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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7.

[책 리뷰] 자본주의는 지금껏 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해본 적이 없다! ~ 푸드쇼크(로버트 앨브리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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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는 지금껏 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해본 적이 없다!

원제: Let them eat junk by Robert Albritton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과학 실험?

마 전 뉴스에서 한국인 혈액 속 수은 농도가 미국보다 3배 이상, 독일보다는 무려 5배나 높다는 조사결과가 보도되었다. 수은 같은 중금속들은 주로 수산물을 통해 흡수된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본의 아니게 먹게 되는 유해 물질은 비단 중금속 뿐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가 주로 먹고 마시는 라면이나 과자, 햄버거 또는 콜라 같은 가공 식품에서 흡수되는 화학물질 또한 인체에 쌓여 언제 터져 발병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천수를 누리겠지만, 재수 없으면 수십 년 후에 다른 화학물질들과 반응하여 암 같은 치명적이고 고통스러운 질병으로 고생할 수도 있다.

길거리에 흔한 패스트푸드 점포나 주위에 널린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가공식품들에는 맛과 모양을 위해서 다양한 화학물질이 사용되는데, 이런 화학물질들을 사람이 장기간 복용할 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확실하게 테스트 된 물질은 거의 없다고 한다. 환경보호기금의 정책 이사인 릭 스미스(Rick Smith)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통제받지 않는 과학 실험에 참여한 기니피그’다.

‘음식’을 둘러싼 부조리

리는 무엇을 위해 현대판 노예들, 스타크래프트의 일꾼 유닛과 다를 바 없는 치열한 경쟁 속으로 뛰어든 것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것이다. 이 대답에 사람이 그렇게 단순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디 밥 안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사람에게 있어 음식은 최고의 행복이자 먹는 사람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힘들게 번 돈을 가지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계속 먹는 걸까. 왜 우리는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음식까지도 소비자의 건강보다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냉혹한 시장경제에 맡겨야 하는 걸까? 왜 기업들은 소비자가 먹는 음식에 첨가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유독성 시험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걸까. 또한, 국가는 이런 상황을 왜 그대로 내버려두고, 인류의 번영에 이바지하기 위한 연구를 한다는 과학자들조차 소비자보다는 기업들에 편에 서서 담배를 옹호하는 걸까. 한편으로는, 한쪽에서는 어디를 가든 다양한 식품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사람들은 많이 먹고 그만큼 많은 음식을 버리고, 그들은 음식의 풍요로움 속에서 비만과 과체중으로 고생한다. 반면에 WHO(세계보건기구)는 전 세계 30억 명의 인구가 굶주림이나 다른 영양 불균형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추정했고, 21세기에도 5초마다 5세 미만 어린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사실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 걸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화학비료와 농업 생산의 자본화와 집중화로 식량은 이미 전 세계 인구를 먹여 살릴 만큼 충분하지만, 실제로 식량의 분배는 그렇게 공평치가 않다. 정작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들이나 노동자들이 배고픔과 영양 불균형, 각종 인체에 해로운 농약(선진 대다수 국가에서는 사용금지되었지만, 빈곤 국가에서는 다국적 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때문에 질병에 시달리는 현실은 누구를 탓해야 하는 건가.

자본주의는 지금껏 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해본 적이 없다!

버트 앨브리턴(Robert Albritton)의 『푸드쇼크(Let them eat junk)』는 넘쳐나는 식량 속에서 기아와 비만을 동시에 만들어 낸 자본주의 체제의 농업과 식량 공급에서의 불합리성과 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말하고 있다. 이제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한계와 문제점들은 비단 식량에 한해서만은 아니겠지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식량이다 보니 『푸드쇼크』에서 제기되는 많은 문제점은 그냥 무심코 넘길 수가 없다. 또한, 크고 작은 동네 마트에서 할인해 파는 저렴한 식품이 눈에 많이 띄어서일까. 다른 나라에서는 5초마다 어린 아이가 굶어 죽는다고 하니, 정말 믿어지지 않는다. 이런 사실들을 추려보면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 그것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기에 태어난 걸 정말 복 받은 것 같다. 이 풍요가 영원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런 문제에 대해 로버트 앨브리턴의 주장은 단호하다. 그는 자본주의는 지금껏 식량을 효율적으로 관리해본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류의 번영에 필요한 식량체제의 기본 조건은 지구 생태에 미치는 훼손을 최소화하고, 미래 세대들을 위해 환경 건전성도 강화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산되어야 하고, 이렇게 생산된 우수한 품질과 충분한 양의 식량이 각 개인에게 제공되어야 마땅하며, 그것은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가능성은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식량체제의 기본 조건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소비자의 건강과 이익보다는 오로지 기업의 이익만을 고려하는 현실의 문제점들과 그 원인에 대해 가차없이 비판하고 있다.

『푸드쇼크』에는 자본주의의 무관심이 만들어 낸 정크푸드, 미래를 담보로 하는 지속 불가능한 현재의 식량 체제, 가난한 자가 더 가난해지는 지독한 자본주의, 식량이 무기가 되는 공포 정치,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기아와 비만, 설탕과 고기, 그리고 식품 첨가물에 중독되는 현대인, 농업 노동자는 가난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 환경을 파괴하는 현재의 식량체제, 자유 민주주의보다 힘이 센 기업 등 우리가 사는 세상을 돌리고 지배하는 공장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진실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식량체제의 위기를 극복할 단 • 장기적인 방안에 대해서도 앨브리턴 나름대로 모색한다. 그러나 그의 대책을 보고 내 생각을 감히 말하자면, 그 방안이 현실적으로 정말 가능할지, 너무 이상주의적이지는 않은지, 하는 의문과 걱정이 앞선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우리 뼛속 깊이 잠식해 있고, 사람의 욕심과 욕망 또한 끝이 없을 뿐만 아니라 깊숙이 잠재된 욕망까지 끌어내고 없는 욕망도 만들어내어 유행을 호도하고 상품을 판매하는 자본주의가 과연 쉽사리 신의 권위에서 내려올지 회의가 든다.

식품회사의 관심은 소비자의 건강이 아니라 지갑이다

실 누구나 알다시피 기업이 이익을 좇는 본능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러한 기업의 장단에 맞추어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소비자의 우유부단한 태도 또한 문제인 것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충분한 정보를 얻지 못한 소비자는 단순히 돈만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을 담보로 무분별한 소비 행위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더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힘들게 공부하고 노력하며 돈을 벌지만, 결국에는 광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편리함과 달콤하며 기름진 맛에 중독되어 장기적으로 건강을 해칠 수 있는 가공식품이나 패스트푸드로 하루 세 끼를 채운다. 특히 식습관은 유전이 아니라 어렸을 때의 환경적 요인, 즉 양육으로 결정된다는 걸 아는 식품회사들은 어린 아이들에 대해 더욱 공격적으로 마케팅한다. 이에 대해 과연 부모들은 가족이 먹는 음식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과연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을까. 우리나라도 비만이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는 비만을 단순히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찐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정크푸드로 살 찌워진 사람들이 겉보기에는 배불러 보일지라도 영양상으로는 굶주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얼마 없다. 즉 정크푸드가 칼로리만 높고 영양적 가치는 형편없다는 사실을 (그래서 육체는 부족한 영양성분을 보충하기 위해 더 많은 음식을 요구하고, 이런 악순환이 결국 비만을 불러온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행동에 반영하고 있는가.

