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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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하우스 | 무심결에 행한 장난이 불러온 우울한 살의

Girlhouse movie po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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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하우스(Girlhouse, 2014) | 무심결에 행한 장난이 불러온 우울한 살의

“포르노는 더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알아? 완전히 다른 거라고, 주류가 됐고 인정받고 있어” - 카일리

얼마 전에 아버지가 사망해 가정 형편이 어려워진 카일리는 대학교에 다니는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고자 엄마 몰래 사업가 게리 프레스톤이 운영하는 온라인 포르노그라피 하우스인 걸하우스(GirlHouse)에 가입한다. 엄격한 규칙, 그리고 최첨단 보안 시스템에 우람한 경비원까지 갖춘 고급 기숙사처럼 보이는 걸하우스는 걸하우스에서 생활하는 미녀들의 사생활을 365일 24시간을 수십 대의 카메라를 통해 온라인으로 낱낱이 생중계되는 뜨거운 현장이다.

걸하우스(Girlhouse, 2014) scene 01

섹시한 사생활이 곧 돈이 되는 걸하우스에는 러버보이(Loverboy)라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걸하우스 입점 첫날부터 인기 만점 대박을 터트린 카일리는 곧 러버보이의 주요 관심 대상이 되고, 카일리는 러버보이의 요청에 응해 러버보이와의 일대일 채팅을 약속한다. 한편, 유치원 시절부터 카일리를 알고 지난 벤은 우연히 룸메이트가 걸하우스에 접속한 화면을 통해 카일리를 알아보게 된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카일리를 만난 벤은 자신이 걸하우스를 통해 카일리를 알아보게 되었다며 솔직히 고백하고 카일리는 솔직한 벤의 고백을 받아들인다.

걸하우스(Girlhouse, 2014) scene 02

보통 남자들처럼 야한 성적 농담을 주고받거나 스트립쇼를 보여 달라고 할 줄 예상했지만, 러버보이는 이상하리만치 진지하게 카일리와 일대일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다 러버보이는 컴퓨터 실력을 발휘하여 카일리에게 대뜸 자신의 얼굴 사진을 보여준다. 순간 깜짝 놀란 카일리지만, 재치있게 대답함으로써 상대방을 무안하게 하지 않고 상황을 무사히 넘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걸하우스 저택 안 게시판에는 카일리에게만 보여준 러버보이의 사진이 버젓이 걸려 있었고, 러버보이는 여러 카메라로 저택 안을 살피던 도중 우연히 자신의 사진을 발견한다. 황당하고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에 처음에는 당황했던 러버보이, 그러나 그는 사진에 자신을 모욕하는 글이 초등학생도 알아볼 만큼 또박또박 굵고 큰 글씨로 적혀 있는 것을 알아보고는 우울한 광적인 분노에 휩싸인다.

걸하우스(Girlhouse, 2014) scene 03

가끔은 영화 속 살인마에게 동정이 갈 때가 있다. 「더 데빌스 캔디(The Devil's Candy, 2015)」를 보며 그런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는데, 이 영화 「걸하우스(Girlhouse, 2014)」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러버보이의 살인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한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치욕이나 모욕을 안겨줬을 땐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각오는 해놓으라고 충고하고 싶다. 이 말은 살인도 ‘악’이지만, 동기 유발자도 ‘악’이라는 말이다. 사람인 이상 참는 데는 누구나 한계가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특별한 악의없이 무심결에 행한 장난이 어마어마한 결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 「걸하우스」는 잔혹하게 충고해준다.

하지만, 해킹 실력이 좋은 것은 그렇다 치고 굼뜨고 미련해 뵈는 살인마가 건장한 보안 요원들을 쉽게 제압하는 장면은 마치 살인마가 사냥하기 좋게 티나게 터를 닦아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 좀 실망스럽다. 그리고 피해자들이 살인마를 어떻게든 한 번은 기절시키지만, 확실하게 마무리를 짓지 못해 다시 살인마가 부활하는 장면은 살인마가 등장하는 여타 영화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레퍼토리다. 그래도 미녀들의 적나라한 사생활을 정당하게 훔쳐볼 수 있는, 남자들에겐 천국과도 같은 ‘걸하우스’에서 딱 한 달만이라도 살아보고 싶다는 되먹지도 않은 바람을 꿈꿀 기회를 준 이 영화에 심심치 않은 감사를 표한다.

‘러버보이’하니까 ‘러브모어’라는, 일라이자 헤이우드가 1726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시련의 고아』에서 위험에 빠진 연인을 구출하는 소설 속 남자주인공이 떠오른다. 소설의 대략적인 줄거리는 정숙한 아닐리아가 교활한 큰아버지 기랄도에 의해 무단으로 감금되었다가 아무도 모르게 광인의 집으로 끌려가고, 아닐리아를 짝사랑하던 매러선 대령이 우울증에 걸린 ‘러브모어’라는 이름의 시골 신사로 가장해 그녀를 광인의 집에서 구출한다는 내용이다(앤드류 스컬(Andrew Scull)의 『광기와 문명』 참고). 그러니까 두 이야기를 억지로 꿰맞추면 ‘러버보이’는 ‘러브모어’, ‘걸하우스’는 ‘광인의 집’, ‘죽음’은 ‘자유(구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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