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만의 선택 | 박이문 | 스스로 인생의 답을 구하고자 하는 모든 이에게 바치는 방랑지식인의 성찰
Original Title: 하나만의 선택 by 박이문
모든 것에 대해서,특히 나 자신에 대해서 분명하고 명석해지고 싶었다. 나는 분명히 알고 싶었다. 그리고 투명하기를 원했다. (『하나만의 선택』, P17)
고백하기에 민망한 나의 무지와 이 책을 선택하게 된 동기
전집을 편찬할 정도로 명망과 학식이 있는 저자였음에도 막상 겉표지에 적힌 저자의 이름 석 자 ‘박이문’을 읽었을 땐 ‘뭐 하는 사람이지?, 어떤 글을 쓰는 사람이지?’ 등의 무식이 철철 흐르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 책 좀 읽는다고 자부해왔지만, 부끄럽게도 이 책을 집어 들기 전까지 저자 ‘박이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었다. 어느덧 도서관 출입은 10년을 넘어서고 그동안 꽤 많은 책을 읽었지만, 아쉽게도 저자의 이름 석 자는 생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사실 죽을 때까지 책만 읽는다고 해도 아는 작가보다 모르는 작가가 더 많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세상에는 글 쓰는 사람은 어마어마하게 많지만, 문학을 좀 읽는 사람치곤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인문학에 관심을 둔 독자에겐 전혀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던 저자의 이름 석 자가 평소에 인문학, 그중에서도 철학에 가까운 분야는 거의 읽지 않았기에 그러한 무지를 드러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오늘날의 우연한 계기가 없었더라면 남은 세월을 도서관 오타쿠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내가 저자를 만나는 지적 행운은 한줌의 재로 화하는 최후의 날까지 얻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좀 어이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 우연한 계기란 데이비드 쾀멘(David Quammen)의 『도도의 노래The Song of the Dodo)』다. 인류가 인식한 최초의 멸종 동물로 알려진 도도의 슬픈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생태학 분야의 고전이 된 책에 크나큰 감동과 깊은 인상을 받은 나는 혹시 이와 비슷한 책이 또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 도서관 자료 검색 사이트에 ‘생태학’이라는 키워드로 검색했다. 총 300여 권의 결과물 중 17번째에 위치한 『생태학적 세계관과 문명의 미래: 과학기술문명에 대한 대안적 통찰』(박이문의 인문학 전집 중 여덟 번째)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제목만 보고는 평소 과학기술의 남용과 오용에 회의적이었던 나의 입장을 명쾌하게 대변해 줄 동지를 만난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824쪽이라는 꽤 많은 분량도 부담스러운데 ‘인문학 전집’이라는 엄숙한 표제와 저자 소개 글의 ‘철학박사’라는 따분한 단어에 지레 겁먹은 나는 824쪽 대부분을 철학적이고 학술적인 딱딱하고 난해한 글로만 채워줬을 것으로 지레짐작하여 선뜻 선택하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시대 인문학 최고의 마에스트로라는 추천사에 조금 현혹되고, 여기에 예전에 읽었던 신랄하면서도 명쾌한 故리영희의 글을 읽으며 느꼈던 지적 흥분과 상쾌함을 다시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두근거림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갈팡질팡하던 나약한 의지에 결정타를 날림으로써 겨우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던 나는, 그렇다면 이왕 이렇게 된 거 전집은 다 못 읽더라도 『생태학적 세계관과 문명의 미래』를 읽기 전 사전 준비 격으로 저자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고 삶에 대한 어떠한 태도와 가치관을 가졌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자서전 격인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자신만의 길을 가는 고독한 사람들> |
‘하나만의 선택’에 담긴 세심한 인생 철학