식품 회사나 담배 회사는 질 낮은 식품 섭취나 흡연으로 발생할 수 있는 막대한 사회 비용은 전적으로 개인이 부담하게 한 채, 뻔뻔스럽게 소비자의 건강을 담보로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고 있다. 요즘은 기업 이미지를 미화하기 위해 자선사업도 하고 여러 단체에 기부도 하지만, 결국 이런 것들은 기업의 궁극적인 기업의 이익을 위한 고도의 지능적인 전략일 뿐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미국의 광고회사들은 광고가 사람의 뇌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까지 하고 있다니, 예전 공산주의 사회에서 텔레비전을 국민의 세뇌 교육용으로 사용했듯이, 지금처럼 광고의 홍수 속에 사는 소비자가 아무 생각 없이 살다가는 기업들의 좋은 먹잇감이 되기 일쑤다. 많은 소비자가 사람의 살을 먹는 좀비가 아니라 자신의 지갑을 털어가면서, 부족하면 대출까지 받아 소비하는 자본주의적 좀비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의 대안은 가능할까?

사적으로 보면 자본주의는 냉전시대를 겪으면서 공산주의 때문에 만능해결책인양 과대 포장되어왔다. 당시 자본주의는 그 시대가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거라 믿었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믿고 있거나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는 생각해 본 적도,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로버트 앨브리턴의 『푸드쇼크』를 읽고 나서는 그런 안이하고 보수적인 생각에 많은 파문이 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어떻게 보면 필요에 의해 자원이 분배되는 공산주의야말로 이론적으로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인 건 분명하다. 이런 세상에서는 모두가 필요한 걸 똑같이 가질 수 있거나, 아니면 모두 못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공평한 사회이다. 하지만, 사람은 결코 자신이 필요한 것만큼만 자원을 소유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사람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다. 사람은 배가 부르고 죽을 때까지 다 쓸 수 없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어도, 계속해서 먹고 마시며 남의 것을 탐내며 계속해서 재산을 모으려고 애쓴다. 그래서 아무리 먼 미래라도 지금의 인류가 깨끗이 청소되고 신인류가 등장하지 않는 한,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공산주의 사회는 이미 사유의 쾌락에 물든 지금의 인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개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미 역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는가. 인류의 역사에서 공산주의는 사람이 아직 사유의 개념을 알지 못했던 먼 옛날의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람이 가진 부족함과 어리석음, 모든 사람에게 잠재된 끊임없는 탐욕이 일으킬 재앙을 일찌감치 깨닫고 정의롭고 평등하고도 금욕적인, 여러모로 완벽한 존재인 신을 삶의 모습을 본떠 창조했지만, 그 신마저 정치와 권력, 그리고 욕망의 충족을 위해 이용됐다. 이러하니 자본주의 체제 또한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가진 문제점을 꼬집어 내어 비판만 하는 것보다는 우리의 후손과 인류의 미래를 위해 자본주의가 가진 불완전함과 불평등을 인정하고 개선해나가려는 의지이다. 자본주의 초창기부터 이미 부의 재분배에 대한 비판과 불만이 제기되어 왔고, 많은 자본주의 국가가 이에 대해 점점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하면서 개선하려고 노력해 왔다. 자본주의도 변화하고 진화하여 산업혁명 당시 초창기의 자본주의와는 많이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일으킨 부의 불균형과 불평등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빈부의 격차는 국가 대 국가 간의 빈부의 격차 문제로 확장되었다. 착취 문제 또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지역적이고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국가 대 국가, 대기업과 빈민 국가 간의 전 세계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아직도 마르크스가 19세기에 목격한 착취의 현장이 그대로 선진국과 대기업, 조금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 묵인하에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 생생하게 남아있으며, 빈민 국가 아동들의 노예화도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값싼 음식, 값싼 소비자 의식이 지불하는 대가

든 일에는 대가가 따른다. 우리가 마트에서 싸게 사는 것만큼 누군가가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은 있는가. 중국이나 아프리카와 남미의 농장들, 그리고 다른 개발도상국의 임금과 작업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역시 우리에겐 다른 나라일 뿐이다. 전태일의 비극적인 죽음을 벌써 잊었는가. 여러분도 1860년대 마르크스가 처음 썼던 "내가 죽은 뒤 지구가 멸망하건 말건(Apres moi le Deluge)!"이라는, 모든 자본주의자와 자본주의 국가의 좌우명에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닌가. 과거 공산혁명이 그러했듯이, 이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이 안 된다면 언제가 자본주의를 대체할 새로운 사상과 함께 이 지구를 다시 한번 혁명의 화염 속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때는 아마도 과거처럼 도시적인 시민혁명이 아니라, 착취당해온 국가들이 일제히 들고일어서는 혁명이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한번 상상이라도 해봤는가. 자본주의나 민주주의 다음에 올 지금과 전혀 다른 시스템 위해 새워진 새로운 세상을. 조선시대나 중세 봉건 제도 아래에서 살았던 민중이 자본주의나 백성의 투표로 왕을 뽑는 민주주의, 신분제에서 해방된 사회를 상상하기가 어려웠듯이, 우리 역시 또한 자본주의에 파묻혀 다음 세상에 올 새로운 체제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선구자적인 새롭고 혁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올, 제2의 마르크스가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가 된다면 어떠한 시스템을 말하고 싶은가. 당신이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인가. 당신이 꿈꾸는 평화롭고 행복한 사회는 과연 어떤 사회인가.

나 같은 경제 쪽에 둔감한 사람에게는 『푸드쇼크』 초반부의 추상적인 자본주의를 설명하는 부분 등은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가볍게 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은 아니다. 한 장 한 장이 우리가 사는 현실의 모순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모두 잊고 있던, 아니 잊고 싶었던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독자에게 불쾌함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알고자 하는 독자라면 그쯤의 불쾌함과 불편함을 어찌 예상하지 못할까. 지나가면서 가볍게 읽기에는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깊이 생각하며 이해하고 넘어간다면, 소비 중심의 철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에게 세상을 좀 더 냉철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좋은 지식이 담겨 있다. 『푸드쇼크』를 읽고 나면 “변덕스러운 시장 가격에 식량 같은 기초 필수품을 맡겨놓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라는 앨브리턴의 당찬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마이클 폴란의 『잡식동물의 딜레마』와 윌리엄 레이몽의 『독소』, 『식탁의 배신』과 파울 트롬머 『피자는 세계를 어떻게 정복했는가』와 함께 보면 좋을 듯싶다.

이 리뷰는 2012년 10월 27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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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20.

[책 리뷰] 친숙했던 그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 ~ 버닝 와이어(제프리 디버)

숙했던 그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원제: The Burning Wire by Jeffery Deaver

래간만에 링컨 라임을 만났다. 링컨 라임 시리즈 8번째 『브로큰 윈도』까지 읽고는 그다음 시리즈는 아직 출판이 안 된 것 같아 다른 범죄 소설을 찾다가 보슈 형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는 라임은 한동안 잊고 있었다. 그러다 기분 좀 전환할 겸 추리나 범죄 소설 중 ‘뭐 재미난 거 없나?’하고 도서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요 녀석이 빳빳한 새 지폐처럼 눈에 띄어 누가 가져갈세라, 그리고 전작에서 알게 된 라임의 명성도 있고 하니 일단 대출하고 보았던 것이다. 아직도 난 도서관에 갈 때 특정한 책 제목을 기억하고 가지는 않는다. 많은 장서 틈을 뒤지며 뭔가 새로운 작품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거니와 충동구매가 그렇듯 그때그때 기분 따라 책을 선택하는 기준도 많이 다르고 그러다 좋은 작품을 발견했을 때의 흥분과 짜릿함이란.

일단 도서관에 도착하고 나면 대출한 책들을 반납하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신간도서,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이 없고 미리 염두에 두고 온 책이 없다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그날의 입맛에 맞는 책을 선택하게 된다. 주로 문학, 역사 쪽을 살펴보지만, 기분 내키면 사회나 경제, 과학(유전자나 고생물학) 분야도 본다.

아무튼, 그렇게 찾다가 링컨 라임 9번째 시리즈인 『버닝 와이어』를 만났다.

