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30

아래층 사람들 | 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The Tenants Downstairs 2016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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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 | 께름칙한 영상으로 광인의 세계를 소름끼치게 표현한

“그래서 끝자락에 머물고 있는 거예요” - 잉루
“왜 머무는 거죠?” - 주인 남자
“다른 사람과 다른 걸 두려워하니까요. 그래서 그 끝에 머물면서 꼼짝도 못 하는 거에요” - 잉루

와우, 간만에 소름끼치는 연기, 그리고 그 소름끼치는 연기에 걸맞은 소름끼치는 반전을 소름끼치는 영상에 진득하게 담은 괴물 같은 영화를 만났다. 「아래층 사람들(The Tenants Downstairs, 2016)」을 보노라면,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그 유명한 경구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네가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가 절로 떠오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더 자세한 내용은 언급할 수가 없지만, 「아래층 사람들」는 광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섬뜩하지만 엄연한 현실을 소름끼치는 연기, 빈틈없는 이야기, 그리고 음침한 영상을 통해 매우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있다. 한편, 이 영화에는 사디즘, 카니발리즘, 동성연애, 비역질, 고문, 관음증, 씨오메이니어(Theomania), 강간, 토막 살인 등 사드 후작도 울고 갈 정도의 변태적이고 광기적인 요소가 고장 난 공중화장실 변기에 고여 있는 오물처럼 푸짐하게 차려져 있다. 고로 잠시 광기의 역겹게 매혹적인 세계를 탐험하기에 앞서 알아서 판단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기 바란다. 참고로 뭇 남자들의 무른 방망이가 고개를 쳐들 수 있는 선정적인 장면도 다분하다.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심문실에서 한 남자가 형사 한 명을 앞에 두고 변호사 없이 자신이 겪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구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연히 먼 친척으로부터 아파트를 물려받은 남자는 세입자에게 아파트를 임대한다. 첫 입주자는 수상쩍은 눈빛으로 어린 딸을 바라보는 막 이혼한 왕 씨와 그의 어린 딸이었다. 두 번째 입주자는 게이 연인이다. 그다음으로 초능력에 빠져 있는 괴상한 대학생, 자신의 아름다운 육체의 장점을 이용할 줄 아는 평범한 직장인 진소저, 유통기한 지난 우유를 즐겨 마시는 막 이혼한 체육선생 장 씨, 그리고 마지막으로 빨간 여행가방으로 가득 찬 방에서 홀로 존재감이 없이 사는 여자 잉루가 입주한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1

기가 막히게도 세입자들의 방에는 몰래카메라가 심어져 있었고, 당연히 주인 남자가 거주하는 방에는 세입자들의 모든 방을 훔쳐볼 수 있는 모니터가 일사불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임대료를 받는 것 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세입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하게 훔쳐보면서 그들의 일상을 조사하고 기록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자료가 쌓이자 남자는 세입자들의 일상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단 한 사람의 생활기록부에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채 새것처럼 깨끗하게 비워져 있었다. 그 세입자는 존재감이 없는 여자 잉루였다. 호기심을 참지 못한 남자는 잉루가 집에 없는 틈을 타 여벌 열쇠를 사용해 그녀의 방을 수색한다. 그녀의 방에는 여전히 빨간 여행가방들로 가득했다. 한 남자가 들기 버거운 가방 하나를 막 열어 살펴보려는 찰나에 예기치 않게 잉루가 한 남자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고, 다급해진 주인 남자는 침대 밑으로 숨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그녀는 남자 앞에서 훌러덩 옷을 벗어 던져 알몸이 된 다음 남자를 유혹하듯 욕조로 데리고 간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2

두 사람이 욕조로 간 틈을 타 재빨리 자기 방으로 돌아온 주인 남자는 모니터를 통해 두 사람이 욕조에서 과연 무엇을 하는지 훔쳐본다. 놀랍게도 그가 본 것은 젊은 남녀가 욕조에서 일반적으로 행할 것이라는 상상하는 흐뭇한 것이 아니라 잔혹한 고문의 현장이었다. 남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잉루는 뭔가 고상한 취미라도 즐기듯 침착하고 차분하게 남자를 고문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 남자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 남자의 목은 거북이처럼 늘어난 채 화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구름 낀 어느 날, 주인 남자는 아파트 베란다에서 잉루와 가벼운 티타임을 갖는다. 소녀처럼 순수하고 조각상처럼 섬세한 미모를 소유한 그녀는 젊음에 어울리지 않게 ‘인생의 끝자락’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끝자락이란 아무런 파랑도 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며 아무 가능성도 없는 삶을 사는 거라고 설명한 그녀는 자신은 그것을 뚫고 나갈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녀의 말에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주인 남자는 ‘끝자락’의 경계를 넘어서게 할 대담한 계획을 세워 세입자들의 운명에 개입한다. 마치 자신이 운명의 여신이라도 된듯 말이다.

The Tenants Downstairs 2016 scene 03

영화 「아래층 사람들」은 Giddens Ko(구바도)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라고 하는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되지 않은 것 같다. 영화가 매우 인상적인지라, 원작도 꼭 읽고 싶었는데 참으로 아쉽기 짝이 없다. 광기를 다룬 영화나 책을 읽다 보면, 그리고 덤으로 사드 후작과 관련된 책도 읽다 보면 광인에 대한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흔히 ‘미친 사람’이라고 부르는 사람과 소위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 사이의 가장 큰 차이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즉, ‘미친 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오직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정상’이라는 범주에 속한 사람들은 타인이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미친 사람’은 ‘정상’인 사람들이 빨간색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파란색이라고 우기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빨간색인 것은 그것이 진짜 '빨간색'이 아니라 다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빨간색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주 어딘가에는 그것을 파란색이라 명명하는 존재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아래층 사람들」은 이런 극명할 것 같은 차이를 께름칙한 영상으로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설득한다. 당연히 보는 사람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한 감정은 우리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 어떠한 불쾌함 없이 이 영화를 끝까지 감상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사회가 내뱉듯 진단해 버리는 ‘미친 사람’이라는 말인가? 알 수가 없다. 이런 연유로 ‘정상’인은 아무리 날고 기는 재주가 있더라도 ‘미친 사람’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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