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론 | 에밀 뒤르켐 | 한국의 높은 자살률의 원인을 19세기 프랑스에서 찾다
Original Title: David Émile Durkheim by Le Suicidé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정신적 빈곤
OECD 국가 중 자살률과 자살 증가율 1위, 세계에서는 12년간 109.4% 증가로 자살 증가율 2위를 기록한 한국. 세계 경제 순위에서는 꾸준히 20권 안에 머무른 중산층 국가라고 자부할만한 한국에서 왜 그렇게 높은 자살률이 나오는 것일까.
이미 19세기 말에 자살에 대한 명쾌한 사회과학적 분석으로 객관적 평가를 내린바 있던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은 자살률 증가의 원인으로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문명이 가져온 정신적 빈곤을 지적했다. 보통 사람들은 가난, 또는 이와 비슷한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의 원인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일쑤지만, 실제 통계를 보면 경제적으로 한참 뒤에 있는 국가들의 자살률이 한국보다 훨씬 낮은 경우가 허다하다.
뒤르켐은 『자살론(Le Suicidé)』에서 19세기 유럽의 주요 국가들의 자살률을 분석하면서 19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 증가한 유럽 여러 국가의 자살률을 개인적 기질, 성격, 내력, 개인사나 심리학, 정신병리학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사회의 한 현상으로 보았다. 그는 하루, 한 달, 한 해에 따라 나타나는 자살률의 변화는 사회생활의 리듬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러한 자살률이 사회의 통합 정도에 반비례함을 밝힘으로써 자살의 사회과학적 연구의 기초를 다졌다.
보이지 않는 죽음을 가져오는 가족과 사회의 해체
자살이 범죄나 단순한 정신병이 아닌 중대한 사회 현상으로 본 뒤르켐은 자살을 크게 세 종류로 분류했다. 사회의 해체가 이미 개인들이 겪는 정신적 고뇌를 더욱 가중시키고, 개인과 사회를 연결하는 유대가 느슨해짐으로써 삶과의 연결고리 역시 약해지면서 발생하는 이기적 자살과 지나치게 부족한 개인화 때문에 발생하는 이타적 자살, 그리고 가장 규제가 필요한 상황에서 욕망이 규제를 받지 못해 일종의 무규율상태 증가로 발생하는 아노미성 자살이다.
이기적 자살은 지나친 개인주의로 말미암은 우울과 의기소침을 예로 들 수 있으며, 이타적 자살은 원시 부족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데 늙거나 병든 남자의 자살, 남편의 죽음을 따른 아내의 자살이나 족장의 죽음에 따른 부하나 시종의 자살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유명인들의 급작스러운 자살 같은 권태감이나 환멸감으로 말미암은 자살은 아노미성 자살의 한 예가 될 수 있다.
뒤르켐은 이기적 자살은 인간이 존재의 근거를 삶에서 찾지 못해서 일어나고 이타적 자살은 존재의 근거가 삶의 외부에 존재하기 때문에 일어나며 아노미성 자살은 인간의 활동이 충분히 규제되지 못해서 생기는 고통에서 나온다고 분석하며 이기적 자살과 아노미성 자살을 현대사회의 정규적이고 일정한 수의 연간 자살률이 나오는 주요 원인으로 보았다. 둘 다 개인에게 사회가 불충분한 존재인 까닭에 생겨나지만, 이기적 자살은 진정한 집단활동의 결핍으로 인해서 개인이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이고 아노미성 자살은 개인의 열망에 미치는 사회의 영향이 결핍됨으로써 개인을 제동 없이 방치함으로써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사회의 통합력에서 자살의 사회적 원인을 찾았던 뒤르켐은 19세기 초에서부터 말까지 증가한 프랑스의 자살률 증가 원인을 출생률 감소, 이혼 증가, 전통의 해체로 말미암은 가족의 해체와 분산, 그리고 사회적 통합력의 상실, 공동 목표의 상실, 국가 이상의 상실 등으로 보았다.
자살로 이르는 궁극적 원인
뒤르켐이 밝힌 19세기 프랑스 사회의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보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작금의 한국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선진국들은 경제발전과 시민 의식의 상호 변증법적인 과정에 비교적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성장한 끝에 명성에 걸맞은 성숙한 시민 의식을 이룩했다면, 한국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는 대부분 시기에 시민적 자유가 정체되면서 사회적 성숙도 지체되었다. 빠른 속도로 붕괴해 가는 전통적 가치관을 시기적절하게 대체할 가치관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빈곤한 정신은 빈곤한 사회를 낳았다. 빈곤한 사회는 사회적 이상과 국가적 이상의 상실이라는 혼란과 권태의 씨앗을 잉태했고, 이로써 한국 사회는 나침반을 잃은 배처럼 목표를 잃고 떠도는 유령선이 되었다. 그저 나 하나만의 출세와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내달릴 뿐이다. 치열한 생존 투쟁에 육체는 지치고 정신은 피폐해진다. 지옥 같은 세상이라고 한탄하지만, 그런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든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갑작스러운 경제적 풍요가 가져온 예기치 못한 정신적 빈곤의 쓴맛을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뒤르켐은 자기의 삶이 불행하다고만 해서 자살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실 직전은 슬프지만, 그것이 원인은 아니며 그를 슬픔으로 이끈 사회적 원인, 즉 슬픔을 극복할 힘과 기회를 주지 못하고 벼랑으로 이끈 것은 다름 아닌 사회, 즉 우리라는 말이다. 만약 대한민국 사회가 각성하지 못하고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못한다면 ‘자살 국가’라는 불명예는 늘 우리의 뒤를 따라다닐 것이며, 해 질 무렵 드리우는 어둠처럼 소리 없이 밀려오는 검은 유혹에서 당신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오늘날의 타락의 원인은 바로 종교가 이제는 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자살론(Le Suicidé)』, p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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