임 시리즈 9번째인 『버닝 와이어』에 등장하는 범행 무기는 이채롭게도 우리 주변에 너무나 많이 눈에 띄는 ‘전선’이다. 그래서 전압의 과부하를 이용한 ‘아크 플래시(arc flash)’가 자주 등장한다. 지난번에는 기업들이 수집한 개인정보 등의 데이터베이스를 악용한 범죄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전기를 이용한 범죄로 개인정보를 이용한 범죄와 마찬가지로 충분히 대형 범죄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고, 그 피해자는 우리 모두 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은 피해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개인정보와 전기를 악용한 범죄는 인간의 과학이 인류에게 편리함만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모든 일에는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고, ‘과학이 곧 행복은 아니다.’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볼 필요를 느끼게 한다. 옛날 옛적에는 자동차사고로 죽는 사람도, 총이나 폭탄으로 죽는 사람도 없었다. 과학은 인간의 호기심과 의문점을 충족시켜주고 편리함과 이득, 그리고 즐거움을 제공해 주었을지는 몰라도, 행복의 기반이 되는 인류의 자유와 평등, 평화를 가져다주지는 못했다.

제프리 디버는 이렇게 라임의 8번째, 그리고 9번째 시리즈를 통해서 이런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을 보여줌으로써 과학에 대한 맹신이 가져올 수 있는 대재앙을 예견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어느 화창한 4월 봄날, 뉴욕 퀸스에 있는 앨곤퀸 전력 회사에 뜬 ‘치명적 오류’ 메시지. 그리고 연속해서 정지되는 변전소들. 결국, 맨해튼에 있는 변전소가 폭발하며 일으킨 아크 플래시는 근처 버스정류장에 있던 정류장 기둥에 섭씨 2,760도의 불꽃으로 꽂혔다. 그리고 버스에 타려던 승객 한 명이 숨졌다. 그는 온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그게 치명상은 아니었다. 뜨거운 열기에 녹은 자그마한 쇠구슬이 산탄총에 맞은 것처럼 그의 온몸을 덮쳤던 것이다. 그리고 뒤이은 호텔에서의 엽기적인 테러 행위. 호텔 전체가 거대한 전도체가 되면서 호텔은 지옥으로 돌변했다. 회전문 손잡이, 연회장으로 통하는 놋쇠 문, 로비로 향하는 낮은 계단 난간, 엘리베이터 패널, 문 손잡이. 평소에는 친숙했던 이 모든 것이 지옥으로 가는 관문으로 돌변했다.

너무나 순수하고, 너무나 단순하고, 너무나 자연스럽다.
전류를 멈추게 할 수도 있고,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전류를 속이지는 못한다. 일단 발생한 전류는 본능적으로 땅으로 돌아가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며,가장 직접적인 경로가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라면 문자 그대로 눈 깜짝하는 순간에 살인을 저지른다.
전류는 양심도 없고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가 이 무기에 감탄하는 점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었다. 인간과 달리,전류는 영원히 자신의 본성에 충실하다. (본문 중에서)

문명이 조금이라도 있는 나라는 전부 사용하는 전기, 인간의 생활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전기, 그러나 편리함과 동시에 그 편리함을 느끼며 사는 모두에게 불행을 안겨다 줄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전기, 과학과 문명의 상징인 이 전기를 이용하여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를 잡고자 뉴욕의 그들이 다시 뭉쳤다. 자신은 단지 다른 사람들보다 기동성이 낮은 것뿐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짜릿한 ‘도전’을 학수고대하는 법과학자 링컨 라임, 라임의 수제자이자 매력 만점 연인인 빨간 머리에 여전히 속도광인 아멜리아 색스 형사, 라임의 사무실에서만은 언제나 점잖은 ‘델레이표’ 진녹색 슈트를 입고 등장하는 변장의 귀재 프레드 델레이 FBI 요원, 라임의 든든한 지원자이자 그 역시 자신만의 상징인 후줄근한 회색 정장을 소유한 배불뚝이 론 셀리토, 감식의 떠오르는 샛별이자 영원한 신참 론 풀라스키, 겉보기에는 가장 운동을 못 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볼륨 댄스 챔피언인 최고의 감식요원 멜 쿠퍼. 그리고 새로운 목표를 위해 멕시코시티에 등장한 라임의 최대 맞수 시계공. 과연 이들의 불꽃 튀기는 두뇌와 자존심 대결은 어떻게 결말을 지을지….

전에 링컨 라임 시리즈의 첫 작품인 『본 컬렉터』 이후 차례대로 라임 시리즈를 보면서 첫 작품에서 뒤편으로 갈수록 작품에서 얻는 재미나 전율이 아주 조금씩 감소한다는 걸 느꼈었다. 계속 같은 작가가 쓴 같은 시리즈만 보니 익숙해지고 또 물려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계속 먹다 보면 질리기도 하거니와 처음 배고플 때 먹었던 그 만족감과 흥분은 역시 같은 요리로는 다시 맛보기는 무리이기도 할 것이다.

라임 시리즈 8번째 작품까지 읽고 그런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번 작품은 좀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기대했다가는 작품이 주는 재미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실망만 할 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판단은?

영리한 범인이 첫 번째 범행 현장에서 실수로 남긴 혈흔 등 약간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있었고, 보통 모든 건물에 있는 피뢰침 등 접지 시스템을 어떤 방식으로 무력화시키고 호텔에서 감전을 이용한 테러를 했는지 궁금하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라임 시리즈 전부 다 그렇듯이 추리나 범죄, 스릴러 장르에 흥미가 있는 독자라면 당연히 『버닝 와이어』도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여기에 전기에 대한 역사적 일화나 전기안전을 위한 생활에서 지켜야 할 규칙 등 전기에 대한 실용적인 정보도 보너스로 들어 있다. 그러니 삶에 지쳐 피곤한 우리의 몸과 마음에 짧은 시간이나마 여유와 휴식, 그리고 링컨 라임만의 스릴감으로 말미암은 짜릿한 쾌감 등으로 상쾌한 기분 전환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읽어보고 판단하길 바란다. 이렇게 잠시나마 다른 세계에 빠져드는 것이 우리 삶에 적지 않은 위로가 된다는 건 독서에 취미가 있는 분이라면 다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번 작품을 읽고 왠지 모르게 다음 10번째 라임과의 만남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다음에는 과연 어떤 소재로 우릴 놀라게 할지….

이 리뷰는 2012년 10월 20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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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13.

[책 리뷰] 왜 김덕령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을까? ~ 국역 정본 징비록(유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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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덕령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만 했을까?

원제: 懲毖錄 by 柳成龍

유성룡이 ‘징비록’을 지은 이유

가람 역사문화연구소 소장 이덕일의 『유성룡: 설득과 통합의 리더』를 읽고 나니 역시 유성룡의 『징비록(懲毖錄)』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징비록』은 어떤 책인가? 말년에 조정에서 물러난 유성룡이 조선시대 가장 큰 전쟁으로 국가의 존망이 걸렸던 임진왜란을 되돌아보면서, 임진왜란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나라에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고자 후예들을 생각하며 지은 책이 『징비록』이다. 이 뜻을 『징비록』에서 유성룡은 이렇게 밝힌다.

