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24

아르센 뤼팽 전집 1 | 귀족처럼 행동하는 반항아

Arsene Lupine Gentleman-Burglar book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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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센 뤼팽 전집 1 | 귀족처럼 행동하는 반항아

Original Title: Arsène Lupin Gentleman-Cambrioleur by Maurice Leblanc
아르센 뤼팽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 반지는 조르주 드반의 것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당신이 옳습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요. 아르센 뤼팽은 아르센 뤼팽일 뿐이고 아르센 뤼팽밖에는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르센 뤼팽과 당신 사이에는 추억이란 있을 수 없지요…….용서해 주십시오. 당신 옆에 있는 제 존재 자체가 당신에 대한 모욕이란 걸 알았어야 했는데……」 (『아르센 뤼팽 전집 1』, p242)

학교 성적은 우수했던 모리스 르블랑(Maurice Leblanc)이었지만 뤼팽 시리즈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일반 대중에게 그렇게 알려진 소설가는 아니었다. 그러던 와중에 《주 세 뚜》라는 잡지를 막 창간했던 출판업자 피에르 라피트가, 영국의 셜록 홈스와 래플스에 맞먹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탐정 소설을 써달라고 그에게 요청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탄생한 주인공이 바로 ‘아르센 뤼팽’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1907년 『괴도 신사 아르센 뤼팽(Arsène Lupin Gentleman-Cambrioleur)』이라는 제목으로 9편의 단편과 함께 ‘아르센 뤼팽’은 대중 앞에 첫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9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첫 단편과 마지막 단편은 뤼팽의 이루지 못한 씁쓸한 사랑의 여운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이 두 단편에 등장하는 뤼팽이 사모하는 여주인공은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서 처음으로 만난 부유한 상속녀이자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인 넬리다. 그녀는 「아르센 뤼팽, 체포되다」에서 뤼팽이 가니마르 형사에게 덜미가 잡혔을 때 저랜드 여사에게서 훔친 보석들이 숨겨진 뤼팽의 코닥 카메라를 경찰에게 넘겨주지 않고 바다에 던져 증거를 없애면서 뤼팽에 대한 마음이 전혀 없지는 않음을 은연중에 표시한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등장하지 않다가 이 작품 마지막 단편에 깜짝 등장하면서 뤼팽의 연정을 다시 불러일으킨다.

꽤 시간이 흘러 그녀는 「한 발 늦은 헐록 숌즈」에서 기인한 인연으로 뤼팽을 다시 만나지만, 그 장소와 시간은 공교롭게도 뤼팽의 범죄 현장이었다. 대서양 횡단 여객선에서는 막연한 상상에 머물렀던 뤼팽과 범죄의 연관성이 이번에야말로 딱 맞아떨어진 격이다. 빼도 박도 못하게 된 천하의 괴도 신사 뤼팽도 이때는 얼굴을 붉히며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바로 훔친 물건을 내일 제자리로 되돌려 놓을 것이라고 구차하게 변명을 해보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뤼팽의 어느 한 손가락만을 응시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시선이 가리킨 뤼팽의 손가락에는 어느새 드반에게서 훔친 반지가 보란 듯이 끼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뤼팽은, “당신이 옳습니다. 사람은 잘 변하지 않지요. 아르센 뤼팽은 아르센 뤼팽일 뿐이고 아르센 뤼팽밖에는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르센 뤼팽과 당신 사이에는 추억이란 있을 수 없지요…….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 옆에 있는 제 존재 자체가 당신에 대한 모욕이란 걸 알았어야 했는데……”라고 말하며 체념의 쓴웃음을 짖는다. 넬리는 역시 아무 말 없이 자리를 떠나고 뤼팽은 그 옛날 뉴욕 항구에서처럼 그저 눈길로만 그녀를 배웅하는데 만족한다. 그런데 넬리가 기대어 있던 대나무 화분 위에 장미가 놓여 있었다. 그것은 훗날 두 사람의 또 다른 인연을 예고하는 것일까?

또 다른 단편 「여왕의 목걸이」는 어린 뤼팽의 활약(?)을 그린 이야기로써 뤼팽의 전체 활약 중에서 아마도 최초의 사건이지 않을까 여겨진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서 어머니를 걱정하는 뤼팽의 지극한 효성을 엿볼 수 있다.

Arsène Lupin Gentleman-Cambrioleur by Maurice Leblanc
<Leblanc - Arsène Lupin / Maurice Leblanc (1864 – 1941) / Public domain>

뤼팽 하면 떠오르는 것은 바로 나무랄 곳 없는 완벽한 ‘변신’이다. 이 작품에서만도 뤼팽의 기본 골격인 대담무쌍한 대도(大盜)에서부터 셜록 홈스 뺨치는 사건 해결력을 보이는 탐정, 곧 쓰러질 것 같은 부랑자, 맞수인 가니마르 형사, 평범한 여행객 등 그의 변신은 정말 자유자재이다. 또한, 그의 변신은 외모뿐만 아니라 변신한 역할에 어울리는 언행까지 완벽하게 구현함으로써 적수인 가니마르 형사조차 멋지게 속아 넘긴다. 이러한 탁월한 변신 솜씨에 재치있는 말솜씨와 쾌활함, 천재적인 계략, 신비로운 삶, 그리고 변함없는 뤼팽의 상징인 실크해트, 망토, 외알박이 안경 등 거만하면서도 절대 지나치거나 선을 넘지 않는 뤼팽의 절도 있는 모습과 언행은 세계의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작품 「서문」에 적힌 대로 뤼팽은 “반항아처럼 행동하는 귀족이 아니라 귀족처럼 행동하는 반항아이다.”

이 리뷰는 2016년 1월 2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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