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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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30.

[책 리뷰] 그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전쟁 ~ 한국전쟁(박태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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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전쟁

원제: 한국전쟁 by 박태균
필자는 이 전쟁은 시작되어서는 안 될 전쟁이었지만 시작되었고,끝나야 했는데도 끝나지 않은,그러나 반드시 끝나야만 하는 전쟁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전쟁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국전쟁』, 9쪽)

자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무렵까지만 해도 한국전쟁을 말하면 무엇보다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그 전후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전쟁에 대한 모든 잘못과 책임은 무조건 북한에 있다는, 지독한 반공사상이 수십 년 묵은 때처럼 아직 남아 있었다. 물론 한국전쟁은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사실에는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겠지만,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에 대한 책임을 전부 북한에만 묻는 것에는 일말의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떤 사건의 책임을 가해자에게만 덮어씌우는 것은 안이하고 무책임한 행동이며 이런 식의 일방적 역사 해석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것이 없다. 가령 일제강점기의 원인을 제국주의적 야욕에 휩싸인 일본의 잘못으로만 판단하고 전 세계적으로 팽배한 제국주의적 흐름과 근대화의 역량을 거스른 채 내부혼란으로 침략의 빌미를 제공한 조선왕조의 오류를 무시한다면 또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엄연한 국제 사회의 현실이다. 한국전쟁도 마찬가지다. 과연 우리는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 처참했던 민족상잔의 비극을 통해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리고 다시는 그러한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일이 되지 않는 한, 설령 통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민족 분단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끝없이 되씹고 되씹어야 할 질문들이다.

태균의 『한국전쟁』은 한국전쟁의 기원과 발발, 그리그 그 영향 등 한국전쟁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인 분석과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아직도 명확하게 실타래가 풀리지 않은 한국전쟁의 주요 의문과 쟁점들 위주로 기술하고 있으며, 주요하게 다루는 영역에서만큼은 가능한 한 다양한 의견과 상황을 수렴함으로써 북한이나 남한 등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려고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일례로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북한이나 남한의 한쪽 자료만 참고할 수 있어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아예 본문에서 배제했다. 호기심 충만한 독자에겐 약간은 아쉽기도 한 부분이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저자 박태균의 신념과 신중함을 재차 확인할 기회이기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책에 대한 신뢰는 더욱 두터워진다.

한국전쟁의 주요 이해관계 당사국들은 전쟁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다. 전쟁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민간인이 죽고 도시가 파괴되어 나라가 잿더미가 되어도 그들은 전쟁의 실패를 시인하기보다는 죽음, 고통, 파괴라는 전쟁의 무덤 위에 파렴치하게도 자신들의 깃발을 꽂고 승리를 자화자찬하는 샴페인을 터트린다. 그러나 참혹한 이 전쟁은 실패의 연속과정이었으며 그렇기에 누구도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 한국전쟁의 승패에 대한 박태균의 냉철한 해석이다.

역사학자들은 앞으로 일어날 전쟁을 막고자 하는 바람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전쟁사를 연구한다. 그러나 인류사는 그런 역사학자들의 바람은 온데간데없이 전쟁의 연속이었음을 보여주었으며, 칼 세이건이 명명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는 불을 내뿜는 전쟁이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전쟁에서 승리하건 실패하건 그 피해는 전쟁과 무관한 국민에게로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굳이 그런 것에 연연할 필요가 없는 파렴치하고 무책임한 정부나 정치인들은 국익이라는 기치 아래 사욕을 숨기고 전쟁을 일으킨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한번 일어나면 국가의 모든 것을 초토화시킬 수 있기에 일어날 확률이 낮더라도 준비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러나 전쟁은 돈, 물량으로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대전에 와서 물량전이 대세가 되긴 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전쟁을 치르는 것은 마오쩌둥이 강조했듯 사람이다. 물질적 무장 못지않게 정신적 무장도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신적 무장은 무엇으로 홀맺을 수 있을까. 무지렁이 필자로서는 뭐라 꼭 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객관적인 역사 이해와 넓은 역사 안목이야말로 정신적 무장의 기틀이 되지 않을까?

지막으로 책하고는 크게 상관없지만, ‘한국전쟁’하고는 아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예비군 훈련 때 겪었던 시답잖은 일화로 마무리하련다. 필자가 예비군 시절 사격 훈련을 받을 때 지급받은 총은 감격스럽게도 한국전쟁 때 쓰던 카빈총이었다. 이미 한 차례 치열했던 전쟁을 통해 피비린내나는 전장을 몸소 체험한 카빈 노병은 전쟁이라면 신물이 났던 것일까? 그래서 사격 연습을 또 다른 전쟁의 전초전으로 이해한 것일까? 아무튼, 지친 노병은 내 집게손가락이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음에도 무심하게 총알을 발사시키지 않았다. 무안해진 필자는 엎드려 쏴 자세에서 본능적으로 한쪽 발을 들었고 잠시 후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한 교관이 다가왔다. 그러나 교관도 노병의 고집을 꺾을 수는 없었다. 하긴 짬밥 차이가 수십 년이나 나니, 참모총장 할아버지가 와도 어쩔 수 없으리라. 아마 필자가 실제 상황에서 이 카빈총을 지급받은 상태에서 적과 마주쳤더라면 총알 한 발 못 쏴보고 죽었을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억울한 죽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카빈총은 2015년을 기점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한국전쟁을 통해 물려받은 것이 박물관에서 편안히 남은 삶을 보내야 할 낡고 손때 묻은 총뿐이라면 누가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이 리뷰는 2016년 4월 3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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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5.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 Koplayer vs NOX vs Bluestacks vs Droid4X, 3DMark 벤치마크