『시경(詩經)』(제19권 주송周頌 소비장小毖章)에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懲] 뒤에 환난(患難)이 없도록 조심한다[毖].”라는 말이 있는데,이것이 바로 내가 『징비록』을 저술한 까닭이다. (『징비록』 「자서(自序: 스스로 적은 머리말)」)

그리고 『징비록』 「자서」에서 유성룡은 왜란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고서도 우리나라에 오늘날이 있게 된 것은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다. 또한, 선대 여러 임금님들[祖宗]의 어질고 두터운 은덕이 백성 속에 굳게 결합되어,백성의 조국을 사모하는[急漢] 마음이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며,임금께서 중국(명나라)을 섬기는 정성이 명나라 황제를 감동시켜 우리나라를 구원하기 위한[存邢] 군대가 여러 차례 출동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위태로웠을 것이다. (『징비록』 「자서」)

백지원의 『조일전쟁』에서 말하는 왜란 극복 삼대 요소인 명나라 원군, 이순신, 의병과는 약간 다르기 하지만 크게 틀리지도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전쟁을 그쯤에서나마 끝마칠 수 있었던 이유에는 백지원이 말한 앞의 세 가지 요소보다, 유성룡이 말한 대로 하늘이 도왔기 때문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순신의 등용, 곽재우나 유정 등 의병의 활약,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시기적절했던 죽음(이왕이면 더 일찍 죽었으면 좋았을지도), 명나라와 후금과의 전쟁이 한창때가 아니라서 조선에 원군을 파병할 여유가 있었다는 것 등 당시 조선의 국운이 아직 다한 것 같지는 않았던 것이다. 이왕 하늘의 도움을 바란다면 애초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었겠지만, 불행하게도 조선의 운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나라가 망하는 꼴은 면할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일본강점기가 약 3백 년이나 앞당겨지는 바람에 대한민국이 탄생조차 못 했을 수도 있었으리라.

의병 활동을 말하면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 이름, ‘김덕룡’

책을 읽으면서 생각나는 몇 가지 의문점 중 하나가 『징비록』에서는 전라도 의병장 김덕령의 이름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징비록』 제1권, 제7장 민중의 분기와 의병의 활동’에서 공로가 있는 전라도 의병장을 소개하는데 김천일, 고경명, 최경회 이렇게 세 명만 나온다. 그래서 ‘왜 김덕령은 징비록에서 한 번도 거론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나름대로 초보적인 추리를 해보았다.

‘이몽학의 난’에 가담한 세 사람

단 김덕령은 선조 29년(1596) 충청도에서 발생한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 도중 사망했다. 이는 압수된 이몽학의 문서 중에 기록된 김 • 최 • 홍씨 성이 누구냐는 질문에 반란에 가담한 한현은 '김덕령 • 최담령 • 홍계남'이라고 대답했다는 것과 이몽학이 세를 모으려고 김덕령과 공모했다고 선전한 것도 김덕령이 역모로 몰린 증거에 보탬이 되었을 것이다. 나아가 한현은 곽재우와 고언백도 모두 자신의 심복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이 중에서 김덕령과 최담령만 역모죄로 몰려 국문을 받았다. 고언백은 1609년 사망하고, 곽재우는 1617년 사망했다. 홍계남은 네이버 지식 백과에도 사망연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서 찾아보았다. 우선 선조 30년(1597) 1월 24일 2번째 기사를 보자.

상이 이르기를,
“경주는 누가 지키고 있는가?”
하니, 답하기를,
“권응수(權應銖)와 김태허(金太虛) • 홍계남(洪季男) 등이 부산 산성(釜山山城)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하였다. (『선조실록』 30년 1월 24일)

그렇다면 홍계남은 김덕령처럼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지만, 그 일로 죽음까지는 이른 것 같지는 않다. 같은 해 5월 3일 5번째 기사를 보자.

이조가 아뢰기를,
“홍계남(洪季男)에게 증직(贈職)하는 것이 옳은가의 여부를 비변사와 의논하여 아뢰라는 일이 판하(判下)되었기에, 비변사에 의논하였더니 ‘홍계남이 전후에 세운 전공은 참으로 많으나 이미 당상관(堂上官)으로 특진되었으니 증직까지 하는 것은 조금 지나친 듯하다. 해조(該曹)에서 별도로 부의(賻儀)를 내리도록 하고, 또 상사(喪事)를 주관하여 고향에서 장례하게 하며, 그의 노모에게는 음식물을 제급(題給)하고 처자에게는 3년 동안 요미(料米)를 지급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였습니다. 감히 아룁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대로 하라. 다만, 의병이라 일컫고 단 한 번의 싸움에 패퇴하여 그 사졸을 몽땅 잃은 자에게도 재질(宰秩)을 추증하였는데, 계남으로 말하면 흉적들이 가득히 있을 때에 우뚝이 충청우도(忠淸右道)의 보루(堡壘)가 되어 반쪽의 하늘을 떠받쳤으니, 이것이 누구의 공로인가. 옛사람들은 전사한 장수들에게 대부분 그 직질을 추증하였으니, 짐의 뜻은 증직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다시 의논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하였다. (『선조실록』 30년 5월 3일)

증직은 죽은 뒤에 품계와 벼슬을 추증하던 일이다. 고로 실록의 기록만을 보면 홍계남은 선조 30년 1월 24일에는 살아 있었지만, 같은 해 5월 3일에 ‘증직’이 거론되는 것을 보면 그 이전에는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한현의 입에서 나온 5명 중 김덕령과 최담령만 역모로 몰려 국문을 받았고, 곽재우, 홍계희, 고언백은 역모에 연류되지도 않았고, 천수를 다 누린 것 같다. 이 살아남은 세 명 중 『징비록』에서 공로가 있는 의병장을 소개할 때 곽재우, 홍계희는 등장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최담령이다. 김덕령과 같이 죽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고 죽지 않고 사면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세 가담자 중 기인 기질이 엿보였던 최담령

덕일 소장은 『유성룡: 설득과 통합의 리더』에서 김덕령과 같이 최담령도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보자.

김덕령(金德齡) • 최담령(崔聃齡) • 홍계남(洪季男) • 곽재우(郭再祐) • 고언백(高彦伯) 등이 무인되었다. 그중에서 김덕령과 최담령은 혹독한 심문 끝에 억울하게 장살(杖殺)당하거나 옥사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몽학의 난」)

이번에는 실록의 기록을 보자. 김덕령이 수백 번의 형장 신문에 정강이뼈가 모두 부러지는 와중에서 최담령을 천거하고 죽은 기록이다.

“ …… 다만, 신이 모집한 용사 최담령(崔聃齡) 등이 죄 없이 옥에 갇혀 있으니 원컨대 죽이지 말고 쓰도록 하소서.”
라고 했을 뿐 시종 다른 말이 없이 죽었다.
(중략)
남도(南道)의 군민(軍民)들은 항상 그에게 기대고 그를 소중하게 여겼는데 억울하게 죽게 되자 소문을 들은 자 모두 원통하게 여기고 가슴 아파하였다. 그때부터 남쪽 사민(士民)들은 덕령의 일을 경계하여 용력(勇力)이 있는 자는 모두 숨어버리고 다시는 의병을 일으키지 않았다.
최담령(崔聃齡) • 최강(崔堈)을 사면하여 덕령이 모집한 군사를 거느리고 양남(兩南)의 방어사에게 나누어 배속시켰다. (『선조수정실록』 29년 8월 1일)

이번에는 선조가 죽은 김덕령을 대신하여 그의 군사를 거느릴 장수에 별장 최담령을 지목하는 기록이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 그(김덕령)의 별장(別將) 최담령(崔聃齡)은 내가 일찍이 그의 사람됨을 보고 말도 해보았는데 용기가 뛰어났고 계략(計略)도 없지 않았으며 또 글을 조금 아는 데다가 발호(拔扈)하는 기상도 없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김덕령의 군사를 대신 거느리게 하고 싶다마는, 지극히 어려운 것은 사람을 알아보는 일이니, 마땅히 도체찰사(都體察使)로 하여금 그 사람을 불러다가 대신 거느리게 할 만한 인물이 되는지를 참작해 보아 처리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이렇게 한다면 또한 그가 거느리던 부하들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방도가 될 것이니, 비변사(備邊司)에 이르라.” (『선조실록』 29년 8월 25일)

최담령 역시 홍계남처럼 사망 연도는 미상으로 남아있다. 최담령은 김덕령의 친구로서 김덕령이 천거했다. 실록에서 권율이 이런 최담령을 칭찬하는 장면이 나온다.

