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도 읽고, 영화도 보고, 그리고 일상적인 생각을 쓰고. 이 모든 것을 음악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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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4.

[책 리뷰] 일본의 ‘3대 양식’이 품고 있는 근대사 ~ 돈가스의 탄생(오카다 데쓰)

일본의 ‘3대 양식’이 품고 있는 근대사

원제: 明治洋食事始め――とんかつの誕生 by 岡田 哲
다른 사람들 얘기를 들어봐도, 외국에서 향수병에 걸리거나 몸 상태가 안 좋을 때는 돈가스, 카레라이스, 고로케 등 이른바 일본의 ‘3대 양식’이 먹고 싶어진다고 한다. 일본의 양식에는 메이지 시대 이래 선인들의 노력과 집념이 깃들 불가사의한 마력이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다. (『돈가스의 탄생』 중에서)

책 『돈가스의 탄생: 튀김옷을 입은 일본근대사』의 지은이 오카다 데쓰는 일본인이 제일 좋아하는 3대 양식으로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고로케를 꼽는다. 그리고 일본인이 외국에서 생활하다가 향수병에 젖어들 때 가장 먹고 싶은 일본 음식으로도 역시 앞의 ‘3대 양식’을 꼽는다. 우리가 흔히 일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초밥이나 우동, 메밀국수나 라면도 아니고 서양 요리에 가까운 돈가스라니. 필자는 지은이의 이 말을 듣고 조금 어안이벙벙해졌다. 물론 필자도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고로케(‘크로켓’이 옳은 표기이지만 어감을 살려 고로케라고 표기한다.)를 좋아한다. 특히 카레라이스는 필자가 직접 만들어 먹으며 즐기는 얼마 안 되는 요리 중 하나다. 하지만, 필자가 만약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에서 생활한다면, 돈가스나 카레라이스보다는 김치나 된장, 고추장을 이용한 요리가 먼저 생각날 것 같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3대 양식’에 어떤 사연이 있기에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전통 음식보다 더 열광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돈가스의 탄생』은 일본에서 ‘3대 양식’이라 칭송받는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그리고 고로케가 태어난 배경과 그에 얽힌 사연을 단순히 지은이 오카다 데쓰의 회상이나 주관적인 경험이 아니라 다양한 문헌을 토대로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돈가스에 숨겨져 있는 일본인 특유의 집념을 간과하고 『돈가스의 탄생』이라는 제목을 본다면 “뭐? 그깟 돈가스 ….”라고 비아냥거리거나 비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너무나 위험한 착오다. 거대함은 사소함의 집합이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가 폐인을 양성한다는 부정적인 면도 있지만, 한우물을 파는 그들의 이러한 집념은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본 특유의 저력이다. 그리고 그러한 저력이 지금의 경제 대국 일본을 세웠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돈가스의 탄생』을 살펴본다면 일반적인 사서에서는 볼 수 없는 이채로운 일본 근대사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개방적인 대외정책의 물결 속에서 천황을 포함한 지도층이 적극적인 신문명 수용을 선언하고 나섰다. 이 책에서는 그런 신문명의 대표로 ‘쇠고기’를 들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7세기 덴무 천황이 살생을 금지한 이래 1,200년 동안 소와 같은 고기를 금기시해왔다. 하지만,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강국으로 나아가고 더불어 신체를 서양인처럼 키우려면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믿었던 일본 국민과 정부는, 자신들도 ‘모방의 귀재’라고 일컫듯, 낯선 서양 요리를 일본인의 주식인 쌀밥과 함께 먹을 수 있도록 그들의 입맛에 맞게 변형시켜 새로운 요리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가 바로 ‘3대 양식’인 돈가스와 카레라이스, 그리고 고로케의 탄생이다.

은이 오카다 데쓰도 인정하듯이 위의 ‘3대 양식’은 일본인만의 독창적인 음식은 아니다. 그들의 탄생 전에도 이미 서양에는 비슷한 요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기필코 자신들의 것을 지키고자 하는 고집과 집념은 결국 ‘양식(洋食)’이라는, 서양 요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일본 요리도 아닌, 이 중간에 있는 완전히 새로운 취향의 요리를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다.