치후 360(▶ 2017년 11월 20일 추가: 아, 이 얼마나 그리운 이름인가? 아시다시피 이미 서비스 종료했다)업로드용으로 쓸만한 안드로이드 에뮬레이터를 고르는데 참고할 겸 3DMark Ice Storm extreme으로 에뮬레이터를 테스트했다. 초기 설치값 그대로 테스트를 진행(Asus K55DR, 8G, SSD)했으며, 오늘 테스트에 사용된 에뮬레이터 외에도 Windroye 등의 다른 에뮬레이터도 많다.

Droid4X는 안드로이드 언어 설정에서 한국어 지원이 안 되며 안드로이드 축구 경영 게임 Top Eleven이 지원 안되는 것으로 보아 게임 어플 지원이 미흡한 것 같다. Windroye는 외장메모리(32G)가 (동적 디스크가 아닌) 고정 방식으로 할당되어 있어 하드디스크 공간을 낭비하는 단점이 있으며(다른 에뮬레이터도 내부 or 외부저장소로 사용하는 가상디스크가 차지하는 공간이 확장만 되고 설치된 어플 등의 자료를 삭제해도 줄어들지는 않는 것 같다. 언인스톨하고 재설치하거나 에뮬레이터 설정에서 초기화, 아니면 vid, vmdk를 지원하는 가상디스크 유틸로 디스크 정리를 해줘야 한다.) 3DMark 실행이 안 되었다. 이전 버전에서는 무난하게 한국어가 지원되었던 Koplayer도 새 버전에서는 안드로이드 언어 설정에서 한국어 지원이 안 되었다.

벤치마크 결과는 Bluestacks이 가장 높은 3D 성능을 보여 준다. 그러나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도 백그라운드로 실행되는 서비스가 많아 무겁게 느껴진다. PC의 파일을 안드로이드로 보낼 수는 있지만 안드로이드 어플에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공유 기능도 없다. Koplayer 공유 기능의 마운트 지점은 안드로이드 시스템(mnt/asec/share/)으로 지정되어 있어 치후 360 같은 일반적인 어플에서 접근할 수가 없다. Nox의 공유 기능은 C:\Users\사용자이름\Nox_share\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심볼릭, 정크션 링크가 먹히지 않아 앞 폴더에 직접 파일을 복사시켜놔야 한다. Windroye는 아예 PC와의 공유 기능이 없고, Droid4x는 완벽하게 작동한다. Droid4X, Koplayer, NOX는 다중 실행도 지원한다.

PC에서 공유시켜 놓은 폴더를 ES 파일 탐색기의 네트워크 기능을 통해 접근하는 것은 모두가 가능하기에 치후 360에 업로드할 파일을 안드로이드 저장소로 쉽게 복사할 수 있다. 오로지 치후 360 업로드용만 사용한다면 공유 기능이 완벽한 Droid4X가 좋을 것 같지만, Droid4X는 PC가 절전모드에서 복구하면 먹통이 되고 실재로 치후 360으로 업로드를 해보면 다른 에뮬레이터에 비해 접속이 자주 끊기는 등 불안하다.

2017년 11월 20일 추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구글 블로거로 옮기면서 현재 사용하는 녹스플레이어(NoxPlayer) v6.0.0.0도 테스트해보았다. 그동안 1년하고 반년이 조금 지났을 뿐인데 녹스는 버전 3.x에서 6.x으로 껑충 뛰어올랐고, 더불어 성능도 향상되었다. 참고로 Koplayer는 v1.4.1055, Bluestacks는 v3.50.66, 마지막으로 개발이 중단된 것으로 보이는 Droid4X는 0.10.6가 현재 최신 버전이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25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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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24.

[책 리뷰] 낯설지는 않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情’ ~ 낯익은 세상(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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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지는 않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情’

원제: 낯익은 세상 by 황석영
쓰레기장에서 바르게 사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사람들이 돈 주고 물건을 마음 내키는 대로 사 다 가 쓰고 버린 것처럼 자기네도 더이상 쓸 데가 없어져서 이곳에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낯익은 세상』, 147쪽)

14살 딱부리가 엄마와 함께 정든 산동네를 떠나 도착한 곳은 꽃섬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어여쁜 섬 이름과는 다르게 악취 나는 쓰레기로 뒤덮인 곳이었다. 강 건너 화려한 도시의 온갖 잡다한 쓰레기들이 그곳으로 모였고, 꽃섬에 판자촌을 형성하여 주거하는 주민들은 그 쓰레기들로 먹고살았다. 딱부리와 딱부리 엄마는 아빠 친구 아수라 백작의 주선으로 그곳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고, 아수라 백작의 약속대로 그곳의 수입은 산동네에서 장사하던 때보다 훨씬 좋았다. 새사람이 되려고 교육대에 강제로 끌려간 아빠를 대신하여 딱부리도 엄마처럼 고무장갑을 끼고 한 손에는 쇠스랑을 쥐고 작업에 나섰다. 쓰레기들은 더럽고 볼썽사나웠다. 악취는 매캐하고 비릿하고 숨이 막히고 구역질 났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낯설었다.