“ …… 또 김덕령(金德齡)이 천거한 최담령(崔聃齡)이란 자는 체구가 남보다 크고 또 영기(英氣)가 있으며 7식(息)이나 되는 길을 하루에 가니, 이는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인재입니다.” (『선조실록』 29년 3월 4일)

7식이면 210리(里)이니 약 84km인데, 이를 하루에 갈 정도면 엄청난 경공술의 소유자이다. 지금처럼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사람이 직접 소식을 전하던 그 당시에는 발이 빠른 능력은 엄청난 재능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전시라면 더더욱. 더불어 권율이 말하는 최담령은 조금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상이 이르기를,
“(최담령은) 문장에 능한가?”
하니, 권율이 아뢰기를,
“담령의 측근에게 물으니, 담령은 평소에 옷소매 속에다 병서(兵書)를 넣고 다닌다고 하였는데, 정작 담령에게 물었더니, 담령은 ‘한 글자도 모른다.’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러나 언어에는 문자를 많이 씁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사람 중에는 자기 재주를 감추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 오직 등용하는 데에 달려 있을 뿐이다. 김덕령을 내가 한번 보고자 했으나 그는 먼저 내려갔다. …… ” (『선조실록』 29년 3월 4일)

김덕령은 형과 함께 성혼의 문하에서 수학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러한 김덕령의 친구도 글을 어느 정도 알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글자를 아는데 모르는 척했거나, 반대로 글자를 모르는 데 병서를 가지고 다녔거나, 어찌 되었건 특이한 인물이긴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이후에 실록에서는 최담령은 더는 등장하지 않는다. 실록을 보고 판단하자면 최담령은 김덕령처럼 고문을 받아서 사망하거나 옥중에서 사망하거나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말이지만, 선조는 ‘사람 중에는 자기 재주를 감추어 알려지지 않은 사람도 있으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자신에게 마음에 드는 인물을 잘 감싸고 돌다가도 한 번 삐치면 국물도 없는 변덕이 심한 임금이었다. 그러니 선조 밑에 있던 신하들은 꽤 고생했을 것이다. 그래서 유성룡도 조정을 떠나야 했다.

난이 일어나기 전부터 추문에 시달린 김덕령

무튼, 최담령은 약간 특이한 기질이 있어 보였어도 특별한 문제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김덕령은 달랐다.

잡아다가 국문하던 의병장 김덕령(金德齡)을 특명으로 석방시켰다. 덕령은 첩보(牒報) 전달을 지체했다는 이유로 역졸 한 사람을 매로 쳐서 죽였을 뿐만 아니라 도망한 군사의 아버지를 잡아다가 매를 쳐서 죽게 하였는데 죽은 자는 바로 윤근수(尹根壽)의 노속(奴屬)이었다. 근수가 남쪽 지방을 순시하는 도중에 덕령을 직접 만나 석방해 주도록 타일렀고 덕령은 이를 승낙하였는데 근수가 돌아가자 즉시 그를 죽였던 것이다. 근수는 그가 약속을 어긴 것이 미워서, 덕령은 신의가 없고 학살을 즐겨서 장수 재목이 되지 못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때 논의가 분분해서, 덕령은 살인을 부지기수로 많이 했으며 심지어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였다고 말하는 자까지 있었다. 결국, 덕령을 나국하였는데 증거를 들어 스스로 해명하자 상(上)은 특별히 방면할 것을 명하여 위로하고 달래어 보내고 또 전마(戰馬) 1필을 주었다. 상이 입시한 여러 신하에게 일렀다.
“당초에 덕령을 지나치게 추장하여 한신(韓信)이 다시 나타났다고 하였는데 이제 보니 하나의 돌격 장령(突擊將領)을 시키기에 합당할 뿐 대장을 삼기엔 가합하지 않다.” (『선조수정실록』 29년 2월 1일)

이몽학의 난이 일어나기 몇 달 전부터 김덕령을 둘러싸고 마찰이 있었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두 건의 살인죄를 일으킨 원인을 보면, 하나는 첩보 전달을 지체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도망한 군사의 아버지였다는 이유다. 전시에서 첩보 전달은 군 전체와 더불어 나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이런 첩보 전달에 문제를 발생시켰다면 군법으로 다스려 상황의 경중에 따라 사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전시에 탈영 역시 사형감이다. 그런데 정작 탈영한 병사가 아니라 그 아버지에게 불똥이 튀었는데, 이것은 연좌제를 적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으니, 김덕령으로서는 두 사건 모두 나름 변명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탈영한 군사의 아버지가 윤근수의 노비였다는 점이다. 이때 윤근수는 좌찬성 자리에 있었고, 형 윤두수는 이후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다. 이 두 형제는 선조 37년(1604) 호성공신(扈聖功臣) 2등에 책봉되기도 한다. 유성룡도 2등에 책봉되었다. 즉, 일개 의병장이 권세 있는 집안의 노비를 잡아 죽였으니 당연히 뒤탈이 없을 리가 없다. 이에 김덕령은 증거를 들어 스스로 해명해서 임금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 또한 김덕령 나름대로 억울한 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권율이 말하는 김덕령

조가 권율에게 김덕령이 어떠한 사람인지 물었더니 권율은,

“덕령은 본래 광주(光州)의 교생(校生)으로 용력이 뛰어나 쓸 만한 인재입니다. 그러나 늘 군율(軍律)이 엄하지 못한 것을 분개하여, 휘하 사람 중에 범죄자가 있으면 귀를 자르거나 혹은 곤장을 치기도 하므로 휘하 사람들이 점차 도망한다고 합니다.” (『선조실록』 29년 2월 19일)

김덕령은 용맹스런 힘은 뛰어났지만, 부하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어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위 글을 보면 범죄자에 대해서다. 즉, 김덕령은 군기를 엄하게 잡았고 군법을 어기면 덕을 베풀기보다는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그리고 위의 살인 문제는,

“극악한 왜적이 아직 소멸되지 않아 혹시라도 적절히 대처할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우선 방면하여 그로 하여금 힘을 다해 충성을 바치게 하고, 서서히 의논하여 조처하는 것도 또한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선조실록』 29년 1월 8일)

토사구팽당한 김덕령

렇게 선조의 명으로 그 당시에는 넘어갔지만, 문제는 이몽학의 난이다. 이때 김덕령은 무고로 죽은 것이다. 『난중잡록(亂中雜錄)』의 병신년(선조 29, 1599)의 기록을 보자.

(김덕령은) 국운이 불행하여 죄가 아닌데 죽였도다. 하늘이 그에게 수년의 수명을 더 주었더라면 정유년의 적이 어찌 전라 • 충청도에 쳐들어올 수 있었으랴. 당시에 뜻있는 이는 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뒤에 뒤떨어졌던 왜적이 듣고는 그 진위(眞僞)를 알고자 하여 원수에게 통지하여 충용장군을 보기를 요청하니, 원수는, “집에 돌아가 상(喪)을 마친다.”라고 답하였다. 그가 죽은 것을 자세히 알고는 모든 적추(賊酋)들이 술을 마시며 서로 축하하고 날뛰며, 기운을 내기를, “전라ㆍ충청도에는 걱정이 없다.” 하였다. (『난중잡록(亂中雜錄)』 병신년)

김덕령이 죽자 백성은 걱정하고 반대로 일본군은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김덕령은 현종 2년(1661)에 신원(伸寃)되어 관작이 복구되고, 1668년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이후에도 숙종 때 병조판서 등 추증은 계속 이어졌다. 이는 김덕령의 죽음이 무고였다는 증거이다. 진짜 죄가 있다면 이몽학, 정여립, 이괄의 경우처럼 신원 된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그렇다면 유성룡은 김덕령이 국문을 당할 때 김덕령을 유죄라고 생각했을까. 실록에 유성룡의 뜻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다.

