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에게 살의를 담아(親愛なる僕へ殺意をこめて, 2022)
<앞으로 펼쳐질 반전 드라마의 토대가 될 15년 전 연쇄 살인> |
서스펜스와 반전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로 범인으로 지목된 하치노이 마코토의 분신자살로 마무리된 15년 전 매춘부 연쇄 고문 살인사건에 얽히고설킨 인물들을 중심으로 야심 찬 반전들이 다량 준비되어 있다.
하치노이 마코토의 친아들 우라시마 에이지, 에이지를 입양한 우라시마 키이치, 15년 전 사건을 수사한 두 형사, 에이지의 애인 유키무라 쿄카 등 어떻게든 15년 전 사건과 연결된 이들이 서로를 지지고 볶으며 반전의 연속을 연출하고자 끙끙 노력하지만, 내가 볼 때 드라마 「친애하는 나에게 살의를 담아(親愛なる僕へ殺意をこめて)」의 가장 큰 반전은 결국 그들 중 하치노이 마코토만이 가장 인간적인 사람이었다는 것!
그럼 나머지들은 뭐냐고? 글쎄, 뭘까?
<에이지 기억에 없는 현금 뭉치와 피 묻은 야구방망이가 의미하는 것은?> |
<범죄자 아들이라는 이유로 핍박당해온 에이지를 환호하며 받기는 이곳은?> |
많은 중국 드라마가 소설을 기반으로 제작되듯, 많은 일본 드라마는 만화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듯한데 이 드라마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 만화를 감상하지는 않았고, 있는 줄도 몰랐고, 감상할 생각 역시 추호도 없다. 왜냐하면, 만화를 제대로 즐길 만큼, 즉 소년 시절만큼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고, 그래서 그림보단 글로 이해하는 방식을 던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만화가 원작이라 그런지 인물들 성격은 단순하고 소재는 자극적이다. 해리스 인격장애, 트라우마, 정신질환, 그리고 시청자로선 도무지 알 길이 없는 15년 전 사건에 얽힌 비밀 등 어떤 식으로든 반전을 꾀하기 좋은 구성을 취하고 있다. 앞뒤 구성은 나름 잘 짜여 있다는 것.
<15년 전 사건을 수사했던 두 형사도 반전을 날린다> |
<에이지의 여친도 반전을 날린다> |
한마디로 반전 마니아를 위한 드라마라는 말인데, 알다시피 반전도 반전 나름이고 반전의 묘미는 반전의 수(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질(質)에 있지 않을까 싶다. 반전의 토대가 작위적인데다가, 크고 작은 반전이 계속되다 보니 적응이 된다고 할까? 그래서 감각이 무뎌진다고 할까? 결국 계속된 반전은 보는 사람을 공허하게 만든다. 6화까지는 그럭저럭 재밌게 봤는데, 그 이후로는 근성으로 마무리했다.
일본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반전에 목매달까? 2차세계대전 때 미국을 기습한 것도, 본토에서의 결사 항전 의지를 꺾은 원자폭탄 투하도, 그리고 패배를 안긴 미국의 하수인이 된 것도 반전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전 국민이 반전의 충격과도 같은 묘미를 깊이 체감해서 그럴까?
그런 것들이야 어찌 되었든 내 알 바는 아니고, 친애하는 일본에 적의를 담아 한마디 한다면 일본이 연출할 수 있는 인류사 최대의 반전은 과거사에 대한 격식을 갖춘 정식 사죄다. 그런데 그날이 과연 오려나.
<모두가 반전을 날리는데 에이지의 의붓아버지라고 빠질 수 없다> |
<나미 역을 맡은 카와에이 리나(川栄李奈)> |
화려하면서도 고풍스럽게 치장된 중국 사극만 보다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현대극을 보려니 뭔가 성의 없어 보이는 밋밋한 화면과 일본 드라마의 교과서 같은 과장된 표정 연기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특히 야마다 료스케(山田涼介)가 연기한 우라시마 에이지가 겁먹었을 때 보여준 오들오들 떠는 ‘면상 수전증’ 연기는 심히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야마다 료스케의 ‘연기’에도 반전이 심겨 있으니 정말이지 ‘반전에, 반전에 의한, 반전을 위한 드라마’다. 설날 떡국 위에 올려진 고명 정도의 서스펜스와 재미는 갖춘 드라마니 시간 날 때 감상에도 무방할 것이다.
거듭되는 반전에 싫증이 나서 그런지 이후 내 관심을 끈 것은 반전도 아니고 서스펜스도 아니고 정신병자들의 하소연도 아닌 살인사건을 계기로 에이지를 알게 된 나미 역을 맡은 카와에이 리나(川栄李奈)의 재발견이다. 아이돌 그룹 AKB48 출신다운 걸출한 외모, 그리고 차분한 연기가 매력적인 카와에이 리나는 「친애하는 나에게 살의를 담아」보다 더 재밌게 감상한 「3학년 A반~지금부터 여러분은, 인질입니다」에서 우사미 카호 역을 맡았었다. 그런데 그때는 왜 발견하지 못했던 것일까? 노안에 인지력 결핍까지 겹쳤기 때문이리라.
끝으로 「친애하는 나에게 살의를 담아」 등장인물엔 크고 작은 정신질환을 겪고 있다거나 불행한 과거로 인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벽에서 탈출하기 위한 단막극 같은 몸부림이 비극적이게도 사회에선 ‘범죄’라고 불리는 불법행위로 귀결되는 사람들. 마지막 에피소드는 '나는 어떤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사는 것일까?' 하는 뜻하지 않은 짠한 여운을 남겨준다
<역시나 유쾌하고 감동적인 원신 설날 이벤트 ‘해등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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