가지 세상이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에 등장한다. 작품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지만 휘황찬란한 백화점의 진열장처럼 다양한 물품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도시, 그리고 그 도시에서 버려진 쓰레기들로 먹고사는 꽃섬, 마지막으로 신내린 증상이 있는 빼빼엄마가 남몰래 보살피는 김가네 대가족이 살았던 꽃섬의 목가적인 옛적 삶이다.

자본주의에 먹힌 도시는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를 부추기고,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역시 이에 발맞추어 자나깨나 새것을 강조하면서 소비자를 쉴 새 없이 자극한다. 도시민에게 절약은 웬 말이며 소비야말로 자신의 가치증명에 다름없다. 이로써 사람들이 매일 먹고 마시고 그에 따라 똥오줌을 진탕 싸대는 것처럼 탐욕과 허영을 먹으며 대량의 쓰레기를 배출하는 소비지상주의 엔진은 완성된다. 그러나 도시민의 낭비는 꽃섬 주민들에겐 매일매일의 양식이다. 꽃섬 주민들은 자본주의적 탐욕에 의해 낭비된 물건들, 즉 쓰레기에 의지해 생존하기 때문이다. 또한, 꽃섬 주민들은 도시에서 수거된 쓰레기를 통해 도시의 존재를 실감하고 도시적 삶을 꿈꾼다. 즉, 쓰레기는 서로 전혀 다른 세계인 도시와 꽃섬을 은밀하게 연결해주는 매개체이다. 그리고 땜통이 딱부리와 함께 딱 한 번 구경했던 백화점 동네를 꿈에도 잊지 못하는 것처럼 도시는 꽃섬 주민들에게는 눈앞에 훤히 보이지만 차마 갈 수 없는, 꿈속에서나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아득한 곳이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꽃섬에 살았던, 가끔 도깨비불이라는 신비한 모습으로 땜통 앞에 나타나는 김가네 가족들이 있다. 어느 날 딱부리와 땜통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가네의 막내는 좀 창백해 보이지만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막내는 식구들이 아프다며 메밀묵을 먹으면 나을 수 있다고 딱부리와 땜통에게 도움을 구하고 두 사람은 빼빼엄마와 그녀의 아버지인 고물장수 할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려 폐허가 된 여울목 당집서 제사를 지낸다. 덕분에 원기를 회복한 김가네 가족들은 저마다 고마움의 말을 한마디씩 던지고 당집을 떠나고, 딱부리와 땜통은 막내를 따라 그들이 사는 옛날 꽃섬을 보게 된다.

잠시 멈춰 서서 강을 내다보면 한가운데 숲이 우거지고 나직한 산도 있는 이웃 섬이 보였고 돛을 단 조각배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강변 풀밭에는 송아지를 거느린 어미소가 풀을 뜯고 있었다. 풀꽃이 가득 피어난 강가에는 오리가 날아앉거나 물장난을 치는 게 보였다. (『낯익은 세상』, 136쪽)

딱부리와 땜통이 본 옛날 꽃섬의 모습은 어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딱부리는 김가네 가족들의 실상을 보게 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각자의 정든 물건에 깃든 영혼의 현신이었던 것이다. 당집 근처에는 마른 샘이 있었고, 그 말라버린 웅덩이 안에는 나뭇결이 갈라지고 터진 절굿공이, 끝이 모두 닳아 버린 수숫대 빗자루,뒤축이 떨어져 나간 남녀 고무신 한 짝씩,녹이 파랗게 슨 은비녀 등 살아생전 정든 물건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딱부리가 이런 못쓰는 물건들을 왜 소중하게 감춰두느냐고 빼빼엄마에게 묻자 그녀는 서로 간에 정들어서 그런 거라고 대답한다. 이번에는 딱부리가 쓰레기장 물건들에 대해 묻자 빼빼엄마는 야멸치게 말한다.

“저것들은 사람들이 정을 준 게 아니잖아!”

딱부리와 땜통이 김가네 가족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정 때문이었고, 어느 시골 풍경과 다를 바 없는 한가하고 평화로운 김가네 가족들의 옛 꽃섬이 아직까지도 기억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손때가 스며든 정든 물건들 때문이었다. 쓰레기로 뒤덮인 현실의 꽃섬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밭을 갈고 고기를 낚으며, 여타 시골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삶이 존재했던 옛 꽃섬을 이어주는 것은 사물에까지 깊숙이 스며드는 사람의 정(情)이었던 것이다.

