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치 체포록 | 오카모토 기도 | 순수한 에도식으로 어우러진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
한시치는 에도 시대의 숨은 셜록 홈즈였던 것이다.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 39쪽)
‘체포록’의 유래
에도 시대에 도시의 사법, 행정, 입법, 경찰, 소방 등을 관장하는 행정부교소에서 경찰 업무를 맡았던 하급관리 직책으로 도신(同心)이 있었고, 도신은 자신의 수하에 오캇피키(岡っ引)라는 민간인을 두었다. 도신에게서 약간의 보수를 받긴 하지만, 정식 관리로 등록된 직책도 아니고 도신에게 받는 보수가 생계를 꾸려나갈 정도로 충분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따로 부업을 하는 오캇피키들이 많았다고 한다. 에도 시대 탐정물의 효시인 『한시치 체포록(半七捕物帳)』에서 한시치의 직업이 바로 그 ‘오캇피치’다.
평민이었던 한시치가 오캇피치로서 하던 일은 지금으로 보면 일종의 사립탐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살인 사건 등의 큰 사건이 일어나면 검시 관리들이 현장을 한 번 둘러본 다음 그 자리에서 해결이 안 되면 한시치 같은 오캇피키에게 수사를 요청한다. 사건을 넘겨받은 오캇피키는 자신들의 손과 발 노릇을 하는 정보원인 데사키들을 부려 목격자 진술을 확인하거나 주변 인물들을 수소문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이 직접 발품을 팔아 정보를 수집하면서 사건을 해결한다. 오캇피키는 그렇게 해서 모은 정보를 직속상관이라 할 수 있는 도신에게 보고하고 도신은 다시 윗사람에게 보고하는데, 이때 관청의 서기가 이러한 보고들을 기록한 장부가 바로 ‘체포록’이다.
괴담에 스며든 인간의 욕망
일본뿐만 아니라 동서양 괴담에 정통한 오카모토 기도(岡本綺堂)답게 한시치가 맡은 사건들은 하나같이 기괴하기 짝이 없다. 한 모녀의 꿈에서만 나타나는 물에 젖은 귀신, 행방이 들쑥날쑥하다 갑자기 나타나 어머니를 살해하고 도망친 처녀, 억울한 누명을 복수하기 위해 찾아온 원혼, 법의를 걸치고 죽은 여우, 낚시꾼에게 잡힌 잉어 남편을 찾아온 여자, 단발머리를 한 귀여운 여자아이가 가져오는 단발뱀의 저주 등 사건의 발단에는 전설의 고향에나 등장할법한 으스스하고 소름끼치는 기담이 자리한다. 아직 미신이 팽배하던 시대라서 그런지 이런 기담들은 등장인물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짐으로써 작품의 배경 속으로 깊숙이 스며든다. 그리고 이러한 괴담 뒤에는 시대를 통틀어 변하지 않는 인간의 시커먼 욕망이 안갯속을 헤매는 원혼처럼 떠돌고 있으니 괴담이 곧 인간이고 인간이 곧 괴담이다. 그럼에도, 눈썰미가 날카로운 한시치는 괴담에 한눈팔지 않는다. 과학적 냉철한 사고를 하는 그는 그 속에 숨은 진의를 놓치지 않고 사악한 인간의 의도를 밝혀냄으로써 얽히고설킨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낸다. 그래서 괴담으로 시작하지만 결말은 그 나름의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추리로 끝난다.
<TORII Kiyonaga / CC BY-SA> |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충분한
이 작품이 가진 또 하나의 묘미는 괴담이 유행하고 실제로도 많은 사람이 미신을 믿던 시기에 살았던 서민들의 삶이 따로 고증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본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 미야베 미유키는 시대 소설을 쓰기 전에 항상 『한시치 체포록』을 읽는다고 할 정도니 이 작품은 괴담, 추리 소설뿐만 아니라 역사, 시대 소설로 읽기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한시치 체포록』은 오싹한 괴담과 범죄 미스터리를 순수한 에도식으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소설과 시대 소설로서의 고색창연한 풍미까지 갖춘, 각양각색의 독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다양한 읽을거리로 어우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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