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3

법의진명(法医秦明)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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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손에 든 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초장부터 닭발 튀김하고 분간하기 어려운 기름에 튀긴 사람 손을 들이대며 보는 사람을 식겁하게 만드는 드라마지만(사실 이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하수도에 둥둥 뜬 기름을 걸러 내 폐식용유로 재활용하는 설정이 단지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점에서 더 엽기적이다. 역시 중국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잔혹한 범죄 묘사로 시청자의 변변치 않은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은 딱 여기까지다.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톱이 아닌 절단기로 흉강 절개>

중반을 넘어가면 마치 「신의 퀴즈」 짝퉁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사라질 정도로 범죄의 잔혹성보다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게 만드는 비참하고 우려할만한 상황과 우리의 위선이란 가면 뒤에 숨은 음흉한 자화상을 내비치는 범죄의 유혹에 굴복한 사람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소소한 감동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은 없다. 물론 「신의 퀴즈」처럼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슬픔을 끌어내기엔 턱도 없지만 말이다.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그의 첫 인상은 '구본승'을...>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마지막 사건이 아쉽기는 하지만, 소설이든 영화이든 ‘범죄’라는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역할이면서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들러리로만 등장하고 했던 법의학자를 탐정처럼 기용해 범죄를 착착 해결해 나가는 설정은 꽤 재밌다.

그것뿐만 아니라 감정 프로세스 모듈만 장착되지 않은 안드로이드처럼 차갑고 냉정한 법의학자 진명(张若昀), 상관의 괴팍한 성격을 견뎌내지 못하고 퇴사한 진명의 조수를 대신해 합류한 개구쟁이 아가씨 이대보(焦俊艳), 진명의 유일한 친구이면서 쓸데없이 진지한 진명이 뿜어대는 어색한 분위기를 어눌하게 보듬어주는 껄렁한 임 팀장(李现) 등 개성 강한 세 주인공이 티격태격 화합하는 모습도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부르뎅 아동복 모델로 손색이 없는 명랑 캐릭터 이대보 역을 멋지게 소화한 초준염(焦俊艳)의 앙증맞은 연기와 털털한 웃음을 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긴 머리도 잘 어울리는 그녀>

공교롭게도 「법의진명(法医秦明)」을 보기 직전에 읽은 책이 법의병리학자로 일하면서 2만 3천여 구가 넘는 시신을 부검한 리처드 셰퍼드(Richard Shepherd) 박사의 자서전이다. 드라마의 원작도 중국 법의학자 진명(秦明)이 쓴 『第十一根手指(열한 번째 손가락)』라는 책이다.

진명의 책이든 그 책을 각색해서 제작한 드라마든 법의학자라는 직업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책임과 의무, 그리고 사명감에 충실한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일상(예를 들면 칼에 찔린 상처의 정확한 크기와 형태를 유추하고자 고깃덩어리를 칼로 쑤시는 실험)에 대해 일반인을 얼마나 안심시키고 이해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난도질’하는 사람, 잔인한 백정, 죽음과 시체를 다루는 불결한 사람으로 오해받는 법의학만이 본의 아닌 ‘난도질’로 죽은 사람의 하소연을 산 사람에게 전해주는 유일한 메신저라는 점은 인정할 필요가 있다.

드라마 리뷰 | 법의진명(法医秦明, 2016) | 죽은 자를 위한 위챗, 부검
<'나는 자연인이다'에서도 보기 어려운 살림>

범죄를 해결해 나가는 추리 과정은 지나치게 복잡하지 않다. 남녀노소 모두 가방끈 길이에 상관없이 한 사건 당 담배 한 개비 타들어 가는 시간 정도만 모처럼의 뇌세포 운동에 투자한다면 즐거운 범죄 해결의 시간을 누릴 수 있다. 다르게 말해 추리 색깔은 강하지 않다.

드라마와는 별개로 인연처럼 스쳐 가는 화면을 통해 중국적인 삶을 엿보는 것도 재밌다. 처녀를 결혼의 첫째 조건으로 내건 남자, 아이를 차도 한가운데 내려놓는 모습, 하수에서 폐식용유를 추출하는 재간, 대놓고 돈만 밝히는 여자, 가정 폭력, 아동 학대 등 우리와 겹치면서도 겹치지 않는 중국인의 삶의 양식은 고물상을 흩어보는 듯한 허름한 재미가 있다.

그중에서 「TV쇼 진품명품」의 출장 감정처럼 법의학자가 사건을 해결하러 시골로 출장 부검을 가는 모습은 진경이다. 드라마 속 시골은 여전히 이와 빈대가 출몰할 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하나 없는 썰렁한 살림으로 사는 사람도 있다. 이런 설정을 연출했다는 것은 중국인들의 머릿속에 그 정도의 빈부 격차는 당연하다는 듯 각인되어 있다는 뜻이 아닐까? 아니면 물질만능주의 타파 운동이라도 벌이는 중인가?

지긋지긋한 소화불량, 체증, 거북함에도 불구하고 글이 길어졌다. 짧게 쓰는 것이 힘인데, 쉽지 않다. 드라마는 영화보다 상영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할 말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일까? 아무튼, 「법의진명(法医秦明)」는 부담 없는 추리, 조화로운 캐릭터들의 성격, 법의학자를 중심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채로운 설정 등이 볼만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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