랬다. 정말 예전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다. 물건이 귀했던 시절이라 그럴지는 몰라도 애지중지 사용하던 물건 하나하나에는 주인 특유의 손때가 타기 마련이었고, 그렇게 매끈하게 손때가 묻은 물건은 왠지 더럽다기보다는 사람의 피부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필자의 집에도 국수를 삶을 때는 쓰는 거진 30년을 사용한 커다란 양은 대야가 있다. 사람으로 치면 어른으로 성장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으니 사람의 피부가 생기를 잃어가는 것처럼 대야의 색이 바래는 것은 당연하지만, 딱히 국수 삶는 일 외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바닥과 옆구리는 곰보처럼 긁히고 파인 자국들로 도배되어 있다. 마치 사람이 나이를 먹으며 생기는 주름처럼 말이다. 그래도 보기 흉하다는 생각은커녕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한 생각이 먼저 든다. 오랫동안 우리 식구의 국수 삶는 일을 책임져왔으니 대견하고 고맙지만, 사람도 나이를 먹으면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맞듯 이 녀석도 언젠가는 바닥에 구멍이 뚫려 제구실을 못하는 날이 올 것을 생각하니 안쓰럽다. 이 녀석이 없다고 국수를 못 먹는 것은 아니고 특별히 이 녀석으로 국수를 삶은 면이 더 맛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끔 이렇게 오래 사용했던 정든 물건이 제구실을 못해 쓰레기로 버려야 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편치 못하다. 마음이 편치 않을 뿐만 아니라 버리고 나서도 쉽게 잊지 못한다. 아마도 이 녀석을 떠나보내고 나면, 새 양은 대야에 국수를 삶을 때마다 생각날 것이다. 비록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하등의 사물이지만, 사람은 이런 사물에까지 정을 붙이고 살 정도로 다정다감한 동물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처럼 다정다감했던 우리가 사리사욕만 채우는 이기적인 좀스러운 동물로 변했다.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은 낯익지만, 점점 사라져가는 사람의 따스한 정을 되새겨준 따뜻한 작품이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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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9.

[책 리뷰] ‘자유’를 꿈꾸고 ‘일탈’을 욕망하다 ~ 허클베리 핀의 모험(마크 트웨인)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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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꿈꾸고 ‘일탈’을 욕망하다

원제: 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 by Mark Twain
놈들이 자기들을 왕이니 공작이니 하면서 우리가 그리 불러주길 원한다면,그게 동족의 평화를 유지해 주는 한 나는 반대하지 않았어. 짐한테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에 굳이 말을 하지 않았고. 내가 아버지한테서 배운 건 쥐뿔도 없지만,그런 인간들과 잘 지내는 최상의 방법은 멋대로 놀라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라는 건 배웠거든. (『허클베리 핀의 모험』, 195쪽)

벨 문학상 작가 헤밍웨이는 미국의 현대문학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이라는 책 한 권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한 시대의 획을 긋고 그 선을 훌쩍 넘어설 만큼 뛰어난, 진정한 명작은 지역적 편차와 시대적 균열을 뛰어넘어 모든 세대에 걸친 다양한 독자에게 두루두루 재미와 감동을 주듯, 인류의 문명이 존속하는 한 전 세계 많은 독자에게 꾸준히 사랑받을 작품이라는 뜻이다. 이 책이 출간될 당시에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했던 흑인 노예 문제를 비꼬며 풍자한 것이 가장 큰 화제가 되었을 것이지만, 지금은 흑인 노예 문제는 특정 지역을 제외하고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그것은 출판 당시에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던 작품의 주제가 현대인에게는 크게 호감을 살 수 있는 특별한 이야깃거리는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현대인에게 다른 작품들에서 얻을 수 없는 독특한 감흥을 준다. 그것은 무엇일까?

것은 바로 ‘일탈’이다. 꽉 끼는 쫄바지처럼 우리를 조이고 압박하는 거대한 ‘도시’와 무정한 ‘사회’에 갇혀 살면서 무시 못할 갑갑증을 느끼는 현대인은 무엇보다 ‘자유’를 꿈꾼다. 문명이 뭔가 크게 인심을 베푸는 듯 거들먹거리며 ‘옜다, 떡이나 먹어라’ 던져준 제한된 인위적 자유가 아니라 자연이 준 태초의 ‘자유’를 말이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주인공 허크는 한창 학교에 다니며 사회의 규칙을 배우고 적응해야 할 나이지만 그는 문명의 가르침을 거부한다. 또한, 그는 당시 미국 사회의 도덕적 기반이었던 기독교도 거부한다. 이렇게 그는 무언가에 얽매이는 것은 질색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정도 안락함이 보장된 보통의 삶을 버리고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 하루하루가 짜릿한 모험의 세계인 방랑의 삶을 선택한다. 자연이 태초에 준 험난한 ‘자유’를 선택한 허크는 사회와 문명의 속박에서 벗어나 뗏목을 탄다. 그는 앞날의 불투명한 여정을 강의 흐름에 맡긴 채 자연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것은 거대한 문명의 무게에 짓눌린 채 현대인의 무의식 속에 갇힌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라는 반사회적인 욕구를 살그머니 깨운다. ‘일탈’은 금지된 장난이기 때문에 은밀하고 때론 위험하기도 해 적절한 수위 조절이 필요한 욕구이지만 그것이 해소될 때 주는 쾌감은 그래서 더 강렬하고 짜릿할 수밖에 없다.

