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다야마 가타이 | 양의 탈을 쓴 늑대, 남자의 이중성을 고백하다
Original Title: 蒲団 by 田山花袋
두 사람의 사랑의 열쇠를 자신이 쥐고 있다고 믿고 있는 만큼 도키오는 무거운 책임을 느꼈다. 자신의 부당한 질투, 부정한 연정 때문에 사랑하는 여자의 열렬한 사랑을 희생시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동시에, 스스로 말한 “온정어린 보호자’로서 도덕가처럼 처신하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 한편으로는 이 일이 고향에 알려져 요시코가 부모님 때문에 귀향하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p73)
도키오는 자신의 작품을 숭배하는 문학 지망생 요시코를 제자로 받아들인다. 부유하며 엄격한 크리스천인 부모 밑에서 자란 요시코는 부모의 허락을 얻어 도쿄의 도키오 집에서 숙식하면서 공부하게 된다. 자신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며 오직 온순과 정절, 그리고 자식만 잘 키우면 되는 줄 아는 아내를 늘 ‘구식’이라고 핀잔을 주곤 했던 도시코였기에 화려한 옷차림과 풍부한 표정을 고루 갖춘 신식에 미모까지 겸비한 요시코를 보자 이내 그동안의 고독한 생활이 인제야 보답을 받는 것 같은 환상에 들떠 흥분한다.
도키오는 구식의 아내만 없다면 신식의 요시코를 아내로 얻고 싶었고 요시코도 능히 그럴 것으로 생각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요시코에게 애인이 생기면서 도키오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고독한 번민은 시작된다.
도키오가 요시코에게 바라는 것은 “끊이지 않는 욕망과 생식력”을 발산하는데 적당한 “한창때의 여자”였다. 낭만적이고 정신적인 사랑이 아니라 바로 요시코의 육체를 갈망했던 도키오는 요시코에게 애인이 생기자 요시코의 정절에 유난히도 큰 집착을 보인다. 이는 이광수의 『무정』에서 이형식이 재산과 명성을 두루 갖춘 김장로의 딸 선형과 여렸을 적부터 고아인 자신을 보살펴주고 가르쳐준 박진사의 딸 영채를 사이에 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영채가 유명한 기생이 된 것을 알고 나서 영채의 정절을 의심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무정』의 형식처럼 도키오 역시 겉으로는 신식을 대표한다고 자부하는 하이칼라였지만, 막상 진짜 신식인지를 구별할 수 있는 경계선에 도착하자 억압되어 있던 보수적 가치관이 고개를 쳐들며 문명의 가식을 드러낸다. 도키오는 사회로부터도 용서받기 어려운 억제할 수 없는 욕망을 선생이라는 떳떳한 가면 뒤에 숨기고 세간의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표면적으로는 선생으로서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성을 내세운다. 그래서 그는 요시코와 그녀의 애인 다나카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음을 믿는 척하면서 두 사람의 정신적 사랑을 지지하는 “온정어린 보호자”로서 처신한다. 한편으로는 요시코를 빼앗겼다는 질투심과 요시코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욕구불만에 휩싸인 채 두 사람의 사이가 진정으로 틀어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이불(蒲団)』(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의 도키오도 결혼 후 권태기에 접어든 남성이 그러하듯, 자신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을 잇따라 호소하며 ‘사랑’을 말하지만, 그것은 단지 젊은 육체를 향한 발정의 다름없었음은 작품 마지막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요시코의 고백으로 그녀가 더는 처녀가 아님을 알게 되자 도키오는 “그 남자에게 몸을 허락하고 있었던 정도라면 굳이 그 처녀의 정조를 존중할 것까지는 없었다. 자기도 대담하게 손을 내밀어 성욕을 만족시켰더라면 좋았을 것이다.”라고 자탄하며 본심을 드러낸다.
도키오가 젊은 여자를 갈망하는 욕구는 모든 남성의 욕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보편적이지만, 도키오 자신이 유부남이고 또한 그 대상이 제자라는 점에서 비도덕적이다. 그런 점과는 별개로 그는 번뇌를 거듭할 뿐 끝내 요시코에게 마수의 손을 뻗지는 못한다. 남자의 무차별적이고 난잡한 성적 공상이 대부분 공상으로 끝나듯, 도키오 스스로 인정한 두 번의 기회를 놓친 것을 보면 어쩌면 도키오도 실제 행동으로 옮길 용기와 의지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즉 선생, 유부남으로서 가지는 사회적 책임감과 보편적 도덕심이 표면적으로나마 승리했다는 뜻이다. 이는 대부분의 남성도 마찬가지일 것이며 그래서 필자는 도키오의 발정적인 고뇌를 충분히 이해하며 동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그러하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보다 더욱 난잡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남자의 이중성은 비단 근대화의 길에서 구식과 신식 사이의 혼란에서 방황했던 그 당시만의 문제는 아니다. 인류는 문명이 생기고부터 ‘이성’과 ‘본능’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해 오면서도 ‘본능’을 잠시 감추거나 억제할 수 있을망정 그것을 영영 제거할 수는 없다는 점에 간혹 당황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사람은 여타 동물과 크게 다른 점이 없지만, ‘본능’을 상황에 따라 통제하려고 노력하고 ‘본능’과 ‘행동’ 사이에서 나름의 이성적인 선택을 고려하며 갈등을 겪는다는 점에서 다른 동물과는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발정이 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나 화가 나는 대로 주먹을 휘두르는 사람을 보면 짐승이라고 비난한다.
이런 번뇌와 갈등은 사람이 어설프게나마 ‘이성’을 갖춘 동물이라는 점을 미약하게나마 증명한다. 그런 점에서 도키오의 번뇌를 바라본다면 그는 ‘이성’과 ‘본능’ 사이의 갈등이라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당연히 겪는 매우 보편타당한 번뇌다. 그러나 그는 그런 음흉한 속마음을 비록 겉으로 태연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은연중 자신의 행동을 통해 내비친다. 요시코를 잊지 못해 술을 마시고 난폭하게 행동하거나, 요시코를 향한 못마땅함을 드러내는 어린아이 같은 투정이 그러하다. 번뇌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마음을 다잡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추태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일본 근대 자연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이불(蒲団)』은 다야마 가타이가 실제로 자신과 여제자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있는 그대로, 특히 남자의 심리를 매우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당시 문단에 큰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자신의 결점을 만연하에 알리는 작품이기도 해서 발표하기까지 상당한 용기도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면적으로 상당히 불안한 도키오를 (실제는 다야마 가타이 자신의 일이었겠지만) 남의 일 말하듯 거리를 두고 담담하게 서술하는 뻔뻔스러울 정도로 절제된 담백한 필치에서 이미 그 과거에 대해 어떠한 미련도 남지 않은 그의 초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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