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30

수달 타카의 | 사람과 다름 없는 희로애락

Tarka the Otte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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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달 타카의 일생 | 헨리 월리엄슨 | 우리 인생처럼 희로애락이 교차하는 수달의 일생

타카는 텅 빈 나무 속에서 배고픔과 추위에 떨며 어미가 돌아와 주지 않을까 기다리던 그 시절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다시 느꼈다. (『수달 타카의 일생』, p129),
살아오면서 수많은 슬픔과 공포를 겪으며 참을성을 키운 회색주둥이는 타카의 상처 난 얼굴과 목을 보듬어 안아주고 핥아주었다. (『수달 타카의 일생』, p134-135)

크고 작은 지류들이 합쳐져 바다로 연결되는 생태 환경을 가진 영국의 ‘투 리버(Two Rivers)’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수달 타카(Tarka)의 일생을 묘사한 『수달 타카의 일생(Tarka the Otter)』의 시대적 배경은 여전히 수달 사냥이 널리 행해지던 1920년대다. 그래서 타카를 비롯해 얼마 남지 않은 다른 수달들은 번식과 먹이, 잠자리 문제는 둘째치고 연례행사처럼 벌어지는 사람들의 수달 사냥에서 무사히 살아남아야만 한 살을 더 먹을 수 있는, 마치 목숨을 건 줄타기에 해마다 내던져지는 듯한 위태로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타카의 일생에도 이러한 위험은 수시로 닥친다. 덫에 걸려 발가락 세 개를 잃기도 하는 타카는 거대한 사냥개 무리를 대동한 사람들의 무지막지한 사냥으로 가끔 모습을 내비치던 아빠와 외로운 자신을 엄마처럼 보살펴 준 연상의 여인 회색주둥이, 그리고 눈이 멀고 턱이 산산이 부서질 때까지 사냥개 무리와 싸운 용감한 큰아들 타콜을 잃는다. 타콜을 잃고 난 직후 타카는 마치 자신의 소중한 가족을 잃은 것에 대한 복수라도 하는 듯 노련한 수달사냥개 데드락의 숨통을 기어이 끊어놓고 사람들 앞에서 유유히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사냥개 무리와 사람과의 처절한 사투를 벌이면서 9시간이나 쫓기던 타카의 온몸은 이미 만신창이다. 타카가 살아있다는 마지막 증거는 바닷속에서 힘없이 솟아오른, 첫 번째,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공기 방울이 전부다. 발로 어미의 코를 톡톡 치고 수염을 물고 잡아당기면서 장난을 치던 개구쟁이 새끼에서 회색주둥이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아빠가 되어 자식도 낳고, 부모와 자식을 잃는 상실감까지 맛본 의젓한 어른으로 성장한 타카는 그렇게 우리의 시야에서 영영 사라진다. 그 이후 그가 운 좋게 살아남아 늙은 수컷 수달 말랜드 지미만큼이나 오래 살았는지, 아니면 그날 그렇게 양양한 바다의 품속에 고이 잠들었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Tarka the Otter by Henry Williamson
<이 중에 타카의 후손이 있으려나?>