이라는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엄격한 틀에 가두고 문화라는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너트로 조이고 압박하면서 포도주 압착기처럼 한 방울의 피도 남김없이 짜내는 피곤한 문명의 삶에서 탈출하고 싶은 금지된 욕망을 느끼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한때 금서였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펼치는 순간 바로 허크를 통해 잃어버린 ‘나’를 찾게 된다. 인간은 지능이 높고 아는 것도 많은 만큼 욕구도 다양하고 탐욕의 깊이도 더하지만, 그만큼 상상력도 풍부하기 때문에 현명한 인간은 문학을 시발점으로 삼아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상상의 나래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아니 이룰 수 없어 풍선처럼 한껏 부풀어오른 ‘일탈’이라는 현대인의 잠재적 욕망에 적당한 분출구를 제공해 준다. 만약 이래저래 욕구를 풀지 못한 채로 한껏 팽창한 풍선이 그대로 터진다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청개구리처럼 위험한 상황을 돌출하기도 한다. 터진 풍선이 외부로 튀면 범죄가 되고 내부로 튀면 스트레스로 말미암은 질병으로 번지기 일쑤다.

이산화탄소로 충만한 샴페인이 뚜껑이 열림과 동시에 코르크 마개를 총알처럼 퉁겨내고 새콤달콤한 액체를 뿜어내듯 『허클베리 핀의 모험』은 ‘도시’, ‘사회’, ‘문화’라는 병 속에 갇힌 독자의 일탈 욕망을 시원하게 분출시켜주는 탁월한 매개체가 된다. 모험과 방랑이라면 언제나 기껍게 맞아주는 허크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조심스럽게 다가온 독자를 위험천만하면서도 역동적이며 짜릿한 모험의 세계로 안내하는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19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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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12.

[책 리뷰] 지구의 고아 인류가 자신을 되돌아보다 ~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칼 세이건 외)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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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고아 인류가 자신을 되돌아보다

원제: 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 by Carl Sagan, Ann Druyan
우리는 많은 종을 멸종시키고 있다. 나아가 스스로를 파괴시킬 지경에까지 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구로 보면 이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구라는 무대에서는 벼락부자가 된 종이 무대 장치를 바꾸고 다른 종을 멸종시키며,그 후 스스로도 무대에서 영원히 퇴장하는 일이 오랫동안 반복되고 있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 640쪽)

인류라는 고아의 이력이 담긴 족보를 찾아서

누구도 명확한 대답을 내놓지 못한 인류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에 두 명의 저명한 과학자 칼 세이건(Carl Sagan)과 앤 드루얀(Ann Druyan)이 ‘엄밀한 과학성과 무궁한 상상력’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섰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궁금해하는 질문이면서도 굳이 깊이 따지고 들어가고 싶어하지는 않는 불편한 진실이자, 혹시라도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과 환상이 깨질 수도 있는 인류의 기원에 대한 탐험은 유령의 집처럼 두려움과 짜릿함이 공존하는 멀고도 긴 미지로의 여행이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서 단절되어 우리의 기원으로부터 멀리 격리된 채 살아가고 있다. 기억 상실이나 전두엽 절제술 때문이 아니라, 생명이 더듬어 온 측량할 수 없을 만큼 긴 시간이 우리와 우리의 기원 사이에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은 이름이나 태어난 곳을 적어놓은 출생기록 한 장 없이 문앞에 버려진 갓난아이와도 같다. 유전적 배경이 어떠한지, 어떤 결점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부모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우리는 이 고아에 대한 모든 기록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33~34쪽)

이 한 권의 책은 인간이라는 고아의 이력이 담긴 족보다. 그러나 오래된 고서가 그렇듯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벌레와 세월이 갉아먹은 흔적으로 족보에 적힌 글씨는 흐릿해지고 종이는 너덜너덜하다. 그러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텅 빈 공간만이 남는다. 이제 저명한 과학자 두 사람은 그곳에 새로운 역사를 기록한다. 새롭게 쓰인 잊혀진 인류의 조상에 대한 놀랍고도 한편으론 두렵기도 한 그들의 기록은 엄격한 과학적 검증을 거친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설령 그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더라도 여전히 그것이 사실임은 변함없다.

