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을 떠도는 영혼 | 선정규 | 굴원의 영혼이 남긴 발자취와 숨결
때문에 굴원이 “인류가 오랫동안 신봉해 왔던 원시의 오해를 깨트리고 어둠 속에서 횃불을 쳐든 사람”이라는 평가가 그다지 과장은 아니라 할 것이다. (『장강을 떠도는 영혼』, 186쪽)
굴원(屈原)이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세상을 떠났을 때 강변 근처에서 살던 사람들은 누가 시작했는지도 모르게 각자 집에서 쌀이며 밥을 들고 나와 강에 뿌리면서 입과 마음속으로는 이것을 먹고 제발 충신의 몸만은 상하게 하지 말라고 강에 사는 고기들에게 빌었다고 한다. 아마 이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을 테지만, 이후 매년 굴원이 세상을 하직한 단오절이면 멱라강 일대의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쫑즈(粽子)를 만들어 강변에 던지면서 모두 한마음으로 한뜻으로 다시 한번 물고기들에게 충신의 몸을 상하게 하지 말아 달라고 기원하는 행사가 성대하게 거행된다. 비록 무지렁이 백성일지라도 굴원의 변치않는 충정과 진득한 백성사랑, 그리고 한결같은 숭고한 품성에 마음속에서 절로 우러나오는 감동과 존경의 뜻을 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장강대교, 저 아래 어딘가에 굴원의....> |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중국문화 최초의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추앙받는 굴원은 단순히 이름뿐만 아니라 변함없는 충정, 진실을 추구하는 탐구정신, 속세에 물들지 않는 곧은 품성, 추하고 타락한 것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불굴의 저항,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는 고결함을 남겼다.
그가 걸어간 아침이슬처럼 맑고 투명한 행적과 그 곧디곧은 곧음을 우러러보며 몸 둘 바를 모르다가 어느새 날은 저물고, 그가 남긴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태초의 자연처럼 아름다운 문장에 도취하여 밥 먹는 시간도 잊었다. 능히 그의 문장은 사람을 홀리게 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술잔 가득 잠긴 술이 넘치는 것을 잊게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이 젓가락질하는 것을 잊게 한다. 능히 그의 기백은 사람을 전율케 하여 술을 마시는 사람의 술잔 가득 잠긴 술이 넘치는 것을 잊게 하고, 밥을 먹는 사람의 입을 다물게 한다. 어느새 물을 머금은 한지처럼 양 두 눈을 촉촉이 적시며 흐르던 눈물은 술잔 속으로 떨어지며 미세한 물결을 남기고, 두 줄기 눈물 자국이 선명한 얼굴은 감동에 복받쳐 환희에 젖는다. 독자는 굴원의 영혼이 남긴 묵직한 발자취와 향긋한 영혼의 숨결을 『장강을 떠도는 영혼(굴원 평전)』에서 조금이나마 느껴보기를 바란다.
붓과 종이를 벗 삼아 옛 성현을 노래하고 그리워하며 현실의 부조리에서 받은 울분과 분노로부터 자신을 위안하던 굴원의 죽음은 또 한 명의 성현을 탄생시켰다.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눈물겹도록 비장한 굴원의 시는 꼭 그 시대의 역사적 배경과 접목시키지 않더라도 현대인의 바닥이 훤히 내다보이는 우물처럼 바짝 마른 감성을 자극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뿐더러 인스턴트 식품처럼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지나치게 탐미적인 무절제한 현대시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고아스러우면서도 청초하고 단아한 굴원의 작품은 정신적 빈곤에 허덕이는 현대인의 황폐해진 영혼을 달래줄 수 있는 훌륭한 영혼의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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