수생 생태계에서 최상위에 존재하는 육식 포식자 수달의 일생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세심하게 묘사한 헨리 월리엄슨(Henry Williamson)의 『수달 타카의 일생(Tarka the Otter)』은 비단 수달의 삶뿐만 아니라 수달이 살아가는 환경, 즉 수달이 주로 서식하는 바다, 하천, 습지에서 수달과 함께 공존하면서 각자 나름의 생태적 지위를 차지하는 도감에서나 찾아볼 수 있을법한 다양한 야생 동식물의 삶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한 폭의 풍경화처럼 조화롭고 다채로운 모습으로 묘사된 ‘투 리버’의 생태 환경은 추억 속의 활동사진처럼 서정성과 역동성이 고루 느껴질 정도로 아름답다. 그뿐만 아니라 타카가 밟은 풀 한 포기와 물속에서 뿜어내는 공기 방울 하나뿐만 아니라 소리를 통한 서로 다른 종끼리의 크고 작은 소통까지 놓치지 않는 묘사는 세밀함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자연과 관계된 것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한 필사적인 묘사에는 먼 훗날 자연이 심각하게 파괴된 지구에서 살게 될 후세들을 위한 안타까움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배려가 엿보인다. 일본의 하천 개발로 수달과 그 생태 환경이 사라진 것처럼 미래에는 수달뿐만 아니라 『수달 타카의 일생』에서 묘사한 수생 생태계 역시 일부러 ‘정글의 법칙’에나 나올법한 오지로 떠나지 않는 이상 문명화된 사람이 모여 사는 주변에서는 두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수달뿐만이 아니라도 단지 즐기기 위한, 재미를 위한, 스포츠의 일종으로 행해지는 사람의 사냥 때문에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겪어야 할 고통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슬픔’이라 표현한 것에 많은 사람은 반감을 품을지 모르지만,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듯, 동물들도 사람처럼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 단지 서로 의사소통 방법이 달라 그들의 감정을 사람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뿐이다. 아마 강아지와 함께 오랫동안 산 사람은 강아지가 나름의 감수성과 교감 능력을 지닌 예민한 동물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내가 이런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수달 타카의 일생』에 공개된 타카의 일생은 마치 사람의 삶처럼 ‘희로애락’이 교차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달들은 사람처럼 상실과 사별의 슬픔의 겪기도 하지만, 이러한 슬픔을 역시 사람처럼 망각을 통해 극복하기도 한다. 때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마음에 둔 짝을 빼앗기는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타카의 어미는 타카가 힘차게 장난치는 모습에 여느 엄마들처럼 대견스러워 기뻐하고, 오랫동안 혼자 지내온 늙은 수달 지미는 오랜만에 다른 수달을 만나 함께 놀 수 있게 되자 행복에 겨워한다. 새 아빠와 함께 떠난 엄마 때문에 쓸쓸해진 타카는 연상의 여인 회색주둥이를 통해 외로움을 극복하고 새롭고 달콤한 새 삶을 시작하지만, 왁자지껄한 사람 소리와 시끌벅적한 사냥개의 소리가 들리면 타카의 일시적인 행복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처럼 사냥을 즐기고 사냥감을 가지고 장난치는 잔인하고 비열한 육식 포식자다운 습성도 보여준다. 아무튼, 사람의 도를 넘어선 사냥만 아니었더라면, 아마도 타카는 회생주둥이와 꽤 오랫동안 신혼의 달콤함을 만끽했을 뿐만 아니라 손자 • 손녀들이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도 뿌듯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투리버 지역의 장어들은 연어나 무지개송어의 알과 치어들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우고, 수달들은 이런 장어들을 또한 신나게 잡아먹는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평온해 보이는 자연 속에 가려진 먹이 사슬의 엄격함은 다소 잔혹해 보인다. 그러나 먹고 먹히는 과정에서 조화와 공존, 그리고 지속가능성의 위대함을 완성한 자연이야말로 경이로움 그 자체다.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는 조화와 공존 속에서 지속가능성은 완성되었고, 이런 순환 속에는 저마다 맡은 역할에 충실해 온 미생물부터 최상위 포식 동물에 이르는 다양한 생명체의 드러나지 않는 현명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만류의 영장이자 지적이고 이성적인 존재임을 자부하는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한 인류가 이 순환을 무참히도 깨버렸다. 인류의 지나친 탐욕과 이기심에 의해 이미 많은 종이 멸종했으며 또 다른 종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 사람의 배은망덕하고 후안무치한 파괴와 착취 행위가 언제 끝날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마찬가지로 온갖 상처를 입은 자연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역시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수달 타카의 일생』은 인류가 자연을 정복하고자 하는 필요 이상의 도락이 어떻게, 그리고 그토록 무심하고 잔인하게 생태계의 한 종을 짓밟는지를 만천하에 고발한다. 먹이 사슬의 최상위에서 군림하지만, 스스로 목을 조이듯, 혹은 뿌린 대로 거두듯 그 먹이 사슬에 균열을 일으키는 생태계 파괴와 기후 변화의 압박을 받는 인류의 위태로운 삶은 마치 사람의 지나친 탐욕에 희생당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동물, 그리고 그 수많은 동물 중 오늘날 알게 된 수달 타카의 삶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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