 뱉어낸 가래침'이라고 말했는데, 자동차 때문에 내 집 앞 골목에서조차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없고, 빠르게 지나다니는 다른 차들에 방해될까 하는 기특한 마음으로 인도에 떡하니 올라선 자동차와 가뜩이나 좁은 인도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니는 각종 전동차와 자전거를 보면 가래침도 아주 큰 가래침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도시는 사람을 위한 도시인지 아니면 차를 위한 도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높은 범죄율, 교통 혼잡, 소음, 환경오염, 이웃 간 대화의 단절, 불신, 그리고 소외 문제 등 우리는 도시가 뱉어낸 걸쭉한 가래침에 뒤범벅되어 흉물스럽게 변했지만, 오히려 그것을 문명의 혜택인 양 착각하며 산다. 이것이 우리 문화다.

이 리뷰는 2015년 10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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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4.

[책 리뷰]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 피안 지날 때까지(나쓰메 소세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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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Original Title: 彼岸過迄 by 夏目漱石
내가 보기에는 두려워하지 않는 게 시인의 특색이고 두려워하는 게 철학자의 운명이다. (『피안 지날 때까지(彼岸過迄)』, p213)

학을 갓 졸업한 게이타로는 이리저리 발품을 팔아봐도 마땅한 자리를 얻지 못한다. 근대화로 갑자기 늘어난 지식 청년을 계산하지 못한 정부의 근시안적인 정책 탓도 있겠지만, 유달리 모험심이 강하고 한곳에 꾸준히 정착하지 못하는 게이타로의 성격 탓이기도 하다. 낭만적이고 공상력이 풍부한 그는 관습에 얽매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매력적인 갈등을 찾는다. 요컨대 탐정 같은 일이 해보고 싶어 한다. 탐정은 남의 죄악을 폭로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그것으로 누군가를 함정에 빠뜨리기도 한다. 게이타로는 그런 나쁜 일은 할 수 없다. 이런 식으로 게이타로는 어떤 일에 진지하게 도전해보기도 전에 미리 그 결과를 자신의 사고 틀 안에서 가늠해보고는 쉽게 포기해 버린다.

대학을 갓 졸업한 게이타로가 취업도 잘 안 되는 상황에서 먹고 살길이 막막해지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쟁이를 찾아간다. 게이타로의 사주를 받고 그럴듯한 점괘를 풀어준 점쟁이는 마지막으로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고 긴 듯하면서도 짧으며 나올 듯도 하고 들어갈 듯도 한 물건을 잊지 말라고 충고한다. 수수께끼 같은 점쟁이의 말을 곱씹으며 답을 찾으려던 게이타로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하숙비를 밀린 채 다롄으로 도망간 모리모토가 남긴 대나무 지팡이에서 답을 찾는다.

이타로는 현실과 충돌하는 자신의 성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게이타로의 친구 스나가는 베일에 싸인 출생의 비밀과 사랑 없는 질투에 집착하며 자신을 괴롭힌다. 자신을 고등유민(高等遊民)이라 지칭하는 마쓰모토는 타인의 감정과 물질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삶이 진정한 여유라고 자부하면서 짐짓 속세에 초연한 표정을 짓지만, 그 역시 머릿속은 복잡하다. 마치 부단히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사고형의 인간이야말로 근대화에 적합한 인간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점쟁이가 무슨 속뜻을 가지고 게이타로에게 선승이나 주고받을 듯한 화두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이타로를 시작으로 스나가, 마쓰모토로 이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그럴듯한 허구적 상황의 대부분이 그렇듯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친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에 따라 길고 짧음이 다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긴 듯하면서도 짧다.’ 이런 이야기들이 물 흐르듯 막힘없이 흐르다가도 때때로 소용돌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독자는 ‘나올 듯도 하고 들어갈 듯’ 선뜻 이야기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는 뭔가 꺼림칙하다.

점쟁이가 내던진 화두를 게이타로는 지팡이에 꿰어맞추고, 억지스러워 보이지만 나는 소설 『피안 지날 때까지(彼岸過迄)』에 꿰어맞춘다. 꿈보다 해몽이라고, 단어나 문장이 말하고자 하는 뜻은 분명할지 모르지만, 이것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는 한 작품으로서의 문학이 주는 의미와 해석, 그리고 감동과 여운의 깊이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렸다. 인생이 그런 것처럼 문학에도 정답이 없다. 독자는 ‘자기 같으면서도 남 같은’ 이야기 한쪽에 진지하게 한쪽 발을 지긋이 담근다. 그리고 나머지 한쪽 발은 살짝 현실에 걸친 채 허구와 현실이 경계를 이루는 울타리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이것이 문학이 주는 진정한 묘미이지 않을까.

설은 이야기로 말하지만, 여기에 기품을 더한 문학은 이야기뿐만 아니라 텍스트 그 자체로도 말한다. 그런 면에서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문학은 그만의 정취와 멋이 있다. 뛰어난 기교나 멋을 추구하기보다는 단아하면서도 운치가 있는 그의 문장은 담백한 이야기와 함께 매우 멋들어진 궁합을 이룬다. 이런 독특한 문체로 인생의 한 조각을 차분하게 풀어쓴 그의 이야기는 작품을 음미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텍스트 자체를 읽는 즐거움도 함께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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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

간단한 벤치마크(PCMark 7)를 곁들인 윈도우 서버 2016 RTM 사용기

<PCMark 7>
<벤치마크 결과>

 처음엔 절전 모드에서 깨어나면 컴퓨터가 느려지는 현상이 있었으나, 아래 스샷처럼 KB3192366 업데이트가 재설치(?)되고 나서 해당 증상은 말끔하게 사라졌다.

TP5와 비교해서 크게 달라진 점은 엣지와 스토어, IE의 플래쉬가 제거되었다. 블루투스는 애매한 상황이다. 절전 모드에서 깨어나면 블루투스 아이콘이 트레이에 나타나지만, [설정]에서 블루투스 항목을 클릭하면 다시 사라진다. 완전히 제거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온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예전에 TP5의 무선랜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 추후 업데이트로 수정되었었는데, 블루투스도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다. 또한, 비행기 모드 전환도 제대로 먹히지 않는다.

성능은 위 벤치마크 결과에서 보듯 큰 변화는 없고, 트레이의 [Windows 검색] 창에 새로 설치한 프로그램들이 [가장 정확] 찾기에 나타나지 않는 점 빼고(Windows Search 서비스도 추가한 상태)는 설치한지 얼마 안 되어서 그런지 아직 특별한 문제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업데이트 기록>
이 리뷰는 2015년 10월 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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