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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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 하타케나카 메구미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 하타케나카 메구미 | 에도 시대의 로비스트, 루스이야쿠

책 표지
review rating

홍보 문구에 속았다고 할까나?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했던가? 책 뒤표지에 질서정연하게 나열해 있는 깨알 같은 홍보 문구에서 ‘죽음의 진상을 밝혀내기로 결심하고 형의 직책을 이어받는다’라는 한 줄을 조금 못 채운 문장이 돋보기로 확대한 것처럼 유난히 크게 보였다. 그 단출한 문장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내가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구나’라고 멋대로 판단하기에 썩 잘 어울리는 미끼였다. 이뿐만 아니라 미야베 미유키 때문에 에도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에 한창 빠져 있는 나였으니 하타케나카 메구미(畠中恵)의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ちょちょら)』는 맛있는 과자만큼이나 유혹적인 책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책에 관한 판단이 서자마자 누가 뺏어갈라 냉큼 대출할 수밖에.

하지만, 막상 까놓고 보니 분만실에서 처녀 찾는 것처럼 추리소설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다. 그보다는 (굳이 장르를 세부적으로 구분한다면) 에도 시대에 번을 대변하는 로비스트인 루스이야쿠(留守居役)의 눈물겨운 활약상을 다룬 정치소설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에도 시대 로비스트의 활약을 다룬 정치소설

내가 에도를 배경으로 한 시대물에 군침을 흘리게 된 계기는 알다시피 ‘미야베 월드 제2막’ 때문이다. 고작 책 몇 권 읽고 독서 방향을 급선회할 정도로 줏대가 없다고 비방해도 할 말은 없다. 원래 나의 책 읽기란 것이 화물선처럼 딱히 정해진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철새처럼 나아가야 할 방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호기심이 일렁이는 대로 표류하는 배처럼, 그리고 방랑하는 나그네처럼 멋대로 운신할 뿐이다. 그래서 나의 독서는 깊이가 없고, 그런 만큼 글쓰기 역시 궁상맞도록 부족하다. 그래서 뭐 어떻단 말인가? 나의 독서는 누구처럼 지식을 쌓기 위해서도 아니고, 정보를 얻기 위해서도 아니고,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도 아니고, 돈 벌 궁리를 위해서도 아니다. 나의 독서는 죽어라 하고 붙들고 늘어져도 나 몰라라 하고 제 갈 길을 가는 얄미운 시간 앞에서 사형수처럼 넋 놓고 앉아있기보다는 독서삼매경으로 시간을 초월해 보겠다는 나름의 지적 발광이다. 쉽게 말해 지루한 시간을 좀 더 재밌게 보내고 싶다는 ‘호모 루덴스‘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이야기가 여지없이 안드로메다로 빠지고 말았는데, 그 이유 중 일부는 나의 산만한 정신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머지는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 때문이다.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는 쓸거리를 수라상처럼 푸짐히 제공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워드프로세서 앞에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할 정도로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는 정치물이기 때문에 다소 이야기가 엇나갔다고 볼 수 있다. 멋대로 추리물을 기대한 나로선 멋대로 실망할 수밖에 없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물이라서 그런지 지금까지 읽은 ‘미야베 월드 제2막’과는 분위기도, 등장인물들의 배경도 색다른 맛이 있기는 하다. ‘미야베 월드 제2막’은 주로 서민, 상인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비록 그들이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은 아니지만, 독자들과 경제적 • 사회적 위치와 비슷한 그들의 삶은 공감과 동정심을 끌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그래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울었다 웃다 만감이 교차한다.

반면에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는 정치 일선에서 번의 존속을 걸고 번의 대외적인 실무를 담당하는 루스이야쿠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뇌물이 미덕인 시대에 가난 때문에 망할 처지에 있는 작은 번의 신입 루스이야쿠 신노스케의 고군분투는 필설로는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겹다. ‘과자’라는 달콤한 소재가 깜짝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조려도 구워도 반으로 갈라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은 고참 루스이야쿠 이와사키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굳지 않도록 잘 휘저어 준다. 그러다 보니 결과적으론 정치의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속성보다는 의리와 화합의 인간애가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정치 스릴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묵직한 긴장감이 도는 것이 꽤 진지하다.

참고로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의 시대적 배경은 다누마 오키쓰구(田沼意次)가 로주로 근무하던 1750~1780년대로 추측된다. 다누마는 다음과 같은 뇌물을 대단히 선호하는 말을 남겨 유명한 인물이다.