덕령이 순순히 체포되어 하옥되었는데 상이 직접 국문하였다. 이에 덕령은 사실대로 답변했으나 증거는 없었다. 그는 갑자기 유명해진 까닭에 이시언(李時言) 등의 시기를 받았으며 조정 또한 그의 날쌔고 사나움을 제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고 의심하였으므로 기회를 타서 그를 제거하려고 많은 사람이 그를 놓아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하였다. 상의 뜻도 역시 그러하였는데 대질하여 심문하고는 오히려 그를 아깝게 여겨 좌우에 묻기를,
“이 사람을 살려줄 도리가 없는가?”
하니, 대신 유성룡 등이 아뢰기를,
“이 사람이 살 도리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그대로 가두어 두고 그의 일당을 국문한 뒤에 처리하심이 어떻겠습니까?”
하였고, 판의금 최황(崔滉) 등은 즉시 형신(刑訊)할 것을 청하였다. 상은 재삼 난색을 지었으나 아무도 구원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또,
“그는 살인을 많이 했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며 조금도 애석할 것이 없습니다.”
하기도 하였다. 정언 김택룡(金澤龍)은 아뢰기를,
“국가가 차츰 편안해지는데 장수 하나쯤 무슨 대수입니까. 즉시 처형하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하여 사람들의 웃음을 샀다.
상이 도원수를 시켜 덕령이 출병할 적에 태도가 어떠했는지 물었으며, 또 그의 부하인 최담령(崔聃齡)과 최강(崔堈) 등에게도 물었는데 모두 단서가 없었다. (『선조수정실록』 29년 8월 1일)

김택룡은 이황의 문인이었다. 그리고 선조수정실록은 서인이 편찬했다. 서인들은 이이의 십만양병설을 유성룡이 반대한 것처럼 꾸며 유성룡이 왜란을 자초한 인물인 것처럼 만들어 깎아내렸다. 위에 기록에는 김덕령을 죽일만한 증거나 단서는 없었고, 김덕령이 갑자기 유명해져 시기를 받았다고 나온다. 아마도 그 시기의 중심에는 자신보다 인기가 높은 인물을 질투하는 선조가 있었을 것이다. 선조와 그를 따르는 위정자들은 전란이 위급할 땐 김덕령을 써먹을 때까지 써먹다가 전란이 조금 가라앉는가 싶더니 그새 자신들 자리를 보전할 생각이 급급한 나머지 김덕령을 토사구팽한 것이다.

김덕령은 역모를 꾸민 죄인이라고 확신한 유성룡

인이 편찬한 선조실록의 다른 기록을 보면 유성룡은 김덕령을 좋게 보지는 아니한 것 같다.

“역적들의 옥사는 종사에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시일을 지체하거나 끌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상의 하교는 지당하십니다. 다만, 단서가 드러나지 않았을 적에는 부득이 갖가지로 캐물어 기어코 실정을 얻어내야 하는 것으로 이것 또한 큰 옥사를 신중하게 다룬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또 큰 옥사를 추국할 때는 반드시 공초한 말에 드러난 것으로써 증거를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역적들의 공초에는 단지 ‘김종사(金從事)’라고만 했으니, 가리킨 것은 반드시 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언욱(彦勖)과 응회(應會)가 다 같이 성이 김(金)이고 같은 족속(族屬)이므로 구분하여 가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들이 난처하게 되었기에 이렇게 취품(取稟)합니다.
…… 대저 역적들의 입에서 이런 말 저런 말이 잡다하게 나온 사람으로는 김덕령이 제일이니, 이렇게 드러난 것에 의거하여 먼저 김덕령을 추국하는 것도 안될 것이 없습니다. 신들이 반복해서 헤아려보고 의논해 보아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겠기에, 감히 성상께서 재량하시기를 품합니다. …… ” (『선조실록』 29년 8월 14일)

유성룡을 비롯한 대신들은 김덕령을 추국할 단서가 마땅하지 않아 고민했다. 이에 선조가 답했다.

“김덕령의 일은 이미 뭇 역적들의 공초에 나왔으니 이를 고찰하여 엄하게 추국해야지 전혀 단서가 없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다만, 이번의 큰 옥사에서 물어볼 만한 수종인(隨從人)들을 먼저 추국해야 하는 이유는, 실정과 행적을 모조리 얻어내어 이를 증거로 삼아 괴수를 추국할 바탕을 만들고자 하는 까닭에서이다. 옛적에도 이와 같은 옥사는 그 집의 노복(奴僕)과 비첩(婢妾)들까지도 모두 심문했다. 어찌 단지 공초한 말에 드러난 것만을 증거로 삼겠는가. …… ” (『선조실록』 29년 8월 14일)

‘어찌 공초한 말에 드러난 것만을 증거로 삼겠는가.’라는 이 말을 다르게 생각해보면 공초에서 나온 증거로는 김덕령을 처형하기가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성룡도 김덕령이 역모에 가담한 증거로 제시한 것은 죄인들의 공초에 나왔다고 한 것뿐이었다.

“김덕령은 역적들의 공초에 나왔으니 의심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여러 역적이 도착하기를 기다린 다음에 의논하여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옛적부터 역적을 다스리는 일은 반드시 문서를 기다려 본 다음에야 다스렸던 것은 아니었다. 여러 역적의 공초에 나왔는데 어찌 의심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다. 유성룡이 아뢰기를,
“상황이 이러하니 반드시 살게 될 수는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차차 따져 물어 실정을 얻어내야 합니다.” (『선조실록』 29년 8월 4일)

이때만 해도 유성룡과 선조는 죽이 잘 맞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기심이 강한 선조는 왜란이 끝나고 유성룡을 미련없이 내친다.

유성룡은 김덕령은 역모를 꾸민 죄인이라고 확신했던 듯하다. 그러나 그 증거는 단지 공초에 김덕령의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확실히 ‘김덕령’ 세 글자가 죄인들의 입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다. 『선조실록』 29년 8월 14일 기록의 “이번 역적들의 공초에는 단지 ‘김종사(金從事)’라고만 했으니”라는 대신의 말이 의구심을 가지게 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물적증거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범죄자의 입에서 한 번 이름이 거론되면 그걸로 그 사람은 끝장이었다

이몽학의 난에 연루된 의병장 중 김덕령만이 선조의 눈에 나다

런데 이몽학의 난에 연루된 의병장은 김덕령뿐만이 아니었다.

그(한현)는 자백에서 많은 무리를 끌어들였는데 당시의 명장 김덕령 • 곽재우 • 고언백 • 홍계남 등이 연루되었다. 상은 모두 불문에 부칠 것을 명하고 김덕령만을 잡아올 것을 명하였다. (『선조수정실록』 29년 7월 1일)

김덕령만이 선조에게 걸려들었다.

“김덕령은 사람을 죽인 것이 많은데 그 죄로도 죽어야 한다. 이빈(李賓)이 그를 절제(節制)하는 장수였는데도 또한 죽이려고 했었다니 그 죄 역시 크다.” (『선조실록』 29년 8월 4일)

선조는 다시 예전의 일을 꺼내 김덕령을 내친 것이다. 한때는 김덕령에게 호피((狐皮)와 말[馬]까지 주었던 선조였다. 필요할 때는 무슨 짓을 해도 못 본 척 넘어가다가도 필요가 없어지면 토사구팽(兎死狗烹) 하는 것이 선조의 특기다. 유성룡, 이순신도 그렇게 선조에게 버려졌다. 김덕령이 윤근수의 노비를 죽인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이미 김덕령은 죽은 목숨이었다. 단지 그때는 아직 일본군이 남아 있었고, 선조입장에서는 장수 하나가 급한지라 어쩔 수 없이 넘어간 것이었는데, 이몽학의 난과 더불어 선조 29년(1956) 5월에는 강화를 위해 명 사신 양방형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갔었고, 8월에는 심유경의 요청에 따라 통신사 황신 일행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전쟁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고 강화의 기미가 보이자 이제는 눈엣가시였던 김덕령이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여기에 유성룡까지 합세하였으니 김덕령은 당연히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실록에 있는 사관의 평을 들어보자.

