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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1일 금요일

[책 리뷰] 내 마음속 소중한 ‘작은 악마’ ~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바스콘셀로스)

내 마음속 소중한 ‘작은 악마’

원제: O meu pe de laranja lima(My Sweet Orange Tree) by Vasconcelos, Jose Mauro de
"마음속에 정말 악마가 있나 봐요. 충동이 일면 참을 수가 없거든요. 이번 주엔 에우제니아 아줌마네 집 울타리에 불을 냈어요. 꼬르델리아 아줌마한테는 안짱다리라고 했더니 화를 불같이 냈어요. 또, 헝겊 공을 찼는데 그 바보 같은 공이 창문으로 날아가서 나르시자 아줌마네 큰 거울을 깨버렸어요. 그리고 새총으로 전등을 세 개 깼고, 아벨 아저씨네 아들 머리에다가 돌도 던졌어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중에서)

빠가 일자리를 잃은 제제의 가족은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산다. 엄마와 누나들은 새벽같이 공장에 다니거나 집안일을 돌보느냐 바쁘고, 축 처진 어깨에 시무룩한 아빠는 멍하니 허공만 쳐다볼 뿐이다.

다섯 살의 제제는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동생 루이스의 손을 잡고 상상의 동물원으로 데리고 가면서 다정한 형이 되기도 하지만, 짓궂은 장난으로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매를 벌고 욕을 먹는 것 또한 제제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제제의 주변 사람들은 제제가 자신도 모르게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장난을 치는 것만을 보고 ‘악마의 자식’이라고 부르며 때리고 화를 내기만 한다. 이런 고달픈 사연을 안고 사는 제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열다섯 살의 글로리아 누나와 제제가 밍기뉴라고 부르는 라임 오렌지나무뿐이다.

그러한 제제에게 어느 날 진실한 사랑과 우정을 깨우쳐주는 한 사람이 나타난다. 그는 제제가 자신의 차에 매달리는 위험한 장난을 치자 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앞에서 제제를 꾸짖어 제제에게 창피를 준 것 때문에 한때 제제의 원수가 되기도 했고, 또한 동네 아이들에게는 뚱뚱하고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식인종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제제의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은 포르투갈 남자이다.

그는 자신의 좋은 차를 타고 제제와 드라이브를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제가 사랑에 굶주리다 지쳐 자포자기한 상태라는 걸 깨닫고는 제제에게 조건없는 무한한 사랑을 베푼다. 그리고 제제가 하루하루를 새로운 무언가에 대한 탐구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정도로 호기심에 가득 찬 조숙하고 영리한 아이임을 깨닫는다.

제야 바스콘셀로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를 읽었다. 지금까지 도서관에서 많은 책을 빌려 보면서 이 아름다운 책 한 권을 빼먹은 나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갓 볶은 따뜻한 원두의 그윽한 향기 같은 가슴 뭉클하고도 진한 감동과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지금 노트북 앞에 앉아 후기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착하고 얌전한 사랑스러운 동생 루이스를 작고 야윈 다섯 살의 제제가 다정하게 돌보는 모습을 떠올리면 어쩔 수 없이 내 눈은 촉촉하게 젖어온다.

