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8/26

유리문 안에서 | 씁쓸함 뒤의 개운함

Inside My Glass Door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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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문 안에서 | 나쓰메 소세키 | 한 잔의 원두커피 같은 씁쓸함 뒤의 개운함이란

원제: 硝子戶の中 by 夏目 漱石

아무리 좁은 세계라 하더라도 그 나름대로 사건은 일어난다. 그리고 자그마한 나와 넓은 세상 사이를 격리시키고 있는 이 유리문 안으로 이따금 사람이 들어온다. 그게 또 나로서는 전혀 뜻밖의 사람들로 이 또한 전혀 뜻밖의 말이나 행동을 하기도 한다. 나는 흥미에 가득 찬 눈으로 그런 그네들을 맞이하거나 보낸 일조차 있다. 나는 그런 일들을 여기에 조금 써보려고 한다. (『유리문 안에서』, p10)

매일처럼 유리문 안에 앉아서, 아직 겨울이다 겨울이다 하고 있는 사이, 봄은 어느결에 저만큼 다가와 내 마음을 휘젓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리문 안에서』, p159)

지병인 위궤양과 감기 등의 병치레로 쇠약하진 나쓰메 소세키(夏目 漱石)가 병상에서 일어나 겨우 집안 정도를 거동할 수 있을 무렵에 쓴 『유리문 안에서(硝子戶の中)』는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해인 1915년 1월부터 2월에 걸쳐 아사히 신문에 연재되었다. 자신이 다음 해에 죽으리라는 것을 꼭 집어 예견할 수는 없었겠지만, 오랜 지병인 위궤양과 신경쇠약 때문에 자신의 삶이 곧 죽음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어느 정도 예감한 듯, 죽음에 대한 상념과 고찰뿐만 아니라 과거에 대한 회상을 주로 담은 『유리문 안에서』는 집필 시기였던 겨울만큼이나 쓸쓸하고 적막한 죽음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신변 정리를 하듯, 과거, 현재를 반추하고, 과거로부터 현재로 이어지는 인과 관계 등을 되돌아보는 삶에 대한 담담한 자기 성찰과 회고가 담긴 이 수필은 유리문 하나로 세상과 격리된 채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자신의 영혼이 자유롭게 노니는 대로’ 붓을 휘둘러 완성된 작품이다. 곧 맞이할 것 같은 죽음을 떠올려야만 하는 사람들의 막막한 불안함 속에서도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해탈하고자 하는 의지가 자아내는 영혼의 여유로움을 은근히 느낄 수 있는 수작이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속세와는 ‘유리문’ 한 장으로 격리된 툇마루에서 홀로 숙고해야만 하는 자의 쓸쓸함이 독자의 심금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기도 한다.

Inside the glass by Natsume Soseki
<시상이 절로 떠오를 것 같은 집>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유명한)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 없는 고양이, 누런 점박이 강아지 헥토르, 저자의 사진을 담고 싶다는 사진사, 자신의 기구한 인생을 고백하며 인생의 조언을 구하는 여자 손님, 오랜만에 찾아온 친구, 원고를 들고 평가를 받고자 찾아오는 사람, 한시나 하이쿠를 써달라고 멋대로 단자쿠와 선물을 보내는 사람, 일찍 죽은 형제와 지인, 그리고 여전히 마음속에 어른거리는 올 성근 감색 홑옷이나 조붓한 검은 공단 오비를 두른 그리운 어머니 이야기 등 한 개인의 과거와 주변을 훑는 신변잡기 따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쓰메 소세키 특유의 재치와 관조적인 담백한 문장은 한 귀로 흘려도 무방할 듯한 사소하고 소소한 개인의 일상을 허탈하게 웃고 넘기기엔 무척이나 아쉬운 그럴듯한 이야기로 끌어올린다. 한편으로는 그의 다른 작품에서는 엿보기 어려웠던 나쓰메 소세키의 일상적인 모습과 사유가 담겨 있어 매우 친근감이 느껴진다.

짧은 각 이야기의 마무리는 친근한 무언가를 갑자기 잃어버리는 듯한 상실감이나 처량함, 때론 믿었던 누군가에게 버려진 듯한 씁쓸하고 허탈한 여운을 남기기도 하지만, 그런 씁쓸한 뒷맛을 소처럼 되새겨 보면 막 내린 따끈한 원두커피처럼 씁쓸함 뒤의 구수한 개운함이 온몸을 따뜻하게 퍼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고 삶의 과중함에 억눌려 노곤해질 대로 노곤해진 영혼의 각성을 위한 천연의 강장제가 될 수도 있으며, 바쁜 일상의 굴레를 잠시 중단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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