인간에게 금은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전부 소중히 하고 있다. 그 소중한 물건을 타인에게 주려고 하는 마음, 그것은 성의다. 따라서 나는 선물을 많이 가지고 오는 사람을 중시한다. (도몬 후유지(童門冬二)의 『불씨(上杉鷹山)』 중에서)
뇌물은 일본과자로 주세요, 에도 시대, 로비스트, 사무라이, 사진, 빙 AI 생성

번의 명운이 ‘양갱’ 하나에

사람 죽이는 일만 빼고 갖은 엉큼 음흉한 수작은 다 부릴 각오로 첩보전과 로비전을 펼치는 루스이야쿠의 냉혹한 정치 세계에서 과자가 웬 말인가 하고, 그것도 다누마가 좋아하는 금도 아니고 보물도 아닌 ‘과자를 뇌물로?’라고 의아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제대로 갖춰진 뇌물은커녕 인사차 건네는 약간의 금품도 주기 어려운 궁핍한 번을 대표하는 신노스케에게 ‘과자’는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에게 내민 마지막 구원 같은 것이었다. 그는 누이동생이 만든 ‘과자’가 별나게 맛있다는 행운으로, 그리고 세상에는 돈보다 과자를 더 중시하는 괴짜가 있다는 믿어지지 않는 기연을 손에 쥐고 막다른 길로 내몰린 번의 운명에 도전하는 모험을 강행하고, 이야기는 끝끝내 번의 명운이 양갱 하나에 걸려 있다는 묘하게 무서운 결말로 치닫는다.

도대체 어떤 과자길래 그 정도이겠냐는 생각이 들 만도 한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막부에서 주최하는 가상(嘉祥) 의식의 날에 다이묘 급들에만 하사된다는 ‘가상 과자’다. 이것의 가치는 맛은 둘째치고 손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지극히 극소수일 뿐만 아니라 그 극소수조차 한 번에 (총 8종류의 과자 중) 단 한 개만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헤아릴 수가 없다. 나 같은 문외한에겐 별것 아닐지는 몰라도 도미지로(‘미시마야 시리즈’에서 오치카의 뒤를 잇는 새 괴담 청취꾼) 같은 군것질 마니아라면 목숨과 바꾸어서라도 먹고 싶은 귀하디귀한 음식일 것이다.

참고로 쇼와 54년(1979년) 일본의 전국 화과자 협회에서는 가상 의식이 행해진 6월 16일을 화과자의 날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로 말미암아 왜 일본 과자가 우리나라 과자에 비해 맛있는지, 그리고 한국 과자가 일본 과자를 복사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역사적 흔적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해 볼 수 있었다.

노시쿠리, 니시메후, 긴톤, 아코야, 요리미즈, 만주, 양갱, 우즈라야키, 총 여덟 종
<노시쿠리, 니시메후, 긴톤, 아코야, 요리미즈, 만주, 양갱, 우즈라야키, 총 여덟 종
출처: 「徳川家康と嘉祥>

‘가상 과자’ 중 가장 만만한 것은 ‘양갱’

마지막으로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에 대해 총평하자면, 시작은 기대 이하였지만, 끝은 기대 이상이었다. 순전히 제멋대로 추리소설이라고 착각한 까닭에 시작은 기대 이하였지만, 나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끗하게 인정한 순간부터는 평소에 (소화가 잘 안된다는 빌어먹을 문제로) 손을 잘 대지 않던 과자 생각이 번개처럼 번쩍하고 침샘을 자극할 정도로 꽤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객기를 발휘해 언젠가부터 나와는 소원해진 초코파이라도 날름 먹어 볼까, 하는 안일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다이묘들이나 먹을 수 있었다는 ‘가상 과자’를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대는 쓰레기나 다름없는 초코파이 따위와 비교하고 있는 나의 한심함이 부끄러워 차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끝내 초코파이는 먹지 않았다. 대신 냉장고에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처럼 적적하게 방치되어 있던 양갱을 하나 꺼내 먹었다. 가상 의식에 내놓은 양갱과 내 손에 든 양갱은 이름만 같을 뿐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겐 모욕이 될 정도로 격이 다른 과자지만, 가상 과자의 여덟 품목 중에 양갱이 포함되어 있으니 나름 선전한 셈이다, 라고 말해도 될지 싶다.

‘뇌물은 과자로 주세요’라니, 참으로 낭만적이고 귀여운 요구지만, 그 속사정에는 번의 존속 여부가 달렸으니, 군침을 흘리며 마냥 즐거워할 수도 없다. 신입 루스이야쿠인 신노스케는 양갱 하나에 번의 존망이 달린 이 무서운 운명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아둔한 그대의 머리로선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해도 주먹 감자 정도라면 몰라도 진짜 주먹을 날리지는 말라. 맞으면 아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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