인류 미래에 대한 구원을 염원하는

과학자 칼 세이건과 앤 드루얀이 이 책을 집필할 당시에는 인류 세계의 힘의 균형추 양극단에 소련과 미국이 자리 잡은 냉전체제가 한창이었다. 세계대전의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세계는 핵전쟁으로 자멸할 수도 있는 3차대전 위기에 맞서고 있었다. 극단에 선 민족주의, 끝이 보이지 않는 군비 확장 경쟁, 그리고 끊이지 않는 전쟁 등 전 지구에 걸친 심각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그 해답을 찾으려고 두 과학자는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양피지와 죽간에 기록된 인류사를 훨씬 뛰어넘어 그들은 최초의 인류와 마주친다. 그리고 그들의 선조와도 기우한다. 결국, 두 사람은, 오늘날 인류가 자신이 쳐 놓은 올가미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면 사람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의 아득한 과거에 일어났던 사건을 알아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 책의 집필은 두 과학자의 인류에 대한 진정한 희망과 절실한 구원을 위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이 집필을 끝냈을 땐 다행히도 냉전은 종결되었다. 그렇지만, 또 다른 전 세계적 문제들이 인류를 위협하고 있었다. 폭력과 전쟁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고, 되살아나는 국가주의,어리석은 지도자,교육의 황폐,가족의 붕괴,환경 파괴,종의 멸종,인구 증가 등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던 숱한 문제들은 해결될 기미를 보이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아지고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이러한 인류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의 무한한 이기심, 문명으로도 잠재우지 못한 공격성,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용솟음치는 질투심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다른 영장류의 세계에서도 만연하다. 또한, 영장류의 세계에서도 우정,이타심,애정,성실,용기,지능,발명,호기심,예측 등 흔히 사람만의 특징이라고 자랑스럽게 여겨져 왔던 많은 특징을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사람은 다른 동물과 친척간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사람의 존엄성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한다면 인류의 파멸을 가져올 수도 있는 이기심과 폭력, 그리고 질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우리와 다른 동물이 친척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매일 사람에 의해 자행되는 다른 동물의 멸종에 대해 심각하게 재고하고 반성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은 두 가지가 무한하다고 했다. 하나는 우주이고 다른 또 하나는 바로 사람의 어리석음이다. 사람이 정말 다른 동물보다 우수한 종이라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인류가 그렇게 우러러보고 찬양하는 신이 자비롭듯 사람 역시 자비롭게 다른 동물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높은 지능은 사리사욕을 채우고 번식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모든 생물이 공존할 길을 찾는 해법에 더 많은 능력을 할당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지금처럼 같은 종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종에게도 가해지는 무자비한 폭력과 자연에 대한 가혹한 착취가 그치지 않는다면 결국 모두가 멸종하는 지름길이다. 그것은 과거 5대 멸종의 뒤를 이은 여섯 번째 대멸종으로 지구사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높은 지능의 이점을 충분히 살릴 수 있다면, 그래서 경이로운 생명의 기원을 찾아 과학적 탐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거기서 얻은 소중한 지식이 호기심과 이기심의 충족으로만 끝나고 마는 인류의 오점은 남기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면서...

느덧 과학교양도서의 고전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Shadows of Forgotten Ancestors)』는 저명한 천문학자이자 과학 분야의 고전인 『코스모스(Cosmos)』 등을 통해 자연과학의 대중화에 자신의 경력과 노력을 바친 칼 세이건의 또 다른 역작이다. 외계생물학의 선구자였던 그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호에 외계 생명체를 향한 지구의 각종 정보와 메시지를 담은 황금 레코드판을 탑재하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으며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SF 영화 『콘택트(Contact, 1997)』 원작의 저자이기도 하다. TV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져 60여 개국 5억여 명이 시청하기도 했던 『코스모스』가 지구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인류의 이해와 연구를 담은 명작이라면, 그가 『코스모스』에서 지칭한 ‘창백한 푸른 점’ 지구 안에서 일어난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인류의 기원과 고찰을 ‘엄밀한 과학성과 무궁한 상상력’으로 풀어쓴 또 하나의 명작이 바로 이 책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이다.

『잊혀진 조상의 그림자』는 본문만 거의 700쪽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땐 오히려 그 700쪽마저도 조금 모자란 감이 없지 않아 있나 하는 아쉬움이 들 정도로 한 장 한 장 모든 페이지가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쉴 새 없이 자극하고 유발하며 책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꾸준히 등장하는 실험과 연구 사례는 잠시 한눈을 파는 독자를 다시 책으로 붙들어 매기에 부족함이 없으며, 한층 더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아쉽게도 이미 고인이 된 칼 세이건이지만, 그가 인류를 위해 남긴 이 책은 순수한 지적 호기심을 갈구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인류의 악질적이고 악마적인 기질로 몸살을 앓는 지구와 그 위에 공존하는 모든 생명체의 미래를 걱정하는 독자를 위해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책이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12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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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6.

[책 리뷰] 시대를 발효한 문장에 취하고 시대를 요리한 안주에 ~ 타인의 방(최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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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발효한 문장에 취하고 시대를 요리한 안주에 배부르다

Original Title: 타인의 방(최인호 중단편 소설전집 1) by 최인호
잘 들어요. 소켓이 속삭인다. 마치 트랜지스터 이어폰을 꽂은 것처럼 그의 목소리는 귓가에만 사근거린다. 오늘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예요. 겁나지 않으세요? (『타인의 방(최인호 중단편 소설전집 1)』, p195)

단편 소개

「견습환자」

결핵으로 종합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웃음을 잃었다는 것을 감지하게 되면서 알 수 없게도 그들을 웃겨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웃지 않는 병을 앓는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장난꾸러기 같은 짓을 감행한다.

「2와 1/2」

어느 토요일, 장티푸스 예방주사 부작용으로 고통과 피로감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일요일에는 새로운 주택단지 조성 문제로 아버지 산소의 이장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시외로 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그가 하숙하는 집에서 매춘부 한 명이 살해당하는 바람에 그는 하숙집의 다른 남자들과 종일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무너지지 않는 집」

주인공이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낸 추억의 집, 그러다 누군가에게 떠밀려나온 쓰라린 과거도 가진 집. 그 누군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밀려나가는 바람에 그 집은 새 집주인의 의해 허물어진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루 이틀이면 깨끗이 해치울 거라던 인부들의 호언장담과는 반대로 그 집은 도깨비장난처럼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

「순례자」

‘나’와 어머니는 미아리 고개를 넘어 집을 보러 간다. 그러나 그들의 부푼 희망과는 달리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있었다. 종일 궂은 땀을 흘리며 발품을 판 끝에 마침내 안성맞춤인 집을 찾는다. 어서 빨리 가족들에게 좋은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마음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동네를 되돌아 나올 때, 의심 많은 어머니는 도로 되돌아가 찜 해 둔 집 근처 아낙네에게 집값이 싼 이유를 듣는다.