제제는 다섯 살에 누구의 도움 없이 스스로 글을 깨우쳤을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이는 학교에서의 우수한 학업 성적으로도 나타난다.) 주변의 어른들은 그러한 제제를 격려하고 기특해하기는커녕 그 재능조차 악마가 준 것이라고 험담할 정도로 제제를 편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물론 제제가 작품 속에서 보여주는 장난은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심각하게 볼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제제의 장난에는 누구에게 악의를 가지고 골려주겠다는 목적의식 없는, 그냥 보통의 아이들이 아무 생각 없이 재미삼아 하는 그러한 장난 중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제제는 낡은 검정 스타킹을 뱀처럼 보이게 해서 길 가던 여자를 놀래주지만, 그 여자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알고는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잘못될까 하는 후회와 걱정을 넘어서 두려움에 떠는 모습에서 제제의 마음 깊은 곳에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듬뿍 담겨 있는 천성은 착한 아이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어른들은 제제도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듯이 가끔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 자신도 모르게 장난을 치는 겉모습만을 본다. 그러니 그 평가는 공정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가난에 지치고 지친 어른들은 잔인하게도 어린 제제를 동네북 두드리듯이 때리고 악담을 퍼부으며 자신의 삶과 운명에 대한 화풀이 상대로 전락시켜 버린다. 제제가 키가 크고 날씬한, 무엇보다 노래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엄마와 일자리를 잃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취직을 못 하고 늘 기운 없이 축 처진 모습만을 보여주는, 그래서 가엾고 불쌍하게 생각하는 아빠에게서조차 매를 맞는 상황이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면서 독자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렇게 제제를 사랑해주고 아껴주어야 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사랑보다는 미움을 받는 제제에게, 유일한 탈출구는 환상과 상상의 나라뿐이다. 그리고 외로운 제제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말동무는 새로 이사한 집 뒤에 있는 라임 오렌지나무이다. 그러나 라임 오렌지나무는 상상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말동무를 넘어 서로 교감을 통한 사랑 같은 실질적인 감정을 주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순간에 제제에게 나타난 구원의 천사는 제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친척도 아니고 그렇다고 가까이 사는 이웃도 아니고 더군다나 또래도 아닌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은 포르투갈 남자이다.

포르투갈 남자가 제제의 조숙한 재능을 인정하듯이, 역시 제제와 제제의 가족과는 전혀 상관없는 학교의 담임선생님만이 제제의 우수한 재능과 자신보다 더 가난한 친구에게 자신이 가진 빵을 나누어 주는 따뜻한 마음을 알아주고 칭찬해준다. 아이러니하게 가족에게서 받아야 할 관심과 사랑, 칭찬을 전혀 예상치 못한 제삼자에게 받아야 하는 제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자신의 텅 빈 운동화를 보고 순간 참지 못하고 제제는 외친다. “아빠가 가난뱅이라서 진짜 싫어!”라고. 하지만 곧 제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그 말을 지나가다 우연히 듣고 마음의 상처를 받은 아빠를 위로해주기 위해 구두닦이 통을 들고 온 시내를 돌아다니며 반은 구걸하다시피 하여 마련한 담배를 아빠에게 선물한다. 그러나 훗날 그러한 아빠에게 사소한 오해로 정신을 잃고 쓰러질 정도로 가죽 혁대로 얻어맞아야 했던 다섯 살 제제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들은 가끔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에 잠깐 참지 못하고 넘어가 짓궂은 장난꾸러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른이 되면 마음 편하게 악마에게 영혼을 몽땅 팔아 버리고 자신은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다.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작은 악마’는 사소한 장난으로 끝나지만, 이 ‘작은 악마’가 자라 완전한 뿔이 달린 ‘어른 악마’가 되면 더는 장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멈출 수 없는 광기와 끊임없는 욕망으로 부풀어 올라 전쟁과 기아, 죽음과 파괴를 낳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제제는 인간의 마음속에 공존해 있는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정말 인간다운 인간이다.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어른들은 솔직하게 제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세속적이며 자존심이 강하다. 그래서 제제는 예수처럼 수난과 멸시를 당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제제는 스스로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가는 자신을 끊임없이 뉘우치고 반성한다. 그리고 포르투갈 남자와의 비밀스러운 만남을 통해 사랑과 이별, 죽음을 알게 되면서 철이 들게 된다. 이제 제제의 마음속에서 라임 오렌지나무는 잘려나가며 멋진 카우보이와 인디언들의 환상과 상상의 나라와도 헤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일찍 어른이 된 제제는 묻는다.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라고.

이 리뷰는 2013년 11월 01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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