사소한 것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재창조하는 일본 특유의 다양성과 집념을 보여주는 ‘오타쿠’ 문화는 ‘돈가스’의 탄생에서 이미 그 씨앗이 보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일본의 장인 정신, 아무리 사소하고 일상적일지라도 한 가지 기술에서 최고를 보여준 사람, 즉 나름의 기술을 완성한 장인을 존중해주는 사회 분위기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오카다 데쓰는 이렇게 서양의 요리를 흡수하고 보완해 재창조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든 나라는 일본뿐이라고 자랑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는 나로서는 확신할 수 없지만, 조선만 놓고 보면 아쉽게도 그대로 일본의 것들을 물려받았기에 조선의 것을 만들 틈이 없었던 것 같다(자장면은 어떨까? 하지만, 자장면에서 한국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에 대해 굳이 발명하자면 일본이 서양의 것들은 동양의 맞게 적당히, 그리고 적절하게 조율해 놓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대로 편하게 물려받아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돈가스의 탄생』에는 ‘돈가스’ 등 서양 요리를 둘러싼 일본의 근대사뿐만 아니라 ‘돈가스’ 요리 자체에 대해서도 기나긴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 자주 돈가스를 만들어 먹는 독자에게는 참고할 만한 ‘요리책’도 될 수 있다.

이 리뷰는 2014년 03월 14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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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11.

[책 리뷰] 전우의 능욕적인 죽음에 대한 단호한 응징 ~ 심판은 내가 한다(미키 스필레인)

전우의 능욕적인 죽음에 대한 단호한 응징

원제: I, the Jury by Mickey Spillane
“뭘요, 남자를 한 사람 사살한 것뿐입니다.” (『심판은 내가 한다』 중에서)

욕에서 사립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마이크 해머는 친구이자 경시청 경감인 패트 챔버스를 도와 함께 살인 사건 수사를 하기도 하는데 그의 거대한 몸집만큼이나 꽤 난폭하고 저돌적인 탐정이다. 그리고 마이크에게는 같이 전쟁을 겪으면서 죽마고우가 된 외팔이 친구 잭 윌리엄스가 있다. 잭은 자신의 팔을 희생하여 일본군으로부터 마이크를 구하기도 한 용감하고 정직한 경찰이었지만, 한쪽 팔을 잃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직업을 바꾸어야 했고, 어느 날 약혼녀 마너 데블린에 의해 시체로 발견되는 불운의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잭은 복부에 45구경 덤덤탄 한 발을 맞았고, 살인자는 총에 맞아 쓰러진 잭이 권총이 걸려 있는 의자를 향해 다가가자 의자를 천천히 뒤로 당기며 죽어가는 잭을 끝까지 지켜본 것 같았다. 마이크는 절친했던 잭의 죽음도 충격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도 살인자에게 능욕을 당했다는 생각은 살인자에게도 잭과 같은 고통을 주겠다고 큰소리치고 다닐 정도로 헤아릴 수 없는 분노와 증오를 마이크에게 가져다주었다.

한편, 잭이 살해당한 전날 밤에 잭의 집에서 조촐한 작은 파티가 열렸었다. 그 파티에는 의과 대학생 헐 캐인스와 헐을 식객으로 받아주고 후원해주는 암흑가의 두목 조지 카레키, 부모님이 물려준 유산으로 화려한 생활을 하는 매력적인 쌍둥이 벨레미 자매, 한때 마약중독자였지만 잭을 만나 과거를 청산하고 새 인생을 시작할 수 있었던 잭의 약혼녀 마너와 마지막으로 금발의 미녀이자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 샬로트 마닝이 참석했었다.

마이크는 조지와 헐 앞에서는 미친 늑대처럼 난폭한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벨레미 자매의 동생이자 음란증이 심한 메리 앞에서는 교묘하게 유혹을 피해가는 둥 잭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사건을 조사하다 그만 정신과 의사 샬로트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하지만, 사건은 미궁에 빠지고 그런 와중에서도 45구경 덤덤탄의 희생자는 계속 나왔다.

