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4/14

그가 돌아왔다 | 누군가에겐 재밌지만, 누군가에겐 역겨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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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 티무르 베르메스 | 누군가에겐 재밌지만, 누군가에겐 역겨운

이 모든 것은 포탄공장 출신의 소박한 남자가 내는 세금으로 충당된다. 그리고 경험 많은 제국 총통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자본과 국제적 금융 세력인 유대인의 공모라는 점이 확실해 보인다. (『그가 돌아왔다』, 367쪽)

그가 돌아왔다? 도대체 누가? 철의 피를 흘린다는 비스마르크? 죽는 순간까지도 계산에 계산을 거듭한 위대한 천재 아인슈타인? 아니면 영혼의 귀를 가진 베토벤? 아무튼, 그들은 아니다. 그럼 누가? 바로 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주범 아돌프 히틀러가 다시 돌아왔다. 그것도 21세기 현재에 말이다. 물론 이 기상천외하면서도 전 세계인의 간담을 서늘케 할 히틀러의 복귀는 실제 상황은 아니고 다행스럽게도 티무르 베르메스(Timur Vermes)의 소설 『그가 돌아왔다: 다시 깨어난 히틀러, 유튜브 스타가 되다!』 속 가상현실을 통해서 돌아왔다는 말이다. 비록 그가 소설 『그가 돌아왔다』를 통해 다시 전 세계에 모습을 내비쳤지만, 혹시 진짜 히틀러, 또는 그런 자의 재림을 원하는 어느 광신도의 염원을 내비치는 불쾌한 작품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아찔하지 않을 수 없다.

1945년 4월 30일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한 히틀러가 66년 후인 2011년 8월 30일 베를린의 어느 공터에서 먼지가 좀 묻고 휘발유 냄새가 나긴 하지만 완벽한 제복차림에 약간의 두통을 느끼며 깨어남으로써 그는 돌아왔다. 짝퉁이 아닌 진짜 히틀러 그가 다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적이지만, 그가 컴퓨터와 인터넷, TV 등 현대의 최첨단 대중 매체 시스템에 천부적인 자신의 재능인 언변술과 선동 능력을 접목시켜 유튜브 스타가 되는 등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인물이 된다는 것도 가히 엽기적이다. 한때 뮌헨의 비어홀에서 맨주먹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그가 또다시 맨주먹으로 TV와 인터넷을 통한 쇼비지니스적 정치인생을 시작한 것이다. 결국, 그는 과거에 없었던 신기술에 힘입어 일부 과격인사들의 폭력에 희생당하면서도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한다.

전 세계를 재앙과 파국의 도가니로 몰고 갔었던 그가 어떻게 재기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그가 실제로 활동했을 때와 같은 유사한 상황, 즉 독일 국민은 큰 정치적 • 경제적 • 사회적으로 위험에 빠져 있지만, 정치인 중에서 이 난국을 헤치고 나갈 지도자와 국민적 의지가 없다는 과거의 혼란이 현대의 독일에서도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의 책임 의식 부재, 세계화와 중국의 부상이 일으킨 경제 테러리즘, 저임금을 무기로 한 외국인들의 노동 시장 잠식, 고학력 실업자 등 독일인을 불안에 떨게 하는 위기감과 쓰레기처럼 쌓인 불만들이 히틀러를 다시 부활시키는 극단의 해결책을 만든 셈이다. 그래서 히틀러는 자신이 시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장벽을 넘어 혼란을 잠재워야 한다는 역사의 사명을 띠고 투입된 것으로 판단한다. 그는 누가 떠민 것도 아니고 누가 추천한 것도 아니고 누가 원한 것도 아니지만, 스스로 독일 운명의 짐을 지고 다시 투쟁의 투쟁을 시작한다.

처음에 그는 자신을 특별히 보위할 무장친위대도 없고 마음껏 부려 먹을 군대도 없고 군대를 지휘할 사령부는 더더욱 없는 무기력한 현실에 낙담하지만, 약간의 운과 유대인 희생자의 가족마저 설득시키는 세 치의 혀로 새로운 친위대, 즉 인터넷 추종자와 프로덕션 회사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그의 엉뚱하면서도 직설적이며 과격한 주장이 처음엔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 정도로 치부되지만, 굽히지 않는 의지와 투쟁의 연속에서 새로운 사회에 적응한 그의 언변술이 구태의연하고 모호했던 주장의 초점을 잡아주면서 서서히 설득력을 얻어 간다. 과거 그 당시처럼 낙담한 국민의 돌처럼 굳어진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줄 위안과 일말의 희망을 준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명석하게도 히틀러는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면서 현재의 평화롭고 폭력이 없는 시기에 자신의 예전 방법이 통할 리가 없는 것도 깨닫는다. 이로써 기특하게도 세상과 타협하고 화해할 준비가 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Bundesarchiv, B 145 Bild-F051673-0059 / CC-BY-SA / CC BY-SA 3.0 DE>

이미 잉크가 칙칙하게 굳은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가정은 망상일 뿐이지만, 그럼에도 그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카리스마와 신이 내린 언변술을 지닌 히틀러가 만약 21세기에 태어났다면 어떤 일을 했을까 하는 질문은 쉽게 떨쳐버리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로운 설정이다. 또한, 이 문제에는 당연히 답이 없기에 소설처럼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가뭄의 단비 같은 통쾌한 말솜씨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대범함이 독일인의 불안과 불만에 다소나마 위안을 줄 수 있다면, 표현과 생각의 자유가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그와 같은 존재가 있어서는 안 될 것도 없다. 그러나 이런 역사적 가정이 진짜 히틀러의 모습과 그가 전 세계에 끼친 폐해를 교묘하게 감출 수 있다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무튼, 히틀러의 시대착오적이고 전투적이며 선동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의미심장한 언변과 고리타분한 작금의 현실이 빚어내는 부조리는 유쾌하다 못해 포복절도라도 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티무르 베르메스(Timur Vermes)의 소설 『그가 돌아왔다』가 인기도서가 됐다는 것은 히틀러를 재등장시켜야 할 만큼 독일 국민이 현재 독일에 상당한 불만을 품고 있다는 뜻이기에 정치인들에게 『그가 돌아왔다』는 그냥 웃고 넘기기에는 쓴맛도 꽤 강하게 느껴질 것이다. 히틀러가 어떤 인물인지 알고 색안경이 없고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더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지만, 히틀러가 어떤 인물인지 알지만 상상력이 풍부하지 못한 고지식한 사람이라면 한마디로 역겨운 책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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