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 최초의 인류 | 도널드 조핸슨 | 털북숭이 아가씨와 떠나는 고인류학 여행
다소 거창한 꿈일지 모르지만, 산 너머를 볼 수 없을 때에는 얼마든지 큰 꿈을 꿀 수 있다. (『루시 최초의 인류』, 165쪽)
섭씨 40도는 우습게 넘어서는 뜨거운 태양 아래 문명으로 둘러싸인 삶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적 속에서 흙먼지 풀풀 일어나는 건조한 땅바닥을 넝마주이가 바닥에 떨어진 돈이라도 찾듯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때론 볼일이라도 보듯 쭈그리고 앉아 마치 흙 알갱이를 하나하나 새듯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들. 정말 금이라도 캘듯하지만, 어찌 보면 그들은 금은보석보다 더 귀중한 인류의 자산을 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바로 과거를 캐내어 인류의 진화 경로를 밝혀내는 고인류학자들이다.
이 책 『루시 최초의 인류(LUCY: THE BEGINNINGS OF HUMANKIND)』는 인류의 화석을 연구하는 고인류학자인 도널드 조핸슨(Donald Johanson)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뒤얽힌 지질 구조와 에티오피아의 정치적 난관을 헤쳐가면서 호미니드 화석 발견의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던 루시(LUCY,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를 발견해 낸 역경의 과정과 루시의 화석을 기술하고 해석하는 인고의 연구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한 보고서다. 더불어 루시 발견 이전의 고인류학 역사와 루시가 발견된 시기 전후에 펼쳐진 인류 기원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맛깔스럽게 곁들어져 있다.
<루시 누님의 유골, 120 / CC BY-SA> |
한편, 모든 고인류학자는 인류의 기원을 밝힌다는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연구를 한다지만, 명예와 이권을 놓고 벌이는 다른 분야의 치졸한 경쟁처럼 학자들 사이에도 발굴 권리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나 학문적 발전을 위한 건전한 비판이 아닌 무작정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비난, 루시를 발견한 저자에 대한 다른 학자들의 시기와 질투 등 뒤얽힌 지질 구조만큼이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학계 이면의 추악한 측면도 담겨 있어 다소 충격적이기도 하다. 학자들은 보통 사람보다 많이 배우고 책도 많이 읽은 사람들이라 인간적인 면이나 변화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면에서 조금은 다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성공을 향한 탐욕과 자신의 지식과 믿음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은 때론 많이 배운 것만큼이나 지독하기도 하다. 학계의 어두운 면을 보면 인류를 위한 사심 없는 진정한 과학자가 과연 존재할지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들은 그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에서 성공하고 싶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루시 최초의 인류』를 읽다 보면 루시를 발견한 덕분에 신출내기 청년 학자에서 일약 스타가 된 저자 도널드 조핸슨의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하면서도 우쭐해 하는 모습이 종종 아지랑이처럼 눈앞에 아른거리기도 하지만, 아프리카의 뜨거운 태양 볕조차 가소롭게 느껴지는 인류학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정이 모든 것을 용서하게 한다. 그리고 고인류학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쓴 것 역시 이 책의 장점이다. 고로 독자는 루시의 발견으로부터 해석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발굴 작업과 기나긴 연구 과정을 수면제가 따로 없는 따분한 학술적 어조로 들을 필요가 없다. 그 대신 독자는 마치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주인공처럼 (어느 영화에도 빠질 수 없는 미녀(?) 주인공으로서) 털이 복슬복슬한 루시 아가씨를 옆구리에 끼고, 또한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약방의 감초인) 악당과 마주친 절박한 위기 상황도 아슬아슬하게 모면하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부담없이 떠나면 된다. 그만큼 『루시 최초의 인류』는 자칫 딱딱하게 늘어질 수 있는 학문적 글들이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저술한 점을 높이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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