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2

사형집행인의 딸 | 고증으로 수준 높인 중세 추리

The Hangman s Daughte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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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인의 딸 | 올리퍼 푀치 | 역사적 고증으로 한 단계 수준을 높인 중세 추리물의 걸작

“고생하는 건 엉뚱한 사람들이야,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엉뚱한 사람들이라고!” (『사형집행인의 딸』, 189쪽)

마녀 사냥에 맞서는 사형집행인

서기 1659년 4월 24일 화요일 아침 화요일, 성벽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 숀가우(Schongau) 앞을 힘차게 흐르는 레흐 강 위로 자그마한 한 소년이 나뭇잎처럼 빙빙 돌면서 떠내려오고 있었다. 숀가우 짐마차꾼의 아들로 알려진 소년은 다행히도 강둑에 있던 나무꾼에 의해 발견된다. 소년은 아우크스부르크로 첫 항해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뗏목 사공들의 도움으로 숀가우로 옮겨져 오지만, 마을 주민들이 지켜보던 가운데 곧 숨지고 만다. 젊은 의사 지몬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의 소년을 조심스레 살펴보니 아이가 놀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익사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후두부에 둔기로 강타당한 흔적과 심장 주위에 나 있는 일곱 군데의 자상은 소년이 누군가에 의해 잔혹하게 살해된 것임을 증명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지몬과 마을 주민들의 시선을 끈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소년의 한쪽 어깨뼈 아래에 문신처럼 새겨진 기호였다. 빛바랜 보라색 원 밑에 불 쑥 튀어나온 십자가가 붙어 있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바로 마녀의 상징이었다.

이 확연한 상징으로 말미암아 숀가우 주민들과 도시를 지배하는 유력자들은 일말의 수사도 없이 숀가우의 산파 마르타 슈테흘린을 마녀로 지목하고는 감옥에 가둔다. 마을은 마녀를 불태우라는 광분에 휩싸였고 유력자들은 마녀를 화형에 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Jakob Kuisl)에게 고문할 것을 명한다.

퀴슬은 망설였다. 이 여인은 퀴슬의 아이들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도와주었고, 아무리 상상해보려고 애써도 죽은 소년을 자식처럼 사랑했고, 어머니가 없었던 소년 역시 엄마처럼 따랐던 산파가 소년에게 그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오랫동안 숀가우의 사형집행인 직업을 대물림받았던 퀴슬 가문은 생계가 고문과 사형집행에 달렸다. 그래서 사형집행은 산파에게 몰래 약속한다. 조금만 참고 견디라고, 그러하면 자신이 곧 진범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이다.

산파가 감옥에 갇혔음에도 또 다른 사건들은 연달아 일어난다. 산파를 엄마처럼 따르던 다른 고아 소년들도 잇달아 살해된 채 발견되었고, 이뿐만 아니라 화재, 납치, 파괴 등 참혹한 사건들이 연달아 마을을 덮친다. 전쟁 이후 겨우 제자리를 찾았던 마을의 평화가 마녀와 악마에 의해 깨어지는 것 같아 마을 주민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다. 더군다나 마녀들이 숲에서 춤을 추며 악마와 짝짓기를 한다는 발푸르기스의 밤인 4월 30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The Hangman s Daughter by Oliver Pötzsch

야만이라는 암흑을 거부하는 단 하나의 빛

추리 소설 『사형집행인의 딸(The Hangman s Daughter)』 은 비록 단아한 한 편의 추리소설이지만, 배경과 등장인물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특히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은 실존인물이며 놀랍게도 저자 올리퍼 푀치(Oliver Pötzsch)는 이 퀴슬 가문의 후손이라고 한다. 또한, 작품에서 종종 언급되던 1589년의 숀가우 마녀재판은 실제 있었던 비극으로 당시 60건 이상의 사형이 또 다른 퀴슬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과 배경은 몰입감을 높여주는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마녀 사냥이라는 이름 아래 야만이 횡횡하고 암흑이 지배하던 시대, 사람들은 정확한 증거를 기초로 한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사건 해결을 추구하기보다는 빨리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의 두려움과 흥분도 가라앉히고 더불어 눈요깃거리도 제공할 수 있는 마녀 재판을 선택했다. 여기에도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경제성의 원리가 적용된 것일까. 그들은 희생자가 무고한 사람일지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모든 나쁜 일은 마녀와 악마 탓으로 돌리면 골치 아프게 머리를 따로 굴릴 필요가 없었고 사건 해결에 드는 시간과 돈도 절약되었다. 또한, 이 기회에 평소에 행동이 의심스럽거나 평판이 좋지 못한 적당한 먹잇감을 골라 마녀로 몰아세운 다음 제거함으로써 눈에 가시거리도 제거할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 누구라도 혹독한 고문 아래서는 평생 책 한 권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눈물겨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없는 죄도 술술 만들어 내기 마련이니 이 어찌 간단명료한 해결책이 아닌가. 한편으로 마녀 화형식은 오락거리에 굶주린 대중을 모처럼 위로하고, 그로 말미암아 지배층을 향한 존경심도 다소 고양할 수 있는 화려한 볼거리였다. 장작불에서 통구이가 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정말 누구 하나 손해 볼 것 없는 장사가 따로 없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사람으로 응당 지녀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동정심을 가진 자가 있었으니 바로 사형집행인 야콥 퀴슬이다. 사람을 죽이는 법의 하수인이면서도, 그 뒤꽁무니로는 사람을 살리는 의학과 약초학에도 능한 그는 부조리한 유력자들의 횡포에 맞선다. 그는 자신을 닮아 괄괄한 딸과 이상야릇한 소문으로 자자한 젊은 의사 지몬과 함께 사건에 조심스럽게 접근하면서 다시금 마을에 들이닥쳐 모든 것을 황폐화시킬지 모르는 마녀 사냥을 막고 마을을 구하는 데 큰 몫을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무고한 사람을 마녀로 몰아 불에 태우자고 외치는 사람이나 이 부조리한 일을 막으려는 사람이나 모두 하나의 신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다만, 다른 것은 퀴슬은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나머지는 쾌락과 탐욕, 그리고 두려움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겉모습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려운 심성이 순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가 아닐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느님을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베푸는 너그러운 분으로 상상하고, 또 어떤 사람은 엄하게 죄를 꾸짖는 심판자로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치면서...

아무튼, 추리소설은 개인적으로 좋은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한 일본 작가들 위주로 읽어왔는데, 중세를 배경으로 한 올리퍼 푀치의 『사형집행인의 딸』은 지금까지 봐왔던 추리소설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역사적 고증과 개연성에 상당한 고심한 저자의 노력이 그냥 묻히지 않고 전체적인 작품의 질을 높이는데 상당하면서도 독특한 몫을 해낸 것이며, 명탐정의 직업이 합법적으로 사람을 죽이고 고문하는 사형집행인이라는 점도 만고에 없는 이 작품만의 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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