인품이 일을 만나면 과연 나라를 위하여 근심하는 정성은 있으나 또한 치우치게 자기 소견만을 고집하는 일이 있고 또 화의(和議)를 주장하였다는 비평이 있었으며, 김덕령(金德齡)의 죽음에 대하여도 사람들의 말이 없지 않다. (『선조실록』 37년 8월 10일)

당시에도 유성룡이 김덕령을 구제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이다.

지역감정의 시작은 유성룡?

런데 유성룡이 지금처럼 지역감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에 대해 의심이 가는 대목이 있다.

“호남은 인심이 본디 나쁩니다. 토적이 봉기하여 혹 왜적에 붙거나 왜적이 물러가기 전에 산골짜기에 꽉 차 있게 되면 매우 염려스러운 일입니다. ……” ( 『선조실록』 27년 6월 26일)

당시 양호(호남, 호서) 지역이 조선 최대의 곡창지대였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도에 비해 인구도 많았을 것이고, 부(富)도 집중되었을 것이다. 전라도의 음식문화와 풍류문화가 발달한 이유도 로마의 부흥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만큼 전라도에 대지주가 많았다는 것을 말하고, 또한 이것은 착취당하는 백성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많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쟁이 일어나자 전쟁을 책임져야 할 임금과 대신들, 평소에 호화를 누리던 양반들은 다 도망을 가버리니 인심이 좋을 리가 있을까. 오죽했으면 왜군에 붙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일본군이 패전한 이유 중 하나가 곡창지대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해 조선이 전라도만은 일본에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을 그렇게나마 끝마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라도를 지킨 이순신과 의병장들의 업적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징비록』에서는 전라도에서 활약한 공이 있는 의병장으로 김천일(전라도 나주), 고경명(전라도 광주), 최경회(전라도 능주) 등 이렇게 세 인물을 들고 있다. 여기서 김천일은 퇴계 이황에게서 수학했고, 최경회는 김천일과 같이 선조 26년(1593) 6월 진주성을 지키다 전사했던 인물이다. 고경명은 선조 25년(1592) 금산전투에서 전사했다. 그리고 고경명이 전사하고 나서 고경명의 휘하였던 문홍헌 등의 남은 병력은 다름 아닌 최경회가 수습하였다. 참고로 그 유명한 논개(論介)는 최경회의 후처였다.

마무리

상으로 이 정도 선에서 살펴보면 유성룡이 김덕령을 전라도에서 활약한 의병장에서 제외한 것은 평소 김덕령의 행실이 바르지 못했다고 본 점(좋게 보면 군기를 엄격하게 다스렸다고 볼 수 있겠다)과 증거야 어찌 되었든 송유진, 이몽학 등의 역적들과 연루된 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징비록』에는 송유진, 이몽학의 난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도 없다. 민란 발생의 주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조정의 무능을 조금이라도 감추고 싶었을까? 『징비록』은 전쟁이 다 마무리되고, 유성룡 또한 조정에서 은퇴하고 지었던 점을 고려해보면 유성룡은 죽을 때까지 김덕령을 역적이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비록 김덕령이 평소 언행이 난폭하기는 했다지만 전시에 권율과 곽재우를 도와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파했던 커다란 공이 있었으니, 확실한 증거도 없이 역모로 몰려 전사(戰死)가 아닌 장살(仗殺)로 인생을 마치게 한 일은 안타까운 일이다. 설령 과거의 살인을 저질렀던 죄가 있었더라도 그가 전장에서 세운 혁혁한 공적이라면 충분히 사면도 가능했으리라.

이 리뷰는 2012년 10월 13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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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0. 6.

[책 리뷰] 교묘히 숨겨진 ‘행정적 밀실’의... ~ 살인방정식(아야츠지 유키토)

교묘히 숨겨진 ‘행정적 밀실’의 트릭을 풀어라

원제: 殺人方程式 切斷された死體の問題 by 綾辻行人

『살인방정식』은 <관 시리즈> 로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던 아야츠지 유키토의 초창기 작품 중 하나이다. 또한, 얼마 전에 읽고 후기를 작성했던 『어나더』 역시 그의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어나더』는 작가의 최근 작품이고 본격 추리물 적인 요소에 공포와 괴기적인 요소, 그리고 약간의 청춘물적인 요소도 혼합된 이색적인 작품이다.

『살인방정식』은 <관 시리즈>처럼 본격 추리소설이지만, 엄밀히 말해 보통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밀실이 배경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행정구역 경계선이 되는 사카이가와강을 사이에 두고 신흥 종교 교단의 본부 빌딩(S시)과 맨션(M시)이 주요 배경이듯이, 어느 곳으로도 꽉 막힌 완벽히 밀폐된 밀실은 아니지만, 행정적이면서 개방된 색다른 밀실 트릭으로 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리고 제목 그대로 정말로 물리학에 대한 ‘방정식’이 등장한다. 그렇다고 벌써 겁을 먹고 낙담할 필요는 없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그림까지 곁들인 자세한 설명도 나오니 말이다.

여기서 잠깐 작품의 초반 이야기를 보자.

6월 12일(일) 새벽 3시, 미타마가미쇼메이카이의 교주 기데나 미쓰코는 자택에서 남편 기데노 고조에게 넥타이로 목이 졸려 쓰려지고 13일 조간신문에 「JR 요코하마 선에서 중년 여성 투신자살」이라는 제목으로 12일 오전 5시경 도쿄도 M시 **초 JR 요코야마 선 사카이가와 철교 부근에서 당일 첫 하행 보통 열차에 중년 여성이 치여 사망했다는 보도가 실렸다. 곧 그 여성은 기데나 미쓰코로 밝혀졌다.

아내의 죽음으로 교단 경영에만 몰두했던 회장 고조는 교주의 정식 후계자로 지명되고 그 과정인 90일 동안의 '안거(安居)' 기간에 들어갔다. 이 기간에는 일체 외부인의 출입이나 교주의 외출도 금지된다. 하지만, 고조는 아내가 살아있을 때부터 사귀어온 애인 3명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교단의 홍보부장이고 죽은 교주에게 쫓기고 있다고 주장하는 38살의 유미오카 다세코, 부티크를 경영하는 28세의 사이토 미야, 주점을 경영하고 아직 입적이 안 된 고조의 3살 아들이 있는 35세의 하마자키 사치 등 이렇게 세 명이었다.

8월 15일 밤 10시 30분, 교단 본부 빌딩 펜트하우스에 고조와 함께 있던 미야는 정사가 끝나자마자 고조가 볼일이 있다는 말에 평소처럼 밤을 새우지 못하고 건물을 나와야 했다. 미아는 샤워하고 나가면서 교주가 전화를 받는 것을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평소와 다른 절박함이 느껴졌다. 미야가 나가고 또 다른 애인 유미오카, 그리고 사치와 전화를 끝내고 나니 밤 11시 10분이었다. 고조는 책상 서랍에서 편지를 꺼냈다. 지난달 초 이 옥상에서 '안거'를 시작하기 전에 집으로 배달된 편지다. 발신인이 없는 그 편지에는 “다음은 네 차례다.”라고 적혀 있었다. 두 달 전 그날 밤, 고조는 미야의 집을 나와 차를 타고 집으로 와 아내 미쓰코를 넥타이로 목을 졸라 죽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리고 미야의 맨션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어째서 미쓰코의 시체가 사카이가와 강 철교 앞 선로 따위에 누워 있었던 걸까.