쓸데없이 서두가 길었지만,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기품이 두루 느껴지는 『하나만의 선택』에는 백발이 되어도 끝나지 않는 저자의 지적 호기심과 방황, 회의와 반성, 그리고 지적 추구와 방랑의 생애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하나만의 선택’이라는 일련의 연속 과정으로서 잘 나타나 있다. 우리는 삶의 무한하고 연속된 갈림길에서 선택은 오직 하나뿐이라는 잔인한 현실에 부딪혀 머뭇거리기도 하고 실망도 하지만, 강요나 압력에 의해서건, 자의에 의해서건, 혹은 대범하게 주사위를 굴리건 결국 우린 인생의 중요한 기로 앞에선 한 가지만 선택할 수 있다. 그렇게 한 사람의 인생이 그 연속된 ‘하나만의 선택’이 그려온 기하학적 도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그 다사다난했던 도식을 짧고 긴 텍스트가 어우러지는 문학적 소양으로 풀어쓴 것이 바로 이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는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고,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국가와 여전히 가난한 국민을 위한 공익적 활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할 수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앎의 지적 성장을 추구하는 외롭고도 고된 방랑 지식인의 길을 걸어왔다. 때론 자신의 태도나 생각이 일종의 자학이요 자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회의가 들기도 하고, 자신의 자족적인 삶이 너무 초라해 보이기도 했으며, 다른 사람들처럼 단란한 가정을 꾸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안락하고 평온한 삶이 그립고 부러울 때도 있었다. 한편으론 국가와 국민뿐만 아니라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님조차 외면해야 했던 지성과 앎에 대한 집념이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 부끄럽고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그러나 출세하고 편안히 산다는 것은 잘사는 것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과는 다르고, 어떠한 인생이 참다운 인생이며 뜻있는 삶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인생에는 여러 가지 살아가는 길이 있으며 또한 인생에는 많은 종류의 할 일과 즐거움을 가질 수 있다는, 인생의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를 투명하게 밝히고 설명하려는 저자 박이문의 인생 철학은 ‘하나만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인생의 갈림길 앞에서 누군가의 강요나 사회적 압력, 안락을 추구하려는 육체적 안일함과 정신적 나태함을 극복하는 기폭제가 되었고, 그렇게 모든 결정은 궁극적으로 ‘나의 결정’이었다는 자부심과 책임감이 이 책을 압도하고 있다.
정신의 빈곤을 채워줄 마음의 양식
무엇이 올바른 삶이고, 어떠한 삶이 잘 살았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건전한 삶이며, 어떻게 살아야 정신과 영혼이 건강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더불어 행복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인류에게 말과 글자가 발명된 이후 수많은 석학이 이 질문에 대해 명쾌하고 정연한 논리로 파고들면서 놀라운 인류의 지혜를 보여주었지만, 그 누구도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박이문 역시 그러하며, 아마도 이 문제는 인류가 멸종하는 그날까지 답 없는 수수께끼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많은 인문학자가 이 문제에 자신의 지력과 열정, 그리고 보석보다 소중한 시간을 다 받쳐 씨름하고 있다. 왜 그들은 정답도 없고 실존적 삶에 하등 보탬이 안 되는 철학적 고뇌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일까?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고자? 명성을 얻으려고? 그래서 한 몫 단단히 잡으려고? 아니면, 그냥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자? 이 모두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의 마음을 강렬한 지적 환희로 전율시켜줄 명확한 답도 아니다. 김빠지는 소리로 들리겠지만, 아마도 그 답은 ‘사색과 사고’라는 길고도 먼 자기성찰의 고행길에서 스스로 발견해야 하는 무엇인지도 모른다. 철학이라고 하기엔 너무 소탈하고 문학이라고 하기엔 너무 진지한 『하나만의 선택』은 자신만의 길을 가는, 혹은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지적 성찰과 편력이라는 고독하고 쓸쓸한 길에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의지도 북돋아 주고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 든든한 동반자이자 믿음직스러운 친구다. 더불어 질식할 것 같은 현대 사회에서 정신의 빈곤에 시달리는 영혼의 길을 잃은 어린 양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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