「술꾼」

지독하게 못생긴 한 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야 한다며, 죽어가는 엄마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며, 술집 술집을 돈다. 어른들에게 갖가지 술을 한잔 두잔 얻어 마신다.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잠든 주정뱅이의 돈을 훔친다. 아이는 이 사내가 날이 밝기 전에 동사해버릴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술을 직접 사 마신다.

「모범동화」

D 국민학교 앞 잡화상 강씨가 자살을 한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한 아이를 빼고는 말이다.

그 아이는 항상 피로해 보이는 전학 온 아이로 ‘만물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공부는 못했지만 어른들 세상은 도통했기 때문이다. 그는 마술사의 속임수도 쉽게 꿰뚫어보았으며 강씨가 아이들의 코 묻은 동전을 노려 선보인 원판 돌리기나 주사위 굴리기, 예술적인 강씨의 손놀림에서 놀아나는 심지 뽑기 등 이 모든 게임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강씨를 완벽하게 물리쳤다.

「사행(斜行)」

비 오는 새벽, 의사인 ‘나’는 남편이 병원에 입원 중인 옆집 여자에게서 다급한 전화를 받는다. 괴한이 침입했으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발기부전에 시달리던 ‘나’는 옆집 여자의 절박한 부탁을 눈치챈다. 그리고 아내에게는 급한 왕진을 가야 한다고 둘러대고는 우비를 걸치고 비 오는 거리로 나선다.

「예행연습」

열다섯 살의 ‘나’를 포함한 또래의 아이들 58명은 단 이틀 동안 박애 고아원에 채용된다. 외국인 후원자에게 잘 보이려고 일시 고용된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날의 환영식을 위한 군대의 사열식만큼이나 고된 훈련으로 땡볕 아래 하나 둘 지쳐 쓰러져간다. 그렇다고 낙오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일당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방」

겨우 집에 돌아왔더니 아내는 없었다. 그는 아내가 거짓말을 하고 집을 비운 사실을 깨닫고는 심한 고독과 비애를 느낀다. 그 순간, 집안의 모든 물건이 들썩이고 술렁대며 오늘 밤 중대한 쿠데타가 있을 거라고 그에게 속삭인다.

「뭘 잃으신 게 없으십니까」

유물 전시회에서 발견한 조선 자기에 반한 대학생은 그 조선 자기를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경매에서 낙찰받으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는 그 물건을 사들일법한 유명한 외국인 수집가를 찾아다니며 사정한다. 그들은 대학생의 사연을 듣고는 흔쾌히 그 경매에는 참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지만, 막상 경매일이 되어 경매장에 들어서자 대학생이 만난 두 외국인을 제외하고서라도 수많은 외국인이 모여 있었다.

「침묵의 소리」

머릿속엔 오로지 일확천금으로만 가득 찬 형제가 어느 날 밤 두 여자를 술에 취하게 한 다음 그녀들을 하나씩 옆구리에 끼고 여관으로 향한다. 그들은 여자들이 잠이 든 틈을 타 지갑을 뒤져 돈을 훔친 다음 통금이 해제되자마자 새벽같이 여관을 튀어나온다. 그런데 갑자기 동생이 아침이 다가오는 한강을 지켜보고 싶다며 길가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훔쳐 타고 기세 좋게 달리다 그만 차에 치여 죽는다.

「미개인」

월남에서 한쪽 다리를 다친 최 선생은 한창 개발 때문에 땅값이 치솟는 S동네의 초등학교로 부임한다. 동네 강 건너에는 나환자의 자녀가 사는 동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정부 방침으로 강 건너에 살던 아이들이 S동네 학교로 통학하게 되면서 학교와 주민들 간의 마찰은 시작된다. 특히 나환자의 자녀를 감싸고 두둔하던 최 선생은 마을 주민으로부터 협박까지 당한다.

「처세술개론」

열 살의 ‘나’는 부모와 함께 구한말 시절 ‘하와이 사진 결혼’으로 이민 간 후 엄청난 부자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온 할머니가 사는 집으로 찾아간다. 그곳에는 이미 행실 나쁜 이모의 딸이 먼저 와 진을 치고 있었다. ‘나’와 이모의 딸은 바로 할머니의 유산을 노린 부모들의 계략으로 전방에 세워진 꼭두각시였다. 그러나 영악한 이모의 딸은 할머니가 곤히 잠든 틈을 타 집안의 갖가지 물건을 부수 것도 모자라 ‘나’에게 실컷 행패를 부린 다음 모든 일을 ‘나’에게 뒤집어씌우는 데 성공한다.

「영가(靈歌)

‘나’가 어렸을 때 머물던 어촌에는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지내던, ‘귀신’ 같던 할머니가 한 분 계셨다.

어느 겨울밤, ‘나’는 할머니의 부탁대로 할머니를 등에 업고 산길을 올라 조상의 묘가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그곳에는 할머니의 남편, 즉 할아버지의 묘가 있었다. 그런데 묘지 앞에서 평소에는 걷지도 못하던 할머니는 덩실덩실 춤도 추었으며 할머니의 손이 닿은 매화나무는 신기하게도 꽃을 피우며 만개한다.