마이크는 잭이 남긴 수첩에서 아일린이라는 잭의 같은 고향 아가씨의 흔적을 발견하고 추적한 끝에 콜 하우스에서 일하는 그녀를 찾아간다. 그녀는 대학 시절에 존 핸슨이라는 남자에게 속아 몸을 망치고 부모에게 의절까지 당하자 할 수 없이 이 길로 들어선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비운의 여자였다. 그런데 최근에 잭을 알게 되었고, 잭은 그녀처럼 존 핸슨이라는 남자에게 당한 여자가 몇 명 더 있다는 사실을 듣고 독자적인 조사를 시작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이크가 잭의 궤적을 따라간 결과 존 핸슨이라는 남자는 무려 16년 동안이나 대학을 다닌 헐 캐인스였다. 하지만, 그 사실을 깨닫고 패트와 함께 경찰을 데리고 다시 아일린을 방문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와 헐 캐인스는 45구경 덤덤탄의 희생자가 되어 아직도 따뜻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시체는 죽은 지 얼마 안 된 듯 아직 따뜻했고 경찰은 바로 콜 하우스 주변을 봉쇄했지만, 끝내 범인을 찾을 수는 없었다.

목 『심판은 내가 한다』가 의미하는 것처럼 소설 속 주인공인 마이크 해머는 범죄자에 대한 법의 다스림을 인정하지 않고 스스로 범죄자를 단죄하는 저돌적이고 거침없는 다소 우악스러운 탐정이다. 과속을 단속하기 위해 쫓아오는 지방 경찰쯤은 아예 무시하는가 하면, 사건 조사를 위해 방문한 조지 카레키에게 다짜고짜 면상에 침을 내뱉는 등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는 무례한 언동은 정말 꼴불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헐이 재학 중인 대학 기숙사에 몰래 숨어들어 갔다가 헐의 숙소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자료를 태우고 있던 조지와 마주쳐 총격전 끝에 그를 죽이고 나서, 비록 조지가 먼저 총을 발사했을지라도, “뭘요, 남자를 한 사람 사살한 것뿐입니다.”라고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그에게는 비록 범법자라도 인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개념은 찾아볼 수 없다. 그에게 범법자는 파리 목숨보다도 못한 것이다.

찰도 아닌 탐정이 법의 판결은 뒤로 제쳐놓고 자신이 직접 범인을 재판하고 판결을 내리며, 거기에 자신이 직접 그 판결을 집행하는 무법탐정 마이크 해머는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다. 탐정을 가장한 보복의 화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욱 못 봐주겠는 건 고릴라 같은 탐정이 여성 앞에서만은 매력 만점의 멋진 사나이로 변신한다는 것이다. 『심판은 내가 한다』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이다.

하지만, 『심판은 내가 한다』를 포함하여 마이크 해머 시리즈가 미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니, 미국인의 거친 남성미에 대한 지나친 선망이 엿보이기도 하며, 한편으론 ‘범죄 대국’답게 범법자들에 대한 단호한 태도와 확실한 보복을 약속해 주는 마이크 해머의 저돌적이고 직접적인 행동방식이 미국인들에게 크게 호감을 산 것 같다. 또한, 국제사회에서 용서와 화해보다는 보복과 응징을 추구하며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는 미국의 골목대장 같은 기질을 그대로 드러나 보이기도 하는 것 같다.

이 리뷰는 2014년 03월 11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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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7.

[책 리뷰] 의심의 동물 인간의 예고된 비극 ~ 누명(애거서 크리스티)

의심의 동물 인간의 예고된 비극

원제: 'Ordeal by Innocence' by Agatha Christie

느 날 어둑어둑해질 무렵, 잉글랜드 서부의 서니 포인트라 불리는 한적한 곳에 있는 아가일 가문 저택에 지리학자 아서 캘거리가 방문한다. 그는 다름이 아니라 2년 전 아가일 저택에서 일어났던 한 살인사건에 대해 중요한 증언을 하기 위해서였다.

