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18

계절이 없는 거리 | 야마모토 슈고로

계절이 없는 거리 | 야마모토 슈고로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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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낭만화될 수 없는 괴물

가난, 또는 소외된 이웃들을 소재로 한 소설들은 (개인적으로) 굳이 찾아 읽어볼 정도로 구미가 확 당기는 소재는 아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런 소설을 읽을 때면 텔레비전의 기아 후원 광고와 마주칠 때마다 도망치듯 채널을 돌려버리게 하는 언짢고도 비겁한 마음이 트라우마처럼 남아 꽤 오랜 시간 나의 나약한 정신세계를 휘젓는 것이 견디기 어렵기도 하고, 내 경제력이 그들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자괴지심이 객사한 고양이라도 보듯 그런 소설들을 외면하게 만들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그런 소설들은 삼류 드라마 같은 뻔한 줄거리로 독자의 무방비한 감수성을 후려치듯 자극하여 값싼 감동을 끌어내는 노골적이고 뻔뻔한 작풍일 것이라는 고루한 선입견이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이를 먹어가며 보고 듣는 사건 • 사고들도 다양해지고, 더러는 책도 읽으면서 ‘가난’은 낭만화될 수 없는 괴물 같은 것이고, 그래서 미화되거나 이상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염세주의적인 신념이 탄력을 잃어가는 심장 한구석에 혁명이라도 일으키려는 듯 굳건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인간성이 더 풍부하다거나 정(情)이 더 넘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경제적으로 가난하다고 해서 인간성과 정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 달에 천만 원씩이나 버는 사람이 돈 만 원 때문에 얼굴을 붉히고 싸울 일은 매우 드물지라도 가난한 사람들은 단돈 몇 푼 때문에 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웃지 못할 비극을 되풀이하곤 한다. 가난은 분쟁, 마찰, 대립, 갈등, 질투, 시샘의 시발점이 되는 그 한계선을 지극히 사소한 수준으로까지 낮출 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경쟁은 바로 생존 문제와 직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들이 사는 거리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인간의 나약한 본성과 비열한 경쟁심이 극도로 표출되는 치열하면서도 서글픈 삶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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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행위에 대한 유별스러운 관심과 애착

아사히 신문에 연재된 야마모토 슈고로(山本周五郞)의 소설 『계절이 없는 거리(季節のない街)』의 주인공들은 누가 봐도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다. 하지만, 내가 약간의 거부감을 극복하고 기꺼이 이 소설을 선택하고 조그만 후회도 없이 야무지게 독파할 수 있었던 것은 야마모토 슈고로의 눈은 ‘가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행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위’를 독자에게 절단하는 익살스러우면서도 정황은 풍부하고 묘사는 세밀한 문장이 나름 독특한 멋을 부리며 나를 황홀하게 만든다.

야마모토 슈고로의 문장이 지향하는 바는 문학의 묘미는 묘사에 있다는 것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대상을 자연으로 한정한다는 것에는 반발하듯 잡다한 인간 행위에 대한 유별스러운 관심에 있다. 행위 주체에 대해 비꼬는 듯하면서도 비꼬는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연민 어린 시선이 담긴 것 같지도 않은 유머러스하고 세심한 묘사에는 감독이 예행연습 무대에 선 배우의 의상과 행동, 표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진정성과 애착 같은 것이 꿀처럼 듬뿍 묻어있다. 그것은 “그저 가난에 대한 측은지심에 의해 격발 된 이유 불문한 동정과 미화는 단지 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돈 좀 벌어보려는 얄팍한 수작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것에 개의하면서 산다는 것이 사치라고 여겨질 정도로 하루하루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 ‘거리’ 사람들에 대한 모욕 같은 것이나 다름없다“, 라는 작가의 주관이며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그 ‘거리’의 사람들에 대한 경외심과 애정 그 자체에서 기인할 것이다.

인간적 나약함을 천연스레 드러내는 ‘거리’ 사람들에 대한 유머러스하고 세심한 묘사가 다양한 군상을 알음알음 음미하는 관음적인 재미를 선사한다면, 적당히 탄 누룽지에 꿀을 살짝 발라 먹는 것 같은 쌉쌀하면서도 구수하고 달짝지근한 문장은 ‘읽는’ 재미를 선물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동고동락했던 작가의 우정과 의리마저 느껴진다.

이런 점들이 작품 소재가 ‘가난’과 꽤 친밀한 사이임에도 (‘거리’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불쑥 들 정도로) 매우 재미있고 유쾌하게 읽을 수 있는 진리와도 같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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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탈’에 견줄 말한 ‘일상’

