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12

장칭 | 사악한 백골정?

Madame Mao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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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칭 | 로스 테릴 | 사악한 백골정?, 아니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처음에는 성(性)이 흥미를 끈다. 하지만 오랫동안 흥미를 지속시키는 것은 권력이다. (『장칭(Madame Mao)』, p179)

권위는 항상 장칭의 적이었다. 화합 또한 장칭에게는 자기표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다. 장칭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차갑게 말했다 .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어린 시절 지난에 살면서 나는 어디에서나 모욕을 당했죠 .”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듯한 이런 대격동을 환영했을 것이다. (『장칭(Madame Mao)』, p408)

백골정(白骨精)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간사하고 독하고 또 변장과 변신을 잘하는 요귀인데 현실에선 수단이 교활하고 악독한 나쁜 사람을 비유할 때 종종 사용한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마지막 아내이자 문화대혁명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한복판에 당당하게 섰던 인물 장칭(江青)이 바로 백골정이라 불렸다. 장칭은 정말 요귀처럼 상황과 환경에 따라 우아하고 겸손한 요조숙녀와 권력의 칼날을 잔혹하게 휘두르는 사악한 악녀 사이를 밥 먹듯이 오갔으며, 그녀가 갈고닦은 서슬 퍼런 복수의 칼날 앞에 펼쳐진 블랙리스트에는 30여 년 전의 일도 수두룩할 정도로 한 번 품은 원한은 절대 잊지 않았다. 손을 떠난 복수의 칼날은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맛보고서야 거두어들였으며, 복수를 완수한 칼을 거두어들일 때조차 승리한 폭군에게서조차 종종 보이곤 하는 알량한 자비심조차 내비치지 않은 그녀의 잔혹함과 사악함은 사탄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녀를 단죄한 덩샤오핑 시대는 장칭을 사악한 요괴, 요부 정도로 평가했지만, 장칭의 일생을 일목요연하게 드러낸 로스 테릴(Ross Terrill)의 책 『장칭: 정치적 마녀의 초상(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은 조금은 다르게 바라본다. 헨리크 입센의 희극 ‘인형의 집’을 뛰쳐나온, 혹은 뛰쳐나오고 싶은 반항심 가득한 ‘노라’로서 말이다. 실제로 장칭은 연극에 입단하는 윈허(장칭의 소녀 시절 이름) 때 이미 '인형의 집' 노라에게 매료됐으며, ‘란핑’이란 이름으로 활동했던 상하이 여배우 시절에는 '인형의 집'의 노라 역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다. 낡은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회를 과감하게 탈출하고 싶었던 ‘노라’는 다름 아닌 장칭 바로 그 자신이었으리라. 그 이후에도 그녀는 중국을 무대 삼고 인민을 관중 삼은 인생의 연극에서 노라 역에 충실했으며, 그리고 그 중심에는 ‘자기표현’에 대한 비범한 의지력과 누군가에게 휘둘리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는 강렬한 자립심과 민감한 자존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장칭이 배우를 택한 것도 ‘자기표현’의 한 수단이었고, 마오를 선택한 것 역시 그랬다. 그녀는 일본의 상하이 침공과 전쟁으로 배우 활동이 어려워지자 ‘자기표현’의 또 다른 수단으로 공산주의와 정치를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최고 통치자의 아내가 되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봉건사상과 남성 중심 사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평범한 여성이었다면 마오 주석 곁에서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안달이 난, 언제가 자유롭게 하늘을 날게 해 줄 자신의 우아한 날개를 희망과 절망이 뒤범벅된 우울한 눈으로 바라고 있었던 장칭에겐 최고 통치자의 아내라는 역할도 새장 속에 갇힌 새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보기엔 자신이 갇힌 새장은 단지 다른 이들 것보다 좀 더 넓고 화려해 보일 뿐이었으리라. 그렇게 장칭은 무려 30년이 넘는 세월을 갇혀 지냈고 그동안의 억압 되고 좌절된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한 것이 바로 문화대혁명이었다. 이러한 점이 그녀가 문화대혁명 중에 보여준 묵은 원한과 증오심으로 벼리고 벼린 복수의 칼을 잔혹하게 휘두른 것에 대한 변명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상당한 추종자들이 장칭을 흠모하고 칭송했던 것을 보면 장칭의 과감한 ‘자기표현’ 능력과 배우 특유의 무대 장악 능력이 문화대혁명이라는 큰 무대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식을 줄 모르는 장칭의 반항심은 그녀의 마지막 무대가 되는 재판 과정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녀는 자기 앞에 쌓인 모든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면서 재판 과정 내내 당당하고 품위 있는 모습을 유지했다. 사실 문화대혁명의 비극은 마오의 현실을 크게 벗어난 공산주의 실험과 경직된 공산당 체제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지만, 공산당은 마오와 공산당의 잘못까지 비겁하게 모두 사인방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에 대해 장칭은 모두 마오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공산당을 당황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려는 그들의 교활함까지 폭로했다. 낡은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모든 인민이 평등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혁명적 기치에서 일어선 공산당이었지만, 결국 명칭과 사람만 바뀌었을 뿐 또다시 인민을 억압하는 구시대적 체제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공산당에 굴복하지 않고 진실이든 거짓말이든 하고 싶은 말은 다 쏟아내던 장칭의 반항심은 공산당 통치에 회의적이거나 염증을 느낀 인민들의 마음 한편에 알 수 없는 묘한 흥분과 감동을 일으키며 일말의 카타르시스 적인 대리 만족을 전해주었을 것이다.

Madame Mao: The White-Boned Demon by Ross Terrill
<사악한 ‘백골정’?, 새장에 갇힌 인형 ‘노라’?>

책을 읽다 보면 개인적 기질과 역사적 오류가 우연히 만나 일으킨 스파크가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더욱 확장시킨 듯한 뉘앙스를 조금 풍기기도 하지만, 워낙 장칭에 대한 백골정이라는 악의적인 평가가 단호하고 요지부동이다 보니 저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이 공정함을 기한다는 측면에서 일말의 자비심을 베푼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장칭이 여배우라는 직업이 흠이 되기는커녕 나름 흠모받는 지금의 중국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히틀러를 뺨치는 의지력과 대중 장악 능력은 배우로서 성공하는 데 아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비천한 출신 배경과 고통, 갈등, 슬픔, 외로움으로 가득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태산 같은 증오와 원한을 품지 않고 좀 더 부드러운 삶을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따지만, 누구나 다 현실의 불행과 잘잘못을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으로 돌리면 되니 더 이야기할 거리는 못 되지만 아무튼, 그녀가 마지막 부대에서 보여준 용기와 배짱은 정말 두고두고 남을 명장면이다. 그 한 장면 때문에 그녀에 대한 작금의 평가가 크게 달라질 리는 없겠지만,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일시적인 감흥에 따라서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문화대혁명 기간 전후에 보여준 ‘복수의 화신’ 같은 장칭의 소름 끼치는 이미지 역시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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