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루언스(インフルエンス, 2021) | 살인을 빚진다는 것!
<늪에라도 빠진 것처럼 유리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작가> |
자신을 ‘유리’라고 소개한 어딘지 모르게 초췌해 보이는 중년 여자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써달라며 한 작가를 찾아간다. 처음엔 하소연 같은 것에 가까운 그런 이야기겠지 생각하며 마뜩잖게 유리의 이야기를 들었던 작가, 하지만 작가는 이야기를 들을수록 사악한 뭔가에 홀린 듯 유리에게서 섬뜩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이야기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고, 급기야 이야기를 끝까지 파헤치겠다는 오기를 보여준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길래 웬만한 이야기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 같은 소설가의 관심을 끌게 되었을까?
유리의 이야기는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5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유리(배우 하시모토 칸나)는 친구 마호(배우 아오이 와카나)를 지키려는 다급한 마음으로 사람을 칼로 찌르고, 이 상황을 우연히 목격한 유리의 소꿉친구 사토코(배우 요시카와 아이)는 친구를 경찰에 고발하는 대신 스스로 죄를 뒤집어씌워 자수하는 이변을 연출한다.
왜 사토코는 평생 지을 수 없는 무겁고도 무거운 살인죄를 짊어졌을까? 사토코는 성녀라서? 아니면 친구를 위해서? 이도 저도 아니면 흑심을 품고?
<이 예쁜 소녀들이 손에 피를 묻히는 길을 걷게 될 줄이야> |
<첫 번째 살인, 이때 묻은 피는 그녀 인생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다> |
소설가 콘도 후미에(近藤史恵)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인플루언스(Infuruensu)」는 어느 날 밤, 우연하고도 우발적으로 일어난 살인이 우정이라는 미덕의 비호를 받으며 또 다른 살인을 불러온다는 비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겉보기에는 ‘교환 살인’을 다룬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엔 친구를 구할 수 있다면 어떤 짓이든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우정의 비극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어 살짝 소름이 끼친다.
보통의 ‘교환 살인’은 일면식 없는 완전한 타인들 사이에서 계약에 의한 단순 상호부조 식으로 행해지지만, 그녀들은 ‘우정’이라는 아름답고도 가슴 뭉클한 명분으로 살인을 저지른다는 점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것이다.
<두 번째 살인, 그녀들은 살인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
<세 번째 살인, 친구를 속여(?) 살인을 저지르게 할 정도로 살인에 맛을 들였다?> |
드라마는 마지막 사건의 살인 동기를 간단하고 명료하게 하나만 제시하지 않는 영악함으로써 그녀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이를테면 A, B, C, F가 있고 A, B, C는 서로 친구라고 치자. C는 B를 위해서 F를 죽여달라고 A에 부탁하고, A는 C의 말을 믿고 F를 죽였는데, 알고 보니 F가 죽음으로써 C도 얻는 것이 있다면 C가 F를 죽여달라고 부탁한 의도는 진정 친구를 위해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드라마는 두 친구가 한 친구의 값비싼 희생으로 얻어진 무언의 화해(혹은 한 사람의 일방적인 자책감과 죄책감에서 비롯된 마음 내림?)를 받아들이면서 따뜻한 결말로 끝나지만, 만약 두 친구를 진심을 의심하기 시작한다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은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순진한 친구를 이용해 먹고자 하는 마음이 단 한 푼도 없었을까?
<얼마나 우정이 돈독해야 이런 부탁을 할 수 있을까?> |
<끝내 재판정에 선 세 사람,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을까?> |
자수했던 사토코가 출소하자마자 유리에게 던진 말, “이번엔 네 차례야”를 듣는 순간 드라마 「당신 차례입니다(あなたの番です)」가 떠올랐는데, 사실 상상을 초월하는 미스터리적인 전개가 자아내는 서늘한 재미와 폭풍 같은 흡입력 면에서 두 드라마는 거의 차이가 없다. 「당신 차례입니다」를 화면에 퐁당 빠지듯 감상한 사람이라면 「인플루언스」도 기꺼이 퐁당 빠져들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다만 결말이 다소 진부한 점이 흠이라면 흠이고, 그것보단 드라마가 너무 짧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중국 무협 드라마만큼은 안 되더라도 한 20회 정도까지 우려먹었다면 이 막바지 무더위를 잊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녀들은 서로를 구하고 서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살인을 계획한다. 만약 그녀들이 살았던 세상이 의리를 국법보다 중시하는 강호의 세계였다면 그녀들의 살인으로 다져진 우정은 무림 영웅들의 찬사를 받을만한 일이지만, 법치주의를 표방하는 현대에선 그녀들은 한낱 범죄자일 뿐이다. 드라마 결말은 그 어떠한 미덕으로도 살인은 미화될 수 없다는 냉혹하고 고리타분한 현실을 심드렁하게 보여준다. 결국 누군가는 죗값을 치르게 되니까 말이다.
끝으로 유리, 마호와 사토코 중 한 사람은 다른 두 사람을 위해서 항상 대기 중인 무보수 살인청부업자 같은 존재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드라마에서 일어나는 살인 중 그 한 사람을 위한 살인은 단 한 건도 없기 때문이다. 이런 공평치 못함은 ‘우정’의 불가사의한 효과 중 하나인 ‘희생’이라는 속성으로 덮어둘 수는 있지만, 그 한 사람은 우정이라는 미명에 속은 어리석은 희생자이고, 나머지 두 사람은 우정을 잘도 이용해 먹은 승자라는 생각이 영 가시질 않는다.
현실에서 친구를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과 친구의 약점을 이용해 먹는 사람 중 어떤 부류의 사람이 더 많을까를 생각하면 마호와 사토코가 생각했던 우정의 실체를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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