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있는 글쓰기 피터 엘보 |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거침없이 써 나가라
Original Title: Writing With Power by Peter Elbow
나는 학생들이 계획하고 조심스럽게 기준에 맞추려고 애쓰며 쓴 글을 읽을 때보다 조심스러움을 내던지고 ‘쓰레기면 어때’하는 마음으로 쓴 글을 읽을 때 나를 사로잡거나 끌어당기는 문구를 더 자주 마주친다. (p25)
미개인이건 문명인이건 사람은 세상에 뭔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그중에는 태초부터 내려오는 원시적 방법이자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궁극적 목적인 번식을 통해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보통은 이것을 동물적 본능이라고 말한다. 이 외에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많은 사람을 감탄하게 할 만한 업적을 남겨 역사적 • 사회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 본능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앞선 방법은 대부분 사람이 가능한 보편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유명인이 되라는 후자의 방법은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운이 좋은 소수에게나 해당하는 일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문명 시대에는 꼭 이 두 경우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자신을 알리는 쉽고 간편한 방법이 있으며 실제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자신만의 블로그나 트위터, 페이스북에 글을 남기는 것이 바로 이 경우인데 이 방법은 누구나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만 있으면 가능하다. 이 방법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공명심을 만족시켜주는 사회적 • 문화적 욕망의 배출구로서 매우 유용하다.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여러 이유 중 하나로 이런 소박한 공명심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한 그때나 지금이나 누가 읽건 안 읽건 전혀 상관하지 않았고, 특정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쓴 글이 더더욱 아니지만, 우주만큼이나 광활한 인터넷 공간에 나의 유치한 생각이나 알량한 의견을 남긴다는 사실 그 자체와 혹시 누군가에게 보탬이 될지도 모르는 얕은 지식을 공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내가 쓴 글이 좋은 글인지, 나쁜 글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적은 없다. 굳이 자평해본다면 처음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보다는 작문 실력이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문장은 평범하고 구성은 불분명하며 주제는 모호하다. 그러나 이왕이면 다른 사람도 읽고 싶어 하는, 그리고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독자의 마음에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바람이 아예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새빨간 거짓말이다. 단지 그것에 너무 집착하거나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일 뿐이다. 욕심을 낸다고 될 일도 아니며, 어차피 좋은 글을 쓰는 실력은 나의 능력 밖이라는 체념은 이미 마음속에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있다. 때론 위대한 작품들에서 발산하는 거대한 아우라에 압도되어 감히 그런 마음을 먹을 엄두가 나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힘 있는 글쓰기(Writing With Power)』의 저자 피터 엘보(Peter Elbow)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누구나 꾸준한 노력으로 ‘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믿는다. 그의 마법 같고 낭만적이며 자유방임적인 글쓰기 방법은 그 가능성을 가늠한다. 그렇다면 피터 엘보가 말하는 ‘힘 있는’ 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논리적이고 구성이 완벽하며 화려한 수식어와 현란한 기교를 부린 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힘 있는 글이란 글자와 문장이 살아 숨 쉬면서 독자에게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글이다. 독자를 압도하고 독자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듣게 하거나 독자가 의도하지 않았던 경험을 하게 하는 글이다.
피터 엘보는 이러한 ‘힘 있는 글’을 쓰려면 무엇보다 자유롭게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자유롭게 글쓰기’는 나쁜 글이든 상관하지 말고 10분 동안만이라도 마음에 떠오르는 언어를 존중하고 그것을 기록하고, 계속해서 떠오르는 언어를 존중하고 기록하는 것이다. 이것은 글에 힘을 불어넣는 최고의 손쉬운 만능 연습법이다. 여기에는 어떤 비판도, 어떤 독자도 고려하지 않는다. 나쁜 글이라는 두려움은 잊고 그저 쓰고 또 쓰는 것이며 설령 실제로 나쁜 글이라도 상관하지 말고 쓰는 것이다. 글의 주제나 내용과 상관없어도 일단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써나가는 것이 자유로운 글쓰기의 핵심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일기든 독후감이든 꾸준히 뭔가를 써보지 못한 채 성장했다. 당시의 학교 교육 시스템이 요구하는 글쓰기 능력은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것을 공책에 베껴 쓰는 것과 숙제로 내준(기억으로는 작문 숙제는 전혀 없었다) 문제를 푸는 것 정도면 충분했다. 졸업 후 자발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글을 쓴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군대 가서 여자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던 것이었고, 그것도 제대 후에는 인터넷 메일과 MSN메신저, 그리고 문자 메시지 등으로 뚝 끊기고 말았다. 그 이후 블로그를 통해 글을 쓰기 전까지는 정말 글쓰기와는 담쌓고 살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블로그 덕분에 보잘것없는 글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쓰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맞춤법도 틈틈이 다시 보게 되었다. 이제는 좀 더 욕심이 난 것일까? 주제넘게 ‘힘 있는 글’에 도전하려고 하다니 말이다.
아무튼, 이 책은 필자처럼 블로그 등에 글을 꾸준히 쓰는 사람에게 상당히 유용한 책이지만, 피터 엘보가 글쓰기에 관해 설명하는 그 대상의 글이 주로 논리적인 글에 가깝다는 점을 보면 사회생활에서 무미건조한 보고서나 평가서, 기획서 등을 남발하는 것에 질린 사람이나 남들과 다른 특별한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더 유용할 듯싶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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