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총 미스터리 | 엘러리 퀸 | 2만 명의 목격자 2만 명의 용의자!
2만 명의 목격자가 지켜보는 로데오 경기 중에 발생한 살인 사건을 다룬 『미국 총 미스터리(The American Gun Mystery)』는 ‘독자에의 도전’으로 유명한 엘러리 퀸(Ellery Queen)의 국명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작품으로 당연히 ‘독자에의 도전’이 등장한다. 다소 오만한, 그러나 당연히 그럴 자격이 있는 엘러리 퀸과의 한판 대결에서 나는 언제나 참패했었고 이번 작품에서도 기적 같은 이변은 없었다.
늘 그래 왔듯이 결말 즈음에는 엘러리의 논리정연한 사건 해설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설 속에 눈에 안 띄게 숨어 있던 ‘단서의 조각’들을 뒤늦게나마 발견할 수 있었고, 충분히 총명한 독자가 엘러리 퀸과의 승부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릴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 리뷰에 작은 힌트를 포함했으니, 공명정대한 승부를 원하는 독자라면 후다닥 웹브라우저 창을 닫고 나가야 할 것이다.
내가 앞에서 ‘단서의 조각’이라고 꼬집어 강조한 것은 결단코 작품의 흥미를 격감시킬 수 있는 결정적 단서나 힌트를 제공하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단서를 수집하고 파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조언을 하기 위함이다.
뜬금없이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Edward T. Hall)이 『침묵의 언어(The Silent Language)』에서 미국인의 시간 개념을 설명한 것을 인용하자면,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흔히 그렇듯이 시간을 일들의 연결 고리로써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사건에 연이어 한 사건이 발생하면 후자를 전자에 귀속시켜서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을이 살해된 직후에 그 근방에 갑이 나타났다면 미국인은 자동으로 갑과 을을 연결하지만, 두 사건이 발생한 시간의 격차가 너무 클 때는 쉽게 연결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미국은 국가적인 장기계획을 세우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홀은 평했다.
이건 비단 미국인의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건과 그와 연결된 사건이 시간상으로나 공간상으로도 연속으로 비슷한 지역에서 일어난다면 누구나 쉽게 그 연결 고리를 파악할 수 있지만, 두 사건 사이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어질수록 둘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명철한 두뇌를 가진 형사나 탐정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불규칙적으로 분포된 조각들에서 각각의 의미를 찾아 서로 조합하고 꿰어맞추어 하나의 완성된 단서나 증거를 찾는 능력이 뛰어나다.
『미국 총 미스터리』에서 의미가 명확한 하나의 완성된 단서를 얻으려면 서로 떨어져 있는 사건과 관련된 조각(문장)들을 찾을 수 있는 관찰력과 이들을 서로 연결하여 의미가 있는 단서나 증거로 완성할 수 있는 추리력이 필요하다. 즉, 소설 속에 사건 추리에 의미 있는 단서들은 하나의 완성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난 퍼즐처럼 분리되어 페이지 곳곳에 버젓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독자는 이 조각들을 찾아낸 다음 퍼즐을 풀듯 하나하나 맞추어 하나의 의미 있는 단서로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힌트를 하나 주자면...
힌트를 하나 주자면 64, 92, 95페이지에는 하나의 의미 있는 단서를 위한 조각들이 나뉘어 있다. 이 단서를 찾아낸다면 벅 혼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에 잠길 때면 코안경을 벗어서 렌즈를 열심히 문질러 닦거나 손톱을 물어뜯는 엘러리의 장난스러우면서도 매우 진중한 모습은 엘러리 퀸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영상이다. 추리 소설의 고전이자 일본 본격파 추리 소설의 원조 격으로서 한 자리를 차지한 엘러리 퀸의 미번역 작품들을 만나본다는 것은 추리 소설 마니아로서 정말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범죄란 말인가.”
엘러리가 중얼거렸다.
“절묘하고, 대담하고, 처형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고…….” (『미국 총 미스터리』, p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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