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12

빅뱅 이전 | 일상에서는 결코 떠올릴 수 없는 주제

Once Before Time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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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 이전 마르틴 보요발트 | 일상에서는 떠올릴 수 없는 새로운 주제에 빠져들다

원제: Once Before Time: A Whole Story of the Universe by Martin Bojowald
자연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작아지지는 않는다. 자연에 대한 경외심에 의해 많은 이들이 과학자가 되기로 결심했고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은 과학의 연구결과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빅뱅 이전』, 440쪽)

일반 상대성 이론, 양자 이론 등 기초 과학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류는 자연에 대해 더 많은 설명과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해지면서 그저 막연히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만 보던 우주를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으로 확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많은 과학자의 노력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아직 그 어떠한 이론도 우주를 완전하게 기술해내지는 못하고 있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공간과 시간을 합쳐 물리적 의미가 있는 시공간으로 격상시켰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 이론으로 빅뱅의 시작점을 설명하면 무한대로 높아지는 온도와 밀도에 의해 별의 모든 질량이 붕괴하고 우주의 부피가 사라지는, 시간 자체의 종말이라는 특이점과 만나게 된다. 이론의 한계를 보여주는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은 일반 상대성 이론 자체도 확장이 필요하다는 증거이며 양자 우주론의 방정식들도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다. 현재까지 두 이론은 상호 호환성도 없다. 빅뱅의 특이점으로 붕괴하는 우주를 방지하고 이것을 보다 유연하게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반 상대성 이론과 양자 이론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등장한 이론이 ‘끈 이론’과 ‘루프 양자중력’이론이다.

끈 이론은 마술 같은 놀라운 면과 유일한 수학적 체계화의 가능성으로 깊은 인상을 주지만 넓고,광활하고,정리되지 않은 해들의 풍경이 메피스토펠레스의 지옥불 냄새처럼 쓴맛을 남긴다. 그리고 루프 양자중력의 역학은 너무 복잡해 파우스트가 영혼을 배척했던 것처럼 첫눈에 많은 연구자들이 이것을 배척할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이 형식들 중의 하나로 세상의 진리를 힐끗 보았을지도 모르지만,우리는 진리를 모르고,절대로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440쪽)

일반 상대성 이론이 보여준 특이점으로의 붕괴가 세상의 종말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론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인지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 만약 특이점이 이론의 불완전성에 기인한 것이라면 빅뱅 이전에도 뭔가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루프 양자중력은 설명한다. 이 말은 우주는 빅뱅 이전에도 존재했으며 잃어버린 우주의 기억을 찾아야 할 새로운 사명이 인류에게 부여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우주를 치료하는 유일한 길은 빅뱅 이전의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뿐이다. 그 길은 인류에게 아득하고도 막막한 아주 긴 여행이 될 것이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찔하면서도 흥미진진한 모험이기도 하다. 마르틴 보요발트(Martin Bojowald)의 『빅뱅 이전(Once Before Time: A Whole Story of the Universe by Martin Bojowald)』은 그 멀고도 험한 인류의 여정을 대중과 함께하고픈 한 과학자의 의지와 노력이 담긴 책이다. 참고로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e)의 『우주의 구조(The Fabric of the Cosmos)』가 주로 ‘끈 이론’에 비중을 두고 있다면, 『빅뱅 이전』은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 큰 무게를 둔 책이다. 그러나 저자도 인정하듯 아직 두 이론은 불완전하며 두 이론에 집중하는 과학자들 역시 과학과는 거리가 먼 믿음을 이론 뒤에 감추고 있다고 고백한다.

Once Before Time: A Whole Story of the Universe by Martin Bojowald

저자 마르틴 보요발트는 머리말에서 과학자가 대중적인 책을 쓰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면서 과학자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는지를 판명하는 진정한 시험은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는 열린 마음을 가진 비전문가에게 지식을 설명하여 이해시킬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시험은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내게는 실패한 것 같다. 이 책은 이전에 읽었던 ‘끈 이론’에 비중을 둔 브라이언 그린의 『우주의 구조』에 비하면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대중을 위한 교양도서치고는 상당한 난도가 있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 일상에서는 결코 떠올릴 수 없는 ‘빅뱅 이전’이라는 새로운 주제를 필자의 뒤죽박죽 ‘호기심 만물상자’에 채워넣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자 한다. 비단 이것은 필자에게만 적용되는 사항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빅뱅 이전』을 통해 처음으로 루프 양자이론을 알게 되었고 부단한 인내심을 발휘한 끝에 힘겨운 여행을 무탈하게 마친 듯하지만, 지금 루프 양자이론에 대해 생각나는 것은 공간을 원자적으로 취급한다는 것 정도이다. 아무래도 과학적 이해 능력이 부족한 필자에겐 작은 끈이 진동하는 동물적인 모습의 끈 이론이 더 상상하기 쉬웠나 보다. 그러나 각 이론을 연구하는 집단들의 지적인 족벌주의를 타파하고 열린 마음으로 서로의 다양한 접근을 받아들이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야 한다는 저자의 진심 어린 충고에는 충분한 공감이 간다. 그것은 비단 과학 분야뿐만 아니라 지구, 더 나아가 우주에 사는 모든 지적 생명체에게도 해당하는 조언이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리뷰는 2016년 5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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