2년 전 11월의 어느 날 저녁. 대부호의 딸이자 자선사업가로 유명한, 5명의 양자와 양녀를 가진 레이첼 아가일 부인이 살해되었다. 경찰은 조사 결과 아가일 부인은 저녁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흉기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것이 치명상이 되어 사망했다고 결론지었다. 그리고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돈 문제로 아가일 부인과 말다툼을 한 아가일 부인의 양자 쟈코를 용의자로 잡아들였다. 쟈코는 부인과 말다툼을 하고는 바로 저택을 나와 히치 하이커를 해서 차를 얻어 타고 이동 중이었다고 무죄를 호소했지만, 자코의 증언을 뒷받침해 줄 운전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흉기에 묻은 지문이 증거가 되어 그는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 갇힌 지 6개월 정도 지나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캘거리 박사는 바로 2년 전 사건이 발생한 날 저녁때 자코를 차에 태워준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얼마 후 교통사고로 뇌진탕을 당해 일시적으로 기억 장애가 있게 되었고, 그 상태에서 2년간 남극탐험을 떠나버리는 바람에 쟈코의 사건에 대해 전혀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늦게나마 쟈코에 대한 기억을 되찾았고, 그가 비록 감옥에서 죽었지만, 정의와 그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경찰과 그의 가족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캘거리 박사의 증언을 통해 쟈코의 결백은 증명되지만, 아가일 가족은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2년 전 사건을 다시 상기시킨 캘거리 박사를 원망하는 듯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쟈코가 범인이었던 것이 더 나았다. 자코는 불량아였으며 언제나 사고뭉치였다. 그리고 그렇게 2년 전 사건은 모두에게 만족스럽게 해결되었고, 가족들은 2년 동안 평화롭게 안정을 이루어왔는데, 캘거리 박사의 등장으로 그 평화가 깨진 것이다. 그들은 불안했고, 앞으로 어떤 일이 닥쳐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정황상 아가일 부인을 죽일 수 있었던 사람은 가족 중 한 명일 텐데, 이제 그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가족을 의심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경찰은 재수사를 시작하고, 캘거리 박사는 자신이 한 일이 정의라는 대의를 만족하기는커녕 오히려 죄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꼴이 되었기에, 뭔가 해보려고 노력하기로 한다.

사람의 누명이 벗겨지는 것으로 평화롭던 아가일 가족은 한순간에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깨져버리고 서로에 대한 의심에 의심이 꼬리를 물게 된다. 아무리 불량배였다지만, 이들에게는 억울하게 죽은 대한 쟈코에 대한 동정심과 연민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다. 더불어 아가일 부인의 죽음에 대한 슬픔도 보통 자식이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것만큼 대단치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5남매 모두 입양된 자식이라서 그랬을까? 하지만, 아가일 부인은 대부호로서 부끄럽지 않게 입양된 자식들에게 아낌없이 모든 걸 주었다. 경찰도 아가일 부인 살해에 대한 동기로서 금전적인 요소는 제외해 버릴 정도였다. 아기를 가질 수 없었던 그녀로서는 강한 모성애를 그렇게 풀어버리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그것을 반강제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야 했던 자식들의 입장은 사뭇 달랐다. 감사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 그러나 진심으로는 감사할 수 없다는 죄책감, 한쪽으로만 흐르는 일방적으로 강요된 사랑, 비록 자식들이 잘되길 바라는 뜻에서 그랬을지라도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고자 했던 아가일 부인의 독선적인 자애심. 그녀의 자선이 오히려 독이 되어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지은이는 자선, 즉 경제적 지원만으로는 인간을 진실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자선은 일방적일 수 없다. 받는 쪽이 수월해야 주는 쪽도 수월하다. 받는 쪽이 제대로 받지 못해 그릇되게 쌓이고 쌓이다 보면, 고여 있는 물이 썩듯 악취를 풍기며 부패하여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자선은 할 수 있을 때 하라고도 한다. 나중에 하고 싶어도 누군가 받아주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것이 자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동물이다. 안 주면 안 준다고 화를 내기도 하지만, 또 너무 많이 줘도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도 같은 이치다. 결국, 옛 조상이 늘 강조했던 절제와 중용이라는 슬기로운 지혜를 다시 한번 우러러보게 한다.