간과할 수 없는 텍스트를 읽는 재미

무리 작품성이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도 읽기가 부드럽지 못하면 나처럼 읽기 능력이 좀 떨어지는 독자에겐 참 곤란하다. 한 장 한 장 쪽을 넘기는 일조차 지루하고 무의미한 반복 노동을 하는 것 같을 때도 있다.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싸구려 탁주를 마시는 것처럼 목 안이 컬컬하다. 이는 독자의 읽기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비단 작품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독자가 부담 없이, 그리고 단어 하나하나부터 문장을 거쳐 단락과 플롯에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집요하게 작품에 붙들어두는 힘은 단연코 작가의 몫이다. 번역서 같은 경우는 옮긴이의 몫이 될 수도 있다.

독자는 자신의 인내심만을 시험하기 위해 문학을 읽는 것은 아니다. 독자의 취향에 따라, 독자가 처한 상황과 기분에 따라 소설을 읽는 목적은 천차만별이지만, 마음속 깊이 잠자던 감흥을 일으켜 세워 몽롱한 기운에 도취하고 싶어 하거나, 세상만사 모든 시름을 잠시나마 잊을 마약 같은 강력한 재미를 얻고자 하는 바람은 소설을 읽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고로 나처럼 읽기 능력이 그저 그런 독자에게는 작품성과 재미를 두루 갖춘 책은 참말로 귀하고 반가운 존재이다.

그래서 소설가 최인호의 문학이 나에겐 무척이나 반가웠다. 바다에서 막 건진 물고기가 그러하듯, 내 눈앞에서 파닥파닥 물방울을 튀기며 힘차게 요동치는 그의 문장은 읽는 것 자체가 재밌다. 재밌으니 소화도 잘된다. 문장 하나하나에 취해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몇 장은 훌렁 넘어간다. 그리고 여지없이 마지막 장에 다다른다.

시대를 발효한 문장에 취하고 시대를 요리한 안주에 배부르다

렇다고 재미로만 시작해 재미로만 끝나는, 서점에 쌔고 쌘 판타지 소설 (그렇다고 이런 소설이 다 재밌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부류로 섣불리 판단하면 정말로 크나큰 오산이며 일생일대의 실수다. 작가 최인호가 거칠지만, 아낌없이 따라주는 구수한 문장주(文章酒)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홀짝홀짝 받아넘기는 독자는 취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곯아떨어지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비수처럼 예리한 필묵으로 시대를 그럴싸하게 요리해서 내놓은 칼칼한 안주들이 작품 곳곳에 뱀처럼 똬리를 트고 도사리며 곯아떨어진 독자를 유혹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쯤 취해 몽롱하던 독자는 검붉은 혀를 날름거리며 단어 사이사이를 지그재그 돌아다니는 뱀을 발견하는 즉시 여우에 화들짝 놀란 토끼처럼 정신이 확 깬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한다. 문장에 취해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던 지난 줄거리들을 소처럼 되새김질한다.

이로써 독자는 작품을 이해하게 된다. 이미 얻을 만큼 얻은 재미를 훌쩍 뛰어넘는 새로운 감흥을 얻는다.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에는 비싸고 진귀한 요리를 먹은 대식가처럼 배를 동동 두드리며 포만감에 만족해한다.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하다. 제아무리 책이 두꺼워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는 사실은 허름한 동네 헌책방에서 기특하게 3년 동안 퀴퀴한 책 곰팡내를 참아오던 백구도 안다. 그러나 한껏 작품에 감흥이 오른 독자는 애써 외면한다. 이대로 끝난 것에 골이 난 독자는 작가의 무정한 처사라고 제멋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쯤에서 독자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독자는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백구처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새로운 기대를 품고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 나선다. 그럼으로써 애독의 굴레는 변함없이 돌아간다.

마치면서...

70년대 출간된 수많은 소설 중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작품들이 얼마나 있는가를 떠올려보면 한국 문학에서 소설가 최인호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한국 문학이 소멸하는 그날까지 살아남는 몇 안 되는 소설가 중 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의 소설들이 상업성과 작품성 양단 사이에서 비판과 호평을 두루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재미도 있고 그만큼 작품성도 있다는 뜻이다.

『타인의 방』에 수록된 여러 단편은 조국의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강행된 도시화와 산업화에서 뭔가를 잃어버린, 그러나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 채 다람쥐 쳇바퀴 굴리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도시 소시민들의 삶이 ‘최인호’라는 특수한 프리즘을 통해 투영되어 있다. 비슷한 시대 활동한 소설가 조선작이 하층민의 삶을 거친 그들의 말로 노골적으로 대범하게 표현했다면, 소설가 최인호는 때로는 환상적으로, 때로는 이리 꼬고 저리 꼬는 식으로 에둘러 도시 소시민의 삶을 유쾌한 필치로 그려냈다. 발표된 지 40년이나 넘은 그의 작품이 현대를 살아가는 독자에게 재미뿐만 아니라 진지하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것은 비단 그 시대의 문제가 그 시대로 끝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인호 문학은 죽지 않았고 아직도 진행 중이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이 리뷰는 2016년 4월 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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