(황석영의 『낯익은 세상』에 나오기도 하는) 한국의 도시 속 외딴섬인 달동네가 언뜻 생각나게 하는 그 ‘거리’는 간통과 불륜이 애들 소꿉장난만큼이나 흔할 정도로, 또는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전차를 역시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선로 위로 굴리는 신비로운 전차 운전사가 ‘도데스카덴, 도데스카덴’ 외치면서 노선을 운행하고 있을 정도로, 또는 한 끼 한 끼를 식당에서 선심 쓰듯 내주는 잔반으로 연명하는 거지나 다름없는 사람도 객사하는 순간에 집에는 풀장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유레카’ 외치듯 내뱉을 정도로, 또는 별로 친하지 않은 이웃과 마치 잔돈을 거슬러주고 받듯 아무렇지 않게 아내를 맞바꿀 정도로, 또는 자식 다섯 명 모두 아내가 바람피워 나은 자식임에도 스스로 오쟁이 진 아버지가 랜드마크처럼 존재할 정도로 방종하다. 심지어 고양이 토라조차 시내의 튀김집을 상대로 당당하게 삥을 뜯을 정도로 ‘거리’ 사람들과 그 ‘거리’ 사람들의 영향을 조금은 받은 것 같은 동물들의 일상은 거리낌이 없다. 보통 사람들이 선망과 두려움이라는 이중적 시선으로 경외하듯 소망하는 ‘일탈’에 견줄 말한 것들이 ‘거리’ 사람들에겐 코를 후비고 침을 뱉는 ‘일상’처럼 느껴질 정도다.

애초 가진 것이라곤 몸뚱어리뿐이니 가진 사람들처럼 체면 같은 건 차릴 필요가 없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에게 명성 따위는 엿 바꿔 먹을 것만큼이라도 있을 리가 없다. 명예 운운하는 것은 서로가 기분 잡칠 따름이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그때그때 생존에 필요한 것들과 그날그날의 신산함을 입으로 털어낼 가십거리 정도일 것이다.

사정이 이토록 극악무도하게 궁상스러우니 그들의 삶이 말쑥한 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질 낮은 시기심과 유치한 허영심 등의 과도한 발로로 인해, 역시 말쑥한 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드문 볼썽사나운 작태를 자주 연출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가난하다고 자존심마저 내팽개칠 수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비록 배운 것은 없지만 공짜 오락거리인 수다를 진절머리 나게 떨다 보면 비가 오면 웅덩이에 물이 고이듯 들어 줍게 되는 것도 많아지는 그들에게 이런 (역시 돈 한 푼 안 드는) 감정의 발산마저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삶의 몇 안 되는 낙이나 스트레스 해소제를 빼앗는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다.

야마모토 슈고로가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거리’ 사람들만의 생존 방식과 삶의 양식은 이처럼 무시무시하다.

도시 사람이 무심결에 잃어버린 지폐 한 장이 거리 사람에겐 횡재나 다름없는 일인 것처럼 보통 사람들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명암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처럼 그들이 나약함이나 서글픔을 자백하듯 드러내는 군더더기 없는 성정은 “사람만큼 존귀하고 아름답고 깨끗하고 듬직한 것도 없지만, 또 사람만큼 비루하고 더럽고 우둔하고 사악하고 탐욕스럽고 추잡한 것도 없다”라는 붉은 수염 의사 니이데 교조의 통찰처럼 반박할 수 없는 우리 인류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우리의 숨겨진 모습일 수도 있고, 숨기려고 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사정이 이러하니 그들을 긍휼히 여길지언정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거나 비웃을 수는 없느니라.

식은 헤이즐넛 커피처럼 향이라도 남았으면...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식어가는 핫팩이 남긴 온기처럼 은근하게 전해져오는 왠지 모를 친근함은 작별의 선물치곤 헤이즐넛처럼 달콤하면서도 꽤 향긋한 것이 나름 음미할 만한 정서와 여운을 지니고 있다. 한 번 더 읽고 싶다는 순순한 욕망과 함께 『계절이 없는 거리』를 원작으로 제작한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도데스카덴(どですかでん)」도 꼭 감상하겠다는 의지를 발동시킨다.

이만큼 글을 썼으니, ‘거리’ 사람들과 작가에 대한 나름의 의리는 지켰다고 생각되는 만큼 이제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해야 할 때라고 긴장하면서, 침침한 조명 아래 블루라이트 차단 필터가 느슨하게 적용된 모니터가 그 특유의 누리끼리한 색감을 뽐내듯 발산하고, 복사지처럼 하얗고 깨끔하게 펼쳐진 워드프로세서 창에 커서가 깜빡깜빡 조는 모습을 하릴없이 바라보는데, 꽉 닫히지 않은 방문이 빼꼼히 열리며 머리를 사람처럼 예쁘게 묶은 다롱이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면서도 문턱을 넘어 방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데, 건방지게도 다롱이는 가슴 언저리 정도까지만 문턱에 걸치고 살짝 처진 배와 토실토실한 엉덩이는 문밖으로 내뺀 채 주변 공기를 일렁일 정도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뭔가 해주기를 바라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시간도 시간이니만큼 소변을 보러 갈 시간이 된 것 같으니, 마루에 흥건하게 싸지르기 전에 베란다로 통하는 문 좀 냉큼 열어달라는 무언의 요청이렷다.

이것은 강아지와 함께 살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중의 일상이다. 그런 무료한 일상만큼이나 무료하고 따분한 글이 되었지만, 『계절이 없는 거리』는 절대 그렇지 않을 곳이라고, 식을 만큼 식었지만, 달콤한 향만큼은 그런대로 남은 헤이즐넛 커피를 음미하며 열렬하게 주장해 본다. 또한 식을 만큼 식었지만, 달콤한 향만큼은 그런대로 남은 헤이즐넛 커피처럼 이렇다 할 재미는 없지만 읽고 나면 모래알만큼이라도 음미할 만한 것이 남는 글을 쓰고 싶다고 열렬하게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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