아무튼, 아기일 부인은 나름대로 온 정성을 쏟아 자식들을 보살폈지만, 자식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받는 데 실패함을 넘어서 오히려 자식들의 증오 대상이 된다. 인간이 얼마나 다루기 어려운 동물인지 새삼스레 깨닫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겉으로는 평화로운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저택에는 언제든지 폭발할 수 있는 요소가 두루 갖추어진 셈이었다. 그러나 이런 아슬아슬했던 위기는 아가일 부인의 죽음과 문제아 쟈코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고 더불어 아가일 가족의 거짓되고 그릇된 평화도 계속 유지해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쟈코의 결백이 증명됨으로써 살얼음 같았던 그들의 평화와 믿음은 거침없이 깨지고 무너져 내린다.

인간은 의심의 동물이다. 인간은 끊임없는 호기심, 의심과 의문으로 지능의 발달과 동시에 많은 업적을 이룩할 수 있었지만, 지나친 의심은 불행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작품에서 아가일 가족의 막내딸 헤스터의 애인이자 젊은 의사인 클레이그는 자신은 어머니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랑하는 애인의 말을 믿지 못하고, 헤스터가 자백한다면 자신은 그녀를 버리지 않고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고 말한다. 젊은 의사는 애인이 범인일지언정 의심이 풀리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를 잘 안다는 오만에 그 누군가를 신뢰한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아주 사소한 작은 사건으로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안다. 의심과 신뢰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은 우아함과 흉측함을 고루 갖춘 지적 생명체의 영원한 업보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나약한 의지는 이 작품을 꿰뚫는 화살과도 같다. 범인을 찾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게 가족이 서로 의심할 수밖에 없는 비극적 상황 역시 이 작품의 묘미이다.

말 오래간만에 추리소설의 고전 명작을 만났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누명』은 간결한 문장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전개로 아가일 가족의 의심과 심리적 갈등으로 말미암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중압감을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누명』은 추리소설의 묘미라 할 수 있는 ‘범인 찾기’의 재미, 그리고 추리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범인의 의외성’이 주는 100만 볼트짜리 전율, 그 추리가 이루어지는 논리적 과정과 완벽한 마무리 등 정말 흠 잡을 데 없는 놀랍고도 재미있는 추리소설이었다.

이 리뷰는 2014년 03월 0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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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3. 3.

[책 리뷰] 미스터리에 색을 입히다 ~ 주홍색 연구(아리스가와 아리스)

미스터리에 색을 입히다

원제: 朱色の研究 by 有栖川有栖

보기 드문 장렬한 주홍빛 저녁노을이 지는 저녁. 에이토 대학에서 범죄사학 강의를 맡은 조교수 히무라 히데오는 제자 아카미에게서 아직 해결되지 않은 살인 사건 조사를 의뢰받는다. 2년 전 여름에 어느 바닷가 별장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으로 오노 유우코라는 매혹적인 피해자는 뒤통수를 나무 몽둥이 같은 걸로 맞아 죽은 것으로 판정이 났는데, 사후에 시체 허리 옆에서 발견한 큰 돌로 한 번 더 맞은 흔적이 있었다. 즉, 두 번 죽은 것이다. 세상의 종말 같은 일몰이 있었던 그 주말, 히무라는 의뢰받은 사건 관련 인물과 만나고 나서 마침 근처에 사는 추리 소설가이자 친구인 아리스가와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다 아침 6시도 되기 전에 걸려온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다. 아리스가와가 전화를 받았지만, 낯선 목소리의 남자는 다짜고짜 히무라를 바꿔달라고 말하고, 아리스가와가 끝까지 누구냐고 캐묻자, 낯선 남자는 오랑제 유히가오카 806호로 가라고 지시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두 사람이 다급하게 15층 80세대 중 10세대만 사람이 산다는 ‘유령 맨션’ 806호실로 달려갔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욕실에는 목 졸라 죽은 것으로 보이는 한 중년 남자의 시체가 있었다. 히무라는 2년 전 사건과 자신이 시체를 발견한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두 사건이 별개가 아닌 하나의 축을 가지고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더불어 제자 아케미가 겪은 6년 전 화재도 이 두 사건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결국 이 세 사건이 전부 얽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리소설 작가 아리스가와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월광게임』이었다. 에이토 대학 추리 동아리였었나? 그 동아리 중에서 학생 아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본격 추리소설이었다. 이후 읽었던 또 다른 학생 아리스 시리즈인 『외딴섬 퍼즐』과 묶어서 본다면 내가 좋아하는 엘러리 퀸을 연상시키는 논리적이고 정밀한 추리소설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주홍색 연구』는 경험을 살려 추리 소설가가 된 아리스가 대학 동창이면서도 임상범죄학자로서 경찰 수사를 돕는 히무라와 콤비를 이룬다는 내용이다. ‘학생 아리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히무라가 묵묵히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명탐정 홈스라면 아리스는 옆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수다스러운 웟슨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본격 추리소설답게 등장인물에 중에 반드시 범인이 섞여 있지만, 밀실 트릭이나 알리바이 증명 같은 추리소설에 빈번히 등장하는 고전적인 유형을 벗어나 동기와 정황을 토대로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조명하고 추리해가는 과정은 색다른 신선함을 안겨준다. 한편, 소설가 아스카베 가쓰노리는 아리스가와의 작품 『주홍색 연구』에서 ‘색채 미스터리’의 가능성을 눈여겨보았다고 한다. 비단 이 작품뿐만 아니라 다른 문학작품들에서도 서정적이고 아늑한 분위기 연출에 많이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가 저녁노을이긴 하다.

