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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 27일 목요일

[책 리뷰] 다중 미스터리를 쫓는 복잡한 재미 ~ 침묵의 교실(오리하라 이치)

다중 미스터리를 쫓는

원제: 沈默の敎室 by 折原一

쿄에서 차로 몇 시간 거리에 있는 마쓰이 초의 아라이산 아래 위치한 황폐한 절. 그 절 안의 묘지 옆에는 2층짜리 목조 건물이 있다. 보리밭에 둘러싸인 그 낡은 옛 건물은 올해 3월 폐교하기로 되어 있는 아오바가오카 중학교다. 4월에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3학년 A반의 동창회가 열릴 예정이기도 하다. 20년 전에 반장이었던 아키바 다쿠마는 스스로 동창회 간사 역을 맡아서 동창회 사무국을 만들고 신문을 통해 동창회 소식을 알렸다. 친구들에게 연락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그는 20년 전의 흐뭇한 추억을 떠올렸다. 아키바는 어떻게든 동창회를 열고 싶은 바람이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부반장이었던 쓰지무라 히토미는 동창회가 영 반갑지만은 않았다. 쓰지무라는 아키바가 20년 전의 학교생활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즐거워할 수 있을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발행인이 누군지 끝내 알 수 없었던 ‘공포신문’과 거기에 실린 끔찍했던 기사들, 그리고 선생과 학생 모두를 지옥불을 눈앞에 둔 죄인처럼 공포와 두려움에 떨게 하였던 ‘숙청’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한편, 26살의 프리터인 쓰카모토 유미는 동창회를 마치고 졸음과 싸우며 새벽 빗속을 음주운전 하다가 어떤 한 남자를 칠 뻔했다. 남자는 차에 치이지는 않았지만, 차를 피하다가 넘어질 때 머리를 땅에 크게 부딪히는 바람에 기억을 잃고 말았다. 남자의 주머니에는 신문에서 오린 아오바가오카 중학교 동창회 소식이 적힌 종잇조각과 약간의 돈과 열쇠, 그리고 ‘살인계획서’라고 적혀 있던 수첩뿐이다. 유미는 그에 대한 죄책감과 동정심으로 자신의 차에 치일 뻔한 30대 중반의 낯선 남자를 도와 함께 기억을 찾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긴 모험에 나서기로 한다. 그런데 이 남자는 중학교에서 어떤 일을 겪었기에 20년 만의 열리는 동창회에서 친구들을 죽일 계획을 세웠을까.

20년 전의 3학년 A반 담임을 맡았다가 2학기 초에 학교를 떠난 니시나 료사쿠도 신문에 실린 아오바가오카 중학교 동창회 소식을 봤다. 하지만, 그는 절대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는 침묵의 교실이자 구보무라 마사유키를 중심으로 행해진 공포정치를 잊지 않았다. 학교를 떠날 때 그가 탄 열차를 탈선시키기 위해 선로 위에 돌을 올려놓은 것도 그들 중 하나일 거였다. 그 사고로 그는 한쪽 다리를 평생 절름거리며 다녀야 했다.

니시나 료사쿠는 나름대로 진학을 앞둔 학생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그의 뜻과는 전혀 맞지가 않았다. 도쿄에서 왕따를 당하고 전학을 와서 새 출발을 하려는 학생의 비밀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 다시 왕따를 당하고 전학을 가야 했던 학생. 1학년부터 시험을 볼 때마다 커닝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왔다는 소문이 돌자 자살한 학생. 둘 다 숙청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는 무기력했다. 하세가와 미스즈와의 일도 오해였지만, 이미 더는 그 학교에 남아 있을 이유와 버틸 기력도, 의지도 없었다. 그 자신도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니시나는 망령이 지배하던 그 교실에서의 반년 남짓 한 생활 때문에 사랑하던 사람도 잃고, 더불어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런 그가 동창회에 나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복수자가 신문의 동창회 안내문을 본 것은 우연이었다. 그리고 신문에 실린 몇 조각 단어 덕분에 20년 동안 애써 억누르고 있던 격렬한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는 이것은 신의 계시라고 여겼다. 그는 20년 전, 담임과 불미스런 일로 학교를 떠난 하세가와 미스즈의 이름을 사용해 동창회 사무국에 연락해 동창회 관련 소식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에게 집배원이 전해준 동창회 명부와 그들의 주소가 적힌 동창회 소식지는 그에게 잘 차려진 밥상이나 다름없었다.

가 오리하라 이치의 『침묵의 교실』은 당연히 추리소설이다. 그런데 여타의 추리소설과는 다른 구성을 하고 있다. 첫째, 『침묵의 교실』에는 탐정이 없다. 보통의 추리소설은 공직에 있는 형사나 탐정사무소 등을 운영하는 전문탐정, 아니면 영리한 등장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탐정 대신 사건을 해결하게 하는 역할을 맡긴다. 그런데 이 작품에는 그렇게 사건을 풀어가고 해결해 나가는 특출난 중심인물이 없다. 즉 주인공도 없고 탐정도 없다. 다시 말해 모두가 탐정이고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둘째, 『침묵의 교실』에는 독자가 추리해서 찾아야 할 ‘사람’은 한 명이 아니다. 우선 독자는 동창회에 참석 예정인 회원들을 죽이는 ‘복수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야 한다. 그리고 20년 전과 현재 동창회 전후에도 계속 발간되는 ‘공포신문’의 정체를 추적해야 한다. 더불어 동창회를 이용한 ‘살인계획서’를 가지고 있던, 유미의 차에 치일뻔한 30대 중반의 기억을 상실한 남자의 정체도 밝혀내야 한다. 한마디로 다중 미스터리를 쫓는 다중 추리소설이라고 할까. 그래서 『침묵의 교실』이 여타 다른 추리소설에 비해 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무튼, 내가 운이 좋게도 추리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억을 상실한 남자’의 정체뿐이었다. 나머지 두 사건의 인물도 예리한 독자라면 작품을 읽어가면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짐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침묵의 교실』이 앨러리 퀸의 ‘독자와의 대결’과 같은 스타일의 본격추리소설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 설명에 ‘신본격’으로 분류되는 작가라고 설명이 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이 작품을 본격추리소설 범주에 넣기에는 조금 부족하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왜냐하면, ‘기억을 상실한 남자’의 정체와 관련해서 작가는 약간의 속임수 비슷한 것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즉, 독자 앞에 정직하지 못했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그럼에도, 오리하라 이치의 『침묵의 교실』은 다중 미스터리를 쫓는, 즉 복합적인 인과 관계를 좇는 복잡한 재미가 있다. 그래서 일반 추리소설보다는 조금 더 머리가 지끈 지끈거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이 리뷰는 2014년 02월 2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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