건물 수위 아사다 쓰네오는 자정에 교주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창문으로 뒤에 강 쪽에 수상한 사람이 보이니 한 번 가보라는 것이었지만, 막상 가서 살펴보니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 3층에 불이 켜져 있었는데, 사무국장 노노무라 시로가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다. 자정을 5분 넘긴 시각, 노노무라가 화장실 문으로 가다 1층과 옥상에서만 서는 직통 엘리베이터의 층수 표시 램프가 4에서 3으로. 그리고 1에서 멈췄다. 교단 건물 동쪽 강 건너 있는 레지던스 K의 603호에서는 죽은 교주 미쓰코의 아들 기데나 미쓰히코와 그의 애인 미사키 에미가 있었다. 0:30분 그놈에게서 온 전화에 미쓰히코는 분노했다. 아버지이지만 피는 한 방울도 섞이지 않는 그놈. 바로 고조였다. 미쓰히코는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그놈이라고 확신했다. 그런 그놈이 전화해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요코하마로 오라는 것이었다. 미쓰히코는 에미가 타 준 커피를 마시고 자신의 차인 파란 골프를 타고 출발했다.

기시모리 노리야는 레지던스 K의 201호실에서 혼자 사는 T 대학 경제학부 학생이다. 그는 한 달 전 술에 취해 심야의 귀갓길에 사람을 치어 죽였다. 그리고 그 시체를 근처 잡목림에 버렸다. 일주일 후 시체는 발견되었지만, 그에게 경찰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의 행운에 감사하고 있을 때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모든 걸 보았다는 그 사람. 그 이후 기시모리는 자신의 의사로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자유를 잃어버렸다. 목격자는 금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지금 새벽 2시 10분에 그의 전화가 왔다.

건물 현관문에서 조금 떨어진 길에 한 대의 검은 마크 II가 다섯 시간 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맨션 쪽을 살피는 두 남자가 있었다. 어느 정보에 의해 잠복 중인 두 남자. 두 사람이 잠복을 시작하고 나서 문을 출입한 것은 대학생 같은 청년이 운전한 파란 폴크스바겐 골프와 그 바로 뒤에 나간 젊은 여성이 운전한 빨간 스탈렛뿐이었다.

8월 16일(화) 오전 6시 10분, 도쿄도 M시 **초 82-2, 맨션 ‘레지던스 K’의 옥상에서 타살된 남성의 시체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동 맨션 관리인 모로구치 쇼헤이이다. 경시청 형사부 수사 제1과의 젊은 형사 아스카이 교와 그의 동료 M서 형사1과에 근무하는 오제키 히로유키가 긴급 연락을 받고 레지던스 K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 20분쯤이었다. 건물 앞에는 검은 마크 II가 있었다. 그 안의 인물은 두 형사에게 낯선 인물이었다. 건물을 지키고 있던 정복 경찰관은 다른 사건 때문에 잠복 중인 공안이라고 말했다.

카롤라를 주차하고 주차장에서 건물로 들어가는 문은 자동 잠금 시스템에 의해 잠겨져 있었다. 현관 로비를 빠져나와 안의 엘리베이터와 계단 앞에는 다시 자동 잠금 유리문이 있었다. 옥상에는 요시노 게이스케라는 M서 형사가 발견자인 모로구티 쇼헤이라는 맨션 관리를 맡은 노인과 같이 있었다. 요시노는 그렇게 완벽한 신원 불명 시체는 없을 거라 말하며 밋밋한 동안을 찌푸렸다. 옥상 동쪽 끝 급수탑 옆에 머리가 없는 알몸의 남자 시체를 보고 교 형사는 무심코 비명을 질렀다. 처음 보는 머리 없는 시체다. 담배를 끊은 것 같았던 오제키 형사는 담배를 찾으러 내려갔다. 교 형사는 목이 없다는 충격에 주의를 빼앗겨 왼쪽 팔이 없는지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교 형사는 현의 경계인 강 건너 S시 4층 건물을 보았다. 이쪽보다 지면이 높아서 옥상 높이는 딱 이 맨션과 같은 정도다. 옥상에는 지름 10미터 정도의 흰 반구형 건축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강 쪽의 벽은 창문은 없고 만다라라는 기묘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2층 복도 창문, 건물 북쪽, 맨션의 뒤뜰과 마주한 위치에 흰 봉지 안에서 머리가 발견되었다. 발견자는 201호실의 기시모리. 교 형사는 결국 참지 못하고 기시모리의 화장실에서 아침을 전부 쏟아냈다. 지난 6월 미쓰코 투신사건을 맡았던 오제키 형사는 머리를 알아보고 펜트하우스 직통 전화번호로 걸어봤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다.

오전 8시 반. 교 형사는 오제키 형사와 함께 본부 빌딩으로 향했다.

렇게 고조의 머리와 왼쪽 팔이 잘려나간 시체로 본격적인 사건은 시작된다. 위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사건을 추리하고 해결하는 사람은 전혀 형사가 적성에 맞지 않은 교 형사가 아니고 다분히 괴짜 기질이 있는 그의 형이다. 교 형사의 형은 철학과를 6년째 다니는 괴짜에 헤비메탈다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역시 추리소설의 명탐정들은 결코 평범한 법이 없는 것이 진리인가 보다. 이 두 형제와 교 형사의 아내 미유키, 이렇게 셋이서 교 형사의 집에서 홍차를 마시며 밤늦은 담소를 나누는 ‘아스카이 가(家)의 수사회의’가 이 작품의 추리 에너지이다.

다다 상관에게 늘 구박받는 어설픈 형사인 교는 아내 미유키 때문에 형사가 된 인물로 어찌 보면 현장수사에는 나오지 않는 것이 사건 해결에 도움이 되는 인물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 때 젊은 경시청 형사의 도움으로 인질에서 구출된 이후 경시청 형사와의 결혼이 꿈이었던 미유키는 교 형사의 망원경으로 별을 바라보는 꿈을 버리게 하였다. 교 형사는 채식주의자가 되어 버릴 정도로 시체와는 영 친하지 못해,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형사 중 가장 비위가 약한 형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아내 미유키는 언제나 태연스럽게 “순직은 각오하고 있어.”라고 말하니 이 두 부부의 미래가 자못 궁금해진다.

아야츠지 유키토의 『살인방정식』은 본격 추리물답게 단서는 곳곳에 숨어 있다. 특히 그 단서 중에서 살인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 추리의 핵심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고조의 시체가 건물 옥상에 있게 만든 트릭은 추리소설 마니아라면 작품 앞 장에 나오는 「프롤로그(3) 범죄 계획」에 나오는 범행 도구들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고등학교 때 물리 공부를 성실하게 수행한 독자라면 더욱 쉽게 트릭을 파악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살인 동기와 사카이가와강을 경계로 하는 S시와 M시. 이것이 내가 줄 수 있는 힌트라면 힌트다. 특히 살인 동기는 『살인방정식』 등장인물 대다수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추리에 혼란을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이다. 세심하게 잘 살펴보면 분명히 답이 보일 거로 생각한다. 바로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머리를 굴려 범인을 찾는 것이 본격 추리물의, 오직 본격 추리소설에만 있는 가장 큰 재미 아니겠는가.

훌륭한 본격 추리물 작품에 한 번 손을 대면, 쉽게 나오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작가와 독자의 정직한 대결은 (그러나 결코 쉽게 보면 안 된다. 어느 곳에나 함정은 숨어 있다) 독자의 지적 기대감과 흥분을 일으키고 뒤탈 없이 깔끔한 만족을 준다. 이렇게 얻은 만족감과 쾌감은 독자를 바로 다음 작품 물색에 돌입하게 한다. 그렇다면, 이런 본격 추리물 작가로서 누가 있을까. 히가시노 게이고, 아리스가와 아리스, 시마다 소지, 우타노 쇼고 등등 이외에도 많은 작가가 있겠지만, 지금 생각나는 작가는 이 정도뿐이다. 여기에 ‘본격 추리물’, ‘독자와의 대결’의 원조인 앨러리 퀸이 있다.

이 리뷰는 2012년 10월 06일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것을
특별한 수정 없이 그대로 옮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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