랑하는 사람과 아름답고 행복한 미래를 약속하는 가슴 벅찬 장면에서는 세상의 모든 더럽고 불결한 것으로부터 지켜줄 것 같은 강렬하고도 따뜻한 주홍빛 마법으로 연인을 감싸주기도 하고, 한편으론 가슴속 가득 충전된 뜨거운 열정을 밑바닥까지 소진시킨 끝에 결국 시들어 버린 자신들의 서글픈 사랑을 아쉬워하며 이별을 고하는 연인의 앞길에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주홍빛 비단을 깔아주어 새 출발을 위한 길 안내자가 되기도 하는 저녁노을이 『주홍색 연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주홍색 연구』에서의 저녁노을은 단지 아름다움과 낭만적인 분위기로만 가득 찬 것은 아니다.

인상적인 짙은 주황빛 저녁노을 아래에서 부모님의 사망 소식을 듣는 열세 살 소녀, 서로 힘겨루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담하게 저녁노을과 마주한 채 활활 타오르는 집과 화염 속에 갇힌 이모부를 하릴없이 바라보는 열다섯 살 소녀, 미모보다는 당당한 자신감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겼던 여자의 붉은 피와 살결을 보드랍게 감싸주는 저녁노을, 그리고 작품이 시작되는 11월의 ‘독살스러우리만치 붉은’ 저녁노을은 새로운 범행을 계획하며 길거리를 걷던 범인을 포함한 모두에게 특유의 자태를 뽐낸다.

녁노을은 악(惡)이나 선(善), 죽은 자 산 자 가릴 것 없이 공평하게 모두를 비춘다. 그리고 자신의 찬란한 주홍색 파장 아래에서 저마다 느끼고 생각하는 사심을 너그럽게 군말 없이 들어준다. 그 사심 속에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범죄가 숨어 있을지라도 인간 세상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저녁노을은 그저 자신의 빛깔과는 달리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며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한다. 강렬하면서도 부드럽고, 관대하면서도 차가운 저녁노을은 인간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헤어나지 못하듯 이 작품 역시 그 저녁노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게 『주홍색 연구』는 탄생한 것이다.

살인을 계획한 이에게도, 그 살인의 대상이 되는 이에게도, 그리고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이에게도 저녁노을은 어김없이 비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자신들을 향한 주홍빛 신을 무심결에 멍하니 바라본다. 그럼에도, 그 순간 자신들이 저녁노을을 통해 모두 하나 됨을 인식하지는 못한다. 마치 지극히 높은 곳의 신을 향해 지구에 흩어진 인간들이 저마다 구원의 손을 뻗으면서 모두 자기 생각만 몰두하듯이 말이다.

이 리뷰는 2014년 03월 03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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